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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과 불칼

wordlove 2021. 5. 24. 05:52

1. 본문: 3:22-24

2 명제: 인간은 에덴의 그룹과 불칼 때문에 생명나무를 따 먹을 수 없다.

3. 제목: 그룹과 불칼

 

1. 갈등

성경은 항상 우리의 정확한 형편을 짚어 준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위기와 소요와 혼란에 빠지면 성경을 찾아볼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성경을 제외한 모든 해결책을 찾아봅니다. 성경은 영적인 눈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 나에게 유일하고 참된 답이 있는데, 왜 나아와 듣지 않느냐? ” 라고 도전합니다. 성경은 우리 모든 사람이 마땅히 던져야 할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합니다. 첫째 질문은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 질문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첫째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둘째 질문을 해결할 수 없다 "고 말하니까? 싫어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진단을 싫어합니다. 문제만 바로잡으면 그뿐이지 진단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합니다. 몸이 아플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파 죽겠는데 의사가 와서 들여다보며 자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고 나서도 이런저런 검사를 하면서 손도 얹어 보고 심장 소리도 들어 봅니다. 그러나 의사는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기 전에 통증부터 가라앉히는 것은 위험한 짓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자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복음의 첫째 부분을 혐오하고 있습니다. 즉각적인 치료만 바라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낙원에서 쫓겨났습니다. 외롭게 고립된 채, 언제 어떤 동물이나 짐승이 해칠지 모르는 황량한 광야 앞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일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과 좌절감, 혼란과 무서운 고독감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23절과 24절을 분석하면서, 진단과 처방이라는 복음의 두 가지 측면을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내셨습니다. 세상이 오늘날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대답이 여기 나옵니다. 인류가 이 지경이 된 것은, 태초에 자신의 본질과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 하나님이 절대 의도하시지 않은 다른 존재가 되려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여기에 나오는 중대한 말은 그의 근원이 된 땅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흙을 취해 인간을 만드셨고 자신의 영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기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그 점을 알았고, 그 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와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시더냐? "하와가 글쎄, 한 나무의 열매 말고는 다 먹을 수 있는데 "라고 대답하자, 뱀이 말했습니다. " 좋아. 하나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데 알려 주지. 너희가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자기처럼 될까 봐, 그래서 선악을 알게 될까 봐 그런 거야. ”아담과 하와는 뱀이 던진 미끼를 덥석 받아 물었습니다. 그들은 유한한 존재로 하나님께 의존하며 순종의 삶을 살기가 싫었습니다. 자신들은 흙으로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신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어깨를 겨룰 만한 무언가가 자기들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이 지경이 된 유일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이 최초의 치명적인 착오로부터 세상의 모든 역사와 인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과 복음을 전할때에는 반드시 ’’ 큰 자만심이 인간의 주된 문제임을 밝혀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전 1:26-29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는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자신의 말을 마무리합니다. 고전 1:31“ 자랑하는 자는 주안에서 자랑하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방법은 인간의 자부심, 특히 지적인 자부심을 낮추시고 깎아내리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잠재력과 재능과 능력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무슨 왕이나 거인이나 천재인 것처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며 자신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오래된 환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땅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쉬지 않고 일깨우십니다. 인간이 스스로 높아질 때마다 거꾸러뜨려 다시 흙을 핥게 만드십니다. "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

 

2. 갈등 심화

이제 두 번째 원리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처럼 어리석게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짓고 얻는 결과물은 항상 인간을 실망시키게 되어 있으며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오게 되어 있습니다. 창 3:22-23“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결과,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아는 지식을 얻었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이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신처럼 될 것이며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선뿐 아니라 악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는 악을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온전히 교통 하며 낙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선에 더하여 악까지 알게 된다면 자신들의 지경이 더 넓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의 입에 들어온 열매는 달지 않고 시었습니다. 인간은 원하던 대로 인간은 악을 아는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지식은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얻은 지식은 주관적인 지식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금단의 열매를 먹는 순간, 악의 노예가 되었음을 자각한 것입니다. 사탄과 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입니다. 그에게 생긴 지식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대답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7:1819.23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도다.. ”인간은 악을 아는 지식을 원했고, 그 지식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속에서 무서운 힘이 작용하는 것을 느낍니다. 아침에 일어나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악한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선악을 아는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보고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악을 아는 지식을 구했고, 그 지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지식은 아니었습니다. 악을 아는 지식의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인간은 악이 삶에 작용하는 거대하고 악의적인 영향력이자 권세임을 알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것이 몰고 오는 악한 결과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나타난 결과는 형벌이었습니다. 인간은 동산에서 쫓겨나 추위에 떠는 신세, 무방비상태로 허허벌판에서 뼈 빠지게 노동하며 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악을 알게 된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 결과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괴로울 줄 뻔히 알면서도 왜 똑같은 짓을 반복했을까?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자기를 원망하며 책망하는 것입니다. 후회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결과의 배후에서 가장 무서운 결과는 결국 찾아올 죽음의 그림자입니다. 하나님께 계속 순종하기만 했다면 죽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자의로 행동함으로써 저주를 자초했습니다. 2:17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죽음의 망령이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 앞에 나타났습니다. 죄를 짓고 타락한 결과, 인간은 이런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알고 악을 압니다.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 대신 지식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지식을 올려놓습니다. 아담이 한 짓도 이것 아니었습니까? 요컨대 이 지식만 있으면 하나님이 없어도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 이 지식만 있으면 난 완전해진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 " 것입니다. 지난 백 년 사이에 큰 배교가 일어났습니다. 교회 다니는 것이 이주 희귀한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설교를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약 백 년 전에 사람들은 지식 특히 과학 지식이 우리를 하나님에게 독립시켜 준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새로운 발견과 발명으로 하나님이 필요 없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무지해서 하나님께 복을 달라고 빌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에게서 독립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과학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시디신 열매를 맛보고 있습니다.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던 지식이 가장 큰 문젯거리로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한탄했을 것입니다. " , 하나님 앞에서 계속 무지하게 있을걸! 뭐 때문에 악을 알고자 했을까? . 옛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은 동산에서, 하나님 앞에서 쫓겨났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현대의 지식과 학문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까? 바로 그 생각이 인간을 낙원으로부터 짐승들이 울부짖는 황량한 광야로 몰아냈습니다.

