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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수정본"

wordlove 2021. 6. 1. 05:41

1. 본문: 15:32-33

2. 명제: 지혜 자는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3. 제목: 지혜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

 

오늘 본문은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것이며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지혜를 얻으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은 지혜서입니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을 높이 평가 하지만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를 더 높이 평가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이 인정하는 인생입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이 진정한 성공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 성공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어떤 부자를 보시고 예수 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평가하셨습니다. 잠언은 우리보다 인생을 먼저 살아본 지혜 자들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싶은 것은 지혜 자는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지혜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소개하여 저와 여러분이 지혜로운 자가 되도록 도전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지혜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1. 훈계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훈계가 무엇입니까? 여기 훈계는 NIV 성경은 Discipline 즉 훈련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훈련을 싫어하는 자는 자기 스스로를 멸시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가끔 사랑이 오해 받고있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오냐오냐하는 어떤 부모의 맹목적 인사랑은 어리석은 사랑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훈련을 동반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훈련을 시킵니다. 훈련이란 좋은 습관을 개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사하는 법, 밥 먹는 법, 말하는 법, 사실 산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이 좋은 습관 훈련과 관련되어있습니다. 사랑은 훈련입니다. 학교 교육도 좋은 습관을 개발하기 위한 훈련입니다. 공부도 훈련입니다. 공부하는 것이 좋은 습관이 되어 버린 학생이 그 습관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훈련을 계속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곧장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고 싶었지만 이들은 가나안 땅의 족속들과 싸워 이길 믿음이 아직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광야 훈련을 통해서 믿음의 군사로 훈련 시켰습니다. 예수 님의 마지막 유언도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예수 믿고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제자는 군사라는 뜻과 동의어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의 군사로 세워져야 할까요? 예수 믿는 우리는 이 땅에서 원수 마귀와 싸워 마귀에게 속아 지옥 가는 영혼들을 구출해야 할 예수 님의 군사들이기 대문입니다. 영적 전투를 통해 마귀를 깨뜨리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성장 시켜 우리 구주의 이름을 높이며 영광 돌릴 거룩한 예수 님의 군사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도록 훈련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모든 구원 받은 천국 백성들은 예수 님 학교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 학교를 일명 믿음의 학교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이 믿음의 학교의 교과목의 제목이 순종 훈련입니다. 예수 믿어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순종 훈련이 잘될수록 믿음의 학교에서는 진급이 빨라집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학년은 몇 학년입니까? 우리의 신앙은 순종 훈련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주일 예배를 성수하라. 기도하라. 은사를 따라 봉사하라. 주님이 주신 제물로 헌신하라. 서로 사랑하라. 원수를 용서하라. 주님의 음성 듣기 위에 하루에 제일 먼저 QT 하라, 전도하라, 이처럼 끊임없이 대장 되신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훈련을 주십니다. 그 훈련을 싫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훈련을 경시하는 사람은 신앙 성장이 안 됩니다. 믿음의 약졸이기 때문에 크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겸허히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 평소 묵묵히 순종하는 사람은 즉 자신을 훈련에 헌신하는 사람은 믿음이 강건해집니다. 그러면 주님이 더 큰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훈련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2. 견책을 달게 받아야 합니다.

