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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한 초대 교인들의 태도"수정본"

wordlove 2021. 9. 13. 05:13

1. 본문: 4:1-12

2. 본문 요약: 베드로와 사도들이 앉은 병 이를 고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의 부활의 말을 싫어하여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다. 하지만 말씀들은 사람들 중 남자만 오천명이나 예수 믿었다. 이튿날 모든 대제사장 가문이 다 모여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일을 행하는가를 물었을 때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였으며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담대하게 말했다.

3) 주제: 고난

4) 테마: 고난에 대한 초대 교인들의 태도

4) 명제: 고난을 만났을 때 그리스도인은 승리할 수 있다.

5) 목적: 고난의 의미를 바로 알고 고난에 대처하는 초대 교인들의 태도를 통해서 도전을 받도록......

6) 질문제기: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7) 전환 문장: 고난을 만났을 때 초대 교인들은 승리했다.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8) 대지

1) 고난 앞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2) 고난 앞에 담대히 예수 님을 증거 했습니다.

3) 고난 앞에 기도했습니다.

9) 제목: 고난에 대한 초대 교인들의 태도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고난을 만납니다. 예기치 않는 큰 병을 만나고 직장을 잃게 되며 가정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처럼 우리 인생 앞에는 수많은 고난의 바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장은 예수 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했습니다. 초대 교인 약 120명은 예수 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간절히 모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장에 정말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불같이 임하셔서 많은 사람이 예수 믿고 최초의 신약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날 때부터 불구 자를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고치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보고자 모였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하신 예수 님을 증거 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고친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사람을 살렸다고 설교하니 남자만 오천명이나 예수 믿는 대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4장 오늘 본문은 이렇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불구 자를 고치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의 부활의 말을 싫어하여 사도들을 잡아 가두었습니다. 이튿날 모든 대제사장 가문이 다 모여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는가를 물었을 때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는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였으며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 베드로와 요한이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부흥하는 어린 신약교회에 닥친 최초의 큰 고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고난을 만났을 때 초대 교인들은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도 여러 고난을 만날 때 이 고난의 의미를 바로 알고 그 고난을 대처하는 초대 교인들의 태도를 통해서 우리도 승리를 얻도록 돕기 위해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1. 고난 앞에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처음 출발하는 연약한 교회 앞에 교회 지도자들인 사도들이 체포당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예수 믿은 사람들이 만나는 고난에 대한 태도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는 고난을 저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구약 성경의 욥의 친구들이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친구 욥이 고난받은 것은 숨겨둔 무슨 죄가 있다고 생각하고 고난 받는 욥을 정죄했습니다. 욥은 친구들의 정죄를 받고 너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로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심만을 강조하며 고난당한 친구 욥을 계속 적으로 정죄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욥을 변호하고 욥의 친구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욥의 이야기는 참믿음이란 아무리 큰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음을 말씀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을 고난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저주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사도들이 감옥에 갇힌 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날 때부터 불구 자로 때어 난 사람을 예수 님 이름으로 고치고 예수 님을 전도한 것 때문에 고난받은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의 시기심이 불타서 사도들을 가둔 것입니다. 그 이면에는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마귀는 예수 님이 전파되어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질투심이 많은 대제사장의 질투심을 충동질 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만나는 고난은 결코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고난이 모두가 저주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또 고난을 만나면 절망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고난 앞에 하나님을 원망하며 그럼 주의 일 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주의 일해도 더 어렵고 나아지는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러면 중단하면 안 되느냐?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고난 앞에 전도도 그만두고 봉사도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승리의 길은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해를 많이 끼치는 것이 기복 신앙인 것입니다. 예수 믿어 이 땅에서 잘되는 것만을 바라는 신앙입니다. 중국 만주 지역에 조선족들이 많이 삽니다. 그들 중에 교인이 많은데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극동 방송국에서 하는 한국 목사님들의 설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일 듣기 싫은 설교가 예수 믿고 복 받는다는 설교라고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예수 믿고 복 받은 설교가 인기가 있지만 조선족에게는 그 말이 매우 듣기가 거북스럽다는 것입니다. 그 설교대로면 우리는 예수를 잘못 믿어 복을 받지 못하고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괴롭다고 합니다. 사실 기복적인 설교는 성숙한 성경 적인 설교라기보다는 어린아이 설교에 불과합니다. 기복 신앙도 성숙한 신앙이 아니라 어린아이 신앙에 불과합니다. 초대 교인들이 고난 받은 것은 복 받지 못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을 만나면 누구나 위축되기 쉽습니다. 히틀러 시대 때에 유명한 유대인 빅터 플랭크라는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600만 명을 죽인 수용소에서 그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수용서 안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삶의 의미가 있음을 믿고 그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동포 유대인들이 죽어 나가는 데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일찍이 죽느냐? 하면 건강 상태도 아니고 고문 정도도 아니고 인생을 일찍 포기하는 순서대로 죽어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전파할 사명이 있다고 생각하고 감옥 소 안에서도 의미를 두고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정말 600만 명이 죽어갈 때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어 나중에 모든 고난에는 의미가 있다는 유명한 의미 요법이라는 심리학의 창시자가 되어 교수로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고난을 만났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고난을 만나도 포기하지 맙시다. 전도도 포기하지 말고 봉사도 포기하지 맙시다. 아무리 내 인생이 괴롭더라도 그 고난 속에는 하나님이 두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찾으십시오. 믿음이란 사실 소망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소망의 주님입니다. 소망의 주님을 바라보며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2. 고난 앞에 담대히 예수님을 증거 해야 합니다.

