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15:1-9
2. 명제: 교회가 하나 됨으로써 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가 있다.
3. 제목: 교회가 하나 되는 길
만약 여러분의 삶이 1주일만 남았다면 무엇을 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생애 마지막 한 주간 무엇을 하셨을까요? 두 가지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고 둘째는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의 핵심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였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 가운데 제자들을 위한 기도가 요 17장에 길게 나옵니다. 그 기도의 중심은 아버지여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라는 기도였습니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에게 부탁한 세상의 복음화에 대한 사명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중차대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한뜻으로 연합하며 서로를 받아 주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됨으로써 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교회가 하나 되는 길이 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임을 소개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요?
1. 이기심을 극복함으로써 하나 될 수 있습니다.
1-3절“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이기심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기심을 극복해야 합니까?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받아야 할 모든 비방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쁘시게 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어떻게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강한 자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담함으로써 가능한 것입니다. 모두가 이기심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성경은 왜 믿음이 강한 자가 먼저 이기심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씀할까요? 모든 은사는 나 자신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약한 지체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 주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수 하춘하 씨가 교인인지 아닌지는 저는 모릅니다. 우연히 방송에서 대담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그분이 사회에 기부한 금액이 200억 원 정도 된다고 합니다. 방송 앵크가 힘들게 모은 돈 아깝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에 하춘 아씨가 저는 돈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분이 예수 믿는 신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성경적인 대답을 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먼저 큰 믿음이라는 은혜의 선물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축복은 복의 근원이 되도록 주신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란 하나님의 축복이 나를 통해서 약한 자에게 흘러가서 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여 세우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자의 이기심 때문입니다. 부자는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나님이 재물을 주셨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주는 것을 모르고 모으기만 잘합니다. 결국 탐욕이 자기 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가장 중요한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어리석은 인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공산주의가 왜 일어났습니까? 부자가 가난한 자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배만 채우려고 하다가 반발하여 일어난 것이 공산주의 출현의 비극입니다. 부자가 먼저 이기심을 극복해야 나라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1%의 부자가 대한민국 전체 소득의 16%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부의 편중 즉 양극화 현상이 미국 다음으로 세계 두 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대한민국이 하나가 될 수 없고 공산주의의 선동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소위 선진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는 노블레스에블레제 정신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미국의 부자는 기부도 세계 일위라고 합니다. 영국의 왕자들은 제일 먼저 전쟁터에 나가는 모범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이 선진국가를 아직도 버티게 만드는 정신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도층에는 병력미필자가 많습니다. 큰 은사를 가진 자가 모범이 안 되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공동체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선진 일류 국가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기심을 극복한 가난한 사람들의 작은 헌신들이 모여 운영되는 곳입니다. 부자가 교회를 돕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가 천국을 볼 것이요 라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즉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한 자가 진정 복된 자입니다. 그 사람이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이기심을 극복한 사람이 있는 곳에 진정 하나가 될 것입니다. 가정이 진정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가득한 그 가정은 분열과 다툼만이 있을 것입니다. 이기심을 극복한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요?
2. 한뜻을 가짐으로써 하나 될 수 있습니다.
4-6절 “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15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 여기 한뜻이란 NIV 성경을 보면 연합의 정신을 뜻합니다. 하나 되게 하는 연합의 정신의 뜻입니다. 그런데 연합의 정신은 누가 주십니까?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주십니다. 어떻게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연합의 정신을 받을 수가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었지만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빌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셨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느니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시지만 주인 됨을 주장하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우리 인생을 섬기는 종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겸손이십니다. 천국은 섬기는 자가 큰 자가 되는 곳입니다. 세상은 부리는 자가 큰 자가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진정 하나 될 수가 없고 분열과 원망과 불평과 파괴만이 난무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하신 예수 님을 높이셔서 세상 모든 피조물이 다 그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높이십니다. 우리가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울 때만이 진정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야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자기의 자기 됨의 포기입니다. 자기 권리, 자기주장의 양보입니다. 이것이 겸손의 영입니다. 겸손의 영이 임하는 곳에 하나 됨의 영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길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울수록 여러분의 가정 우리 교회 이 나라가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곳을 통해서 예수님의 증인 되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겸손의 반대가 교만입니다. 교만이 있는 곳에는 분열과 갈등만이 일어날 뿐입니다. 어떻게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요?
