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쫓아 행하지 아니함이라
1. 본문: 롬 14:13-16
2. 명제: 중립적인 문제에 대한 최고의 답변은 사랑이다.
3. 제목: 사랑을 쫓아 행하지 아니함이라
1. 갈등
바울 사도는 그 자체로 깨끗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자신의 확신을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자체는 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보편적인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 내가 이 말을 부연해야겠다." 고 말합니다. 어떤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거나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믿음이 강한 그리스도인을 생각해봅시다. “ 모세 율법의 의식적인 법이 사라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째서 돼지고기나 돼지고기로 만든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더구나 이교도의 우상에게 드려졌다고 하더라도 우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며 다른 신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고기에 그릇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정당하게 그런 고기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잠시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먹을 것이라고 말하기 전에 큰 원리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다른 형제도 다 이해합니까? 자 들어 보십시오. 14절 "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어리석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 ‘ 여기다 ’ ’는 계산하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깊이 숙고한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이해에 있어서 강한 사람들이 볼 때 그 사람들이 잘못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내린 결론이 그러함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강조점은 고기 그 자체는 사실상 부정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그 음식이 깨끗지 못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요점은 그 사람이 잘못 생각하는 형제, 결함이 있는 형제, 어떻게 부르든지 간에 그 사람은 여전히 형제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시점까지 그 사람이 형제라는 지위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위협적으로 강압적으로 제지하거나 다루지 말라고 호소합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설득하고 깨우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견해’만이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2. 갈등 심화
내가 아는 것을 깊이 숙고해야만 할뿐 아니라 내 형제가 아는 것도 고려야 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 너희는 동떨어진 개인들로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연약한 자를 멸시하는 강한 자 또는 강한 자를 판단하는 연약한 자 모두 그러해서는 안 되다. ”그것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15절에서 이 원리를 적용합니다. 15절 “ 만일 음식으로 말미암아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 ”바울은 항상 어째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말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이런 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 이 말을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너희가 행하는 일로 말미암아 형제가 불안해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고 혼돈되고 침체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 양심적인 참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나 그의 이해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여러분이 그 식물을 먹는 것을 보고 “ 나는 이해가 안 돼. ”어떻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을 잘못된 일입니다. 나는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하는 일을 보니 부정한 식물을 먹고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의지나 심령이나 마음에 고통을 겪습니다. ‘근심하게 되면’이라는 뜻이 이러합니다. 그러나 저는 ‘근심하게 되면’이라는 말속에는 또 하나의 다른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한 형제가 그릇된 일을 계속행하는 더 강한 형제를 보면 그 자신도 그것을 따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면서 그 일을 하는 것 때문에 정죄 감을 느낍니다. 곧 ” 이것이 그 사람에게 옳다면 내게도 옳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옳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의심하고 불안하며 정죄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고전 8:6-7” 고전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바울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 이 지식을 가지지 못하여 “다른 말로 해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우상과 같은 그러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음을 지성적으로 만족할 만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것보다 뛰어나시며 초월하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교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지 못하고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상이 신이라는 일종의 느낌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도 미신적인 경향을 뛰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란 환경 속에서 여러 미신들의 정체를 직시하고 제거하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약간의 이해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계속 말합니다. 고전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그들은 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그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죄 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주로 어떤 일을 합니다. 우리는 기존의 패턴과 습관을 따릅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정죄 감을 가지고 그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참되게 이해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가 거듭났다고 해서 모든 부분에서 동일하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더 강한 사람들은 더 큰 책임감이 있습니다. 강한 자가 그렇게 연약한 형제를 생각지 않음으로써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고전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이 근심케 하다라는 말은 우상에게 드려진 고기를 실제로 먹는 것을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나쁜 양심 또는 정죄 감과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근심이 오는 것입니다.