대제사장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이일을 행하였는가? 위협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성령 충만한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전합니다. 10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을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는니라그리고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시 118:22절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너희들이 예수를 버린 것은 마치 건축자들이 버린 돌과 같아 하나님이 버린 그 돌을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즉 이 십자가와 부활 사건은 이미 예수 님 오시기 약 700년 전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성취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로는 예수님의 구원의 유일성을 선포했습니다. 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 외는 다른 구원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종교 다원주의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똑같다. 예수 믿지 않고 다른 종교를 가져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성경과는 어긋나는 거짓 사상입니다. 인본주의에 기초한 마귀 사상입니다. 4:12절 말씀과 반대되는 사상입니다. 우리가 예수 님 유일사상을 이야기하면 세상 사람들은 즉각 반발합니다. 기독교는 너무 편협 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소리입니다. 우리 집에 아버지는 한 분이에요 라는 소리와 우리 집에 아버지가 여러 명이예요 라는 소리 중에 어떤 말이 더 합당하게 들립니까? 나는 마음이 너무 넓어서 여러 명의 아버지를 모시고 있어요 라는 사람은 이상한 가정에 사는 것입니다. 그 집안은 이상한 집안입니다. 우리가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만이 우리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그리스도입니다. 나머지는 다 가짜입니다. 이단을 구별하는 길은 예수 님 흉내 내는 자는 다 이단입니다. 예수 님 대신 자신이 이 시대를 구원하려 온 구세주다.라는. 자는 다 이단입니다. 예수 님만이 유일하신 나의 구세주요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고난의 이면에는 마귀가 역사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런데 마귀를 이기는 길은 마귀를 피하지 말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똥은 피해야 이기고 마귀는 대적해야 이기는 것입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 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귀를 이기는 길입니다. 반대로 마귀는 대적해야 이기는 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거꾸로 합니다. 하나님께는 불순종하고 마귀는 피합니다. 그래서 패배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인들을 보십시오. 고난 앞에 용기 있게 부활하신 예수 님을 증거 하니 대제사장들이 분명한 증거 앞과 사도들의 용기 앞에 예수 이름을 말하지 말고 예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 위협하고 놓아주었습니다.. 마귀는 꽁무니를 빼고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님만이 나를 고난에서 구원하실 유일하신 구세주이십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3. 고난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석방된 사도들은 교인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습니다. 신세타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교인들이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어떻게 했습니까?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4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 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기도 대상자는 이 세상을 만드신 대 주재이신 주인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초대 교인들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25-28“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 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이들은 구약 성경 시 21:2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음을 믿었습니다. 인간들이 모여 불법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지만 이것은 이미 예수 님이 오시기 700년 전 다윗의 입을 통해 시편 말씀에 예언된 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막대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구약 성경을 통해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전에 먼저 말씀 듣고 성경 보는 것이 먼저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이어서 자신들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29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이들의 기도는 자신들이 당하는 위협을 없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오히려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30예수 이름으로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자기 이름들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수 님 권세를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예수 님께 영광 돌리는 기도입니다. 기도의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예수 이름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주님은 들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초대 교인들과의 다른 점은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안정과 축복을 구하는 기복 기도가 많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을 누리는 비밀입니다. 여러분은 고난을 만난을 때 무엇을 합니까? 사람을 먼저 만나려고 하지 않습니까? 초대 교인들은 하나님을 먼저 찾았습니다. 먼저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고난이 올 때 기도할 때라고 말씀합니다. 루터는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너무 바쁘다 내가 요즘 너무 바쁘다. 따라서 더욱 기도해야 하겠다.’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되 오히려 내 문제 자체를 해결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오히려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6:33“ 너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순서를 잃지 마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면 주님의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면 주님은 먼저 성령 충만을 주시고 그 결과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고 그다음 내 인생의 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이 우선순위를 초대 교인들로부터 배우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