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8:5-9
2. 명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3. 제목: 성령의 일을 생각함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이진 아닌지를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이 질문을 대할 때마다 두 가지 양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어떤 특정한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견해입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에서 바울이 율법에 대해 언급한 이유입니다. 유대인들은 만일 자신들이 이해한 대로 율법을 준수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자신들이 의롭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날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삶을 사는 사람이지요. 그들은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착한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부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만을 가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극단적인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착한 행위가 전혀 불필요 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그것을 단지 도덕이나 휴머니즘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지에 대한 문제에 국한합니다. 이런 생각을 반 율법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 두 가지 견해는 모두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며 심지어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과 삶을 구분하는 것은 비극적인 이분법이라고 말합니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믿음과 삶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성령의 내주 하심에 의해 하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은 것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행위와 믿음의 구분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으로 새 생명이라는 선물을 주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본성을 부여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17세기의 스코틀랜드 사람인 헨리 스쿠걸은 “ 기독교란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나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내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인간은 두 집단으로 나눌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육신을 따라 행하든지 혹은 성령을 따라 행하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생명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면 당연히 그 삶이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신약 성경의 주장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란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선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가리켜서 완전히 달라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새로운 사람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들어와 거주하심으로 필연적으로 그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 성경의 주장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1. 관심사와 생각의 방향이 다릅니다.
내가 하나님의 생명 즉 성령이 내 삶에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첫 번째 시금석은 여러분의 전반적인 태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롬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여기서 핵심은 생각입니다. 육신의 일을 따르는 자 곧 비 그리스도인은 육의 일을 생각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신은 배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비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하나님과 멀고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여기서 마음과 생각은 단순히 지적인 측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내부의 가장 깊고도 중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즉 인격적인 밑바탕에 있는 것으로서 그 사람의 행동 전체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의해 살아가며 기쁨을 얻고 성령의 일들을 좋아하고 갈망합니다.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오직 먹고 마시고 춤추고 오락을 즐기는 일을 위해서 살아가고 육체적이고도 동물적인 영역을 결코 넘어서지 못합니다. 이들은 비 영적인 사람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런 차원에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의 몸과 혼과 영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육신의 차원에서만 살아갈 뿐 그 이상으로 넘어간 본 적이 없는 것이 하나님 없는 인생들의 모습입니다. 육신적인 일은 혼 즉 정신의 영역에도 아주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화와 음악과 미술과 예술 과학을 좋아하면서 여전히 육신의 일을 생각하며 육적인 차원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추잡한 죄의 차원에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달리 말하면 육의 생각은 심각하고도 추잡한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육의 생각은 ”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에 의해 지배되는 삶을 사는 자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삶 즉 육신을 추구하는 삶은 바로 육신의 정욕과 눈에 보이는 안목 그리고 자기 영광 이런 세계에서의 삶에 한정되어 결코 그것을 넘지 못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술에 취한 사람과 부도덕한 사람만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주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들 그리고 아주 박해 주의적인 사람들조차 이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이들이 영적인 단계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들은 육신의 생각을 가진 자들이며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관심사로 가득 찬 사람도 여전히 육신적인 일들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성령의 영역으로 올라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결코 이 세상과 현세의 삶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아주 선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으면서 선행을 많이 하고 세계의 상황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세계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육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 성령이 없습니다. 그들은 결코 성령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삶을 뛰어 넘지 못합니까? 만일 우리가 그 지점에서만 멈추어 있다면 그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며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는 자들이며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는 영적으로 죽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가진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2. 성령의 관심과 함께합니다.
두 번째 시금석은 내가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5절 “ 영을 따른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성령의 일이 무엇입니까? 영적인 일들입니다. 영적인 것이란 단지 종교적이 되거나 종교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거나 혹은 종교적인 기관이나 활동으로 둘러싸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명백하게 그것은 성령께서 관심을 기울이시는 일들에 우리 역시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은 성령이 관심을 가지시는 일들에 함께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은 무엇일까요? 먼저 내 영혼의 상태에 관하여 다른 무엇보다도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집니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의 내 삶에 대해 음식과 의복에 대해 건강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나는 정치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문화, 예술, 체육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성령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는 이 모든 문제보다 내 영혼의 상태에 대해 더욱 관심이 있습니까? 내가 흥미와 관심과 열망을 품고 있는 모든 문제 중에서 가장 크고도 우선적인 것은 다름 아닌 내 영혼에 관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속에 두신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인 내 영혼과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나의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입니까? 다시 말씀드리건대 종교적인 일들에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자신의 성공에 큰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순전히 지적인 차원에서 기독교에 심지어 성경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령의 생각을 하는 증거는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생각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집니다. 영적인 생각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삶 못지않게 내세의 삶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아무리 최상 최고의 상태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세상의 삶을 뛰어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영원의 삶과 영혼의 운명과 자신의 죽음의 일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이 관심을 기울이시는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성령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지를 알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어떤 분이십니까?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먼저 인생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보게 하고 그다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가 없는 우리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를 보게 합니다. 성령은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구원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십니까??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자 되심을 믿습니까? 분명히 그리스도가 없어도 아주 종교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리스도야 말로 없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십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하시는 또 다른 일은 성경이 내 삶과 일과 계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입니다.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성경에 매력을 느끼고 그것을 즐겨 듣고 읽고 배우려고 합니다.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이 배가 고파 만족을 얻기 위해 성경의 말씀을 배우고 듣고 믿고 따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성령이 있는 사람입니다. 반면 성령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품만 나고 잠만 옵니다. 성령의 생각 다음으로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고 싶어 하는 욕구이며 하나님을 향한 욕구입니다. 시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성령이 있는 또 다른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기도하기를 즐겨합니까? 성령의 생각 또 무엇이 있습니까? 성령은 내 안에 새로운 본성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본성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이 세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집니다. 성령님은 인간의 상태에 대해 근심합니다. 그분은 죄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보시고 슬퍼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면 성령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세상 인생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예수님을 통한 모든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두 손을 벌리시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거하시는 사람은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 모르는 이들이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죽어가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을 보고 긍휼히 여깁니까? 그 영혼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전도하며 기도합니까? 여러분은 교회의 부흥과 세상의 선교를 위해 기도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합니까? 성령을 소유한 영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는 이런 일들에 큰 즐거움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입니까? 물론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인지를 스스로 점검해 볼 때 내가 완벽한가를 묻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것이 시금석이라면 우리는 정죄를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닙니다. 그 시금석은 무엇입니까? 나는 성령을 따라 생각합니까? 나는 내 안에 있는 불멸의 내 영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입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사랑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 모르는 세상 영혼을 불쌍히 여깁니까? 이런 것들이 내 속에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바깥에 있으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소유하지 못하신 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개하며 성령을 선물로 달라고 구하십시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어떻게 성령을 받습니까?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으십시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믿을 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따라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안을 가진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제일 복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