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연구를 위한 성경 해석 원리
1. 문맥을 따라 이해할 것
문맥은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앞뒤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문맥은 본문과 함께 붙어 있는 부분이다. 문맥은 본 절의 전후에 오는(한 절 혹은 두서너 절) 가까운 문맥과 본문의 앞장이나 혹은 다음 장에 있는 먼데 있는 문맥이다. 문맥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주로 단어의 의미는 한 문장이나 문단(paragraph)에서 드러난다. 이 경우 문장은 그 단어의 문맥이다. 구(phrase)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장 자체가 명료하지 않을 때는 그 문장을 담고 있는 문단이나 단원(section)이 문맥이 된다. 히브리 시는 보통 이행연구로 형성되어있다. 그래서 일행이 다음 행의 문맥이 된다. 문맥을 무시하는 사례. 첫째 성경 구절을 개별적으로 암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외우는 한 구절은 긴 문장의 일부분 임을 잘 모른다.(롬 3:23,.(롬3:23, 약 4:17) 전체 문장을 모르고서는 부분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대게 조건이 선행되는 수가 많다. 하나님이 주신 조건은 무시하고 약속만 좋아하며 무조건 외운다. 사 58:11“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이 소망의 말씀 앞에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즉 “만일 내가 너희 중에와....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만일....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여...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면”(사 58:9-10) 요 3:9에서 문맥의 원칙을 보자.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관련된 세 사람은 죄가 없다는 말일까? 이 말씀 자체만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죄 없는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가르침으로(롬 3:9-10:23). 본문의 뜻이 액면 그대로의 뜻이 아님을 다른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 절은 분명히 세 사람이 죄가 없다고 말했다고 항의한다고 가정해 보자. 어떻게 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을까? 물론 문맥으로 반박해야 한다. 예수 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계셨다.(2절) 제자들이 이 사람들이 죄를 지었습니까?라고? 묻지 아니하고 그가 소경이 된 것은 누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까?라고? 물었다. 말하자면 이 사람이 실명한 것은 자기 자신의 죄와 부모의 죄 중 누구의 죄로 인한 것이냐? 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님은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가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문맥은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성경 구절이나 혼란을 일으키는 말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2. 동사(시제, 태): 헬라어 문법(시제)
a. 현재형: 동사의 행동 및 상태가 진행 적이거나 반복적 혹은 습관적임을 가리킴. 가까운 미래를 나타내기도 함. 시간의 제한이 없는 일반적인 진리. 영구적인 진리.
b. 미 완료(Imperfect Verbs): 진행 중의 동작, 주기적인 동작(습관적 또는 관습적), 계속 적인 동작.
c. 미래 동사(Future Verbs): 미래 동사는 대부분 동작이나 상태가 미래 시점에서 발생할 것을 가리킴. 단순 예언, 진행 적 예언(동작이 미래에 당분간 지속 적으로 발생할 것을 가리킴), 명령법(미래는 명령이나 권면을 뜻하기도 한다. "살인하지 말라"(마 5:21)."(마5:21).
d. 부정 과거( Aorist Verbs): 과거의 단회적 사건. 단번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행동. 단순한 과거 동작(어떤 동작을 단순한 사건으로 표현한 것), 1) 단순한 사건 묘사(일정 기간에 걸쳐 발생한 또는 반복적이었던 행동(동작)을 요약적으로 묘사. 2) 시작의 의미(동사의 존재의 상태("내가 살아 있다"), 조건("내가 아프다"), 관계("내가 사랑한다")를 가리킬 때 상태의 시작에 초점을 맞춘다.
e. 완료 동사(Perfect Verbs): 현재와 과거의 일종의 결합. 동작이 결과와 함께 완성되었음을 나타냄. 가끔 극적인 효과 또는 다른 어떤 이유를 위하여 완료로 표현.
f. 과거 완료(. The Pluperfect): 완료의 과거 시제이다. 영어의had 와 함께 만들어지는 영어 동사와 유사. 동작은 문장 혹은 문단의 주동사 이전의 동작을 가리킴.
