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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의 조건 "수정본"

wordlove 2021. 7. 21. 07:58

1. 본문: 요일 3:19-23

2. 명제: 형제 사랑은 성공적인 기도 생활의 초석이다.

3. 제목: 기도 응답의 조건

 

19절의 이로써 라는 단어는 앞에서 다루었던 주제를 계속 다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사도는 형제 사랑(부모 공경)이라는 주제는 우리가 19절에 진리에 속한 것을 증명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성경에 의하며 이중적 삶 즉 지식적으로는 교리를 따르는 것 같지만 실제 삶에서는 전혀 교리대로 살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우리의 죄과가 다 드러날 것입니다. 나그네로서 사는 이 땅의 삶에서 기도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도 눅 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기도하지 않는다면 낙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 유지해 주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시편 기자는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도 피할 길이 언제나 열려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위대한 선조들도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으며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도에 관한 전반적인 것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조건들에 관해 우리 마음에 반드시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하는 질문은 기도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에서 기도야말로 언제나 최상의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함 없이 기도로 뛰어들어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동 적으로 기도에 몰입하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어떤 단어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소원을 아름다운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이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그분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최소한 하나님과 대면하는 동안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다른 모든 것에 등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볼 때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 앞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생각들이 계속해 떠오르며 여러 가지 잡념들과 생각들이나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것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침투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을 다 물리쳐야 하고 다시 한번 실제 적으로 문자 그대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 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는 그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형제 사랑에 관한 전반적 문제가 이런 이유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은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적인 것입니다. 나는 이 귀중한 원리를 이해한다면 때로는 말을 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임재하심을 느끼게 되면 이런 생각들을 떨쳐 버리고 오직 그분과의 친교나 교제에 빠져들게 됩니다. 형제 사랑은 성공적인 기도 생활의 초석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참된 기도의 조건이며 기도의 본질이 되는 것입니까?

 

첫 번째는 정죄를 받았다는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20우 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을 책망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을 거슬린다면 참된 기도는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도의 본질이 되는 첫 번째는 정죄에 대한 느낌으로 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서 참으로 기도한다면 자신이 어떠한 자인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는 토론함으로써 영적인 것에 대해 말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테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기도가 생각이나 명상보다 더 확실한 테스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 명상 등을 통해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자아 성찰조차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테스트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 가운데 하나님 앞에 있을 때만큼 자신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도의 자세를 갖게 되면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주관하지 않게 됩니다. 기도하는 자체가 순종을 의미합니다. 기도 중에 나 자신을 순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말할 때나 토론할 때는 나 자신을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방어합니다. 또 한 생각이나 명상에 잠겨 있어도 나 자신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있게 되면 어떤 면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 앞에 나 자신을 부인하며 그분에게 순종하게 됩니다. 나를 주장하는 이는 하나님이 되시며 모든 것을 행하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도는 아무것도 그렇게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성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경험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어느 곳에서든지 여러분은 자신이 그분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무엇인가가 말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은 그 무엇인가란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마음 즉 양심은 행동하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화를 내었거나 무익한 일들 생각 실패와 여러 죄들이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 앉아 있게 될 때 떠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책망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며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한 약속들이 있었으나 행하지 못했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서 너는 나쁜 놈이다. 너는 기도할 자격이 없다. 네가 감히 누구길래 하나님 존전에 나아오는가? 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철저한 무가치함과 실패와 왜소함과 더러움을 의식하며 마음은 나를 책망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우리를 거슬리며 너 자신을 보라! 네가 하나님께 요청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하나님께 어떠한 간구를 할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라고?” 말합니다. 이런 책망에 대해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20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우리는 기도 가운데 무릎을 꿇고 그분 앞에서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탐조등에 의해 어떤 엑스레이에 의해 관찰되고 있으며 검사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우리를 주목하고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은 표면으로 드러나며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책망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도할 수 없습니다. 책망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 된 우리 자신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에게 말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고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나아갈 통로가 있으며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우리 마음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요한은 말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모든 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고 그리고 여러분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그래 나는 네가 하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인해 슬퍼하고 후회한다. 이것이 회개의 기도입니다. 그래 맞아 하지만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있다. 그들의 모임과 그들과의 교제도 사랑한다. 그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그들을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내가 이렇게 하니 그들을 실생활에서 사랑하는 사람이며 고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에 틀림이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형제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내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전되었다는 증명이며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상 나는 그러한 자들을 사랑할 수 없으며 그러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본질상 나는 그러한 자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안에 그들을 사랑하고 돕고 싶은 소원이 주어지고 또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비록 네가 나한데 하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지만 이런 소원과 행함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내 마음을 이런 식으로 안심시킬 수 있으며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같은 사랑의 마음과 행함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방법이 십자가를 생각하며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을 상기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요한은 걸핏하면 십자가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사도는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도 악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십자가에 연결시켜 버리려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과 양심의 위로와 평안을 얻고자 하며 그리고 나서 죄와 더불어 이 세상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이 제시하는 테스트는 다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강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한이 제시하는 테스트는 그러한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형제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지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실제 생활에서 그 사랑을 증명하는 자들은 단순하게 지적으로 동의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이 거듭났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그들이 거듭났다면 용서받았을 것이 확실하고 십자가가 그들을 덮어 줄 것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완전한 테스트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험으로서의 테스트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입증하는 경험으로서의 테스트입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죄책감으로부터 완전하고 철저하게 벗어나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담대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태까지 말한 내용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위치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은 한 담대하게 기도할 수 없기 때문에 자책감으로부터 놓임을 받아야 합니다. 자책감은 우리를 내리누를 것이며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드릴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할 거야 라며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너는 기도할 자격이 없어 너는 나쁜 놈이야 너는 하나님을 잊고 있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니 하나님께 나오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기도에 담대하지 못하게 되며 불분명해집니다. 요한은 여러분이 담대함과 신뢰를 갖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기도도 참으로 드릴 수 없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도 역시 가질 수 없게 됩니다. ”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먼저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기도와 연관해 담대함이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간구들이 어떤 가치가 있으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담대함과 확신과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담대함을 어떻게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자녀의 신분과 연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다시 한번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써 결정됩니다. 내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하나님을 심판자보다는 아버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두려움 가운데 아버지께 나아가지 않습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오히려 나는 사랑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확신을 갖고 동시에 하나님이 내 안에서 기뻐하신다는 사실과 내가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복을 주려고 준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압니다.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나에게 자신감을 참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께 자녀로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감의 기초입니다.

 

세 번째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21-22“ 요일 3: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요일 3: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는 담대함과 아울러 나의 간구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드리는 간구에 대해 불확실하고 의심하고 주저하고 제대로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66: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내가 죄를 지으며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이중적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나는 기도에 확신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도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분의 뜻을 참으로 행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다면 그때에 나의 삶이 성령에 의해 주관받는 삶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내가 가진 간구나 소원들이 성령에 따라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것들이 응답받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다시 말해 내가 계명을 지키며 형제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성령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성령은 나에게 기도하게 하시며 그러한 이유로 그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나의 기도는 아마도 육신 적 생각이나 육욕적 본성에서부터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 기도가 응답받지 못한다 해도 놀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온전한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그분이 가졌던 최상의 목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분과 같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뜻이라면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 그분 앞에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도 가운데 담대함이 있습니까? 자신이 드리는 기도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을 굳게 하고 책망으로부터 벗어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함을 가지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형제 사랑(부모 사랑, 자녀 사랑, 주의 계명을 지킴 등)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증명하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기도는 아버지 앞에 상달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