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6일 설교 학 강의안
결론 만들기(Making the Conclusion of the Preaching)
“ 앤드류 블랙우드(Andrew W. Blackwood)는 결론은 본문을 제외하고 설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 ”으로 간주했다.”
훌륭한 결론을 내리는 방법
“대지들에 대한 요약과 함께 중심 명제를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은 좋은 결론을 얻는 하나의 방법이다. 개인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전략을 포함한 적용을 제시하는 것은 더욱더 효과적일 수 있다.
본문의 진리를 간단한 하나의 문장으로 제시하거나, 기억하기 쉽게 현대 감각에 맞도록 표현된 중심 명제를 밝혀 주면 아주 효과적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심 명제를 보충적으로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켐벨 모간(G. Campbell Morgan)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향력 있는 결론은 의지의 아성을 폭풍우로 내려치는 것과 같다. 자, 가서 성도들의 의지를 폭풍우로 내려치도록 하자!”
좋은 결론의 특징
“결론은 그 특정한 설교에 적절해야 한다. 다시 말해 결론은 본론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야 한다. 결론은 분명해야 한다. 설교를 끝내는 부분은 결론을 내리는 때이지 혼란을 주는 때가 아니다. 결론은 간략해야 한다. 결론은 설교의 목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결론은 개개인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파머(H. H. Farmer)는 결론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모든 부정적인 면들은 설교의 본론에 속한다. 결론은 긍정적인 희망을 제공해야 한다. 결론은 설득하는 어조여야 한다. 결론은 성령님의 달래는 어조(wooing note)이어야 할 것이다.
좋은 결론은 개인적이다. 설교는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하는 것이지만, 그 궁극적인 목표는 각 개인이 변화되어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자는 대중을 상대하면서도 개인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좋은 적용을 통해서 설교를 청중 각 개인을 위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결론에서 이를 다시 한번 간단히 재현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결론은 변명을 하지 않는다.”
결론의 목적
“결론이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설교자가 약 30-40 여분 동안 전파한 것을 요약해서 정리함으로 청중이 교회를 떠날 때 설교 전체의 윤곽을 생생하게 머릿속에 간직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결론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중요한 진리를 다시 한번 들려줌으로 청중의 기억을 새롭게 해줄 필요가 있다.”
“스타트는 참된 결론은 반복 그 이상의 개인적인 적용에까지 나아간다. 키케로 (Cicero)는 웅변가(The- Orator)라는 책에서 웅변하는 자는 가르치듯이 (docere) 흥미롭게(delectare) 그리고 설득력 있게(flectere or movere) 말해야만 한다. 라고 말했다.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격언을 인용하여 지성을 가르치고, 정서를 즐겁고 생기 있게 하며, 의지를 감동시켜야 할 기독교 설교자의 책임에 그것을 적용시켰다. 계속해서 그는 가르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요, 기쁘게 하는 것은 유쾌한 것이며, 설득하는 것은 하나의 승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설교가 끝나 갈 때쯤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회중들이 다만 이해하거나 기억하거나 가르침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설교를 듣고 무엇인가 행하는 것이다. 호출 명령이 없다면 설교도 없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것과 음악 합주를 청취하는 것은 매우 상이한 경험들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즐기는 것이지만, 성경은 복종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성경의 사도들도 진리가 도덕적 요구를 수반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설명했다. 그것은 단지 청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것이며, 단지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그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 13:17)고(요13:17)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야고보도 듣기만 하지 말고 행하여(약 1:22-25)라고(약1:22-25)라고 그의 독자들을 촉구하면서 동일한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요한 웨슬리는, 머리 사역과 가슴 사역을 구별하여 자신의 메시지가 가슴으로 돌파되도록 기대하였다. 캠벨 몰간은 의지에 호소하기를 더 좋아했다. 설교자란 단지 회중들에게 상황을 토의하거나, 명제를 숙고하거나, 이론에 주목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의지의 성을 습격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그것을 포위하여야 한다. 인간의 마음과 의지도 또한 마찬가지다. 석질 화 된 마음이 깨뜨려진다면 그것은 쓰다듬어서가 아니라 충격을 주어서인 것이다.