g. 분사: 1) 현재 분사: 분사의 동작 시간을 문장의 주동사와 동시적인 것으로 만듦. 해석시 while, when, as를 사용함, 2) 부정 과거 분사 주 동사보다 이전에 발생. 해석시 After를 사용. 3) 완료 분사: 과거 분사와 유사함. 차이점은 동작의 완성을 강조. 영어의 과거 완료와 비슷. 또는 완성된 동작이 전달되는 결과적 상태를 표현.
h. 가정법: 가정법은 현재(진행)와 부정 과거(단순) 시제에서만 사용. 가정법은 결과, 목적, 조건을 나타내는 종속절과 함께 사용. 1) 목적 혹은 결과 절, 2) 미래 조건(만일, 만일 ~하지 않으면), 작가가 그 조건을 충족시킬 사람이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밟히고 싶지 않을 때 혹은 그런 조건이 충족될는지 아니 될는지를 알지 못할 때 사용. 3) 강조 적 부정: 미래의 동작이나 상태가 발생할 것을 강하게 부정함. 이것은 화자의 어투 상의 특징이며 복음서에서 예수 님의 말씀의 일반적 특성. 가정법 과거는 과거의 의미가 아니라 단순 동작이다. 단순한 사건의 발생만을 묘사함. 현재 가정법도 동작의 현재 시제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경우 가상적인 혹은 미래에 발생 가능한 것을 가리킴.
i. 명령법: 요구, 명령, 탄원, 허락을 표현. 해석은 현재나 과거 명령법 사이에 어떤 차이가 없다. 현재 명령법은 언제든지 시행될 수 있는 일반적인 명령을 가리킴. 계속 적인 의미보다는 단지 일반적인 관습일 뿐이다. 과거 명령은 과거 시제의 동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통 특별한 경우나 불연속적인 경우를 위해 제시된 간청, 명령이다.
히브리어: 미래 시제: 예언적 과거.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과거시제로 표현.(사 53장 1-10절까지)
3. 구약 시 해석하기(시 116:1-4)
1) 단계: 원래의 독자들의 삶의 문맥 속에서 본문을 파악하라. 원래의 독자에게 무엇을 의미했는가?
a. 본문을 자세히 유의하여 관찰하라. b. 평행 법들을 찾아보라. c. 평행이 되는 구절을 사고나 이미지를 결합한 다음에 본문의 사고 단위를 연구하라. 본문의 사고 단위를 하나씩 독립적으로 읽기보다는 종종 두 행을 하나의 사고로 익는 것이 포함된다. 시116:1-4
사고 1 |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심으로 내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
사고 2 |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 하리이다. |
사고 3 |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 |
사고 4 |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노니 내 영혼을 거지소서 하였도다 |
d. 그다음 비유적 표현을 찾아내어 형상화하라. a : 이미지를 형상화하라. 사고2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탐구하라. 사람들은 보통 더 잘 듣기 위해서 소리 내는 쪽으로 머리를 기울인다. 당신은 하나님께 울부짖는 시편 기자의 모습과 이에 대한 응답으로 머리를 돌려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b. 그 후에 이미지의 정서적 세계 속으로 들어가라. 시편 기자가 하나님이 머리를 돌려 자신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것을 볼 때 그가 느꼈을 위로와 격려를 느껴보라. 사고 3의 사망의 이미지를 상사해 보라. 당신은 무덤 속에 떨어져 살려 달라고 소리 칠 것이다. 죽음이 당신을 붙잡고 있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부르짖음을 듣고 손을 내밀어 당신을 이끌어 내신다. c. 이제 차분히 본문의 범주(직유, 은유, 간접적 유비, 과장법, 의인화, 신인 동형화, 대체, 대변함, 돈 호법과 아이러니)에 기초하여 각각의 비유적 표현들을 찾아내어 규명하라. 많은 비유들이 하나의 범주 이상에 속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은 신인 동형 화이지만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는 모습은 동시에 대체이시다. 또 하나님이 귀를 기울이시는 것(원인)은 하나님의 구출의 행위(효과)로 이어지며 시편 기자가 실제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이다. d. 이러한 비유들이 고대 독자들에게도 비유적 표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라. 본문의 이미지를 고대 독자들에게는 문자적인 것으로 우리에게는 비유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 시116의 기자는 문자적으로 사망에 묶혀 무덤 속으로 끌려가고 있지 않다. 우리는 시 116:1-4절의 본문을 원래의 독자적 문맥에서 파악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즉각적으로 무시하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죽음에 가깝게 있을 수 있다.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그를 구출해 내신다. 이 때문에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4) 비유와 풍유
