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눅 24:49
2. 명제: 성령의 능력 세례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바로 오늘날이다.
3. 제목: 확신을 주는 은사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세례 말씀에 대한 편집본”
1. 갈등
이해를 돕기 위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먼저 소개합니다. 첫째는 중생, 거듭남, 성령의 기본 세례, 성령에 의한 세례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고전 12:3, 13” 두 번째는 거듭나고 성령의 기본 세례를 받은 자가 성령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을 성령의 생활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엡 5:18”엡5:18” 세 번째는 성령의 생활 충만한 가운데 특별한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능력을 부어 주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승천하시면서 주님이 친히 부어 주셨으며 오순절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통하여 계속 부어져 왔으며 지금도 계속 부어짐으로 교회는 부흥될 것이라고 주장할 때 로이드 존스 목사가 사용하는 용어가 성령세례입니다. 지금 우리가 취급하고자 하는 주제는 성령세례라는 위대 주제입니다. 저는 이 성령 성례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리의 영화로우신 주님이시요 구세주를, 그리고 우리의 영존하신 아버지를 이 죄 많고 수치스러운 세대에서 승리하게 하시는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문제들로 가득 차 있고,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노력해왔지만 조금도 해결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 있으며, 그리하여 재앙과 혼란을 가져온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향한 유일한 소망은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대표자들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곧 세상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구원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이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교회는 무력합니다. 세상은 믿지를 않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2. 갈등 심화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눅24:49절“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순절 날에 그는 성령의 세례로 그들에게 그 권능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세례의 중요한 기능이 우리로 하여금 권능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며 그의 인격과 사역에 증인이 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제 앞으로 저는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령세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설교에서는 물론 평상시의 대화나 기도에서도 이러한 권능과 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 성령세례는 어떤 특수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행 2:39절 ”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마귀는 우리에게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영광스러운 이 축복을 탈취하려고 합니다. 이 성령세례의 또 다른 하나의 증거는 권위의 존재입니다. 물론 이 권위는 우리 주님께서도 목수요 그 당시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하찮은 사람으로 여겨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에 성경은 “ 이 사람은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지 않으며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가르친다. "라고 말했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성육신하신 우리 주님조차도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를 받기 전에는 그의 사역을 시작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이유입니다. 요 1:33절 "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와 같은 성령이 사람에게 명백하게 보여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권위가 생겼습니다. 베드로의 경우에 그 대조는 아주 뚜렷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 날에 행한 그의 설교를 읽어보십시오. 처음에는 부활에 관한 소식조차도 믿을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무덤으로 갔던 여인들이 돌아와서 이 제자들에게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렸을 때에 눅24; 11절“ 제자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사도들은 구약성경 조차도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행전에서는 베드로가 권위를 가지고 성경을 말하고 강론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성령세례의 결과 중의 하나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의 설교에서 바울은 특별한 성령 충만, 또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즉 권위와 권능의 세례입니다. 행 13:9-11절에 “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길을 굵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니 보라 이게 주의 손이 내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사도들의 말에 이 권위가 있었고 기적을 행하는 데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권위가 특징이었습니다. 마틴 루터로 그를 적대하는 교회의 15세기 전통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로 하여금 “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 할 수 없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라고 말한 힘은 어디서 왔습니까? 이것이 권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을 특징이었습니다. 성령세례 받은 이 객관적 증거는 담대함과 두려움입니다. 베드로는 천성적으로 매우 충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붙잡혔을 때에 그리고 심문을 받으실 때에 한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말하기를 “ 너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당신도 이 갈릴리 사람과 함께 있었다. ”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는 두려웠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그가 성령의 세례를 받자마자 두려움 없이 담대함을 가지고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들에게 죄를 책망하며 그들에게 말씀을 전달하며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를 봅니다. 얼마나 놀라운 대조입니까? 성령님께서 다시 비상한 능력으로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행 4: 8-9“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범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가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사람들에게 행하신 것입니다. 당국자들이 다시 행 4: 18-20“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성령세례는 사람들에게 담대함과 두려움 없는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의연하고 꿋꿋하게 서 있었으며 원형 경기장에서 사자들에게 던지워지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 받기에 합당하게 여김 받음을 기뻐했습니다.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행적과 교회의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임을 압니다. 그들은 자신들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께 있었으며 하나님을 아는 그러한 지식과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담대함과 두려움이 없이 그 복음을 선포할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말입니다. 저는 의심할 것 없이 이 성령세례가 모든 주제 가운데 가장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이 성경에 있기 때문에 정직하게 다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문제는 성령세례의 결과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논쟁적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점에서는 두 가지 주된 이유 때문에 중요한 문제가 될니다. 