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마 5:13-16
2. 명제: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도록 부름 받았다.
3. 제목: 천국 백성(그리스도인)의 영향력
세상은 천국 백성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하는 이 세상을 위해서 일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천국 백성의 소명입니다. 루돌프 스티어는 천국 백성을 향해 “ 증오나 거짓에 대한 당신의 유일한 보복은 사랑과 진실이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백성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요. 빛은 숨길 수가 없으며 모든 사람에게 비추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과 빛은 없어서는 안 되는 가정의 필수품입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과 빛으로서의 영향력을 끼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을까요?
1.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가능합니다.
20세기 초까지 인간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전쟁은 없어지고 모든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는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대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지금은 없습니다. 성경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 세상의 부패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타락하고 사악하고 부정합니다. 세상은 썩고 오염되기 쉬운 불고기와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 세상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문명이 발전할수록 이 세상은 더욱 악하고 부정하고 사악해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자신이 타락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외부에서 오는 소금만이 부패를 막을 수 가 있습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서 사회적인 부패를 막고 빛으로서 어두움을 쫓아 버리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 여기 너희는 누구입니까? 앞에서 팔복의 축복을 누리는 예수 믿는 천국 백성입니다. 소금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소금은 순결과 연결 되어있습니다. 소금은 바다와 태양으로부터 만들어집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서 순결의 예가 되어야 합니다. 천국 백성의 말과 행동 생각에서 순결해야 합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은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죽은 고기는 그대로 두면 썩고 맙니다. 소금을 넣어 두면 부패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신자는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소금은 맛을 냅니다. 소금 없는 음식은 싱거워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신자는 생명에 맛을 내는 향기여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없는 이 세상은 무미건조합니다. 월리엄 월버휘스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 헌신했습니다. 그의 헌신처럼 천국백성은 일종의 세포로서 침투하여 소금의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날 대한민국을 보십시오. 자살율, 이혼율 세계 최고입니다. 기독교인은 부패를 방지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일반 은총으로 국가나 가정이라는 제도를 세워 어는 정도 부패를 막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의 부패를 막는 도구로 그의 백성들이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소금의 역할은 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만족함을 누립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성령 안에서 만족함을 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삶입니다. 소금의 역할은 사람이 갈증을 느끼도록 자극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나를 보고 기쁨, 만족, 평화를 보아야 합니다. 저 분은 무엇을 가졌기에 저렇게 기뻐할까? 부자도 아닌데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저렇게 만족해할까?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저렇게 평온할까? 궁금하다. 이것이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갈증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저렇게 만족해 하구나 이것이 갈증을 일으키는 비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영혼의 가장 큰 갈증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천국 백성의 책임은 자신의 갈증을 만족 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의 삶입니다.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흘러 보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소금이 맛을 잃으면 우리 안에 어두움이 찾아옵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금의 중요 기능은 짠맛입니다. 꽃이 살아 있을 때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합니다. 꽃이 죽으면 무용지물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거름으로는 사용됩니다. 그러나 소금은 맛을 잃으면 거름에도 사용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 후에는 아무쓸데 없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 아니라 ”초대 교인들은 이런 풍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로부터 징계를 받아 회복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교회 문 앞에 누어서 소리쳤다고 합니다. 나를 밟고 가십시오. 사람들이 그를 밟고 지나갑니다. 이런 절차를 통과한 사람에게 교인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버리어 밟히고 맙니다. 소금은 불순물과 혼합되면 오염되어 쓸모없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짠맛이란 팔복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성품이며 행동과 말로 묘사되는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을 닮으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 복음의 영광은 교회가 세상과 완전히 구별될 때 반드시 세상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교회의 메시지를 싫어할지라도 바로 세상은 그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비 그리스도인과 구별되지 않을 때 우리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우리는 밖에 버리어 사람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죄와 타협, 게으름, 불평 불만 등 그 어떤 것으로도 그 맛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 사회의 악을 막기 위해 국가나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국가나 가정이 정의롭게 운영되도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 구조를 만드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양심적인 시민이 될 때 사회에서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카터우드는 ” 사회를 개선시키려고 애쓰는 것은 속된 마음이 아니라 사랑이며 사회와 손을 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속된 마음이다 “라 했습니다. 천국 백성이 세상의 탐욕, 매정함, 자기중심적인 태도, 배타주의, 거짓말, 폭력 등으로부터 구별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짠맛을 내는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을까요?
