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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수정본"

wordlove 2021. 6. 29. 05:56

1. 본문: 40: 27-31

2. 명제: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제목: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1. 갈등: 불평하는 이스라엘

삶이 피곤하고 어려우면 짜증과 불평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입니다. 역경 가운데서는 믿음의 백성들도 절망하며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역경이 찾아오면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본문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 하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해 바벨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노예 생활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지쳤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시다고 절망하며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27절에서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그 불평을 들으신 하나님은 야곱아! 어찌 불평하느냐고 꾸짖고 계십니다. 여기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때까지 기다리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깊이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어려운 환경만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역경을 만날 때 어떤 자세를 취합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더욱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고 계시는구나 그렇다면 겸손히 잘 배우고 이 역경을 잘 받아들이자. 주님! 나를 더욱 새롭게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왜 나에게 무관심하십니까? 왜요? 왜요? 왜요?라고 불평합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환난을 만날 때 낮추어라 때가 되면 너를 높이리라. ”역경의 때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겸손히 배울 때입니다. 그리고 불평할 때 범하기 쉬운 또 다른 잘못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지 아니하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지도자에게 화살을 돌릴 때가 많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지도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이곳으로 잘못 인도해서 우리가 이 고생을 합니다. 끊임없이 지도자에게 불평 원망하며 돌을 던지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의 원망과 불평에 모세는 너무 지쳐 하나님 차라리 나를 데려가 주세요. 내 차라리 죽고 싶습니다. ‘라고 한탄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불평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이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불평하는 주동자 미리암을 문둥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불평은 이처럼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희가 왜 불평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김 집사! 왜 불평이 그렇게 많지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불평을 들으시고 묻고 계심을 아십니까?

 

2. 갈등 심화: 너는 알지 못하느냐?

왜 야곱이 불평을 하느냐? 물으신 하나님은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지 꼭 집어 말씀하셨습니다.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모르는 불신의 문제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에 지치다 보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40:28-29“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은 먼저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피곤하니까? 하나님도 피곤해하실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달리 피곤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여기 명철은 분별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분별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분별력에 한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앙망하는 자들에게 지금도 은혜를 주셔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불신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없는 인생들을 보시고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1:2-4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1:4 슬프다 범죄 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예수 님은 하나님을 모르고 믿음 없이 죽어가고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님은 인생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 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영혼의 양식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서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잠자고 있는 영혼들의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듣든지 아니 듣든지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지혜, 철학, 사람을 웃기는 개그가 죽은 영혼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이 죽은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 님은 내 말이 곧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다 보면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언제 가는 말씀을 듣고 예수 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496“ 새벽부터 우리 사랑함으로써 저녁까지 씨를 뿌려 봅시다. 열매 차자 익어 곡식 거둘 때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거두리로다 거루리로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전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지으신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섬기며 살아야 인간의 맞당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바로 예수 님입니다. 예수 믿으면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나를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영생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으세요. 이렇게 전도는 인간을 살리시는 구원자 예수 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3. 전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에게 준비하신 축복은 무엇입니까? 40:31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그런데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먼저 인간인 나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30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여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도 복을 누리고 있지만 그러나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젊고 강건한 청춘의 시절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여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우리 인생의 연수가 70이며 강건하며 80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으며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왜 인간이 이렇게 연약합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떠난 죄로 말미암아 영혼은 더 이상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면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죽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육체는 점점 죽어갑니다. 그 마지막은 자신의 죄를 심판받아 지옥에 떨어져야 합니다. 이런 우리 인생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회복시키려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 앞으로 아무도 올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축복을 누리려면 구원자 되신 예수 님을 앙망해야 합니다. 앙망하다는 의미는 기다린다. 소망한다. 믿는다. 믿는다.라는 뜻입니다. 믿음은 예수 님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소망해야 합니까? 예수 님을 믿는 자에게 주실 축복을 소망해야 합니다. 예수 님은 그를 소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예수 님은 새 힘 즉 낡아 빠진 옛 힘이 아니고 새 힘 하나님의 힘을 주십니다. 예수 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님을 믿으면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잃어버린 인생을 다시 살리시는 것입니다. 삭개오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일제 시절 일본 앞잡이가 되어 부자가 된 어떤 사람처럼 당시 자신의 조국인 유대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있는 로마 제국의 앞잡이로 소위 세금 거두는 공무원이 되어 뒤에서 많이 착복하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족으로부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마음에는 늘 허전하고 기쁨이 없었습니다. 인생이 왜 사는지 참삶의 목적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 님이 자신의 마을을 찾아오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빙 둘러쌓았기에 난쟁이인 삭개오는 예수님 얼굴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삭개오는 그래도 예수님 한번 만났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이 지나가시는 길가의 뽕나무 위를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나무 밑을 지나가신던 예수님이 걸음을 멈추시고 나무 위를 쳐다보시고는 삭개오야! 내가 너희 집에 오늘 유하여야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아니 예수 님이 어찌 나의 이름을 알았을까? 삭개오는 너무 놀랍고 기뻐 예수 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놓고 자신의 과거의 삶을 진정 회개했습니다. 주님! 제가 과거에 도둑질한 것이 있다면 4배나 갚겠습니다. ‘라고 고백하자 예수 님은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하였다. 너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축복하셨습니다. 그날 삭개오는 예수 님을 만나 새사람 되어 과거의 추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을 누리면서 정말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병들고 연약해져 버린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러 오셨습니다.

