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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제비 "수정본"

wordlove 2021. 5. 10. 05:47

1. 본문: 84:1-4

2. 명제: 주를 의지하는 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3. 제목: 참새와 제비

 

3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편은 삶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라고 말하는 다윗 왕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라는 찬양으로 이 시를 시작하면서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매듭을 짓고 있습니다. 84편의 주제는 지구 상에서 하나님을 아는 삶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문제입니다. 어떻게 사는가, 선한 삶을 사는 일,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 부분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주께 힘을 얻는 자가 복이 있도다. “다윗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에 관해 말합니다. ” 나는 그것을 제단에서 얻었다. 다른 방법은 없다. 하나님을 아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뿐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이요. 시작입니다. 인생은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다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도 말씀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흘리신 보혈의 피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를 의지하는 축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알고 그분의 성품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런 기초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진리에는 두 개의 극이 항상 존재합니다. 하나의 초점은 하나님이요 또 다른 초점은 인간입니다. 다윗은 우리가 주를 의지하는 참된 구원의 축복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에 관해 올바르게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인간에 관해서도 올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인간 자신에 대해 말합니다.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 나는 참새와 제비와 같습니다. 자기 집을 찾는 참새와 같고 새끼 둘 보금자리를 찾는 제비와 같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참새나 제비처럼 보았을 때 나의 필요를 발견했고 그 후 하나님께 가서 나의 응답과 공급을 찾았다 ””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주를 의지하는 구원의 축복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필요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많은 사람의 비극은 그 필요를 결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는 원인입니다. 그들은 자신을 결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새와 제비로 묘사한 자신의 영혼이 갈증을 느끼며 그리스도께 자신을 의지하는 것의 가치를 깨닫고 나서 주를 의지하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몇 가지 특징에 대해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자신이 보잘것없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참새는 새 중에서도 가장 작은 새입니다. 다윗은 나는 작은 참새 또는 재비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삶의 거대함과 위대함을 깨닫지 못했다면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이 세상의 문제는 삶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갑자기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은 보잘것없음을 발견합니다. 자신들은 다만 참새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는 광대한 우주를 보면서 이 광대한 우주 안에서 사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이것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는 참으로 놀랐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점을 조롱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자기중심적이야! 자신들의 중요성을 너무 과장해. 너희들이 누구기에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겠느냐? 많은 사람들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으로서 나는 나의 생을 가지고 있지만 얼마나 작으며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며 나에게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사람이 무엇인가? 큰 덩어리에 박혀 있는 하나의 점밖에 더 되겠는가? 큰 톱니바퀴의 한 톱니에 불과하지 않은가?’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개인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우주의 광대함과 자신들의 보잘것없음과 무가치를 인식합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을 하나님이 알고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주를 의지하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자신의 무력감을 인식합니다.

