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창 6:7-8
2. 명제: 노아 홍수 심판은 마지막 심판에 대한 예표입니다.
3. 제목: 죄는 벌해야 한다.
1. 갈등
창 6장의 사건의 전모를 살피면서 여기에서 배워야 할 극히 중요한 메시지를 찾아보겠습니다. 이 사건이 다루는 기본적인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세상이 안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문제를 보며 크게 염려합니다. 생각은 하지만, 불행히도 일정한 수준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성경 메시지를 살펴볼 마음까지는 먹지 않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종교를 시대에 뒤처진 진부한 주제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책은 우리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몇 장에 걸쳐 창세기 3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전적인 목적은 창 3장의 메시지를 받아들여야만 현대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밝히려는데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며 하늘의 소리를 멸시하다가 오늘날 이 지경이 되었으며 세상도 이 지경이 되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반역하자 마자 무서운 결과가 나타났고 지금도 그 결과가 계속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은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요,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의 권세, 마귀의 권세 아래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속박에 매여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경은 인간이 이런 죄를 저질렀음에도 하나님이 여전히 우리를 염려하시며 돌보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도 안내해 주셨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원수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뱀의 후손은 머리가 깨지고 여자의 후손은 발꿈치에 상처를 입는 큰 전투가 벌어질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3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3장 이후 역사는 계속됩입니다.
2. 갈등 심화
우리는 창세기 6장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앞서 살펴본 사건과 이 사건 사이에, 하나님은 거의 세상에 관여하시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돌연 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 이후 인간을 다루어 오신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성경은 개인과 나라의 실제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0세기에 두 차례의 큰 전쟁을 겪으면서 무서운 시련의 시기를 통과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습니까? 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물론 자연과 피조 세계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유추할 수 있지만 저는 피조 세계가 하나님의 존재와 실존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패턴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오랫동안 세상을 방치하시는 듯합니다. 그러다가 나타나 무언가를 행하시고, 개입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6장이 그 예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복음 메시지는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시며,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분명히 계신다고, 그의 목적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나 예루살렘 멸망이나 바빌론 유수 같은 엄청난 사건들, 대사건들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노아 홍수를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믿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노아 홍수의 역사성을 부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나셨고 기적을 행하셨으며 죽어 장사되었다가 말 그대로 몸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아느냐?' 하는 것이 질적인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실들이 나옵니다. 성경은 이런 사실들을 비웃으며 벧 후 3:4절 “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라고 조롱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이제 노아 홍수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지 살펴봅시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6-27절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히브리서 11장에도 노아홍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7절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연이어 성경의 구원을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한 방주에 비유해서 설명합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 아, 잠깐, 대홍수 때 사람들도 너희와 똑같았다. 노아의 설교를 비웃고 조롱했다. 그런데 결국 홍수는 왔다 ”그는 연이어 심판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홍수는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로는 다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표시로 하늘에 무지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물로는 멸망시키지 않아도 죄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3. 전환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이 사건이 주는 일반적인 메시지는 모든 재앙의 원인이 죄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낙원에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순종했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가인은 시기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죄가 들어오면서 전쟁이라는 결과물이 나타났습니다. 죄가 없었다면 재앙도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죄에 대한 형벌로 재앙을 주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가 주는 전적인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홍수를 일으키기로 작정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17절 “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때로는 천 년에 이르는 긴 세월 동안 마치 참고 계시는 듯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조롱합니다. “ 너희 하나님이 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렇게 전능하다면서 말이야. 우린 하나님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아. 싹 무시해 버리지. 우리 맘대로 살아도 별 탈 없는걸. 오히려 만사형통이라니까. ” 창 15:16절 “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행동하시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들의 죄악이 가득 차면 행동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행동을 미루고 호소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꿈쩍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면 하나님이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금방 무슨 일이 생길 줄 알았더니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별 탈 없잖아 하면서, 계속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사자를 보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죄를 죄었습니다. 결국은 “ 시온에서 맘 편히 살자. 아무 문제 없다 "라고 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돌연 하나님이 행동을 개시하셨습니다. 이것이 구약 전체의 역사입니다. 주 후 70년, 예루살렘이 무너지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백성이 각 나라로 흩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매번 즉각적으로 행동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때가 되면 행동하십니다. 세 번째 일반적인 원리는 역사에 나타난 각각의 재앙들은 장차 임할 재앙을 가리키는 그림에 불과합니다. 성경의 전적인 메시지는 하나님은 공평하시고 거룩하시며 의로우시고 순결하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벌하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죄를 벌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죄를 벌하시는 것일까요? 