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16:1-27
2. 명제: 교회 일꾼은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3. 제목: 주안에서 많이 수고한 사람
어느 묘지 비문에 이런 재미있는 글이 있다고 합니다. 참 말 많던 내 아내 더디어 입을 다물다. 사랑하는 내 아내 여기에 잠들다. 제발 내 아내를 깨우지 말아 다오.. 이런 비문이 있다면 어떻게 들립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는 아베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안에서 많이 수고한 사랑하는 버시.. 물론 앞의 세 사람은 비문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인정한 교회 일꾼에 대한 묘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종결하면서 자신을 도와 함께 주의 복음을 위해 수고했던 교회 일꾼들을 소개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총 33명의 이름이 롬 16장에 나옵니다. 로마 교회 일꾼이 24명이고 고린도 교회 일꾼이 9명입니다. 여성이 9명이나 됩니다. 이들 가운데는 귀족 출신도 있고 노예도 있었고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주 안에서 수고하다가 바울 사도로부터 인정받은 교회 일꾼들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일꾼들은 독특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임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초대 교회 일꾼의 정체성을 소개하여 오늘날 교회 일꾼들인 우리들이 도전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교회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요?
1.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 사도가 인정하고 있는 교회 일꾼들은 7절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8절에 주안에서 내 사랑하는 암블리아, 9절 그리스도 안에서, 11절 주안에 있는 자들에게 문안하라. 12-13절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들의 공통분모는 주안에서 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거하고 있는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먼저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지 못하고 교회의 일꾼이 되면 그는 교회 일꾼을 계급으로 착각하는 교권 주의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교회가 시끄러운 것은 바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교회 일꾼 된 이런 교권주의자들 때문에 일어나는 수가 많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소개하는 교회 일꾼들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따르고 증거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일꾼 이전에 먼저 예수님의 일꾼이었습니다. 3절의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가 등장합니다. 부인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을 볼 때 부인의 신앙이 더 좋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주님의 일꾼이 되었을까요? 행 18장에 보면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 모든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떠나라는 추방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쫓겨나서 고린도로 피난 왔다가 바울 사도를 만났습니다. 당시 바울 사도는 고린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이 부부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역경이 오히려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이 된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바울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을 증거 하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교회 일꾼 되기 전에 먼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7절에 안드로니아와 유니오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7절에 “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고 한 것을 보면 이 사람은 바울의 친척인데 바울 보다 먼저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야사를 보면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할 때 감동을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모르기 전 바울은 스데반 집사님을 죽이는데 앞장선 교회 핍박 자였습니다. 그러다가 행 8장에 극적으로 회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먼저 예수 믿었던 친척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바울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기도 응답으로 바울 사도가 예수 믿었다고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믿고 7절에 나와 함께 갇혔다고 한 것을 볼 때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고난에 동참한 사람이 되어 고난을 함께 나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이들도 교회 일꾼 되기 전에 먼저 예수님을 믿는 회심의 경험을 가졌습니다. 13절에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리는 루포는 잘모르지만 루포의 아버지는 잘 압니다. 막 15: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루포의 아비가 구레네 시몬입니다. 그는 북 아프리카 출신인데 유대인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왔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되기 위해 십자가를 메고 가는 장면을 구경하게 됩니다. 그러다 쓰러져 가던 예수님 대신 십자가 형틀을 억지로 대신 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형틀을 골고다 언덕까지 지고 간 그날 그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장면을 보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끌려 왔다가 예수님을 믿은 독특한 경험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 억지로 아내의 손에 끌려 왔다가 예수 믿은 남편과 자녀들도 있지 않습니까? 억지라도 교회 나오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 후 시몬은 자기만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그 아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 아들 역시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바울 사도가 인정하는 루포라는 교회 일꾼입니다. 또한 그의 아내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13절 “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 ”루포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아내입니다. 바울 사도는 루포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시몬의 아내가 바울을 도와 복음 사역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주 안에서 살아가며 주님을 증거 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초대 교회 일꾼들은 먼저 주안에 있었던 주님의 일꾼들이었습니다. 10절에 아리스볼로 11절에 나깃수 15절에 네레오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공통점은 이들은 로마 귀족들이었습니다. 아리스도볼로는 이스라엘의 악한 왕 헤롯 대왕의 손자로서 당시 로마에 살고 있었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나깃수는 클라우디오라는 로마 황제의 비서였습니다. 네레오는 도미티아누수라는 황제 밑에 막강한 권력을 잡고 있었던 클레멘스라는 집정관의 비서 역할을 맡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로마 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기독 교가 잔인하게 핍박을 받던 시대에 살면서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폭꾼 로마의 네로 황제는 AD 64년에 로마에 불을 질러 놓고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 뒤집어 씌워 잔혹하게 탄압할 때 총책임을 맡은 자가 훌레비우스 사비누스였는데 바로 그 아들이 로마 집정관 클레멘스였습니다. 핍박자의 아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사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의 역설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한 야사에 의하면 원형 경기장에서 야생 짐승들에게 갈가리 찢기는 순간에도 화형식에서 불타오르는 순간에도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크리스천의 순교하는 모습에서 그 최고 책임자의 아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구세주요 주님이라고 담대하게 증거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예수가 도대체 누구인가 고민하던 중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던 15절에 나오는 네레오 라는 자기 비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기독교 핍박 시대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며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일꾼이기 전에 주님의 진정한 일꾼이었습니다. 교회 일꾼은 먼저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나의 주님으로 믿는 예수님의 일꾼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교회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요?
