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해야할 이유
1. 본문 엡 5:18
2. 명제: 인간사의 모든 갈등 해결은 성령 충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3. 제목: 성령 충만해야 할 이유
바울 사도는 만일 여러분이 당면하고 있는 인간 갈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서로 첫째가 되려고 하고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난제를 해결하는 길은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문제, 부모와 자식의 문제, 사장과 종업원의 문제, 나라의 갈등 등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들도 성령 충만할 때에만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제는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니라 진실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장과 종업원 사이에 어떤 다툼이나 난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 충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 정치, 교육, 사상에 기대어 이러한 인간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함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인간은 정욕과 탐욕의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 타락한 인간은 이성과 마음의 통제를 받지 않습니다. 엡 2장 1-3에서 “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성경은 인간이란 자기중심적인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왜 사람 사이에 사이좋게 지내기가 어렵습니까? 각각 남편이 아내가 부모님이 자식이 사장이 종업원이 즉 당신이 문제라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기는 다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가 잘못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또한 자신의 원하는 것만 보기 때문에 모두가 문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다 불의하고 다 공의롭지 못하여 다 부정직할 수 있으며 거짓과 궤사를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여기서 벗어 날 수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그 순간 인간은 그 원수의 세력 안에 자신을 끌어넣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마귀와의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 사이 즉 부부 사이에 그의 자녀들인 가인과 아벨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계속적으로 나타납니다. 그 본성은 계속 유전되어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입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세상 사상은 인간의 근본 문제는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환경의 희생물이라고 주장합니다. 환경을 잘 개선하면 인간 본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속에 있는 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악은 인간 본성 안에 강력한 세력으로 남아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육과 정치의 힘으로 인간이 개선될까요? 그러면 이 세상에는 화평이 오고 전쟁은 사라질까요? 성경은 피차 복종하라. 남편과 아내들이여 자녀들과 부모들이여 상전과 종들아 서로 복종하라고 말씀하지 않고 먼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착한 행실로도 안 된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인간에게 아무런 소망도 없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 첫째는 세상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를 믿지 않으니 죄를 깨달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알지 못하고 인간 자신을 믿고 세상을 믿고 인간의 힘과 선을 믿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반대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죄를 깨닫고 책망하고 ” 예수의 피로 말미암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보여 주신 다음 그는 무엇을 합니까? 그는 예수 믿는 사람의 생명을 새롭게 합니다. 즉 중생시킵니다. 니고데모에게 요 3:3-8” 너는 거듭나지 않고서는 결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고 말씀합니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네가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윤리 도덕은 무용지물에 불과합니다. 성령은 예수 믿는 사람을 중생시키시고 새로운 본성과 새 마음과 새 사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라. 이것이 결혼 문제 가정 문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성령 충만해서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은혜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서 화평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성화를 촉진시키고 조정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유일한 길은 성령 충만 외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에게 더 선해라 호소한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령에 충만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결심은 작심 3일로 끝납니다. 새로운 본질이 바꾸어야만 가능합니다. 성령에 충만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성령 충만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성령 충만할 수 있는가가 오늘 설교의 주 포인트입니다.