 

3. 전환

이 원리는 그다음 원리와 연결됩니다. 이런 일을 겪고서도 어리석은 인간은 죄의 결과를 모면하고자 애를 씁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이 말씀을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여기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사이에 오간 말씀입니다. 창 3:22“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 먹는 짓도 불사하리라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죄를 지어 타락하고 악을 알게 된 그 상태에서도 여전히 하나님께 도전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추방하신 것입니다. 세상 역사를 직접 읽어 보십시오. 사상의 역사도 읽어 보십시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 철학도 읽어 보십시오. 신화도 읽어 보고, 이상향을 꿈꾸었던 이들의 책도 읽어 보십시오. 그 모든 역사에 담겨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쫓겨난 동산으로 돌아가기 위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입니다. 인간은 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음을 압니다. 그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싶어 합니다.. 여전히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종속된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문명의 역사는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역사입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그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온갖 방법으로 생명과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찾지만, 결코 찾지 못합니다. 인간은 죽음을 몰아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살기 위해 온갖 재주와 재능과 두뇌를 동원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노력이 다 헛되다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첫 번째 중대한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 마지막 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의 실상을 아십니다. 끊임없이 돌아오려 할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룹과 불칼을 두어서 동산 입구와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오늘날 인간의 처지가 바로 이렇다는 것입니다. 2천 년이 넘도록 문화와 철학과 사상과 사회활동과 정치와 전쟁을 계속해 왔는데도 이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왜 돌아가지 못합니까? 그룹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칼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룹이 대체 무엇입니까?? 그룹은 여호와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광야에 성막을 세우고 언약궤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도덕 법인 십계명을 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일종의 뚜껑 내지는 덮개로 궤를 덮고, 그 위에 금으로 두 그룹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 두 그룹은 ’’ 은혜의 자리라는 이름이 붙은 그 궤의 뚜껑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룹은 율법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며 그 거룩한 성품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그룹을 동쪽 입구, 즉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에덴동산 입구에 두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명과 기쁨과 평안의 복을 얻기 위해 동산으로 돌아가려 하는 즉시 영원하시며 영존하시는 하나님, 어둠이 전혀 없는 빛이신 하나님과 대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이나 그의 영광을 얼핏 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십시오. 그들은 그 자리에 바로 엎어졌습니다. 또 무엇이 있었습니까? 불칼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냅니다. 생명을 얻고 싶습니까? 행복과 평안과 기쁨을 얻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하나님 앞을 통과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진노를 뚫고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찾는 복을 얻으려면 그 앞을 지나가야 합니다. 진노의 칼 앞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시대를 막론하고 자기 힘으로 그 생명을 얻으려 했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적인 어리석음이요 비극입니다. 인간은 학식을 의지했습니다.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재능을 의지했습니다. 도덕을 의지했습니다. 수많은 것들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늘 실패했습니다. 왜 실패했을까요? 그런 것들로는 불칼에 대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을 통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4. 대단원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도 소멸되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공유하시는 아들, 그 이름을 찬양할 분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을 입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인간으로 와서 한 인간이 자신이 神人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인간이시면서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보고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불칼을 향해 나아가셨고, 그 칼에 맞아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가 10: 20"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길이요 회장은 곧 그의 육체 그의 몸이니라 "는 칼 앞에 나서며 나를 치라고 하셨습니다. 칼은 그를 치다가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 아들의 피와 찢긴 몸을 통해 추방당했던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를 마음껏 따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 일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의 순종을 힘입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가 율법을 지키신 것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자를 위해서였습니다. 길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을 통해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나아오는 모든 자를 하나님은 기꺼이 영접해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