비유(parable)는 보통 어떤 도덕적 또는 영적인 진리를 전달할 목적으로 주는 이야기이다. 어떤 이는 비유는 천국의 의미를 지상의 이야기로 엮은 것이라고 하였다. 비유는 빗대어서 하는 것이니까? 직유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같으니”라는...같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셨다(마 12:1) 그러나 이렇게 시작되지 않는 비유도 많다. 마 21:33“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이라고 시작한다. 구약에도 비유는 있지만 대부분은 요한복음을 제외한 세 복음서에 있다. 요 10장과 15장은 풍유가 있을 뿐 비유는 없다. 비유는 세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 배경, 이야기, 적용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 중에는 배경이나 적용이 빠졌거나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율법사의 질문에 답하신 것으로 마지막 메시지를 적용하셨다.(눅 10:25-37) 마 21:33-41에서는 권위에 대한 논쟁이 배경이며 심판의 경고가 적용이다. 마 13:3-9과 눅 13:18-19의 경우는 처음 것은 배경이 빠졌고 두 번째 것은 배경과 적용이 다 생략되어있다.. 배경이나 적용이 이야기 문맥의 일부로 되어 있으면 그 비유의 해석은 쉬워진다. 그런데 양쪽 모두 또는 한쪽이 아주 없으면 해석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배경은 흔히 해석의 길잡이가 된다. 그 예로서 눅15장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반대 때문에 예수 님이 세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게 되었다. 이 세 가지 비유는 모두 하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기뻐하신다는 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가르침이다. 비유는 대개 한 가지 주된 요지가 있다. 그러니까 비유의 세부 사항을 일일이 규명하면서 영적 교훈을 찾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중심 교훈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이유는 예수 님이 비유를 그렇게 해석하셨기 때문이다. 눅 10장의 비유도 같은 식으로 해석하셨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셨는가? 그는 율법 사로 하여금 해석을 하도록 하셨다. 이웃 사랑을 실천 한자는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37“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 고 말씀하셨다. 예수 님은 강도들이나, 다른 두 사람, 짐승, 돈, 주막, 주인 등에 대해서는 어떤 특별한 의미를 시시하지 않으셨다. 그러하다고 항상 한 가지 사실만을 비유에서 골라내시지는 않았다. 예수 님은 씨 뿌리는 자와 가라지와 씨에 대해서(마 13장) 비유에는 한 가지 주된 교훈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초기 교부들은 성경을 우화적으로 해석하여 비유에 관한 세부적인 이야기에서 자못 놀라운 뜻을 이끌어 내었다. 오리겐은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렇게 해석했다. 아담은 도적에게 변을 당한 사람이다. 예루살렘은 하늘을 상징한다. 여리고는 세상을 가리킨다. 도적들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이며 제사장은 율법을 레위인은 선지자들을 대변한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그의 몸은 사마리아인의 짐승이며 그의 교회는 주막이다. 데나리온 들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선한 사마리안이 다시 드리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이러한 해석은 적어도 몇 개의 상황에는 일치된다. 그러나 이 해석을 뒷받침할 만한 여지가 본문에는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예수 님 자신이 이와 전혀 다른 해석을 주셨다. 그러므로 오리겐의 해석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이런 식의 해석이 풍유적인 해석이다.
(1) 해석의 요령
a. 이야기의 자연적인 의미를 생각하라.(문자적 해석) 영적인 의미는 이 자연적인 의미에 근거해야 한다.
b. 어떤 시기가 언급되었으면 비유가 주어진 상황에 주목하라.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 님이 주신 짧은 비유(눅(눅 7:41-43)의 내막을 살펴보라. 만일 배경이 분명치 않으면 별로 염려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다른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배경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면 이 배경에 비추어 비유를 해석해야 한다.
c. 중심 되는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찾아라.
