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수정본"
1. 본문: 롬 14: 17-19
2. 명제: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3. 제목: 의.
1. 갈등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의 특징입니다. 천국 백성은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바울은 17절에서 하나님 나라는 “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 나라를 그 수준으로 낮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하나님 나라는 너무나 작고 너무나 소극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그의 대답은 “하나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세 단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7절은 하나님 나라와 그 시민들의 특성 또는 성품에 대한 보편적인 진술입니다. 로마 교인들은 하나님 나라 전체 문제를 어떤 사소한 문제들이나 어떤 실제들에 대한 태도들의 수준으로 낮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문제에 너무 깊이 개입하여 하나님 나라 전체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정죄했을 때에 지적하신 그들의 태도가 그러했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하시니라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모든 본질적 특성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너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너희는 인식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특성들과 그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특성들을 항상 기억한다면 이러한 주변의 문제들에 관하여 너희가 행하고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로운 존재 새로 지으심을 받은 존재입니다. 은혜 안에 있는 자 즉 예수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전적으로 새로운 무엇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을 먹고 마시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는 ”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 말합니다.
2. 갈등 심화
먼저 17절의 말씀에서 ”의“가 무슨 의미입니까? 이것은 단순히 윤리적인 진술 즉 바름, 옳음, 정직함, 의로움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유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어떤 국면들 여기저기에서만 옳은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는 자신들의 입장이라는 전체 문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롭다 여기신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힘을 받은 자들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의의 두루마리를 입혀 주셨음을 믿습니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거듭나되 성령으로 난’ 사람들임을 압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다른 영역 안에 있습니다. 성령 안에 있습니다. 전에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롬 6장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보여 주고 싶습니다.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 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그래서 이제는 새로운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에 되었느니라. ”위대한 변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이제는 해방되어 ‘의의 종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안에 있음은 여전히 어떤 행실의 문제가 아니라 ‘의의 종들’이 된 것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 너희 육신이 연약함으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 “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그런 다음 여기에 위대한 진술이 있습니다. “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 하였느니라. ”이 말은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마다 그릇되고 악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이 의와 전혀 상관이 없었음을 뜻합니다. 그들은 과거 전적으로 의의 영역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식은 신자들 속에 있는 윤리적인 자질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영역입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롬 6:19-23“ 롬 6: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롬 6:21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 임이라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것이 이 전체 문제에 대한 열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는 ‘의’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첫 번째 일어난 일은 내가 그 의의 나라로 들이심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의의 영역 의의 통치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천국 백성은 감사할 것이 많지만 특별히 감사할 것은 의의 나라에 소속되었다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영역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한 행위의 차원에서 우선 적으로 행동해 모든 문제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속한 나라 그 나라의 임금이신 예수 님에게 맞추는 차원에서 행실의 모든 문제를 바라봅니다. 이들은 이제 그의 근본적인 개념이 벧 전 1: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는 것을 인식합니다.
3. 전환
로마 교인들은 거룩과 도덕성 사이에 큰 구별이 있음을 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도덕성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도덕성은 어떤 특별한 행동들이 법적으로 옳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모든 것은 이러저러한 일이나 다른 영역에서 그릇되지 않고 바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행위의 차원에서 생각합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냐 하는 문제는 그들이 무엇을 행하고 행치 않느냐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적인 개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들에 관해서 항상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룩은 언제나 전인에 우선적인 관심을 둡니다. 어떤 부분들이나 특별한 국면들이나 어떤 행위들만이 아닙니다. 전인격적인 관심을 둡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그리스도인들이 관심 있어 하는 바가 그것입니다.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바르게 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에서 바르게 되는 것을 원합니다. 조난 레베이트가 지은 찬송가가 그 점을 완벽하게 표현합니다. “ 오 주 예수 그리스 도시여!! 주께서 내 안에서 자라시고 다른 모든 것은 쇠잔하옵소서“여기에 의의 개념을 나타납니다. 그는 그릇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싶어 합니다.. 전적으로 의롭게 되고 싶어 합니다. 또한 거룩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크고 적극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아는 순간 더 이상 작은 문제들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단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은 물론 이렇게 말합니다. ” 오 나는 이 부분에서 옳다. 나는 저 부분에서 옳다 “그러면서 그렇게 때문에 자신은 모두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항상 존재하는 비극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차적으로 특별한 국면에서 의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 앞에 옳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도 한때 이것을 안 하고 저것을 안 하고 하는 옛 입장에 처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빌 3장에서 그 점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빌 3:9-10”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제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따라 삽니다. 그리고 주님을 본받고자 합니다. 우리 주님의 팔 복 속에서도 이 점을 볼 수 있습니다.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천국 백성들은 더 이상 특별한 세부적인 문제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의로워지기를 원합니다. 문제 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팔 복의 말씀에서 표현하고 싶어 하신 그리스도인의 초상화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의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일단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들 중 한 사람의 차원에서 생각하기 시작하고 나면 작고 왜소하고 미세한 논란거리로부터 해방됩니다. 베드로는 벧전 2:9-10“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관심거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윤리적인 의에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큰 나라에 속한 시민들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전체 개념에 관심을 둡니다. 이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 나라의 시민 모두의 잘됨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인들과 같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주로 윤리적인 행실 외적으로 옳게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눅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외적인 나타남이나 바름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속에서 정결해지기를 원하며 이 전적인 의 이 전체적인 정결함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 25장의 비유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을 가지고 모든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에 인자께서 그의 영광의 보좌에 좌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앞에 모든 족속을 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가 자기 양 떼 중에서 염소를 골라내듯이 구분 지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주님께서 어떤 식으로 구분하실 것인지를 알고 계십니까? 주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이들은 주님이 주리실 때에 음식을 대접했고 목마를 실 때에 마실 것을 준 자라고 평가받은 자들입니다. 이 평가를 받은 의인들은 놀라 주님께 말합니다. 마 25:37-40” 마 25: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마 25: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마 25: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마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여러분은 이 비유의 요점을 아십니까? 주님 나라에 택함받은 의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몰래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섬긴 것과 같다는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천국 백성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로마 교인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로마교회의 강한 신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이것을 다 통달했다. 나는 이것을 먹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약한 그리스도인은 말합니다. ” 아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쁘다. “그 결과 스스로 만족하고 자신들이 행하는 일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기 의를 자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말하듯이 새로운 영역 안에 그들은 들어온 것입니다. 엡 4:17-24“ 엡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엡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엡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엡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엡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엡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의 나라는 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백성들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시라”바로 그것입니다. “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의롭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의로우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다음 요한은 말합니다. 요일 2: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그에게서 난자마다 의를 행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3장에서 요일 3: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의를 행합니다. 여러분은 행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만들지 못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믿을 때 주님께서는 나를 의롭다 여겨주십니다. 그 결과 나는 의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4 대단원
우리가 감사할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는 천국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 나라 의의 백성이 되었다는 축복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그분의 의와 은혜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삽니다. 그 마지막 결과가 영생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이 축복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그런 다음에 이런 의의 나라 백성이기 때문에 천국 백성은 행실 속에서 의를 보이라고 호소하는 말씀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예수 님 안에서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이제 주의 도우심으로 의로운 삶 즉 윤리적으로도 바른 삶 정직한 삶 의로운 삶을 보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마탕한 것입니다. 우리의 왕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