죄가 만들어 내는 결과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옛 세상을 멸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절에 답이 나옵니다. “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은 세상의 악이 얼마나 큰지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이 최고 수위에 이를 때까지 참으시다가, 최고 수위에 이르면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하나님은 5절 “ 인간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 "한 것을 보셨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고 자랑했다는 뜻입니다. 행동만 악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상상력과 정신까지 악했다는 뜻입니다. 마음 자체가 악마적이었습니다. 백 년 전에도 죄를 많이 지었고, 조선 시대 사람들도 벌 받을 짓을 했습니다. 그 시대도 어두웠으며 부도덕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처럼 추잡한 내용이 없었습니다. 상상력과 정신과 사고와 마음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음악의 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시적이고 외설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왜곡되고 비틀려 있습니다. 문학도 마찬가지이고, 미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 홍수 때도 그랬습니다. 죄와 악이 넘쳐났고, 악독과 악덕이 넘쳐났습니다. 창세기 6:11은 말합니다. “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세상은 50년 전보다 훨씬 더 포악해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처럼 싸우지 않습니다. 한 번에 수천 명, 아니 수백만 명까지 죽일 수 있는 강력한 폭탄을 사용합니다. 포악함! 그때도 포악함이 땅에 가득했고, 지금도 포악함이 땅에 가득합니다. “ 그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죄의 본질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모든 죄를 지으면서도 세상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없어. 하나님이 있다 해도 상관없고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려다보고 계시는데도 그들은 이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계속 멋대로 살았습니다. 바로 그럴 때 하나님이 행동을 개시하십니다. 바로 그럴 때 재앙이 일어납니다. 주님이 홍수시대에 대해 지적하신 말씀을 잊지 맙시다. 마 24:38-39절 “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완전히 물질주의적인 시각으로 사는 모습입니다. 먹고 마시는 일,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을 인생의 전부요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영원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현재만을 위해, 즐거움과 행복만을 위해 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의 모습이자 현재의 상황입니다. 그들의 소원은 " 더 많이 벌어서 즐기자. 무슨 일이 생기든 상관없다.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 그냥 먹고 마시며 즐기자. ”이것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것과 똑같은 마음 상태입니다. 당시 상황을 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3절 “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 무슨 뜻일까요? “ 자, 이제는 더 이상 너희를 말리지 않겠다. 더 이상 참고 있지도 않겠다. 120년을 더 주마.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행동을 개시하겠다." 본문은 하나님이 7절“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 탄 함이니라"하나님은 죄인을 경고하십니다. 개인도 경고하시고, 세상도 경고하십니다. 우리 속에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그 양심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경고를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시기 전에 항상 경고하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심판하시며 행 17:31절 “ 정하신 사람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와 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 ”하실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갈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서서 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당시 사람들도 경고하셨습니다. 그렇게 경고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120년의 시간이 필요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노아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봐, 뭐하는 거야?’ 하고 물었습니다. " 전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걸세. 곧 물로 세상을 덮어 버릴 테니, 방주를 지어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을 구하라고 하셨다네. "사람들은 그 말을 농담 중의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 정말 웃기지 않아? "하며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짓는 내내 설교하며, 여러 말로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2:5에 " 의를 전파하는 노아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세상을 멸하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솔선하여 회개하고 믿었으며 방주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일일이 준행했습니다.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지기에게 명하신 대로 나 준행하였더라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는지 마 24:39절“ 깨닫지 못하였다 ””라고 하셨습니다. 경고를 무시하며 하나님의 소리에 콧방귀를 뀝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하나님의 심판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지만 확실히 돕니다. 벧후 3:8"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우리가 보기에는 하나님이 주무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홍수는 일어났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원수들에게 패하여 잡혀갔습니다. 이 모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세상의 현 상태와 전쟁의 재앙을 통해서도 현대인들에게 경고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깨우셨습니다. 홍수가 일어난 것이 확실하듯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 아기로 태어나신 것이 확실하듯이, 그가 부활하신 것이 확실하듯이, 다시 오셔서, 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일도 확실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탈출구는 하나뿐입니다. 노아는 재앙에 휩쓸리지 않고 안전하게 구원받았습니다. 은혜를 입었습니다.
4. 대단원
어떻게 은혜를 입었습니까? 19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것이 비결입니다. 노아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이 7절"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성품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노아는 “ 믿습니다 ”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 물에서 구원받은 것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들어가면 세상을 심판하시는 최후의 심판 날 진노에서 구원받는다고 말합니다. 벧 전 3:21에서 그리스도는 방주입니다. 구주입니다. 피난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방주를 지으셨습니다. 그를 믿고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지금 하나님을 믿으면 그 은혜가 여러분을 구원해 주고 건져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탈출구는 하나뿐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 더 이상 변명하지 말아야 하며, 과학이나 지식이나 다른 수단으로 반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 나에 대한 말씀, 나를 죄인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노아처럼 믿고, 고백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방주이신 독생자 예수를 보내 나의 죄와 벌을 담당케 하셨다는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그 아들 예수 안에 들어가면 모든 죄를 도말해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에도 안전하게 지키시고, 죽을 때에도 안전하게 지키시며, 영원토록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을 구속하고 구원할 것입니다. 마지막 재앙이 찾아와 세상이 다 녹아내려도 여러분은 예수의 품 안에서 안전히 거할 것이며, 무한한 영광 가운데 가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눈을 열어 노아 홍수가 전하는 이 메시지를 깨닫게 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