이것은 예수 님이 주시는 적용이나 이야기 자체에서 끄집어낼 수가 있다. 예수님은 열 처녀 이야기를 주시고 이를 해석하셨다. 즉 예수 님이 언제 오시는지 그 시각을 모르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d. 의미를 성경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대조하라.
비유는 상징적인 언어이므로 교리를 위해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유는 성경에 이미 주어진 진리를 확증하고 굳게 세운다. 탕자의 이야기를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지를 결정짓는 가르침으로만 삼는다면 회개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속죄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e. 만일 본문의 이해에 문제가 있으면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주인이 결혼식의 하객들에게 예복을 주는 것은 하나의 풍습이었다. 이것을 알면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이 엄히 비판을 받은 이유를 알게 된다(마 22:11-13) 이런 사람은 결혼식에 참여할 수는 없다.
7) 풍유(Allegory)
풍유는 은유의 연장이라고 불러왔다. 은유의 간단한 공식은 a는 b라고 말한다. 한 이야기나 묘사의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는 a나 c나 e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a는 b이고 e는 f라고 말한다. 요 10장에서 보면 풍유가 오히려 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15장에서는 하나의 사실 묘사로 기술되어 있다. 15장에서 예수님은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너희는... 가지니 ‘’(1,5)라고‘’(1,5)라고 하셨다. 이것이 풍유의 기본적인 뼈대다. 그다음 예수 님과 관련된 영적 의미를 주신다. 즉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는 열매를 맺도록 가지를 쳐주고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예 제거해 버린다. 열매는 포도원을 가꾸는 자에게 영광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풍유 안에서 기본적인 해석 방법을 습득할 수 있다. 풍유는 풍유 속에 그 해답이 나와 있으므로 다른 수사보다는 해석이 용이한 셈이다. 물론 풍유가 다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은 해석이 없이 그냥 기술된 곳도 있어서 바른 뜻을 찾기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열매가 없는 가지는 모아서 불태운다. 여기에 상응하는 영적인 대등절은 어떤 것일까? 6절은 무서운 실제를 말해 주지만 우리에게 분명한 의미는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뜻을 찾아보아야 한다. 요 10장은 선한 목자와 양에 대한 풍유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과 그 해석을 도표로 만들어 보자.
목자 양 문지기 양 우리 문 도적들 타인 이리 삯꾼 |
예수님 언급 없음 언급 없음 언급 없음 예수님 예수님 앞에 온자들 언급 없음 언급 없음 언급 없음 |
예수 님은 여기서 그 뜻을 조그만 설명 하시고 나머지는 우리들이 발견하도록 남겨 두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목자요 문이라는 정도로만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예수 님 앞에 온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어야 한다. 다른 점들은 본문에서 어느 정도 그 뜻을 가려낼 수 있다. 그가 자기 양을 알고 양들은 그이 음성을 안다고 한 것은 그들이 신자들(제자들) 임을(제자들)임을 지적해 준다. 문으로 들어가 않는 도덕들은 거짓된 지도자들로서 예수 님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다. 삯꾼도 거짓 목사로서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러나 양, 우리, 이리, 타인들은 아직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풍유에는 예수 님이 해석하신 것처럼 비유의 경우와 같이 세부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에 대해서까지 지나치게 의미를 끄집어내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풍유에서도 역시 주된 초점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1) 해석의 요령
a. 풍유의 세부 사항이나 모습들을 적어보라.
b. 그중에서 이미 해석이 주어진 것을 적어보라.
c. 그중에서 이미 해석이 주어진 다른 성경 구절에서 비슷한 의미가 있다면 참고해서 생각해 보라. 이때에는 독단적인 해석이 안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
d. 풍유의 모든 부분을 일일이 다 해석하고 일치시키려고 하지 말라.
