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일 2:12-14
2. 명제: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기본적인 중요 진리가 있다.
3. 제목: 자녀들, 청년들, 아비들
여기 “ 자녀들아 ”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이 많은 요한은 노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애정을 담긴 단어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아비들’과 ’청년들‘’ 청년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가 그리스도인의 삶과 믿음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어린 자녀들만 죄 사함 받은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한 아비들만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청년들만 악한 자를 이겨야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악한 자를 이겨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가 모두를 위해 이글을 기록한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에 주어지는 단계와 상태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단계에 필요한 메시지이면서도 어느 한 단계에 더 강조해야 될 말씀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제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 개개인을 위한 것이면서도 특정한 부분에 알맞은 특정한 적용이 동시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이 말씀을 살펴봅시다. 우리가 기본적인 기독교 견해에 대해 분명히 알아야 되는 선결 조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이해 없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유지해 나가라고 호소하는 것은 시간 낭비로만 끝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요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그리스도인의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더 이상 교회가 할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은 기독교 가르침과 윤리를 도저히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힘든 것이지만 이 세상에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성경 안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을 향해 윤리적 요구를 하는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향해 ”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말라 “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행동으로 당연히 옮기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확실히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진리가 과연 무엇입니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의 용서에 대한 지식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전제 조건은 12절 “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그들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용서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용서를 소망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용서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가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지은 것에 대해 용서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 “ 그렇게 되기를 바랄 따름 ”입니다. 그래서 나는 용서 받으려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의 생각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죄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고 응수합니다. 죄 용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죄가 사함을 받는 방법에 대한 지식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사도는 12절“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라고 뚜렷하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 안에 기독교 교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분이야말로 죄 용서함에 대한 확신을 제공해 주는 가장 근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이 교리는 가장 중심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나는 나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믿는가? 그러하다면 무엇을 근거로 믿는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이 같은 질문에 대해 “ 나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내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죄 사함에 대해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다는 말입니까? 과연 그분이 용서함의 중심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라는 요한의 말씀과 함께 용서의 중심이 되시는 분이라고 받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 용서에 대한 분명하고도 객관성이 있는 근거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12절은 “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의 뜻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 자로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그분 안에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사 53:5-6에서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의 죄악은 하나님에 의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담당하게 지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가 죄악으로 인해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바로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형벌을 받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강력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요일 1:9절”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라는 말씀이 주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설명들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용서에 대한 확실성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죄 용서에 대해 의심쩍어한다면 그 자체가 죄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겸손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 내가 지은 죄들이 사함받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은 죄에 대해 용서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이 편치 않다 “라고 말합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죄 사함의 확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상 믿음이 부족하거나 불신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화 된 삶을 살아가는 표적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 죄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용서받았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죄의 교리를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직도 자신을 의지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우리 죄악을 위해 완벽하게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또 한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된 이름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탄원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이름 즉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시며 그 안에 모든 충만함이 거하며 하늘의 재판정에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그분의 이름은 우리에게 죄 용서함을 확신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교리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그 이상 진전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요지는 어떤 사람이 ” 그래 이제부터 나는 계명을 지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거야. “라고 한다 해도 과거에 지은 죄들에 대한 분명한 해결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부터 선한 일을 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과거의 죄는 여전히 남아 있지 않는가? 과거의 죄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고 의지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지은 죄를 분명하게 해결해 놓지 않고서는 결코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악을 담당하고 죽으셨다고 나를 의롭게 하기 위해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과 온전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분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믿고 있습니까? 만약 알고 믿고 있다면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될 가장 우선적인 진리입니다.
두 번째는 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13절-14절”요일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고“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 완료형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장차 악을 이길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이 이기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악한 자를 이긴 승리를 갖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여전히 느끼겠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는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악한 자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으며 곧 누리게 될 승리에 대해서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더 이상 죄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너무나도 연약하다는 것을 잘 알지만 사탄은 패배한 적장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가 사악한 자를 이미 물리치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악한 적과 마주치게 되었을 때 이와 같은 사실 즉 그가 이미 패배한 자라는 바로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한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소속된 어린 자녀이며 우리의 대적을 예수 그리스도께 떠맡겨 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먼저 ”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라는 그의 기록에서 우리가 힘을 공급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강해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한 어떤 알 수 없는 신비한 능력이 우리 안에서 개발되고 있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에 의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새로운 생명과 힘을 부여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전과는 다른 어떤 변화가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들어와서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어떤 힘과 능력을 인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힘을 공급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계명을 지키며 형제들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다음으로 그는 14절”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라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야고보는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 할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우리 마음에 심어진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고 또한 우리 안에 거함으로 생명이 성장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성령의 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 악성을 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동안 우리 죄의 추하고 이기적이고 잘못된 성질들을 보게 됨으로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또 한 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의 종말에 대해서도 보여줍니다. 감사한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과 그리스도가 어떻게 대적을 물리쳤으며 어떻게 그리스도인에게 와서 그들을 강하게 해 주며 그들을 맹렬하게 공격하는 것에 대항에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정복자가 되도록 해주는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생기는 것입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들으시고 영혼의 양식으로 항상 받아먹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14절“ 내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이런 가르침이야말로 참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힘과 죄를 이길 수 능력에 대한 지식을 확실하게 갖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지식을 확실하게 갖고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 아비들아 내가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로부터 계신 여기서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여기서 태초부터 계신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어떤 위대한 힘이나 능력 정도로 알거나 우리에게 계명같이 힘든 것을 지워 주시거나 우리를 대적하고 미워하는 분 정도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를 사랑하며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시는 분이십니다. 태양으로 하여금 이 세상을 비추게 하시는 놀라우신 아버지 하나님이 바로 이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에 대해 요한은 14절“ 우리가 알고 있다 ”고 했습니다. 사도는 나는 여러분이 이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시고 여러분에게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이런 계명을 허락하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으로서의 그분을 알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사역을 알고 죄를 담당한 분으로서 희생제물로서 선지지로서 제사장으로 왕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그분을 안다는 것이 바로 아버지에 대한 지식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분에 관한 신약 성경의 교리에 대해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 그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그분이 필요한 시간에 유혹받는 상황에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우리가 일어나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만 참된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도 알아야 하며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될 세 가지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에게는 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는 것이며 셋째는 우리가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통한 성자 하나님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요한은 ’자녀들아‘ ’ 자녀들아‘라는 표현으로 그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죄 사함에 관한 지식과 어떻게 죄를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식과 무엇보다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한 지식 등과 같은 견고한 기초 위에 우리를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