스펄젼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목표가 인간의 심장을 뚫는 데 있으면서 하늘에 대고 총을 쏜다면 아무런 소용도 없는 것이다. 당신의 사역은 가슴과 양심에 호소하는 일이다. 적의 심층부에 총을 쏘아라. 그의 가슴과 양심에 충격을 줄 것을 목표로 삼아라.”
결론의 형태
“결론의 형태도 아주 다양할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요약 형태, 인용 형태, 의문 형태, 기도 형태, 축도 형태, 호소와 권면 형태 등을 논한다. 하여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하다. 모든 결론은 절정에서 끝나야 한다. 도전으로 끝낼 수 있고, 서술로 끝낼 수도 있다. 실천을 적용할 수도 있고, 축복일 수도 있고, 격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보통 결론의 형태가 너무 천편일률적이다. 좀 더 다양하면 좋을 것 같다.
특히 가장 좋지 않은 결론은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같은 형식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다 졸다가 그 소리가 들리면 깬다. 이 소리를 습관적으로 들은 교인들은 계속 졸다가 그때가 되어서야 일어나는, 웃지 못할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좋다. 또 한 단계별로 설교할 때를 제외하고는 결코 번호를 붙이지 않는 것이 좋다.”
브리손과 테일러(Harold T. Bryson and James C. Taylor)는 결론의 상호 연관된 부분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결론을 디자인하였다. “ 이 세 부분은 재구성 부분, 적용 부분, 그리고 초청 부분이다.
결론의 시작 부분은 재구성 부분이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설교의 중심진리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하도록 노력한다. 이 부분은 방금 전개한 진리의 요약이 될 것이다. 설교 전체의 진리를 재구성하는 간략하고 종합적인 단문 안에 명제를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론의 첫 부분은 설교의 핵심을 이력서 형식으로 재구성하는 시간이다.
설교의 중심진리를 재구성한 후에 적용 부분으로 빨리 넘어가야 한다. 이 부분은 청중으로 하여금 이 진리를 실천에 옮기도록 하는 부분이다. 적용을 위해서는 온갖 형태의 자료를 사용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일어난 일들, 문학에서 얻은 에피소드들, 뉴스 화제, 예화, 질문이나 질문 시리즈, 적절한 인용, 또는 그 밖의 다른 자료들을 사용할 수 있겠다. 역시 기억해 둘 것은 적용 부분에서는 진리를 청중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으로 하여금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그리고 이 진리를 어떻게든 실천에 옮기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 결론 부분에서 설교의 목적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설교의 목적을 사용하면 실천에 옮기도록 하기 위해 설득하고 적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곁론의 마지막 부분은 초청 부분이 될 것이다. 설교의 목적이 복음 전도적일 때 초청은 청중으로 하여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삶을 내어드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도록 하는 초청에 덧붙여 세 가지 다른 형태의 초청(등록 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초청, 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초청, 하나님이 허락하신 어느 특정한 영역에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도록 하기 위한 초청)이 있다. 한 설교에 이 네 가지 형태의 초청을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설교의 목적과 연관된 초청부터 먼저 해야 할 것이다.”
상호 관련된 부분들을 가진 결론의 예를 들어보자.
“1. 본문 빌 1:19-261:19-26
2. 중심진리: 바울은 현실로 다가온 자신의 죽음에 직면하였다.
3. 명제: 그리스도인들도 역시 죽음에 직면한다.(선언적 명제)
4. 목적: 나의 목적은 청중으로 하여금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5. 질문제기?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에 직면할 때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가?
6. 중심 단어: 관찰들
7. 전환 문장: 죽음에 직면하는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몇 가지 관찰들을
주목해서 보자.
8. 제목: 죽음을 대비하라
결론
첫째, 재구성 부분
여러분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 역시 죽는다(명제)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관한 몇 가지 성서적 진리들을 관찰해 보면 희망이 들 것입니다.
둘째, 적용 부분
여러분도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다하고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 드림으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설교의 목적). 확실한). 것은 죽음에 대해 바울이 깨달은 바를 성도들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초청 부분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에게 한마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이 죽음의 문제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생애를 예수 그리스도께 내어드리도록 초청합니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일차적인 준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여러분의 생애를 내어 줬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실 분이 계시다면 마지막 찬송을 부르는 동안 이 사실을 손을 들어 표해 주십시오.”