그 첫 번째는 우리 시대는 우리의 복음에 초자연적인 확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원수들이 그것을 흉내 내어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까지도 미혹하려는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마 4:24에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 거짓 그리스인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기적과 기사를 보이며 ”이 첫 번째 점에 있어서 오늘날 교회는 실패하고 있으며, 교리가 정통적인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사색을 들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권위적인 말씀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위가 필요하며, 확증이 필요합니다. 진실로 우리는 물질주의, 세속성, 무관심, 무정함, 무감각에 직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더욱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악의 세력들이 나타나는 실재에 관해서 듣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문제가 되는 것은 죄 문제만이 아닙니다. 또 한 검은 사술과 마귀 숭배와 어두움의 세력들과 마약 복용과 같은 등등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현실이 곧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과 현시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라고 믿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성령세례가 어떤 은사와 동반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인용한 요엘서에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 17-19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한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요엘과 다른 선지자들이 말하는 요점은 앞으로 올 시대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는 그 말씀을 확증해주는 어떤 비상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도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요 14:11-12절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 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그러나 이것은 사도행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사실이 여러 서신들에서도 정확하게 동일한 것이 가르쳐지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고후 12: 12에서“ 사도에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사도의 사역은 이런 방법으로 확증되었습니다. 그리고 갈 3; 2에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그러고 나서 5절에 "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나. ”자 여기서 바울은 성령님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 위에 임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세례의 형식으로 주어졌으며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들에게 역사하게 하셨으며 기적들이 그들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2: 3-4에서 이 복음은 "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 하셨느니라. ”
3. 전환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것을 오직 초대교회에서만 있었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 물론 나는 신약성경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또 한 그것은 역사적이며 이런 일들은 실제 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실제로는 현재의 우리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 당시만을 위하여 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초대교회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의도되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한 특수한 표적들은 그때에 주어졌고, 그것은 기독교회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며 말하자면 하나님 께서는 교회가 진보하기 위하여 그런 비상한 일을 행했다는 논증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구약 시대에도 엘리아와 엘리사 시대와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의 초창기에 그런 종류의 일이 일어났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그 일의 초창기에는 그런 종류의 일들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그의 아들에게 일을 주어서 독립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얼마의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말하기를 “ 그것을 가지고 잘 살아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단 그 아들을 자립시킨 후에는 이런 선물들을 계속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다른 논증이 있는데 이런 표적들은 신약성경이 완성될 때까지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시작되었을 때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약 서신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아직 성경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계시들을 주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단 교회가 성경을 가지게 되자 모든 것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습니다. “ 성경들이 완성된 후에는 이러한 초자연적 기록들이 종결되었다.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13:8-10에서 “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 했습니다. 고전 13:11에 계속해서 말하기를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라고 했습니다. 즉 예언이나 방언이나 기적과 같은 것들을 ““ 나는 어린아이와 같은 것들을 버렸다 ”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지막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최고의 확신과 독단으로 주장하기를 신약성경이 완성된 후로는 이 모든 은사들은 전적으로 철수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고전 13:12절을 보시면 “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본 것 같이 희미하나. ”여기 우리란 말은 사도와 다른 사람들을 합니다. 우리는 “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미미하나 그러나 그때에는 정경들이 기록되고 완성되었을 때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니 그때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이 말은 성경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과 내가 사도 보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훨씬 더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약 그 논증이 옳다면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초대교회와 사도들보다 더 위대하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 바울이 취급하고 있는 문제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알 수 있는 최고 최선의 것과 영원한 영광의 세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아는 것과의 대조입니다. 지금과 그때는 성경이 기록되기 전과 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에 말씀드린 대로 그렇게 해석을 하면, 우리를 교회의 초석이 된 사도들과 선지자들보다 전적으로 우위에 두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사역에만 의존해야 합니다. 그때라는 표현은 영원한 영광의 세계를 말합니다. 우리가 주께서 우리를 아신 것처럼 알게 되는 것은 바로 그때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우리는 그가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대단원
오늘날의 교회와 세상을 살펴볼 때 오늘날만큼 악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때가 없습니다. 죄가 온 일류를 멸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반면 교회는 어느 시대보다 권위와 능력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오늘날의 최대의 필요는 교회 안에서 그분의 성령이 강하에 능력으로 역사하여 복음을 확증할 필요성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주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난한 심령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위에 권능을 베푸시어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이신 오직 한 분이시고 유일하신 구세주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그분께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성령의 권능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주여! 명령하신 성령의 충만,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 세례를 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