2. 빛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세상은 지식이 빛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계몽주의 운동이 그것입니다. 여러 점에서 일부 옳은 점도 있었습니다. 자연 과학의 발전으로 많은 병들이 정복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의 질이 나아진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세상은 여전히 어둡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더욱 창궐합니다. 지식이 사람을 계몽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은 더욱 악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어두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 백성이 이 세상의 빛인 까닭은 예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빛을 가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주님은 우리를 빛으로 만드십니다. 엡 5장 “ 전에는 너희가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다 ”그리스도인은 빛의 전달자가 되었습니다. 주의 본성이 우리들 속에 들어오므로 우리는 주님과 같은 신분이 되었습니다. 요 14장에서 성령이 오시면 우리는 너희 안에 있겠고 너희는 우리 속에 있는 빛이십니다. 빛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습니다. 빛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빛은 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빛이 없으면 어두워 볼 수 없습니다. 천국 백성은 교회의 빛이 아닙니다. 세상의 빛입니다. 직장 가정 지역에서 비추는 빛입니다. 빛은 가이드입니다. 거리에 가로등이 없으면 차가 다닐 수가 없습니다. 바다에 등대가 없으면 배가 침몰하고 맙니다. 신자는 이 세상의 가이드입니다. 빛은 경고등입니다. 안되라고 외치는 경고등입니다. 빛의 목적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 우지 못하듯이 참된 기독교인은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등에 불을 켜는 목적은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 복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직면하게 하고 사람을 화나게 만듭니다. 빛은 또한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하나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하려고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어두음을 벗어나 새 길을 만드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과거의 죄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새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어두음을 미워하고 빛을 사랑하는 새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어째서 평화롭습니까?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너희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 그러나 빛을 숨긴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빛의 자질을 잃으면 아예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름뿐인 기독교인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인 같으니 실제는 아닙니다. 교회 역사에서 증명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한 때 강력한 기독교 교회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을 배출한 지역입니다. 그러나 맛과 빛을 잃고 그 교회는 글자 그대로 발에 밟혀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에 대한 경고입니다. 참된 천국 백성은 숨겨질 수가 없으면 세상의 주시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자신을 숨기면 결국 내어 던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면 나는 등불을 켜서 발아래 덮어 버리는 사람은 아닌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스스로는 세상의 빛이 될 수 없음을 아셔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빛을 받았다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천국 백성은 촛불 또는 등불과 같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점화된 후에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반하우스 “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그는 낮이면 떠올랐다가 밤이면 지는 태양과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이 지고 나면 달이 떠오릅니다. 이 달은 천국 백성들 곧 교회의 모습입니다. 달은 빛납니다. 그러나 그 빛은 오직 그 자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은 오직 태양 광선을 반사할 때만 빛나는 빛입니다. ”오늘날 세상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루터, 칼빈, 웨슬레 같은 분들이 부흥운동을 일으켰을 때 교회는 보름달과 같았습니다. 어느 때는 초생 달과 같다가 이제는 그믐달과 같습니다. 교회가 어두우면 세상도 어둡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두운 것은 천국 백성이 그믐달처럼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온갖 범죄사고 가운데 기독교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세상의 수준은 교인의 수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보여 줄 때 이 세상은 밝아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빛이신 예수님으로 부터 충분한 빛을 받을 때 우리는 보름달처럼 밝게 비출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 백성은 이 세상에 어떻게 영향력을 끼칠 수가 있을까요?
3. 착한 행실을 보임으로써 가능합니다.
천국 백성이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할 때 착한 행실의 열매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한 행실이 없으면 우리의 복음은 진실성이 없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명예를 잃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세상이 우리의 빛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하고 행해야 합니다. 소금과 빛만 말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한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소금도 빛도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의를 행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행함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빛을 보는 것은 우리가 찬양하기 때문이 아니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천국 백성은 팔복의 성품을 이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착한 행실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여기 선행의 의미는 매력을 준다는 뜻입니다. 선행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빛을 비출 수가 있을까요? 등잔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기름과 심지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기름의 중요성을 말씀합니다. 산상수훈에서 중요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인 것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특이한 경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게 주실 수 있는 생명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확신합니까?? 그러므로 성령 충만을 계속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과 가까이 접촉해야 합니다. 이것이 ‘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 ’을 의미합니다. 늘 주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채워 주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공급받는 일이 중요합니다. 등불을 밝게 유지하려면 기름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심지가 있어야 합니다. 심지를 손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팔복을 매일 묵상하십시오. 나는 심령이 가난한가. 긍휼하며, 온유하며, 화평케 하며, 마음이 청결해야 함을 날마다 상기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상기하는 것보다 심지를 손질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죄를 애통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우리가 그들에게 의문을 일으킬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을 할까? 그 대답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상속자 ”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주님이 부탁하십니다. 아니 명령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