2. 교회를 돕는 동력 자입니다.
참된 일꾼은 주님의 일꾼일 뿐만 아니라 교회를 돕는 동력 자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생명은 많은 사람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에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생명력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은 주님의 일꾼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6장에 등장하는 주님의 일꾼들의 두 번째 특징은 교회를 돕는 동력 자 즉 바울 사도의 동력 자였습니다. 동력 자라는 뜻은 돕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1절 뵈뵈에 대해서 보십시오. 1절“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었던 뵈뵈는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납니다. 뵈뵈는 자매입니다. 그리고 바울로부터 이 로마서를 고린도에서 로마까지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2절에 “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 뵈뵈는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가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 편지가 바로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로마서입니다. 이런 헌신적인 사람들의 동력을 통해 바울 사도의 사역이 힘 있게 전진한 것입니다. 브리스기와 아굴라 부부를 보십시오. 고린도 교회가 바로 이 부부 집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5절에 “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그들은 자기 집을 교회 앞에 개방한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교회당이 아직 없었습니다. 자기 집을 개방하여 교회로 섬겼다는 것은 보통 헌신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의 사역은 이런 헌신적인 동력 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부부는 평생을 바울 사도와 동행하며 그의 동력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 후 로마로 가자 이 부부도 같이 갑니다. 에베소로 갔습니다. 그들도 바울 사도를 따라갔습니다. 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바울 사도가 에베소에서 복음 전하다가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들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았을 때 이 부부가 생명을 걸고 바울 사도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헌신적인 동력 자가 있었기에 바울 사도의 사역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22절에 ” 이 편지를 대서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 하노라 “더디오라는 셋째라는 뜻입니다. 셋째가 어떻게 이름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당시 로마 사회의 노예들은 이름을 박탈당했습니다. 어떤 귀족이 노예를 여러 명을 부리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첫째야 둘째야 셋째야 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더디오는 셋째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노예이지만 똑똑한 노예들이 많았습니다.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하루아침에 노예로 끌려 온 지성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2절에 보면 이 편지를 더디오가 대서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친히 쓴 것이 아니라 바울이 성령의 영감 속에 불렀을 것이고 바울은 시력이 매우 약해서 대신 더디오가 대서했던 것입니다. 만약 천국에 가서 바울 사도에게 사도님은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주의 일을 이루셨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나 바울 혼자 힘이 아닙니다. 저 뵈뵈 자매를 보십시오. 저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를 보십시오. 내 주변의 많은 헌신적인 동력 자들이 있었기에 주의 일이 가능했습니다 라는 답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동력이 있었기에 위대한 바울 사도가 탄생한 것입니다. 충성은 교회 조직체를 향해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충성은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 리더십에 대한 섬김이요. 동력이어야 하는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계십니까? 그렇다면 섬김의 교회 리더십인 저의 동력 자가 되어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일꾼은 교회 리더십을 돕는 동력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요?
3. 평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또 한 바울 사도가 소개한 교회 일꾼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16장에 등장하는 33명을 소개할 때마다 문안하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6절“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문안하라 인사하라는 말입니다. 교회의 성공적인 열쇠는 성도들 간의 교제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 사랑의 교제가 있으면 그 교회는 생동합니다. 그 사랑의 교제를 잃어버리면 교회는 복음의 능력을 나타낼 수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꾼들은 생명을 걸고 교회 안에 교제가 아름답고 영광스럽고 따뜻하도록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로마 교회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위기가 있었습니까? 17-18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소위 그노시스 파란 이원론 사상을 가진 이단들이 로마 교회에 침투해서 교인들을 미혹시켰고 교회를 분열시키려고 했습니다. 신천지라고 불리는 이단들이 한국 교회에 침투해서 미혹했습니다. 성경공부를 한다면 교인들을 끌어들여 신천지의 이단 사상을 주입시키며 교회의 부정적인 면을 퍼뜨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기 세력을 모은 후 교회 지도자를 공격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단이 등장하면 반드시 교회의 평강은 깨어지고 분쟁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쟁의 배후에는 분쟁의 신 마귀가 있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마귀는 분쟁의 신입니다. 마귀를 사탄이라 부릅니다.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볼로스 라고 하는데 여기 앞 글자 디아는 가운데라는 뜻이고 볼로스는 던진다는 뜻입니다. 즉 마귀는 가운데 던지는 악한 영입니다. 가운데에 자꾸만 던져서 교인들 사이를 이간시키는 악한 영인 것입니다. 로마 교회 일꾼들은 분별력이 있어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기 않고 교회를 지킨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평화하도록 교제를 잘하는 것입니다. 이 평강의 아름다운 교제를 세워 가는 것이 교회의 일꾼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바울 사도는 로마서를 종결하면서 자신을 도와 함께 주의 일에 수고한 여러 교회 일꾼들을 인정하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먼저 예수님의 안에 있는 주님의 일꾼이었고 더 나아가 바울을 돕는 교회 일꾼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사도가 인정한 일꾼으로 바울 사도에 의해 기록된 것이지만 기록되도록 역사하신 분은 성령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인정하신 분들은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주 앞에서 이런 인정과 칭찬을 받는 주님의 일꾼 그리고 교회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