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수정본"
1. 본문: 롬 14:1-4
2. 명제: 중립적인 문제에 대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위험성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3. 제목: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그리스도인들
1. 갈등
롬 14장에서 믿음이 약한 사람은 복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연히 율법적인 경향을 띄게 됩니다. 사도는 이러한 위험성에 빠지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준 첫 번째 해답은 “ 하나님께서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받으셨다면 내가 누구 관대 그 사람을 거절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중립적인 문제에 대해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위험성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능력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사도의 두 번째 해답으로 나아갑니다. 4절 “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그 집에 온 손님이 그 주인의 하인들을 판단하거나 고쳐주겠다고 덤비면 그 손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하인들을 나무라거나 버릇을 고쳐주려 하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일 것이다. ”같은 원리로 부모와 자녀들의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그 부모의 면전에서 다른 자녀를 서슴없이 꾸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부모의 면전에서 그런 일을 하려고 벼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럴 때 시험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합니다. “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사도는 그대는 동료 그리스도인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의심하고 있다. 그런 태도가 정말 주제 넘는 것이고 그런 식으로 행동할 권한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가? 그런 다음 사도는 일반적인 영역에서 " 그 서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하인들의 행동이 어떠해야 함을 결정하는 특권은 주인이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주인에게 불만스러운 것을 언급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주인이 보는 자리에서 그 하인을 고쳐주려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종으로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고 우리의 상전입니다. 우리의 서고 넘어지는 것이 다 주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뭘 할 것인지 지시할 권한을 갖고 계시며 우리를 판단하는 권한도 주님이 갖고 계십니다. 우리를 징계할 권한도 그 주님만이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판단하고 자신을 높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을 찬탈하는 셈이며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찬탈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주님께서만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주가 되시며 판단은 주님께만 속해 있습니다. 교회 안의 권징도 같습니다. 주님께서 교회 권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시사해 주셨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전 7:6, 25 “고전 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고전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주의 계명이 있을 때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주의 계명이 없을 때는 판단을 표명하는데 매우 주의를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판단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관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서로 정죄하지는 말라. 그런 일은 분명히 그대들의 특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탐정들로 부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더더욱 영적 재판장으로 부르심 받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산상 수훈에서 그 위험성을 다루고 계십니다. 마 7:1-5에서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는 말씀입니다. 그 경고는 네가 하는 일을 조심하라. 그 일이 네게 도로 돌아올 것이다. 자신을 재판장으로 세우면 네 자신의 기준에 따라 네게 판단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롬 14장에서 바울이 다루는 요점입니다.
2. 갈등 심화
그러나 사도는 더 나아가 “ 제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결론에 이릅니다. 너희는 상전이 아니다. 너희는 자신의 판단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만이 주님이시다. 그분이 상전이시고 그분만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 마지막 판단의 최종적인 권리를 가지신다. 그분은 그 일을 행사할 것이다. 바울의 의도는 그 믿음에 있어서 약한 형제는 강한 형제에 대해 너무 걱정한 나머지 결국 그 사람이 정말 그리스도인이지 실제로 의심을 하거나 아니면 더 강한 형제를 두려워한 나머지 “ 정말 그렇게 하면 극히 위험해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한 형제는 두려움의 영에 지배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약한 형제는 여러 규칙과 규례를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을 위해서 울타리를 치는데 너무 관심을 기울이고 실패할까 무서워 자신을 방어하느라고 율법주의자가 되는 지점까지 나아가고 결국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진리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과민한 이해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 우상에게 드려진 이러한 고기들을 먹거나 모세 율법이 금하는 고기들을 먹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 일을 한 사람은 반드시 넘어지게 되어 있다. 그는 믿음에 있어서 파산당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논점입니다. 너희는 너희 형제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받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알고 계신다. 그것은 우리를 유대인이 추종했던 의식 법 아래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우리를 건져 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종교의 속박에서 우리를 철저하게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 5장에서5장에서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 “ 너희를 불러 자유롭게 하신 주님께서는 그 자유 안에서 우리를 계속 보존하실 것이다. 너희 약한 형제들이여 믿음의 이해에 있어서 강한 그 사람들에 대하여 염려하지 말라.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실행하고 있다. 너희는 그 사람에 대하여 조금도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 사람에 대하여 너희 영혼을 괴롭히지 말라. 밤에 잠을 설치지 말라. 공포감으로 머리를 쳐들지 말라. 저 사람들이 넘어지며 실패할 것이며 저 사람과 함께 교회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너희가 과민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끌림 받은 이 구원의 충만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러 규례와 규칙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동기는 탁월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 여러분은 시험에 빠질 것이 틀림없어요. 이 규칙들을 지키지 못하면 틀림없이 잘못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규례들을 만든 것입니다. “ 우리는 그러한 규례들을 교회 지체의 조건으로 삼을 셈이요 ”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고 세상과 육체와 마귀의 시험을 저지하는 방식은 어떤 배지(목걸이( 등)를 달고 다니거나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의 증표를 갖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배지나 서약이 믿음을 강화시켜 준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롬 14장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기독교 신앙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일종의 심리적 요법에 불과합니다.
