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육체의 소욕을 이기는 복음의 길
본문: 갈라디아서 5:16–25
주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더 이상 육체를 좇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참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1. 문제 제기 (Problem)
“왜 나는 선한 것을 원하면서도 늘 실패합니까?”
한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그를 지켜보며 기다립니다. 아이는 속상해서 울부짖습니다. “왜 나는 계속 넘어지기만 해요?” 아버지는 다가가 말합니다. “넘어지는 것도 배우는 과정이란다. 다시 올라타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얼마나 자주 이렇게 탄식합니까? “하나님, 저는 주님의 뜻을 원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주 무너집니까?”
한 성도님이 고백했습니다. “30년간 교회를 다녔는데도, 나는 여전히 조급하고, 자녀에게 화를 내고, 아내와도 자주 다툽니다. 그런 내가 참된 신자인지 스스로 의심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고백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갈 5:17).
이 내면의 전쟁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성령께 순종하고자 하는 소망과, 자기중심적 욕망이 끊임없이 충돌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2. 성경 원리 제시 (Principle)
대지 1: 왜 나는 자꾸 넘어집니까?
육체의 소욕은 타락한 자아, 곧 자기 중심의 본능에서 비롯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며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존재입니다(갈 5:17).
바울은 신자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 충돌을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성령이 거하심에도 불구하고, 육체는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무너짐"은 패배가 아니라 전쟁 중이라는 증거입니다. 내면에 갈등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성령께서 내 안에 살아 역사하고 계신다는 표지입니다.
롬 7:15: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노라"
마 26:41: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무너졌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싸움이 있다는 사실은 은혜의 표지입니다. 문제는 내가 지금 어느 편에 서 있는가입니다. 나는 성령의 편에 서 있습니까?
대지 2: 육체의 일은 왜 위험합니까?
육체의 일은 단순한 윤리적 실수나 일시적 감정의 폭발이 아닙니다. 그것은 ‘관계의 파괴’, ‘공동체의 분열’, ‘하나님 나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바울은 15가지 육체의 일을 나열합니다.
갈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고한 것 같이 경고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 목록은 단순한 행동의 나열이 아니라 죄의 본성이 낳는 열매입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길입니다.
이 죄들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성적 죄: 음행, 더러운 것, 호색 – 자극적인 미디어, 음란 중독 등과의 싸움입니다.
종교적 죄: 우상 숭배, 주술 – 돈, 성공, 인간관계, 자기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관계적 죄: 분열, 시기, 분노 – 가정과 교회에서의 반복되는 갈등과 깨진 공동체입니다.
엡 5:5: “이런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바울은 단순히 개인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유업과 연결하여 강력한 경고를 주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영역에서 반복적으로 무너지고 있습니까? 나를 넘어뜨리는 죄의 패턴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대지 3: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어떻게 삽니까?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못 박았느니라’(ἐσταύρωσαν)는 완료 시제입니다. 이는 과거에 일어난 결정적이고 단회적인 사건이 지금도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이 실제로 나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선언입니다.
롬 6:6: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이것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선언입니다. “나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다.”
성도는 육체의 정욕이 지배할 수 없는 자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말합니다. “죄가 왕좌에 앉아 있던 자리를 이제 그리스도께 넘겨드리라.”
그리스도인은 죄의 종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자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정체성을 재확인하십시오.
“나는 오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3. 삶의 적용 (Personal Application)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아홉 가지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열매는 억지로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내주하시는 성령께 순종할 때 맺히는 자연스러운 열매입니다.
이 구절에서 '열매'는 단수형입니다. 이는 아홉 가지가 각각 다른 성품이 아니라, 성령의 통합된 인격의 표현이라는 뜻입니다.
* 사랑: 롬 5:8 – 예수님은 원수 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 희락: 히 12:2 – 십자가 뒤의 기쁨을 바라보며 고난을 참으셨습니다.
* 자비: 요 8:11 – 간음한 여인에게 정죄 대신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 온유: 사 53:7 – 침 뱉음 당하셔도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 화평: 엡 2:14 – 십자가로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 양선: 행 10:38 – 병든 자와 죄인에게 선을 베푸셨습니다.
* 충성: 빌 2:8 –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 오래 참음: 요 13:1 – 제자들의 배신 앞에서도 사랑하셨습니다.
* 절제: 마 26:39 –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열매를 완전하게 맺으신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할 때 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어떤 열매가 가장 결핍되어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에 내가 오늘 어떻게 반응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 나 자신을 맡기십시오. 열매는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순종의 결과입니다.”
“나는 오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얼마나 의지하며 살고 있습니까?”
4. 그리스도 중심 선포 (Preaching Christ)
우리는 육체와의 싸움에서 자주 패배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분은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분이 아닙니다. 죄의 지배 아래 있던 우리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고,, 부활하심으로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그 생명을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육체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는 자입니다.
5. 결론 (복음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도전)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이 싸움 앞에 서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이 이기도록 둘 것입니까? 아니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시겠습니까?
자전거를 배우던 아이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넘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성령의 열매로 가득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더 이상 육체를 좇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참된 열매를 맺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믿고 선포하십시오.
오늘,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