예수님은 요 10장과 15장에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분명한 것만을 해석하고 의심 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특히 억지로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로버트 스타인, 비유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5. 구약의 구속 사적 해석 7가지 길(구약의 그리스도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1. 점진적 구속 사의 길
1) 하나님 중심(그리스도 중심):그리스도 중심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2) 구약의 역사는 그리스도께로 인도 그분 안에서 성취
3) 구약에서의 내러티브: 3가지 수준 (1) 최저 수준: 개인적 수준으로 봄(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다윗의 개인적 영웅적인 과점에서 봄 (2) 중간 수준: 이스라엘 민족 수준: 다윗의 승리로 이스라엘 민족이 안전을 얻음 (3) 최고 수준: 구약을 넘어 신약을 통해 진행(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의 최저 수준은 다윗 자신을 영웅시, 중간 수준은 이스라엘 나라 안전, 최고 수준은 사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구속 사 속에서 위대한 왕 다윗과 족장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 메시아이신 예수 님의 족보 ”로 시작한다. 다윗은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 7:16)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 주하리나,, 땅의 모든 족속 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 12:3)는 약속을 받았다. 마태는 그리스도를 점진적 구속 사를 사용하여 이 모든 땅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은 왕통의 계승자(예수 그리스도)로 설교한다.
2. 약속-성취의 길
신약 저자들이 구약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또 다른 길은 약속-성취의 길이다. 약속-성취의 길은 구속사에 깊이 새겨져 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구속 사의 한 단계에서 약속들을 주시고 뒤따르는 단계들에서 성취하시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태는 “ 인용 형식 ”으로 유명하다. 그는 인용문 뒤에 “ 이、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를 열 번이나 반복한다. 마태는 자기 백성에게 은혜롭고 구원하는 목적으로 자유케 하시며 언약에 신설하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해 준다는 의미에서 구약 전체를 약속의 구현으로 본다. 따라서 모든 종류의 구약 기록은 예수 님께 대한 약속과 관련해서 사용될 수 있다. 구약은 그 자체가 이러한 약속/사전 성취의 길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 ”(.창 12:3)는 약속이 구약 시대에는 최종적으로 성취되지는 않았다. 구약은 우리에게 여러 번 성취나 점진적인 성취의 개념에 익숙하게 해 준다.. 즉 처음에 성취된 약속은 한층 더 성취될 것이라는 약속을 지닌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라는 약속을 하셨다.(창 12:2)..(창12:2). 이 약속은 이삭의 출생과 함께 성취되기 시작했지만 분명히 더 이상의 성취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삼하 7:16)는 또 다른 약속을 주셨다. 약속은 다시 미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큰 민족이 되리라는 약속의 점진적인 성취는 다음과 이 그려질 수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애굽~ 가나안~다윗~포로~남은 자 ~신약 교회. 신약 저자들은 약속-성취의 길을 구약에서도 배웠지만, 특별히 예수 님에게서도 배웠다. 예수 님의 첫 설교들 중의 하나는 나사렛 회당에서 주님의 은혜의 해가 왔음을 알리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 님께서는 주님의 기름 부 음 받은 종과 관련된 이사야서 61:1-261:1-2를 읽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다: “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21), 구약의 모형들과 약속들의 성취는 예수 님을 그 주제로 한다. 요한은 환상 중에 이사야서 65장이 말하는 “ 새 하늘과 새 땅 ”의 성취를 바라본다(계 21: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 위대한 민족 ”으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시지만 (창 12:2) 이제 그것은 다윗 왕국을 훨씬 뛰어넘어 전 세계를 포함하게 된다. 예수 님께서는 자신의 교회에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휘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 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합께 았으리라 ”(마 28:19-20). 따라서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이니라 ““
3. 모형론의 길
알레고리 해석은 해석자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지 어떤 본문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것) 모형론은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행위들의 축에 따라 구체적인 유추들을 발견하는 것. 모든 세부 사항들에서 모형들을 찾는 것은 알레고리에 빠짐. 참된 모형은 역사적이다. 오직 역사적 사실적인 인물들, 행위들, 제도들, 사건들만이 모형론 해석의 자료가 됨. 참된 모형론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참된 모형은 그 원형과 의미심장한 유추를 보여준다. 모형론은 참된 일치를 보여준다. 세부 사항의 병행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본적인 원리들과 구조의 일치에 관심. 확대 상승에 의해 표시.(요나보다 더 큰 이가 마 12:41-42)
모형론의 규칙
1) 모형론적 해석은 항상 문법-역사적 해석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이스라엘을 향한 메시지를 먼저 찾는다.
