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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국가에 대한 의무(수정본)

wordlove 2021. 4. 7. 05:42

1: 본문: 13:1-7

2. 명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과 양심에 따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3. 제목: 그리스도인의 국가에 대한 의무

 

지금 우리는 권위가 추락되어 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권위 혹은 권세란 말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삶의 현장은 누구나 권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의 권세의 보호를 받고 부모와 자식이라는 권위 관계 속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 사장과 종업원이라는 권위 하에서 일하게 됩니다. 나아가 국가라는 권위를 만나게 됩니다. 권세라는 말은 인간이 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맺어 주는 연결 고리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권위가 실종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혼란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직장이 혼란스럽습니다. 나라가 심하게 요동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 사도는 1 세기 초 로마 정부 밑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국가에 대한 합당한 의무를 다할 것을 말씀했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로마 황제가 절대적인 권세를 휘두르고 있었던 전제 군주시대였습니다. 그런 사회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과 양심에 따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우리가 만나고 있는 여러 권세 중 국가라는 권세에 대한 성경적 견해를 소개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양심에 따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의무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과 양심에 따라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1-2“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각각 권세 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왜 세상 권세 자들에게 복종해야할까요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 답은 권세 즉 정부의 권위를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절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여러분여! 세상 권세 왕 대통령 등의 모든 세상 권세 자들의 원천은 어디인지 아십니까? 우리 하나님이라고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단 2:21“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도다 하나님은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 때에 따라 왕을 세우시기도 하고 폐하 시기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최고로 높으신 권세 자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왕을 세우기도 하시고 패하기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최선의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본래 원하시고 의도하셨던 하나님의 최선을 뜻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허용적인 뜻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타락한 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인간의 타락은 본래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용하셨습니다. 당장 우리의 눈에 불합리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온다고 하나님께서 판단하셨을 때 그것이 최선의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허용하시는 경우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에 김일성을 세우신 것이 본래 하나님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는 인간이 하는 것을 그대로 버려두시고 승인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배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악을 허용하심으로써 선의 중요성을 배우게 하시고 불의를 허용하심으로써 의를 배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사람과 역사에 이 모든 것이 유익이 되도록 섭리하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한 왕이라도 일시적으로 허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제도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제도가 없는 것 보다 훨씬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정과 사회 질서 유지 차원에서 악한 왕과 악한 제도조차도 일시적으로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이 국가라는 권세를 세우셨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임무를 다하는 것이 믿는 자로서의 마땅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권세는 질서를 유지하도록 하나님이 임명하셨기 때문이다.

3-4“ 3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세우신 정부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입니까? 선한 일을 장려하고 악한 일을 막아 질서를 유지 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부를 세웠습니다. 4절에서 세상 권세 자를 하나님의 사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란 하나님의 사역자란 뜻입니다. 사역자란 보통 교회에서 목회자를 두고 부르는 칭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 사역자입니다. 그런데 이 명칭을 바울 사도는 세상 권세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상 권세 자는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일을 하는 자들은 벌을 주어 나라 질서를 세우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하나님 대신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사역자로 허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정부 상태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악한 정부라도 무정부 상태보다 나은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왕이 된 무정부 상태를 상상해 보십시오. 파괴, 약탈, 살인, 오직 주먹 센 놈만이 활개 치는 혼란스러운 사회의 끔찍한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하나님을 섬기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사회 질서를 세우는 일을 하는데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을 거둡니다. 6-7“ 6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세금은 권세 자들이 이 세상을 잘 다스리도록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사회의 법을 잘 지키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특별히 세금 내는 일에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세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 22장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던진 질문에 나옵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습니다. 22:17“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가하나니까? 불가하나이까? ”만약 예수님께서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하시면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 백성을 배신하는 매국노라고 규탄할 속셈이고 혹은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로마 정부의 국법을 어긴 반역자로 고발할 속셈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은전 하나를 내보이시며 이 은전에 누구의 형상이 그려져 있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그들은 가이샤의 형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가이사란 로마 황제를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 22:21“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라 그리스도인은 이중 의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의무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일도 믿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세금 잘 내는 것이 애국입니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세금이 있어야 사회 질서를 세워 편안하게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금 잘 내는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이 되십시오. 세금을 많이 낸다는 것은 그만큼 물질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까? 세금 없이 복지만을 외치는 정치가는 사기꾼과 같습니다. 그런데 세금 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세금 포탈 자들을 가장 큰 범죄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수입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미국에 어떤 청년이 목사님의 십일조 설교를 듣고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한 평생 저도 십일조를 내기로 결심합니다 라고 작정을 했답니다. 그 당시에 10불이 있으면 1불을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얼마 후 한 달 수입이 100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사람이 더욱 열심히 일하여 수입이 1000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00불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장사가 너무 잘 되어 한 달 수입이 10000불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1000불을 십일조로 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어렵게 느껴져 고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저는 십일조를 내기로 하나님과 목사님 앞에 약속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들여왔습니다. 10불 중 1불이 어렵지 않았고 100불 중 100불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1000불 중 100불도 낼 수가 있었는데 솔직히 10000불 중 1000불은 못 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 혹시 하나님과의 약속을 취소할 수 없을까요? 청년의 말을 듣자 목사님께서 머리를 긁적긁적하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취소는 안 되네 그러나 이렇게는 할 수가 있네. 자네가 10불이나 100100불 정도 버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 줄 수는 있네. 그러면 십일조 내기가 수월하지 않겠나. 성경은 십일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3:8-10“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 나라 건설에 헌신하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내가 수입을 많이 올려서 더 많이 사회에 기여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 세금 내는 것 정직하게 내셔야 하고 기쁨으로 내셔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될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양심에 따라 순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5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할 것이라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권세 자들에 복종하는 것은 불복종했을 때의 불이익 때문이 아니라 나의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양심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 자신의 양심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 권세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날 때는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최고의 권세자이이신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세상 권세 자에게 불복종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 권세 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정부는 도덕적으로 올바로 서야만 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정부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경우에 정부를 명목적으로 옹호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부모는 가정의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에게 너 가게에 가서 도둑질을 하라고 시킨다면 부모보다 더 높은 권위자이신 하나님의 도둑질하지 말라 말씀에 양심적으로 순종하기 위해 부모의 말에 불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4장에 보면 관원들이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약 초대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세상 권세를 따랐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권세에 불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4:19절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그들은 최고의 권위자인신 하나님 앞에 세상 끝날 때까지 내 증인이 되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즉 자신들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세상 권세 자들의 잘못된 명령에 NO라고 거절했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불복종 권리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은 명목적으로 세상 권세 자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 권세가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겸손히 잘 지키는 범위 안에서만 복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가 누구 개인의 나라가 아니고 우리 주님의 나라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이 대한민국이 발전하도록 돕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빛으로 소금으로 선한 감시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 나라가 바르게 세워지도록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 잘못된 태도가 있습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인 일수록 이 사회에 무관심하는 것이 좋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부패한 정치만을 경험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을 무조건 백안시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정치라는 말은 올바르게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말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의가 강같이 흐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나라가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나라가 되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이 나라가 부패하지 않도록 부패 방지 캠패인 운동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환경운동 장애인 보호 운동 공명선거 운동 등 사회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것이 바른 그리스도의 자세입니다. 선한 일에 적극 참여 하는 것이 악을 방지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속한 정부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순종하여 국민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권세는 선을 장려하고 악을 막도록 하나님이 임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권위자이신 하나님께 양심에 따라 순종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