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일 2:29-3:1
2. 명제: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는 탄생하며 그분의 의로운 성품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증명된다.
3. 제목: 하나님의 자녀
1. 갈등
사도 요한이 이 서신을 기록한 목적이 독자에게 기쁨의 충만을 갖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비록 이 세상의 삶이 문제와 어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에게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누릴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서신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의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기쁨의 충만을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29절부터는 새로운 전환점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은 “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라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는 관계에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교제 적 관계뿐만 아니라 생명력 있는 연합적 관계에까지 들어갔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이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기 때문에 그분의 자녀로서 유기적이고 본질적인 관계를 아버지와 가질 수 있다는 주제를 말씀합니다. 여기서 요한은 다시 한번 의로움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의에 대한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켜야만 하며 형제를 사랑해야만 하고 세속적인 것들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만드는 유혹의 영들을 피해야만 할 것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외적 교제를 나누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내적 관계 형성에 기초를 둔 의로운 삶에 대에 언급합니다. 이것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29절에서 “ 그로부터 난 자는 누구든지 의를 행하리라 ”고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말씀합니다. 의로운 삶은 단순히 도덕적인 삶이나 선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압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을 부인하는 사람 가운데 매우 도덕적이고 예의 바른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을 성경에서 말하는 의라는 말을 줄 수는 없습니다. 의란 예수 그리스도가 사신 삶의 질과 같은 삶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한은 “ 의를 행하는 자마다.... ”라고 서술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 준 삶과 같은 삶을 영위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자라고 확신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은 산상수훈의 가르침의 내용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실제로 일반인은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가에 상관없이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까지는 살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살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약성경이 그리스도인을 위해 제시하는 삶의 기준은 일반인을 정죄하며 그들이 거듭나야만 될 절대적 필요성을 느끼도록 밀어붙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말하는 위대한 주제입니다. 그는 “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난자라면 거기에 합당한 질적 삶이 따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이 계명을 못 지키며 죄 가운데 살고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와 같은 삶을 산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다른 삶을 살아야만 된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9절에서 그는 ” 그에게서 났다 “말했는데 이 의미가 첫 번째 질문은 ” 나는 여러분이 누구이고 어떤 신분을 가진 자인가 다시 상기시키고자 한다. “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요일 3:1절에서 ”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2. 갈등 심화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참으로 놀랍고 위대한 것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잠시 우리의 신분을 살펴봅시다. 요한은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 다른 표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 표현이 주는 정확한 뜻은 무엇입니까? 자녀란 부모와 확실한 관계에 놓여 있는 자들입니다. 확실한 위치에 있으므로 확실한 특권도 동시에 주어집니다. 자녀는 다른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관계를 부모와 맺게 된 자입니다. 그러기에 요한은 잠깐 멈추어 이런 놀라운 내용을 상고해 보라고 요청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들 즉 여러분과 내가 어떤 위상을 가지며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 이유로 하나님과 독특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당신은 하나님은 모든 우주 만물의 아버지 되심과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 하고 생각하지 않는가? “라고 이견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답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에 의해 이 땅에 존재한다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때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요 후손이라고 표현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은 이 같은 일반적 차원에서의 설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하나님과 특별한 자녀의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과는 구별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은 3장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들을 구별해 주는데 이것은 주님이 친히 행하셨던 것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우주적 아버지가 되신다든지 인간은 모두 한 형제들이라든지 하는 주장을 전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거듭난 자들만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양자의 영을 받음으로써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라 부를 수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창조의 사역에는 속할지 모르지만 구원의 영역에는 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생명 밖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관계를 떠나서는 하나님의 생명과 상관없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됩니다. 또 한 죄 가운데 죽은 상태로 머물러 있어 자녀로서 가질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부여받지 못하게 됩니다. “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일컬음을 받고 있다 ”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자녀와 아들에 대한 차이가 무엇입니까? 아들이란 단어는 법적이고 외형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태어나 성질과 혈통을 공유한다는 공통적 본성에 강조점을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법적 위치보다는 내적이면서도 생명력 있는 유기적 관계를 더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려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과 생명 그 자체도 공유한다는 사실입니다.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요한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는 완벽하게 이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 안에 있기 때문에 포도나무의 생명과 수액과 포도나무로써의 구실을 할 수 있는 활력소가 포도나무의 원줄기에서 가지로 공급됩니다. 이것을 두고 유기적 관계라고 강조하면서 이와 같은 것이 우리와 하나님의 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가족 중의 한 구성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야말로 하나님의 성품을 공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참된 관계에 놓이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분의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로서 식구의 일원이 되었으며 그분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분과 독특한 관계 안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생각해 보면 1절에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인가? 를 떠올리게 됩니다, 답은 우리는 “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답이 너무 압도적이고 감동적이라서 감히 마음속에 담기가 거북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이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그저 착한 삶이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든지 교회에서 요구하는 규율이나 지키고 어떤 형태의 의식을 행하고 어떤 일에 대한 신념을 가진 사람 정도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내용들을 행하는 자들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위로부터 성령에 의해 거듭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그들이야말로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성품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변화를 받았으며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3. 전환
두 번째 질문은 “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입니다. 답은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요한은 하나님이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한은 ““ 맞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이상을 행하셨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넣어주셨다. 또는 우리 안에 부어 주셨다. ‘고 말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 “ 하나님의 자녀라는 일컬음을 받게 ”에서 ”......”...... 하기 위해서 “라는“ 목적의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1절 ” 보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주어주셨는가?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넣어주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시며 또한 그분의 성품을 우리에게 넣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지 못하면서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자신의 성품을 주셨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롬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실입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비록 형제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 해도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분이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것이 아닙니까? 1절”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이 부분은 신비스러운 부분입니다, 세상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세상은 ” 그를 알지 못하기 “ 때문에 이런 사실을 비웃을 것입니다. 세상은 이와 같은 신령한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세상은 당신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신적 성품이 당신 안에 있음으로 다른 사람과 구별된 존재라고 말하는데 그 따위 말은 집어치워 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말합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다른 사람과 다를바가 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세상이 여러분에 대해 그렇게 말해도 흥분하지 말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며 목수가 아닌가?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니 정신이 있는 자인가?라고? 비웃을 것입니다.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비웃음을 당하거나 오해를 받아도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영적으로만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들은 그들에게 숨겨져 있고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신적 성품이 있으나 외향적 육체로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세상은 육신을 통해 이를 들어다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신비이며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내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세상이 우리를 모른다 해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 뿐 아니라 같은 그리스도인들 간에도 서로서로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무엇인가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하며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아 주시며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셨다는 것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런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경험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은 서로를 알 수 있으며 상호 간에 호감이나 매력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안에 같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신비이며 현실입니다.
4. 대단원
마지막으로 ” 보라...어떠한 사랑을 “이 사랑이 의미하는 바를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값도 지불하지 않고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준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악과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타락과 죄 된 행동의 결과로 주어진 불결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우리에게 관심을 베풀어 주셨던 이 무 조건적인 사랑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그저 용서해 주신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베풀어 주신 사실을 우리 안에 들어와 사랑의 본질을 나누어 주신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어찌 그 대단함을 경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한 이런 사랑을 위해 그리스도가 치르셔야 했던 값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고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으며 이처럼 고통과 고뇌와 수모를 당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랑은 영원하신 것이며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이 땅에 오시어 고난을 당하면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이 되심은 우리와 같은 사람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바로 그런 그분의 엄청난 사랑의 행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으며 지금 현재도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랍고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틀림없는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