3. 전환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 왜냐하면 “ 저가 세움을 받을 ”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사도는 주님께서 그를 세울 권능과 수완과 능력을 갖고 계신다고 말합니다. 엡 6장:10-11“ 엡 6: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이러한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배지나 서약서 등이 필요한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너무 약하여 그러한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발견한다면 그렇게 하는 이들을 전적으로 정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 거기서 나와서 견고하게 서라 자라나라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의 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대항하여 넘어뜨리려는 것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서게 할 능력을 갖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 약한 형제가 더 강한 형제에 대하여 과민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4절 “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에서 바울은 성도의 궁극적 견인의 교리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배지나 서약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그러합니다. 이러한 많은 것들이 사람에게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세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진리의 한 부분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이고 만일 주님께서 우리를 지키지 않으시면 우리 중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이 이 교리를 강력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 약한 형제의 과민한 걱정과 관련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 37:23-24“ 시 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시 37: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주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엄청난 진리를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엡 1:17-20“” 엡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 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엡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바울의 기도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것을 알고 깨닫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능력이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그 능력이 바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릴 것입니다. 그 능력이 우리를 붙잡아 서도록 할 것입니다. 엡 3: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 속에 역사하는 이 능력이 우리를 지켜주는 능력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빌 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바울은 지금 옥중에서 이 말씀을 합니다. 그는 병들어있고 언제 사형당할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그는 잔인한 네로 황제의 손에 있습니다. 네로가 다음에 무엇을 할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시작하신 그 일을 완성 지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합니까? 그들이 서약서에 서약했기 때문입니까?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게 쓸 수 있었습니다. “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누가 그를 부르셨습니까? 누가 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셨습니까? 누가 그를 거듭나게 하셨습니까? 누가 그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 ”이것이 바로 확신입니다. 바울은 그분이 너희 속에 당신의 일을 행하실 것이고 그 일을 계속 이행해 나가시되 예수 그리스도의 날 최종 심판 때까지 이루어 나가실 것을 안다. 나는 죽어 간다. 나는 내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또한 어려움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 그러나 너희는 내 손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너희 자신을 의존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작하셨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시작하신 다음 그것을 끝마치지 않고 내버려 두신 적이 결코 없음을 나는 안다. 하나님은 영원히 인간 존재와 다른 분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일들을 시작하신 다음 그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한 채 피곤해 지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흥미를 잃고 능력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을 아십니다. 당신이 목적하신 일을 반드시 행하시고야 맙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더 강한 형제를 걱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셨으니 끝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같은 말을 합니다. 벧전 1:3-5“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 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보호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고 맨 마지막에 우리를 지키실 것입니다. 그분은 능력을 갖고 계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0:27“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아신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에 대하여 개인적인 관심을 갖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능히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반드시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미약합니다. 그러나 이 전능하신 대장 되신 우리 주님을 의뢰하고 있습니다,
4. 대단원
바울은 로마에 있는 이 약한 형제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민감하지 말라. 그는 분명히 넘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질 거야!라는! 말을 하지 말라. 이 위대한 구원을 보다 철저하게 이해하도록 하라. 너희는 이 구원이 오늘 들어갔다가 내일 빠져나올 수 있는 그런 식의 구원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이 회개의 모양을 띠고 구원받는 상태 곧 거듭났다가 내일은 거듭나지 않은 상태로 갔다가 다시 돌아가 결국 구원에서 완전히 떨어지는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것은 넌 센스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과민하지 말라.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저를 인도하여 자유롭게 하신 그분이 자유 안에서 그를 계속 지키실 것이다. 웨슬리는 ” 그러니 그의 위대하시는 권능 안에 서서 그의 모든 능력을 의지하여 인내하라. 그리고 일어나 싸움을 위해서 자신을 무장하라. 그것도 세상의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 갑주로 무장할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