 

4. 결단: 어떻게 주를 앙망할 것인가?

어떻게 예수님을 앙망합니까? 무엇보다도 예배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님을 알게 되고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구원을 얻고 믿음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하며 영적 힘을 잃고 자연히 불평하며 낙심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때 말씀의 씨보다 그 말씀의 씨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문제라고 예수 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 님은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인생에는 4가지 종류의 마음 밭이 있다고 하십니다. 먼저 옥토 밭입니다. 이 마음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실 때에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즉 겸손과 인내로 순종하며 듣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 밭은 결국 3060배의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이 있습니다. 이 밭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밟아 버렸기에 땅이 너무 딱딱해졌습니다. 씨가 길가 밭의 땅을 뚫고 들어갈 수가 없으니 씨가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마음 밭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마음 밭이 너무 딱딱하기 때문에 말씀의 씨가 뿌리를 내릴 수가 없으니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그 사람의 마음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딱딱한 밭은 호미로도 깰 수가 없고 트랙터로 갈아엎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온갖 죄, 편견. 선입견, 걸레 같은 세상 사상으로 교만해진 이 마음 밭을 성령의 트랙터가 갈아엎도록 금식하며 통곡하며 깊이 지난 삶을 회개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옥토 밭이 됩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 밭이 있습니다. 이 마음 밭은 얕은 흙이 밑에 있는 돌을 살짝 가리고 있는 밭입니다. 그러나 숨어있는 돌 때문에 씨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고 결국 햇빛이 쨍쨍 내리 째면 말라죽고 맙니다. 돌밭과 같은 마음은 처음에는 복음을 듣고 기쁨으로 예수 님을 믿고자 나셨지만 숨어있는 돌 때문에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오면 금방 넘어지고 맙니다. 돌밭의 문제는 숨겨진 돌에 있습니다. 숨겨진 돌을 골라내어 버려야 옥토 밭이 됩니다. 가시밭과 같은 마음 밭이 있습니다. 이 가시밭은 가시가 있어서 밭의 모든 영양분을 빼앗아 먹어 버리기 때문에 곡식이 자랄 수가 없습니다.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입니다. 이 가시밭은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마음입니다. 세상 사랑과 돈 사랑으로 마음이 꽉 막혀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말씀이 역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름빚 때문에 모자를 살인한 사건이 바로 가시밭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세상 쾌락과 탐심이 이렇게 인생을 비극으로 만든 것입니다. 가시를 뽑아야 옥토 밭이 됩니다. 예수 님은 길가 밭, 돌밭, 가시밭과 같은 마음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 구원을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내 마음이 옥토 밭이 되면 예수 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3060배의 성령의 열매를 맺어 독수리처럼 힘차게 나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옥토 밭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더 간절히, 더 가까이, 인내로, 순종하며 들으십시오. 그리고 들은 말씀을 믿고 순종하십시오. 옥토 밭이 되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주님! 내 마음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 주세요. 무엇보다도 기도를 쉬는 죄를 범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요 믿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에 넘어집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경청하십시오. 하나님은 예수 님을 앙망하는 자를 반드시 구원하셔서 새 힘을 주십니다. 성령 충만을 주셔서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