3. 서로를 받음으로써 하나 될 수 있습니다.
7, 9절“ 7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9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초대 로마 교회는 서로를 잘 용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인종이 다르고, 제사 음식 문제, 안식일 날짜 문제 등으로 의견이 분열되었고 심지어 서로를 비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 되지 못한 교회가 주님이 주신 증인 되는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교인들을 향에 서로 다름 때문에 분열하지 말고 서로를 용납하여 받아들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서로 다른 지체들을 용납해야 할까요? 우리 주님이 나를 용납하여 받아 들었기 때문입니다. 7절 “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주님이 나를 용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9절 “ 이방인으로 그 긍휼 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받아 주셨습니다. 이 긍휼하심은 무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주님은 나를 무 조건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이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면 주님 앞에 갈 수 있는 인생은 누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형편없는 나를 무 조건적으로 먼저 받아 주시고 그리고 인내로 나를 참아 주셨습니다. 내가 넘어지고 자빠져도 당장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나에 대한 소망을 가지시고 끝까지 기다리시는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5절 “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지금도 형편없는 나를 품으시고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언제가 주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을 그 날을 기다리십니다. 예수님이 비유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며 살다가 다 털어먹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탕자 아들을 아버지는 무조건 받아 주셨습니다. 무 조건적인 아버지 사랑 앞에 나중에 이 탕자는 아버지께 죄송하고 미안해서 아버지의 기대에 합당하게 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버지 사랑 앞에 탕자가 변하여 효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먼저 나를 받아 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나를 무 조건적으로 먼저 받아 주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만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약한 지체를 담당하려면 이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긍휼의 사랑은 처음부터 기대를 너무 걸지 않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에게 너무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왜 이웃에게 싶게 실망하는지 아십니까? 기대를 너무 걸기 때문입니다. 그 기대가 차지 못하면 어느 순간 쉽게 포기하고 마는 것입니다. 저 인간 저런 사람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긍휼의 마음이 아니라 비판의 마음입니다. 긍휼은 인내와 소망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시는 사랑입니다. 기대를 유보하는 것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오히려 위로를 잘하십시오.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부모의 자기 자녀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에 가깝습니다. 긍휼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결국 부모 사랑을 알고 새롭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과거 어느 대학 교수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아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향의 사람이었습니다. 늘 아들을 보고 못난 놈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들의 분노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랑은 기대를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는 것입니다. 긍휼의 반대가 잔인함 엄격한 무정함 복수심 등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분열과 파괴라는 비극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알고 보면 우리 인생은 다 불쌍합니다. 온갖 세상의 가시로 찔러 상처를 안고 혼자 울고 있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런 나를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은 나를 부둥켜안고 사랑한다고 속삭입니다.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힘을 내시고 다시 일어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주님의 사랑을 안고 이웃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비난을 중단하고 비판도 그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주십시오. 실망은 금물입니다. 변화시키시는 것은 우리 주님의 몫이니 주님께 맡기고 나는 그냥 불쌍히 여기 주시기만 하면 족한 것입니다. 그럴 때 놀라운 주님의 변화의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긍휼이 있는 곳에 진정 하나 되는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강당 하게 될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교인들이 하나 됨으로써 주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 수가 있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인들이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이기심을 극복함으로써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는 나만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옆의 약한 지체를 섬기도록 주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것을 잠시 맡아있는 청지기임을 잊지 마십시오.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에 불과함을 붙잡으십시오. 한뜻을 가짐으로써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한뜻을 가지기 위해 예수님을 배우십시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십시오. 서로를 용납함으로써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옆의 부족한 지체를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보시는 그 긍휼의 눈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참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이 변화 시킬 그 날을 소망하며 위로하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노력 결심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 이 민족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