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 14:1-6.
2. 명제: 평안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이다.
3. 제목: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예수 님은 곧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 님이 떠나신다는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당연히 맥이 빠지면서 절망의 심정이 되었습니다.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리신 예수 님은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라는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 부활, 승천 및 그 후에 뒤따른 일들을 통해 이루실 큰 목적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거나, 비참해하지 말라. 내가 떠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시작해 불과하다. 나는 지금 너희를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자원해서 떠나는 이유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믿음이 없었던 제자 도마가 불쑥 입을 열었습니다. 도마는 여전히 물질적이고 유대적인 관점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 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잠시 후에 로마 제국의 구속과 압제에서 우리를 풀어 주시고 군사적 정치적 의미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이해가 안 되네요. 주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라고‘ 하시는데 하지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주님!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거기 가는 길까지 알겠습니까? 거할 곳을 예비하시려 가신다느니 다시 오신다니 하는 말씀이 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마의 이런 정직한 질문 때문에 예수 님이 오늘 귀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음에 평안이 없는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위대한 선포입니다. 평안을 얻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 예수 님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 예수 님이 지시하신 인생의 목적지를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인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아는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요. 우리의 지향점이요. 정해진 목적지라는 것입니다. 이에 도마는 “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 님은 대답하셨습니다. “ 자, 나는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누구도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그것이 정해진 목적지요. 이것이 내가 가는 곳이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간다. 너희도 나를 따라 아버지께로 가야 한다. 이 일에 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고통과 근심과 두려움이 가득 찬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도 도마의 심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대답이 여기 나옵니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 우리가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특히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알지 못하면 마음에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지식적으로 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를 만물의 창조주로 조물주로 만물을 유지하는 것을 안다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저 멀리 계신 분, 무서운 분, 독재적인 분으로서가 아니라 내가 의지하고 신뢰할만한 나의 아버지로서 체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롬 8:15” 양자의 영을 받았으니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 아바는 우리말 아빠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빠로 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가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며 머리털까지 다 세실 정도로 나를 염려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는 뜻입니다. 요한 일서에서 요한 사도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기 제자들을 위로하고자 했습니다.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여러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실제적인 분이십니까? 인격적인 분이십니까? 기도할 때 들으시는 분이십니까? 자녀로서 아버지께 애정을 품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든 아버지께로 가져가서 기도합니까? 아버지께 나아가는 일이 싶고 편안하며 자유롭게 느껴집니까? 하나님께 참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러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를 아는 지식과 친밀함이 있다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며 사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병에 걸리든 사고를 당하든 전쟁으로 시련을 만나든 핍박을 당하든 상관없이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그 즉시 하나님 아버지께 아뢸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은 아버지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을 압니다. 근심하지 않고 마음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지식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또 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세상으로 갈 때에도 이 지식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 그를 알고 그와 교제하며 영원토록 영광을 돌리게 할 날이 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것이 우리에게 정해진 인생의 목적지이며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이처럼 예수 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모르겠다는 도마의 질문에 예수 님의 대답은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세계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문제에 무관심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이고 영원한 세계에서 출발하여 현재로 돌아옵니다. 현재를 직면하기 전에 궁극적인 것부터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들의 낙원에 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십 년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사람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안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운명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는 목적지를 압니다. 그 목적지는 하나님 아버지 안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십니까? 그 하나님 아버지 안에 있습니까?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 예수 님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그 목적지에 어떻게 이르는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님의 말씀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 자, 도마야 답은 간단하다. 내가 곧 길이다. ”예수께서 단순히 그 길을 알려주시고 길을 찾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님은 “ 내가 곧 길 ”이라는 것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야말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즉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습니다. ”예수 님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예수 님이 없으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습니다. “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중요한 분이시오.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베에토벤 교항 곡을 듣다가 하나님이 자신에게 다가오시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가 그 경험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망상에 불과합니다. 그의 말처럼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로서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사이비 경험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이 교항 곡을 듣다가 어떤 경험을 한 것은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베드로는 행 4:12” 천하 인간 가운데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느니라. “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 수 없으며 그가 계신 곳에도 이를 수 없고 그와 함께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의 영원하신 아들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는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와서 죄인들의 문제를 해결하셨으며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이룰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시는 모습과 거룩한 몸에 못질을 당하시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 님이 이 모든 일을 겪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은 오직 한 가지 이유입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 앞으로 이끄시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딤 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가 없으면 우리 모두는 망한 인생이요. 죽은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싶습니까? 위기와 고통의 순간에도 그분의 영원하신 품 안에서 평안을 느끼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오직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신 예수 님만 바라보십시오. 예수 님은 두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 길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진리입니다. 단순히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님 자신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철학자들을 찾아가거나 이런 저러한 책을 읽으면 되는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복음서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십시오. 그분에게 나아가 믿으십시오. 그때 옆에 있던 빌립이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8절 “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 이 빌립의 질문에 예수 님께서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처럼 하나님을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싶으면 그의 성품을 알고 싶으면 진리를 알고 싶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예수 님의 사랑과 자비를 보십시오.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하나님은 바로 이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의 절박한 필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려 주는 지식과 진리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죄입니다. 지성이 하나님과 우리 사람을 막는 방애 물이 아닙니다. 죄가 장애물입니다. 왜 사람은 하나님을 모를까요? 죄 때문입니다. 이 장애물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예수 님은 나의 속제물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이오. 그 안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지혜가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점에서도 그는 우리의 길입니다. 우리는 생명과 힘도 필요합니다. 자신이 죽은 듯한 느낌 즉 하나님이 저 멀리 계신 것 같은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자신이 연약하고 나약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 님은 진리 일뿐만 아니라 생명입니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예수 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골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여러분에게 무슨 생명이 필요하든 다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은 죽음과 죄의 상태에서 깨워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며 새로운 생명의 본성을 주실 것입니다. 친히 여러분 안에 들어가 거하시며 여러분에게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에게 필요한 수액과 영양과 힘과 생명이 다 그로부터 나옵니다. 열매는 여러분이 맺지만 그 열매를 만드는 생명은 예수 님 안에 있습니다. ”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안에 거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의지가 약한 것 같습니까? 힘이 다 빠진 것 같습니까? 예수 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십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의지에 힘을 주시고 기력을 주십니다. 온갖 시험에 능히 맞서게 하십니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예수 님은 생명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깨워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 믿음을 주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하시며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바울처럼 포도나무에 꼭 붙어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경험하는 가지에는 생명이 약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생명과 능력이 필요하며 이 험한 세상에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죽음과 무덤 앞에 설 때에도 주님은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 님은 죽음과 무덤을 정복하신 분이십니다. 음부를 멸하신 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과 무덤을 통과할 때도 힘을 주실 수 있으며 우리를 일으켜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 님 안에 있습니까? 그를 의지합니까? 그와 연합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아버지로 알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 큰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십시오. 예수 님,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고 예수 님을 여러분의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십시오. 예수 님을 만나 교제하는 심령 위에 근심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진정한 평안과 안식이 주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