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wordlove 2020. 12. 17. 07:38

1. 본문: 5:38-42

2. 명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자아에서 죽어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3. 제목: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

 

예수님의 관심은 우리(천국 백성)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가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행함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문제는 자아입니다. 우리는 자기 숭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의 여러분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불만, 짜증, 긴장, 근심을 바라보십시오. 그 모든 것이 나의 자아에 대한 민감함 때문이 아닙니까? 내 자아가 생활의 모든 불행의 주된 원인임을 아십니까? 사람의 본성은 자아 중심적입니다. 자아를 방어하며 자기 이익에 몰두합니다. 5만 번 이상의 기도 응답을 받았다는 고아의 아버지 죠지 물러는 언젠가 내가 죽은 날이 있었다. 죠지 물러와 그의 의견과 그가 좋아하는 것들과 취미 및 그의 의지에 대해 철저히 죽고 나의 형제와 친구의 인정이나 꾸지람에 대해 죽은 날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저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 골몰해왔다”라고” 간증했습니다. 고후 5:13-14에서 바울 사도는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고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옛사람 즉 자아에서 죽어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내 자아가 죽을 때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자아를 죽일 수 있습니까?

 

1. 복수를 포기함으로 가능합니다.

38-39“38 또 눈은 눈으로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또 눈은 눈으로이는 이로 갚으라 라는 율법은 출 21:24에 나옵니다. 이법은 소위 복수 법으로 무섭게 들리지만 그 속에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 율법은 남을 해친 자는 자신도 벌을 받게 함으로써 정의를 분명히 세우고 또한 과도한 복수를 제한하는 이중 효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세우는 것이 이 법의 목적이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이법은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법과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재판관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고 그 이상이 되지 않도록 주선하는 것이 재판관들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 가르침이 재판관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이 법을 개개인이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이 법을 보복할 권리와 의무의 문제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서운 개인적인 복수가 가능해진 것입니다. 오늘 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무서운 복수극은 이런 잘못된 율법해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천국 백성은 우리에게 가해지는 가해나 악에 대하여 방어하고 복수하려는 욕망을 제거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 내 뺨을 치면 인간의 본능 즉 옛사람은 즉각 보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국 백성은 그 순간 복수심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말은 소위 평화주의자들의 논거의 기저가 되었습니다. 평화주의자 톨스토이는 군대나 경찰 심지어 판사까지도 두는 것은 비기독교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악을 저항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찰, 군대, 전쟁과 사형도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즉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대면은 질서가 있건 혼란이 있건 상관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율법을 주신 목적은 혼란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을 세우도록 개인 아니라 재판관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지는 천국 백성은 자신의 자아에 대해 내 일신상의 명예에 대해 관심을 갖지 말라고 하십니다. 천국 백성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나의 옛사람 즉 자아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이것이 칭의 구원입니다. 동시에 예수님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아가 죽어가는 것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화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내 안에 예수님이 살고 계십니다. 내 안에 주님이 사시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오른 뺨을 친다는 것은 마치 노예에게 지나가는 개가 너보다 낫겠다 라는 수준의 모욕적인 말과 같습니다. 이 때 왼쪽 뺨마저 돌려 대는 것은 나의 옛사람을 죽인 행동입니다. 빌리그렘 목사님은 예수 믿기 전 권투선수였습니다. 매우 훌륭한 선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 믿었습니다. 어떤 광산촌에서 빌리 그램이 예수 믿기 전 그 힘의 위력 앞에 주눅 들어 살았던 어떤 사람이 빌리 그램이 예수 믿었다는 것을 알고 기회가 왔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는 만나자 마자 빌리 그렘을 쳤습니다. 빌리는 그에게 쉽게 복수하여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를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 같이 나도 너를 용서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도 며칠간 고민하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분명 옛 사람 빌리 그램은 자신에게 복수할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빌리그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빌리그램의 복수심이 죽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자아에서 죽어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자아를 죽일 수 있습니까?

 