3. 전환
더 약한 형제를 근심케 하는 어떤 강한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사도가 이 강한 형제에게 내리는 판단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요점은 이러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와 같은 일을 하면 ”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말하기보다는 위대한 사랑의 법의 통제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한 자들은 성령의 더 큰 조명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너희는 ”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무슨 상관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하는 일은 완전히 합법적인 것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너희는 교리에 있어서 강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에 있어서 연약하다. 옳은 것보다 더 높은 원리는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항상 마음이 이해보다 더 중요하다. 비록 어떤 사람이 완전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 점을 분명히 안다는 이유 때문에 그러한 식으로 행동한다면 그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법인 사랑의 법 인애의 법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는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첫 번째 선고가 그와 같습니다. 나는 너희가 얼마나 믿음이 강하냐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너희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머리로 아는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형제에게 근심시키는 장애물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바로 이점을 분명하게 알아서 항상 기억하고 그것의 통제를 받게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먼저 이 ‘망케 하다’라는 단어는 매우 강합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여기 ‘멸망치 않고’ 이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15절에서 ‘망하게 하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영적 의미에서 결코 내 형제를 영원히 망하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결국 파멸과 멸망의 길에 놓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고기를 먹을 때 이 약한 형제에게 그와 같은 효과를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행실이 가져올 첫 번째 효과는 형제로 하여금 자기 양심과 싸우게 합니다. ” 좋다. 그들은 바보다 그러나 나보다 더 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더 오래 살았어. 그러므로 그것이 그들에게 옳다고 한다면 내가 누군데 내게 그것이 옳지 않다고 말하겠는가? 내 양심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 이것이 이미 아주 나쁜 입장에 들어선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이 형제가 자기 양심을 간섭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그 양심과 함께 논증하고 따집니다. 그 양심의 선고에 청종하는 대신 그 양심을 우롱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그 사람이 자기 양심에 대항하여 어떤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양심은 그런 행동이 그르다고 말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행합니다. 이 점이야 말로 여러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일들의 하나입니다. 특히 바울이 양심을 강조한 점을 주목하십시오. 예를 들어 디모데에게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큰 문제를 일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권면입니다. 그 사람들은 돌아다니면서 ”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청종하고 우리가 결정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딤전 1:6-7” 딤전 1: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딤전 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 도다. “이 사람들은 율법의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5절에서 ”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계명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사랑! 이것이 첫 번째 율법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바로 이해하면 그것은 거칠고 율법적이고 그저 하지 말라고 막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의 본질은 적극적입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은 우리의 사랑의 조건 동정과 이해의 조건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청결한 선한 양심이라는 단어가 롬 14장에서 다루고 있는 그 문제를 뜻합니다. 첫 요인은 ‘순전한 마음에서 나는 사랑’ 둘째가 ‘선한 양심’ 마지막이 바로 ‘참되고 거짓이 없고 분명한 지식과 교리에 대한 이해’입니다. 양심이 주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과 함께 서로의 양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한 양심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형제 속에 악한 양심을 낳게 하는 일을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다음 사도는 이 가르침을 줍니다.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는 거짓된 교리를 가르치며 믿음을 부인하는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어떻게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까? 이런 방식입니다. ‘믿음을 가짐으로’ 이단들이 무어라고 하든 이 믿음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을 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기 큰 엔진이 달려 있는 배가 있습니다. 완벽한 장비를 갖춘 이 배가 대양을 향해합니다. 그러나 이 배의 사활을 좌우하는 도구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것은 배의 방향을 잡는 키입니다. 그 키를 무시하거나 바르게 간수하지 못하면 강력한 엔진을 지니고 있다는 그 사실이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 방향키가 작동하지 못하면 스스로 좌초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 그러나 그들은 양심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양심을 망각했기 때문에 무서운 고통 속에 있었고 믿음을 좌초시켰습니다.
4. 단원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여러분의 믿음이 더 약한 형제로 하여금 양심에 의문을 던지고 양심과 다투거나 양심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하는 어떤 일을 여러분이 한다면 그것은 그런 결과로 유도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더 강한 형제의 입장을 비웃고 있습니다. 더 강한 형제는 고기를 먹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은 너와 같은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생각하지 아니하셨다. 그 모든 것을 옆으로 제쳐 놓으셨다. 심지어 그는 죽으시고 자기 목숨을 포기하셨다. 자기 목숨을 희생하여 너와 네 형제를 구원하셨다. 너의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버려 사신 네 형제를 위해서 네가 마땅히 먹을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는 그 고기 먹기를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인가? 사도는 더 강한 형제의 태도의 무모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마치 기계처럼 사고하고 있다. 아무런 느낌도 없이 마음도 없는 기계처럼 말이다. 너는 긍휼이나 동정심도 없다. 바울은 말합니다. 오, 주님이 그와 같이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으시는 것을 인하여 네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지! 만일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형제를 위해서 그분이 당신의 목숨을 버리셨다면 너는 네 형제를 위해서 고기 먹는 일을 포기해야 하고 그를 돕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어떤 것이라도 버려야 한다. 고전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최선을 다해서 구주께서 자기를 위해서 행하신 바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과거 바울이 그와 같았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바로 그 은혜 때문에 그는 자기가 사는 동안에 먹음으로써 형제를 멀어지게 하기보다 결코 먹지 않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적용해야 할 바로 그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