여기 견책은 교정의 의미입니다. 고친다는 뜻입니다. 자기 교정을 잘하는 사람이 지식을 얻는다 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고장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훈련의 말씀 가운데는 나 자신의 고장 난 부분을 고치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견책의 말씀을 듣고 기분 나쁘게 생각하며 아예 불순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순종에는 육신이 약해서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알고 보면 고의로 짓는 고범 죄가 많이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나라 초대 왕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고 나자 마음에 교만이 생겼습니다. 그 교만이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변명하기, 이유 대기,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기, 등으로 자신의 교만을 숨깁니다. 이것들은 알고 보면 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요 거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사울 왕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는 모든적들과 모든 가축까지 다 죽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사울 왕에 대한 하나님의 믿음의 시험 즉 순종 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값진 소나 양 염소들은 죽이지 않고 살려 가지고 왔습니다. 왜 살리고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물엘 선지자가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저 뜰에서 나는 소와 양과 염소가 우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사울 왕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 충성스런 우리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 위해 살려 데리고 온 것입니다. 사물엘 선지가 되묻기를 왕이시여! 여호와 하나님은 분명 다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 그것이 우리 백성들의 눈이 하도 무서워서 본인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온갖 변명과 백성 탓으로 돌렸습니다. 이런 거역하는 불순종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3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보다 순종을 더 좋아하심을 모르십니까? 많은 헌금을 드림보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더 좋아하심을 모르십니까? 왕이시여! 거역하는 것은 점쟁이의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 앞에 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기에 여호와 하나님도 왕을 버려 다른 사람에게 왕의 자리를 줄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이 고치라는 말씀을 듣고도 고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것이 거역의 죄요 교만의 죄요 불순종의 결과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반복해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늘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입니다.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사울 왕과 대조적으로 다윗왕은 여호와 하나님의 견책의 말씀을 듣고 즉시 회개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정직하게 자기 죄를 통회 자복했습니다. 사울과 다윗왕의 차이는 바로 이것입니다. 회개는 자기 죄를 인정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회개한 다윗왕은 용서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더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회개 잘하는 사람이 지혜 자입니다. 지혜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3.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여기 경외 심는 존경심에 기초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존경심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주님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심의 대상입니다. 물론 존경 하지만 그분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와 우리는 비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경외심이 아니라 공포심을 느낍니다. 뱀이 무서운 것처럼 마귀는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은 공포심이 아니라 존경심 가운데 나오는 두려움입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되풀이 말씀합니다. 지혜는 예수 님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지혜의 근본이신 예수 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사람은 예수 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훈련 중 불순종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시기 위해 사막의 독사인 불 뱀을 보내 물려 죽게 했습니다. 큰 고통을 만나자 마침내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중보자 모세를 찾아와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며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울며 회개를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 백성을 구원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구원의 처방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처방책이 이상합니다. 놋으로 뱀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높은 장대 위에 매달아 땅에 곧아라. 그리고 너희 백성들에게 내 말을 전하라. 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다 독사의 독에서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나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독사의 독으로 말미암아 다 죽으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두 종류의 반응이 사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코방귀를 뀌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독사에게 물렸다면 약을 써야지 어찌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불 뱀을 쳐다보란 말이냐? 누가 그 말을 믿어! 이렇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어야지 우리 머리로 잘 이해가 안 되어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니 믿어야지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말씀을 경외하지 아니한 불신자들은 다 뱀의 독에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믿은 사람들은 독사의 독으로부터 다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장대 위에 높이 달린 놋 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님의 그림자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예수 님은 우리 인생을 사랑하사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예수 님을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구세주와 나를 만드신 하나님으로 믿으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지금도 이 말씀 듣고 나타나는 반응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코방귀를 뀌면서 그걸 어떻게 믿어 천국과 지옥을 가봤어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예수 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180도 다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기에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말씀대로 심판받아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말씀대로 죄 용서함받아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불신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말씀대로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혜 자가 되기 위해 개발해야 할 태도는 무엇입니까?

 

4.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에서의 겸손은 자기 권리 혹은 주장을 포기함을 뜻합니다. 예수 님은 우리의 구주이실 뿐만 아니라 모범이십니다. 예수 님은 우리에게 겸손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님은 본질상 하나님이셨지만 모든 하늘 영광을 다 포기하시고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성육신의 겸손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이 땅의 주인이셨지만 우리 인생의 종이 되셔서 종처럼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를 섬기시기 위해서 온갖 모욕을 다 담당하셨다가 마침내 십자가에 내 죄를 안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 님은 그 본성이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삶을 보십시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철저히 포기하셨습니다. 겸손은 자기 포기입니다. 마귀는 원래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피조물인 천사 주제에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같이 되어 보려고 교만을 품었습니다. 천사가 교만을 품자 마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귀도 겸손하면 천사가 됩니다. 그러나 그 겸손하신 예수 님은 3일 만에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본연의 자리도 승천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든 세상 피조물들이 참 왕이신 예수 님 앞에 다 무릎을 꿇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모든 무릎이 예수 님 앞에 꿇게 되어 그분을 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겸손하신 예수 님이 존귀함을 입으신 것입니다. 겸손은 존귀의 길잡입니다. 겸손의 반대가 교만입니다. 18: 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보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자기 포기라고 했습니다. 자기 포기는 소극적으로는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다투지를 않습니다. 잘 다투십니까? 자기 포기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자기 포기라고 했습니다. 자기 포기는 적극적으로는 빌2:3“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다투지 아니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길 때 주님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높이십니다. 겸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습니까? 자신을 훈련하십시오. 회개를 잘하십시오. 예수 님을 믿으십시오. 겸손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지혜로운 자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