1. 성령 충만 받으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예수님은 성령에 충만함을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행전에서 스데반 집사님도 그러했습니다. 행 6장에 “ 스데반이 믿음과 성령에 충만하여 ”그는 늘 성령에 충만했습니다. 그가 성령에 충만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의 집사로 선택되었습니다. 바나바를 보십시오. 행 11: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바나바도 스데반과 같이 믿음이 충만하고 성령도 충만했습니다. 바나바와 함께 다녔던 제자들을 보십시오. 행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초대 교회 집사로 택함 받은 사람들의 한결같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특별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충만할 수 있고 또 구해야 합니다. 엡 5:18절의 성령 충만은 계속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시제입니다. 한 번만 아니라 계속 성령 충만을 반복해서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을 물과 불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중의 3위 하나님입니다. 성령 충만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은 성령님이 인격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물과 불같은 성령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의 감화에 대하여 말합니다. 감화를 주는 것은 인격입니다. 이런 면에서 성령 충만하다는 뜻을 무엇입니까? “ 어떤 것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을 때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내 마음을 채웠다고 말합니다. 술주정뱅이를 보고 무엇이라 말합니까? ” 그는 술기운으로 산다 “바울은 술의 기운으로 살지 말고 성령의 기운으로 살아라. 충만하다는 뜻은 ~의 기운으로(감화로 산다) 산다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전 인격이(지, 정, 의) 성령님에 의해서 조종을 받고 성령의 기운에 산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술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성령이 여러분을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계속 성령에 의해 통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2,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소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 충만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은 체험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축복으로 받으려는 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특별한 체험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 늘 처해있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종하고 결정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할 것인지 말 것인지 술에 취할 것인지 말지를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결정이기에 명령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가 조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나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성령 충만은 인간 나의 책임임을 아셔야 합니다. 둘째는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근심시켜서는 안 됩니다. 엡 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성령에 반대되는 어떤 것을 따라 하면 성령 충만 아래 있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탐심과 정욕에 나를 맡기면 성령은 나를 조종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 받기를 원한다면 내 정욕과 탐심과 악한 소욕이 나를 조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내가 죄의 생활을 하면 성령을 근심하게 되기 때문에 성령 충만할 수 없습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격을 근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는 성령을 소멸시켜서도 안 됩니다. 성령은 내 안에서 날 깨우치시고 아이디어를 주시고 생각들을 암시해 주십니다. 내가 그런 것을 거절한다면” 내가 이것을 먼저 하고 그런 다음에... "라고 말한다면 성령을 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합니다. 내가 고의적으로 성령을 물리치거나 성령이 시키시는 일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결과 성령의 인도함의 축복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서 술에 취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고후 6:14-15“ 고후 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성령을 근심시키는 일을 멈추고 마귀를 대적하고 죄의 습관과 잔재에 대항하여 싸워야 합니다. 계속 성령에 의해 통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3. 성령 충만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신다는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 안에 계십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 충만하지 못하거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 점을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은 예수 믿는 우리 안에 “ 새로운 주인(하나님) “으로 와 계십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곧 떠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풀이 죽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요 16:6-7절에서 ”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신하지 말라. 나는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입니다. 성령은 보혜사로 우리 옆에 계셔 도우시는 위로자라는 의미입니다. 성령님은 너희와 함께 하시어 너희를 인도하며 너희의 필요를 주시는 분이시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주님이 내 안에 영광스러운 주인으로 늘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십니다. 성령이 내 몸 안에 계십니다. 내 몸은 살아계신 성령의 전입니다. 나는 늘 이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분과 늘 교제하며 교통 하기를 간절히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신약은 성령님의 교통 하심에 대하여 자주 말씀합니다. 축도를 보십시오, 고후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 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는 성령과의 교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분과 상의하고 그분의 임재를 깊이 생각하며 성령님의 나타나심을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어떻게 교제합니까? 기도와 순종으로 가능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모든 지시하심에 유의해야 합니다. 빌 2:12-13 “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하나님께서 성화 구원을 어떻게 내 안에서 이루십니까? 성령을 통해서 하십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소원을 두고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난다면 말씀을 보고 싶은 생각이 난다면 전도하고 싶다면 봉사하고 싶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여러분을 고무시키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께 순종하십시오. 성령님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을 고무시키시고 계십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성령의 인도와 거하심에 민감하십시오. 이것이 성령 충만의 비결입니다. 성령께 순종할수록 성령은 여러분을 더욱 고무시키실 것이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더 많이 보여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에 참석하라 기도하라 전도하라 사랑하라 봉사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지 않습니까? 성령께 귀를 기울이십시오. 세상과 육신과 마귀는 우리를 방해합니다. 그들을 대적해야 합니다. 성령께 적극적으로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령은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읽으시고 공부하시고 무엇보다도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것이 성령의 인도 방법입니다. 성경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도록 하십시오. 모든 행동과 생각이 말씀의 통제를 받도록 하십시오. 이것이 성령 충만의 비결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성령의 의해 다스림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종하십시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확증되어 나타납니다. 성령이 지배하는 곳에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갈 5:22-23“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내 안에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결과 성도와 성도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사장과 종업원 사이가 사이좋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갈등이 해결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계속 받으시기 바랍니다. 순간순간 기도하십시오. 영적 소생을 위해서 성령이 나를 다스려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능력만이 사람을 소생시키십니다. 성령님만이 믿음을 주십니다. 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만나는 인간 갈등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