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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가?

wordlove 2021. 4. 3. 05:55

1. 본문: 11:1-6

2. 명제: 예수님의 교훈 때문에 실족하는 사람이 많다.

3. 제목: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가?

 

성경의 대 선언은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오셔서 우리 인생이 필요한 모든 일을 다 완수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완전한 만족을 그 분안에서 모두 찾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갈급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여러가지 이유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그분의 말씀을 받지 않으며 그분께 자신을 맡기지 않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넘치도록 주시려는 복을 받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큰 비극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급한 현안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또한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것들은 중요한 문제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생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입니까? 이것이 가장 시급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지적하는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성경은 주저없이 말합니다. 만약 인생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그분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 그 가르치시는 삶을 실천하면 우리들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성경의 가르침대로 산다면 전쟁도 없으지고 대기 오염의 문제도 없어지도 빈부격차도 없으지고 암콜 중독 성범죄 살인 이혼 등의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질 것입니다. 세상의 인생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면 이 세상의 온갖 추악한 죄악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인생의 비극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실족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1.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과 세상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언짢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많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가르침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인간의 영혼과 영적 문제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육이 아니요 영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라는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유대인은 항상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주님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일에 관심이 갖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의문을 품은 것입니다. 저분이 진정 메시아라면 큰 문제들을 다루어야 하지 왜 항상 인간의 영혼과 영적인 문제를 대해서만 말을 하는가? 왜 그는 큰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는가? ” 이것이 유대인들에게 걸림돌이 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언짢게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한가지 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한가지 주제는 인간의 영혼입니다. 주님은 한 개인의 무한한 가치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예수님은 대중들을 향해 너희들은 언제나 이 세상 자체 속에 있는 물질에 관심이 쏠려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 속에 있는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에 관심이 있다. 만일 너희들의 영혼이 하나님과 바르게 되어 있지 않으면 이 세상 전체가 이상적으로 세워진다 하여도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예수님의 지속적인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켰습니다. 6장에서 예수님이 먹을 것을 주시고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았지만 예수님이 자신이 생명의 떡이니 자신을 먹으라는라는 말씀을 듣고서는 돌아가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의 양식인 예수님 보다 예수님이 주시는 육신의 떡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보다 예수님이 주시는 육신의 떡에만 관심을 가지고 교회에 온다면 여러분은 결코 예수님을 만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비유를 사용해서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비유의 주제도 인간의 영혼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꽃들을 보시고도 똑같은 교훈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꽃들이나 새들을 놓고 그 자체를 설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실물 교훈을 위한 자료들이었습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들의 백합화와 아름다운 옷으로 입히신다면 너희들은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하나님의 공중의 새들을 그처럼 아끼셔서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너희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은 얼마나 더 크겠는가? ”예수님은 언제나 영혼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넓고 깊은 지식을 예로서 사용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불만을 품었습니다. 왜 에수님은 미술이나 문학에 대해 또는 멋있도 흥미로운 주제들에 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항상 우리 속에 있는 영혼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말씀만 하십니다 예수님은 과거에도 그러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영혼에 대한 동일한 주제를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질문은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냐가 아니고 내 영혼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영혼의 강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언짢아합니다. 주님은 사람의 영혼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개인의 영혼에 대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개인적으로 그들의 영혼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들에게 한 사람 한 사람씩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개인에게 질문을 하고 답변을 해 주실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을 향해 보편적인 것들을 말씀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주님은 자기 종들을 통해 항상 개인적으로 복음을 들고 접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에게 어떻게 접근했습니까? 사울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개종자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를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9: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환언하면 너는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 ’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개인적인 도전으로 다가오며 개인적인 응답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최대의 질문을 직접적으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어떤 상태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개인의 구주로 믿습니까? 저는 단순히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묻는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체험적으로 직접 아는 지식이 신약 교회의 교인들에게 있었습니다. 구원이란 나 개인의 영혼에 관한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자세와 위치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들인은 그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온자들입니다. 구원은 매우 개인적인 사건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요 주님으로 믿습니까? 그리스도는 대한민국의 구주요 주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구주요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그 어떤 것보다 바로 이 구원의 나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성격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수 믿는 신자들은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아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주님은 항상 회개를 촉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회개의 권고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언짢게 해 왔는지 모릅니다. 