2. 내 권리를 포기함으로 가능합니다.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무슨 뜻입니까? 구약 율법은 채권자가 속옷을 요구하는 재판은 가능하지만 겉옷을 요구하는 송사는 불법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일반 백성들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속옷은 몇 벌이 있었지만 겉옷 즉 두툼한 외투는 대게 한 벌 밖에 없었습니다. 겉옷이 없으면 추운 밤을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빚을 지고 있어도 겉옷만은 보호하고자 소송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율법이 정하고 있었습니다. 겉옷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인색한 어떤 채권자가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속옷은 물론 겉옷에 까지 소송을 한 것입니다. 이때 주님은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 ””라고 하십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재판 중 겉옷마저 벗어 주어 벌거숭이가 되어 라고 말씀합니다. 이때 사람들은 인색한 채권자를 어떤 눈으로 볼까요? 오늘 날의 문제는 사람들이 자기 의무 대신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데 몰두합니다. 결코 자기의 합당한 권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권리를 지키고 찾아야 돼그러나 예수님은 이것은 천국백성의 정신이 아님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백성은 가끔 불의를 당하더라도 법적 권리마저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 백성은 공권력이 보장한 모든 권리를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는 뜻을 아닙니다. 18:22-23“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 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치는 관리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16:37에서 바울 사도도 자기를 투옥하고 잘못을 한 관리들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모순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어째서 네가 나를 모욕하느냐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는 나를 침으로써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고 있다 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을 내시거나 자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율법의 존엄성을 가질 것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느냐 라고 항의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자신이 투옥된 것에 항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관리들이 자기를 투옥함으로써 불법을 자행하고 있었고 임명받은 그들이 법을 깨뜨리고 있었음을 상기시킨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법의 존엄과 품위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은 나 자신의 일신상의 모욕이나 자기 방어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것이 공의나 의와 진리의 문제일 때는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항의할 수 있습니다. 법을 준중하지 않고 깨뜨릴 때 신자는 일신상의 관심이나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신자로서 모든 법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믿고 항의도 할 수 있습니다. 절대 평화주의자 톨스토이는 이것을 무시했습니다. 기독교인은 불의 불공평이 행해질 때 항의할 수 있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마벨 월리암이 이런 글을 섰습니다. 나는 중국 땅에서 어려운 역경을 기쁘게 맞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저는 나의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도 똑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로마 시민권 자로소의 주어진 권리마저 포기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사람 보기에 바보처럼 보이지만 자신 안에 살아 계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자아에서 죽어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자아를 죽일 수 있습니까?

 

3, 자존심을 포기함으로 가능합니다.

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오리를 가자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은 고대 세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피지배국인 유대인에게 이와 같은 부당한 일을 다반사로 했습니다. 로마 군인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 짐을 지고 오리를 가자 고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정말 부당한 요구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10리를 가주라는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을 죽이고 만일 십리까지 같다면 그 군인이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무엇이 저 사람으로 하여금 이 부당한 요구를 기쁘게 행할까? 저 사람은 이일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을 했어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무언가 다르다. 그는 자기의 이해관계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직장에서 상사의 무리한 요구에 자존심이 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싫어하는 일들을 강요당할지 모릅니다.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런 경우에 주님은 천국 백성의 자존심을 옹호하시지 않습니다. 천국 백성은 다른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경우 저항하지 아니하는 영적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 이상으로 갈 준비마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인을 괴롭힌 강폭 한 로마제국이 그 후 약 300년 후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내 자아가 죽으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일 일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자아에서 죽어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친 백성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자아를 죽일 수 있습니까?

 

4. 내 탐심을 포기함으로 가능합니다.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만일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꾸기를 원하면 나의 옛사람 즉 내 본능은 내가 손해 보는 일을 왜 해 라고 즉각 반응합니다. 문제는 나의 자아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그대로 쥐고 이것은 내 것이다. 고 말하는 것은 천국 백성으로서의 잘못된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꾸짖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사기꾼이나 술주정뱅이를 도와주라는 말은 아닙니다. 술에 취하여 돈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면 그 사람은 술을 사 먹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자기 중심성 때문에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으려는 경향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부자의 탐심을 조그만 줄일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은 많이 줄어 들것입니다. 주님은 내 것에 대한 집착을 꾸짖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일 3:17-18“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주님은 천국 백성은 내 형제가 궁핍한데 그를 도울 수 있는 재물이 있다면 그를 불쌍히 여겨 쌀독의 뚜껑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고 힘을 주기 위해 자기를 주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천국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무엇을 구한다면 이것은 내 것이요 라고 말하지 않고 이 사람이 궁핍하므로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다면 돕겠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위탁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 이다. 라고 착각하는 것이 탐심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심을 극복하기 위해 재물, 시간, 은사의 십일조, 생활을 먼저 하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먼저 주일 성수를 하십시오. 은사를 가지고 한 가지 이상 봉사하십시오. 천국 백성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옛사람 즉 자아를 끝장내었고 자아에 대해 죽었습니다. 나의 모든 관심사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이요. 그분에 대한 경배여야 합니다. 우리 시대는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철저하게 주장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천국 백성이 누려할 권리는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은 천국 백성은 그런 권리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천국 백성은 복수할 권리도 법적 권리도 자존심을 내세울 권리도 자기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도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의 자아가 죽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아무도 예수님 믿어 거듭나지 않고서는 성령을 받지 아니하고서는 이런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성령이 내 안에 오시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죠지 물러를 죽게 하신 주님은 우리를 어째서 죽지 못하게 하시겠습니까? 어째서 우리는 자아에 대해 죽어서는 안 됩니까? 주님은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자아가 죽을 때 주님의 영광이 나를 통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