참새와 제비도 그것을 압니다. 이들은 본능적으로 적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큰 새들이 있고 고양이가 있고 또 다른 짐승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를 찾으려고 하며 해치는 적들로부터 도망치려고 합니다. 잔디 위에 앉은 참새를 본 적이 있습니까? 무엇을 쪼아 먹다가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단번에 날아가 버립니다. 참새는 앞뒤 좌우를 계속 살핍니다. 그 조금만한 새보다 더 긴장한 피조물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의 본능은 긴장과 자기 보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순간 포식동물이 내려온다 하더라도 신속히 날아가 버립니다. 많은 사람의 비극은 이 점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공격하는 그 적들은 무엇입니까? 어떤 병에 걸리기 전까지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어리석은 자라고 입을 삐죽입니다. 모든 것이 잘되어 갑니다. 자신의 일과 직업 역시 잘되어 가고 돈도 많고 가정도 행복하고 모든 것이 잘되어 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삶을 즐기지 않는가? 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적들은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잔디 위에 있는 모이를 쪼아 먹으며 열심히 즐기고 있습니다. 적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적이 기습합니다. 예기치 않았든 병, 사고, 죽음, 등등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들었습니다. 적이 기습을 한 것입니다. 침상에서 그는 자신을 보호해 줄 아무것도 소유하고 있지 못함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어려움 역시 우리를 깨우치게 합니다. 죽음이 우리 가정에 들어 닥치든지 해서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그러면 어떤 인생들은 자신의 보잘 것 없음과 전적 무력감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것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서 도움을 구해야 할지 사람들은 원대한 이상과 꿈을 가지고 삶을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은 실패할지라도 나는 실패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고 모든 것이 잘될 곳이라고 자신만만합니다. 그러나 적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소유한 것을 갑자기 잃어버립니다. 그때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립니다. 적이 모든 것을 우리로부터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먼저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적이 찾아 공격했지만 나는 어떤 방어의 수단도 없었고 그 습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방법이 전혀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품이 뒤틀려고 타락해 버린 것을 깨닫고 자신 안에 죄가 있다고 깨닫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무엇인가 잘못되었고 부당한 것이 존재하며 죄의 능력이 있음을 압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를 대적하며 육신 역시 자신을 대적하며 모든 것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인하여 겁내며 두려워합니다. 이들은 어떤 위험이 와도 나는 당해 낼 수 있어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가장 위험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것과 전적으로 무방비 상태인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찮은 작은 참새와 같음을 깨닫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먼저 자신의 전적 무력감과 방어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전적으로 힘을 다해 싸우지만 나를 공격하는 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래서 자신을 도울 구원자가 필요함을 인식합니까? 이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그리스도인은 놀라운 본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작은 새들은 지적으로 이해는 못하지만 본능적으로 직감적으로 이해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경탄할 만한 것은 자신들의 새끼를 키운다는 것입니다. 알을 낳고 그 위에 앉아 알들을 부화시킵니다. 어린 새들이 성장해서 둥지 밖을 날아다니며 스스로 삶을 시작할 순간까지 키우고 보호하고 양육합니다. 그 하찮은 새에게는 자기의 새끼보다 더 귀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집이나 둥지를 지을 장소를 찾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를 의지하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최대 비밀은 즉 가장 귀중한 것은 자신의 영혼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다윗의 시입니다. 그는 능력의 용사요 많은 승리를 뽐낼 수 있었던 자요. 많은적들을 정복한 자요. 이스라엘 왕 중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가장 귀중한 소유물은 내가 위대한 왕이었지만 나의 영혼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보다 값진 것은 없다. 다른 모든 것은 다 뒤로 물리쳐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그것은 썩지 않습니다. 내 안에 있는 그것은 영원까지 계속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생기를 그 코에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된 것입니다. 나의 영혼!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지키며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딤 후 1:12”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바울은 나에게 모든 것이 대항한다 치더라도 괜찮다. 나는 온전히 기쁘다. 왜 그런가? 내 영혼의 보호를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분이 심판 날까지 능히 지키실 것이다. 그것은 안전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방인들이나 그런 것을 쫓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염려해야 할까요? 6:2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육신이 중요하지만 영혼만큼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영혼은 어떠합니까? 다윗은 나는 작음 참새와 제비 같습니다. 나에게는 가장 값어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참새와 제비의 경우는 그들의 새끼지만 나의 경우는 내 영혼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나의 영혼! 모든 적이 공격해 오는데 내 영혼을 감출 안전한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영혼이 영원토록 안전한 곳은 없습니까? 그것을 알기 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주를 의지하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데 불가피한 단계들입니다. 그는 우리 안에 영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육신이 무덤에서 썩어져 아무 가치가 없고 흙으로 다 사라질 때도 고귀하고 값진 내 영혼은 계속 존재합니다.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영혼의 안전!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언젠가 당신은 영혼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무엇을 했는지 결산해야 하는 사실을 아십니까? 다윗은 그 궁핍함을 참새와 제비에 비추어 본 것입니다. 참새도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 복음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은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중요하다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해 보았습니까? 어느 날 주님은 야이로라는 사람의 부탁으로 죽어가는 그의 딸을 보러 가는 중입니다. 주님은 그들 돕기 위해 바삐 그의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에 휩싸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둘러싸 억누르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주님이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제자들은 주여! 무리들이 밀려들어 미나이다. ”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라고 그리스도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한 불쌍한 여인이 궁중 속에서 나왔습니다. 그 여인은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내가 주님께 손을 대었습니다. 아니 주님의 옷깃을 만졌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주님을 만졌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많은 군중이 주님을 만졌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그 한 개인을 아셨다는 것입니다. 혈류 병을 앓고 있었으나 누구도 고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의 고독을 아셨습니다. 누가 나를 만졌느냐? ”주님은 믿음의 손으로 만진 그 여인을 아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당신일지라도 세상은 큰 덩어리 속의 한 점에 불과하다고 세상이 말할지라도 주님은 나는 너를 안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영광스러운 메시지입니다. 만군의 주이신 하나님은 당신을 아십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마귀의 말을 결코 듣지 말기를 바랍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셔서 그분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을 찾았습니까? 주님은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온갖 쾌락과 웃음을 시도해 보았습니까? 세상의 철학 문학예술을 다 접촉해 보았습니까? 당신의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까? 영혼의 안식처는 한 곳 밖에 없습니다. 바로 ‘제단’위입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당신의 영혼을 위한 안식과 화평을 찾을 것입니다. 주님은 더 이상 애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둠 속에서 당신을 보호하는 방패 당신을 육신과 마귀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분을 아십니까?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8:38-39”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여러분의 영혼입니다. 나의 영혼은 어디서 안전함을 찾을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의 강가에서도 그 이후에도 영원히 그분을 의지하는 자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찬송가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금자리 안에 있습니까? “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이 길입니다. 그분 안에 들어가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