예수님 때에도 그랬고 지금도 회개의 촉구는 수많은 인간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인생에 대한 멋진 프로그램을 짜놓고 이것이 내 아이디어니 따르시요라고만 했다면 아무도 그리스도에게 거부감을 갖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등 다른 철학자들에게 거부감을 갖지 않습니다. 그들은 항상 우리들에게 좋은 말로 권유합니다. 철학자들은 인생을 논하면서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고 권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 훌륭한 인생론이구나 라고 은혜 받았다고 생각하며 그런 식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이상한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돌질을 하려고 했었고 어떤 이들은 주님을 떠나서 다시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군중들은 없이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라고 외쳤습니다. 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처럼 못맞땅하게 여겼을까요? 예수님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비위를 상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모든 사람을 정죄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무도 정죄 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화개가 복음 메시지의 필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눅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큰 화를 내었습니다. 왜 우리가 잃어버린 자냐?? 예수님은 모든 인생이 상실된 인간이며 인생이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은 본능적으로 죄인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죄인이냐? 인생들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를 여지없이 드러내셨습니다. 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우리 인생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강좌를 듣고 언짢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참 복음은 당신이 현재 이 모양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처럼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당신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복음은 지적합니다. 당신이 하나님께 반항하고 당신이 교만하기 때문에 당신의 삶에 혼란이 왔다고 지적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뿌린 씨를 거두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당신을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없이 이 세상을 이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죄입니다. 그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이 이 세상과 당신을 향해 외치는 예수님의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이 메시지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 스도의 메시지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복음은 우리더러 죄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 회개의 메시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회개한자만이 구원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3.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못맞당하게 여기는 것은 주님의 구원 방법이 너무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구원의 단순성이 주된 걸림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교리와 그리스도의 보혈 교리 거듭남의 교리만큼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고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구원하려고 오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사람들은 화를 내고 그분께 돌을 던집니다. 구원의 방법이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구원 방법이 고상한 교훈들을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라고 했다면 누구나 좋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좋은 모범을 보일 테니 인생은 그렇게 살라 고 했다면 모두가 참 멋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너희들은 완전히 상실한자들이다. 너희들은 너무도 죄가 많아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 만일 인간들이 자기들의 구원을 위해 조금이라도 무엇을 할 수 있다면 내가 구태어 이 세상에 올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에 인간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셨다. 율법을 주시면서 그대로 살면 하나님 눈에 의롭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만일 인간이 그런 식으로 자기들을 구원했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오심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주님은 계속해서 이 말씀을 하셨는데 사람들의 귀에는 항상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영혼들을 구하려고 왔다. 하나님과 너희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다른 길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복음은 이처럼 단순하다. 내가 너희들의 구원을 십자가에서 내 몸으로 샀다. 너희들에게 선물로 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구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구약 시대의 아람 나라 나아만 장군과 같습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자였습니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서 어떻게 해야 자신의 병이 낫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엘리사는 요단 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에 나아만은 역정을 부리면서 엘리사가 자신을 모독했다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의 나라에도 요단강 보다 훨씬 크고 좋은 강들이 많았으므로 그는 엘리사 선지자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으로 몹시 불쾌해하며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부하가 만류했습니다. 만일 엘리사가 당신에게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라고 했다면 장군은 그것을 않하셨겠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간단한 일을 하라고 하는데 어찌 거절하시렵니까? 그 선지가 시키는 대로 행하면 효과가 있을 줄로 압니다 나아만은 너무나 우수쾅스러워 보이는 이 단순한 일을 행하였고 그의 문둥병을 깨끗이 치유되었습니다. 복음의 성격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말고 구원의 선물을 받으라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립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길고 복잡한 프로그램을 원합니다. 그런 것을 부지런히 적어서 그대로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복음은 당신이 자신의 어두운 영혼에 대해서 아무 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현재 모습 그대로 나오면 된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단순한 선물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째서 그렇게 걸림이 되고 거슬린단 말입니까?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무가치한 인간이란 말씀인가요? 내가 밑바닥에 사는 인간과 똑같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바닥에서 헤매는 가장 천한 인간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속절없는 죄인입니다. 인간을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구원은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들은 회심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자신의 무력함을 인식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아야 합니다. “ ” 여러분은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는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을 구주로서 깨닫고 믿는 자는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내 죄를 위해 돌아가시고 나의 의로움을 위해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단순히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신령한 구원의 선물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아직도 예수님이 당신의 마음에 거슬립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영혼의 구주가 되신 분입니다.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비극중에서도 비극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그분께 당신을 의탁하고 그분의 구원을 받으십시오. 그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