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는 일"수정본"
1. 본문: 롬 14:13-23
2. 명제: 지체들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는 길이다.
3. 제목: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는 길
오늘 설교 말씀 제목이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이란 하나님의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즉각 교회 봉사를 연상합니다. 물론 교회 봉사도 하나님의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교회 지체들이 서로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인들 사이에 서로 비판하지 말고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워나갈 때 하나님의 사업이 세워진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덕을 세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덕은 상대방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에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불이익을 주고 어려움을 준다면 그것은 덕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판이 나무하는 현실 속에서 지체들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워 진정 하나님의 사업을 세워나가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지체들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워 하나님의 사업을 세울 수가 있을까요?
1. 사랑을 따라 행함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으로 하는 것일까요? 13-15절“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비판하지 말고 부딪칠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부딪칠 것이란 무엇입니까? 내가 의도하지 않고 어떤 행동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형제를 넘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거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의도적으로 지체들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함으로 그 형제와 자매가 넘어졌다면 나의 행동은 거칠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간에 형제자매들이 나로 인해 넘어질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믿음이 강한 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14장 앞에서 믿음이 강한 자란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주장하며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구약의 의식 법에 매이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고 자유를 주장하는 믿음이 강한 교인들이 특별히 주의할 점은 하나님이 그 자유를 주신 것이 사실이지만 자유를 사용할 때에 우리가 취하는 행동이 형제들을 넘어지게 하는지 아니면 형제들을 세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우는 것에 관해서 성경에는 기록이 없습니다.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유를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담배를 한 대 피우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시험에 든다면 그의 자유는 형제를 신앙적으로 시험에 들게 해서 넘어지게 만들었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15절에 “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나의 자유로 말미암아 넘어진 그 형제는 누구입니까?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형제입니다. 주님이 사랑하시는 그를 하찮은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의 자유로 말미암아 다른 형제가 넘어졌다면 그것이 바로 음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로 말미암아 넘어졌다면 나는 하나님의 사업 즉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따라 행하지 않는 결과인 것입니다. 수년 전에 어는 독일 목사님이 한국 교회 목회자를 위한 세미나의 강사로 연설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에 그 독일인 목사님이 담배를 피우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교회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교회의 문화 적인 전통입니다. 다른 나라 교회에 가면 담배 피우는 것에 시비를 걸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구원에 관한 문제라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문화는 담배 피우는 것이 꼭 죄짓는 일이라고 정죄까지는 않지만 한국 초대 교회부터 교인은 담배 안 피우는 것이 좋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신자는 좋은 신자로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체 측 한국인 목사님이 독일교회 출신 목사님에게 정중하게 목사님! 한국 교회는 담배 피우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라고 말하지 그 독일 교회 목사님이 아 그렀습니까? 나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시면서 담배를 끊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목사님이 아니 담배 피우는 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이것은 주님이 주시는 자유를 막는 일입니다 라며 자신의 자유를 주장한들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마는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연약한 많은 한국 교인들이 보고 있기에 그런 형제들을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바로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통해서 약한 이웃이 세우지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지체들이 서로 화평의 일과 덕을 세워 하나님의 사업을 세울 수가 있을까요?
2. 성령을 따라 섬김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17절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 나라란 바로 천국을 말합니다. 천국을 어떤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맛있는 술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멋진 집에서 즐기며 사는 곳이라고 상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천국은 예수 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예수 님이 다스리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천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통해서 세워 나가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는 언제나 가려 있는 나라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 믿는 하나님 백성들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의 삶과 행동 양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의 삶 속에서 요구되는 본질적인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17절에 나옵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여러분 천국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천국의 본질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인 것입니다. 천국은 성령이 다스리는 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성령이 없는 곳에서는 천국이 없습니다. 성령은 어떤 곳에 임하십니까? 바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을 믿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시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요 5장에서 예수님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성령님은 바로 예수님의 영이시기에 성령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세 가지 성품의 특징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보여 주는 세 가지 특징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의와 평강 그리고 희락인 것입니다.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며, 즉 십자가 은혜를 믿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평강은 평화를 말하고, 희락은 기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의의 왕이시며 평강의 왕이시며 기쁨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의와 평강과 기쁨의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의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의의 왕이신 예수님이 살아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기쁨의 왕이신 예수님이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평강의 깃발이 휘날리고 계십니까? 그것은 평강의 왕이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의 왕이 거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8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우리가 성령으로 섬길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이 충만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나의 삶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예수 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 세워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 님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어떻게 지체들이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워 하나님의 사업을 세울 수가 있을까요?
3. 믿음을 따라 행함으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가시적인 활동만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주님 앞에 나와서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요 6:28“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 질문은 요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일어난 것입니다.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기적을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주님의 대답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주님은 하나님의 일이란 눈에 보이는 대단한 가시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님을 믿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의 시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본질은 날마다 예수 님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수한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수많은 선택을 여러분은 믿음으로 결정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바울 사도는 여기에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22-23절에 “ 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믿음으로 좇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만약 제사 음식을 먹을까 말까 하고 의심이 된다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양심에 거리낀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라는 표현은 양심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 인생의 양심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 되어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양심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나침판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 바로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할 때마다 믿음과 동시에 양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딤전 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좋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동반하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에 따라 행하는 것이 복 되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가끔 우리 성도들이 목사 나를 위하는 의미에서 주일날 식사를 대접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나는 정중하게 거절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응하기도 합니다 마는 그 이유는 주일날 매매하는 것을 구약 성경에서 금하고 있기 때문이요. 지금은 많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교회가 주일 성수를 위하여 지키고 있는 전통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은 구원에 관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율법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다는 점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주일날 외부 식당에서 식사하는 장면을 나를 아는 다른 교회 교인들이 보았다면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섬김의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주일날 매매하는 것은 내 양심도 편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편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그래서 나의 선택과는 관계가 없는 특별한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겠지만 할 수만 있으면 내 자유가 다른 지체들에게 거치는 것과 부딪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자기 양심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양심대로 산다면 이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밟아질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더욱 강성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그리스도인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릅니다. 크리스찬이란 뜻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란 의미입니다, 또는 작은 그리스도란 의미입니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임을 아십니까?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거느리고 있던 병사 가운데 알렉산더 대왕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졸병이 있었습니다. 그 졸병 알렉산더의 행동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알렉산더의 이름이 짓밟히고 있다는 소문이 어느 날 알렉산더 왕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야심한 밤에 알렉산더 대왕이 예고 없이 졸병 알렉산더의 막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날도 졸병 알렉산더는 술에 만취에서 곯아떨어져 있다가 왕이 왕림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벌떡 일어나서 경례를 했습니다. 왕은 네 이름이 알렉산더라지 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졸병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듣자 하니 네 행동이 고약해서 알렉산더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노라. 두 가지 명령을 한다. 첫째는 네 이름을 바꾸어라. 왜냐하면 네 이름 때문에 내 이름이 욕을 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오늘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예수님을 대표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을 할 때에 주님도 똑같은 명령을 하시지 않을까요? 네가 크리스챤인가? 크리스천이라는 간판을 때든지 아니면 네 삶을 바꾸어라. 하나님의 일은 굉장한 일을 통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19절”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 하나님의 사업을 세우기 위해서 만나는 옆의 다른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으로 부지런히 세워주십시오.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성령 충만한 삶을 내가 먼저 누리십시오. 그리고 주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믿음의 선택을 하십시오. 믿음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양심을 따라 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