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일 1:6-10
2. 명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죄 된 인간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
3. 제목: 죄 된 인간
창 5:22에서 에녹이 ““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라는 말씀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라는 말씀은 에녹이 하나님과 사귐 즉 교제의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을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귐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통과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교제를 나누는 두 당사자의 성격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5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본성과 상품에 대해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싶으면 하나님의 특성을 아는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며 조금도 흠이 없으시고 죄가 조금도 섞이지 아니하시는 철저히 온전하신 분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교제를 위해 두 번째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교제를 나누는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죄 된 인간에 대해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바로 이해하려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한 교리도 결코 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라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 또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거부하면 성경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은 죄라는 교리를 거부합니다. 죄라는 교리는 고집스러운 옛사람들의 구닥다리 전용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죄의 교리를 마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족쇄처럼 여깁니다. 죄의 교리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죄를 모르면 구원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선한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추하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약간의 도움을 받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는 정도가 되면 충분하지 무시무시한 죄인이라는 단어는 거북스러워하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인의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생각입니다. 요한 사도는 본문에서 바로 이것에 대해 과감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죄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6-10절에서 사도 요한은 죄에 대한 생각에 대해 두 가지 공통된 잘못을 지적합니다. 이 잘못된 생각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주님과의 교제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교제를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 요인은 일반적으로 죄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죄의 참된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런 사람은 복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죄가 의미하는 바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죄에 대한 본질을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죄를 특정 범죄나 행동 정도의 범위에서 생각하려고 합니다. 죄를 도덕적인 개념에서 이해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 사기 거짓말 등등을 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선하게 살고 있어요. 법 없이도 살 수 있어요. 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말하는 죄는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의 죄에 대한 개념과 다릅니다. 성경에 의하면 죄는 하나의 영역이고 하나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두 가지 왕국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왕국으로 빛의 왕국이며 거룩한 왕국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어둠의 왕국 즉 사탄의 왕국으로 죄악의 왕국입니다. 사람이 거할 수 있는 두 왕국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여러분이나 나와 상관없이 우리 개개인의 행위와 상관없이 죄와 악의 마음가짐과 견해와 자세 같은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죄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 죄를 가지고 우리는 인생의 모든 병과 문제와 슬픔을 설명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온전하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로 모든 세상이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엡 2:2“ 엡 2:2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사탄으로서 바로 죄악 된 왕국의 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바로 죄악 된 왕국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누구나 이 세상 풍습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것이 죄 된 것이라는 의식도 없이 당연시하며 살아갑니다. 바로 공중의 권세 잡은 불순종의 아들인 사탄의 영을 따라 살아가는 죄인입니다. 사람은 어두움의 나라에 살고 있는 죄인입니다. 인생은 이 강력한 어두움의 나라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 외에 또 다른 강한 힘을 가진 왕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사람을 놓고 두 왕국 사이에 큰 다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하늘과 지옥과의 싸움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어둠의 왕국의 지배 아래에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사람은 어둠의 방식 안에서 생각하고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둠의 왕국의 삶은 하나님을 거스리며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온전하심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거스리는 모든 것이 바로 어둠의 왕국입니다. “ 어둠에 행한다 ”라는 뜻은 하나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빛이시며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생각 역시 하지 못합니다. 요일 2:15-16“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소원에 대해 철저히 망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항합니다. 이것이 어둠에 거하는 자들의 생각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지 못하고 있는 사탄의 왕국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세속적 인생관과 인본주의적인 가치관들과 이생의 자랑만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빛이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능력으로서의 죄에 대한 교리를 인식하는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합니다. 예수 님이 이 세상에 오신 곳은 바로 이 어두움의 나라 즉 사탄의 나라에서 빛의 아들의 나라 즉 천국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교제를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 요인은 사람의 본성이 죄인이다 ‘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말입니다. 8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두 번째는 죄 된 행실을 생산하는 죄악 된 본성에 대한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죄 된 본성보다는 행하는 죄에 대해 생각합니다. 요한 일서는 초대교회의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에 대해 반박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는 죄성으로부터 해방받았으며 새로운 본성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 안에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하면 우리가 잘못된 일을 저지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잘못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영지주의 이단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구원파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이제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죄를 지어도 나와는 상관이 없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주장은 죄의 본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누구든지 죄 된 본성이 없다고 말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라고 단언합니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잘못되는 것은 주변 환경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립니다. 성경은 왜 내가 이런 일을 하는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롬 7:18에서 “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이것은 바로 위대한 바울 사도의 고백입니다. 바울 사도 자신을 가만히 보니까 자신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님 믿어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가지 명칭이 주어집니다. 위대한 종교 개혁자 루터가 말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 님 안에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의롭다 즉 죄 용서함을 받은 의인입니다. 동시에 죄인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천국 백성도 죄악 된 본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사탄의 시험을 받아 죄를 지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악한 본성과 왜곡된 본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타락한 결과로 우리 안에 주어진 모든 것을 곡해하고 꼬아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죄를 짓게 하는 근원이 있다고 합니다. 단지 내가 잘못을 행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본성이 죄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죄 없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죄없다고 말한다면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을 합리화를 잘합니까?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완악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리이며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도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 사람들은 어둠을 사랑하고 빛은 어둠을 드러내며 자신이 속한 어둠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빛으로 나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를 범치 아니했다고 말한다면 진리가 그 사람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0절“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죄인으로서 우리가 용서받을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며 죄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며 우리의 본성이 죄다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우리가 실제로 죄를 지으며 따라서 용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구원파는 죄를 지어도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 나는 하나님 믿고 교제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한 번도 죄를 의식해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죄를 의식해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그 내용은 길거리 사람들에게는 해당될는지는 모르지만 나 같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에게는 이런 교리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습니다. 나는 죄인이므로 회개해야 하고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이같이 말한다면 요한은 “ 여러분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들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도 당신 안에 거하지 않는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용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가 회개해야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요한 사도는 그 사람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사도 바울도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 이방인들은 개들이다. 그들이나 용서가 필요하지 우리는 필요가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방인뿐만 아니라 유대인도 죄인이며 이 세상에는 아무도 의로운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면 성육신의 교리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까? 그분이 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고 자신의 피를 통해 죄를 용서하고 사면해 주심으로써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면 결국 성육신을 부인하고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면 모든 성경 말씀을 거스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이 내 안에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정죄하면서 십자가와 구원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놀라운 은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지 았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놀라운 사실을 전혀 불필요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입니다. 또 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고자 자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그분의 영원한 사랑을 비웃는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입장에 있다면 명백하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에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기 때문에 거짓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 나는 그리스도인이 전혀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우리가 죄인을 인식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의롭게 됨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이 아니라 매우 깜깜한 곳에 아직도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려면 하나님의 속성과 아울러 우리의 본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나는 죄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죄인임을 고백합니까? 나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탄의 왕국 백성으로 태어난 죄인이요. 그 결과 온갖 죄를 짓고 사는 죄악 된 본성을 가진 죄인임을 깨닫고 이 죄에서 나를 구원하시려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믿습니다. 내 죄를 용서받기 위해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분을 나의 구세주로 의지합니다. 이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예수 님의 피 공로로 의롭다 여김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의인임을 믿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계속 적으로 십자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내려놓고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늘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천국 백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