2) 세부 사항에서 찾지 말고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관련된 중심 메시지를 찾으라.
3) 구약 시대의 인물, 제도, 사건의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라. 구약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면 모형이 될 수 없다.
4) 구약의 모형과 신약의 원형 사이의 대조 점을 기록하라.(차이, 유사점)
5) 구약의 상징/모형에서 그리스도로 옮겨 갈 때 그 의미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선약 저자들은 예수 님께서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구속 행위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 시대의 그림자와 예상 형태(prefigurations)와(prefigurations) 모형으로 본다. 따라서 모형론은 유추(analogy)와 확대 상승(escalation)으로 특징지어진다. 모형론적 해석의 기초가 되는 주요한 전제 조건은 역사의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으로서 역사에서 구속 계획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신약의 모형론적 주해의 이론적 근거는 단순히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목적의 연속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고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만드시고 이용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비유들을 시간의 모래밭에 기록하신다.. 감추어졌거나 오직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이제 그 안에서 성취되는 교회-메시아적 공동체-에 드러나 있다.
4. 통시적 주제들의 길
1) 먼저 구절의 주제를 찾으라.
2) 구절과 관련된 그리스도를 찾으라(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신의 구속 계획을 실행하실 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뜻을 점진적으로 계시하시기 때문에 성경은 주제들의 점진적 발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주제들의 발전을 구약 자체에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시편의 어떤 시들은 그 당시의 왕들이나 미래의 왕들이 가지는 승리를 축하한다. 그러나 다윗 계통의 왕에 없던 포로 기간 동안 선지자들은 이러한 승리의 주제를 그 왕통의 왕으로부터 오실 메시아 왕으로 확대한다. 신약 저자들 역시 구약의 주제들을 그리스도께로 확대하고, 그것들을 그리스도 빛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설교한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 님에게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의 왕국이나 특별한 율법들과 같은 구약의 주제들을 취해서 자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관점으로 그들의 의미를 강화하셨기 때문이다. 존 브라이트(John Bright)는 “ 신약 성경 어디서나 구약의 핵심 주제들을 파악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그것들에게 주고 있다 ””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구속이라는 주요 주제는 구약의 첫 부분에서 발견되며, 그것은 곧장 예수 그리스도까지 추적될 수 있다. 창세기에 따르면, 구속은 여자의 후 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원수 관계를 둠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를 자신의 피조물들의 반역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기초를 두고 있다(창 :15).
5. 대조의 길
신약은 또한 그리스도를 대조의 길에 의해 설교한다. 다른 길들이 구약과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대조는 그리스도께서 가져오는 불연속성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에 지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려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왕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단과 주상과 목상과 우상들을 가지고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악한 일곱 족속 들을“ 진멸하라 ””라고 명령하셨다(신 7:1-6). 대조적으로 신약 시대에는 예수 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라고 명령하신다(마 28:19-20),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 언약의 요구를 성취하기 바라는 방법과 신약의 성도들에게 새 언약의 요구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방법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6. 신약에 관련된 구절들
신약의 저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지지하기 위해 구약 구절을 사용한다. 시편에 대해 설교할 때 선택된 바로 그 본문과 관련된 신약의 구절을 찾을 수 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가교 역할을 찾는다. 구약 본문에 대해 신약이 직 간접 인유.
7. 유추(병행 관계적 상황들)
유추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누구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
해석학 추천 도서
1. 성경 해석의 원리(Hoy to understand your Bible), 노튼 스트렛, 성서 유니온.
2. 성경 해석학(프로테스탄트 성경 해석학 교과서), 버나드 램, 생명의 말씀사.
3. 성경 해석학, 루이스 벌코프, 개혁주의 신행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