주의 사항
“첫째, 새로운 아이디어를 소개하지 말라. 둘째, 서론보다 간결해야 한다. 셋째, 도전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한다. 넷째,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어야 한다.”
본 연구자가 강해 설교 작성법에 따라 작성된 설교의 결론을 분석해 보자.
1. 본문: 요 8:1-11
2. 본문 중심 진리:: 예수 님은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다.
3. 주제: 사랑
4. 테마: 사랑의 특징
5. 명제: 사랑만이 죄인을 변화시킨다.
6. 설교 목적: 죄인을 변화 시기는 주님의 사랑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고 그
사랑에 내가 먼저 깊이 잠기는 은혜를 경험하도록,
7. 질문제기: 죄인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사랑의 특징은 무엇인가? (What)
8. 중심 단어: 특징들
9. 전환 문장: 사랑만이 죄인을 변화시킨다. 죄인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사랑의 특징들은 무엇인가? (What)
10. 제목: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11. 대지
1. 기도로 잉태된 사랑이다(1.6.8).
2. 희생으로 양육된 사람이다(2,6,8),
3. 용서로 열매 맺는 사랑이다 (7,11).
마지막은(전환 구), 용서로 열매 맺은 사랑입니다.(7, 11)(대지:state)
7절을 보십시오.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소지: ankor) 죄인은 다른 죄인을 정죄할 자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11절에서 예수 님은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소지: ankor) 예수 님만이 죄 사함과 정죄할 자격을 가지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예수 님의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이웃을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죄인일 뿐이다. 이렇게 자신에게 크게 소리쳐 보십시오. 예수 님의 사랑은 무 조건적인 용서의 사랑입니다. 예수 님은 죄인인 이 여인을 무 조건적으로 먼저 용서하십니다. 왜 용서하셨을까요? 용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파스칼은 “ 이 지구 상의 인간은 두 종류로만 구별된다. 하나는 자기가 죄인이면서도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죄인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가 죄인인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 죄인이다. 진자는 희망이 없는 죄인이요. 후자는 희망이 있는 죄인이다. "라고 했습니다. ” 예수 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 "라는 권세 있는 말씀 앞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모두가 다 36계 줄행랑을 쳤습니다.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라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나이 자랑할 것 못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 먹을수록 죄도 더해지는 것이 우리 인생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 여인은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 여인은 자신의 죄인 됨을 주님 앞에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의 값을 치를 각오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서 있습니다. 이때 따뜻한 죄 용서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 자기 죄를 고백하는 이 여인에게 놀라운 죄 사함의 축복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예수 님 앞에 나아오면 용서의 사랑을 받습니다. 아멘! 그러나 아무리 인간적으로 의롭게 살아도 자기 죄를 시인하며, 예수 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면 결코 용서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용서의 사랑만이 거룩한 인생으로 변화시킵니다. 11절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오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하시니라" 이 주님의 용서의 사랑이 이 탕녀를 거룩한 성녀로 변화시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을 막달라 마리아라고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난 축복을 누렸습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소지:validate) 과거 저가 섬겼던 기도원에 최 선생이란 분이 왔습니다. 장발을 하고,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30대 후반의 노총각이었습니다. 통기타를 치며, 유행가를 부르면서 살았던 자칭 막장 인생이었습니다. 그 최 선생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사람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장발도 자르고, 기도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일 금식도 했습니다. 유행가가 변하여 찬송하며, 예배 때 특송도 했습니다. 대표 기도도 했습니다. 순종하고자 합니다. 약 6개월 후 기도원을 떠나며 간증을 하면서 요 3:16절의3:16 복음을 듣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말씀 앞에 그는 감격으로 가슴이 떨렸다고 고백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교회에서 찬송 리더로 훈련받아 쓰임 받고 싶다고 간증했습니다.(예화) 주님의 용서의 사랑만이 인생을 변화시킵니다.(명제) 용서는 무엇입니까?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시키기를 포기하고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푸른 고추를 하나님께 맡기면 때가 되면 빨간 고추로 변화됩니다. 내가 변화시키려고 할 때 분노가 치밉니다. 용서는 덮어주는 것입니다. 용서는 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닙니다. 험담을 즐기지 아니합니다. 남을 보호하는 말만 합니다. 친절한 말, 감싸는 말만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어찌하든지 한 사람 살리려고 애쓰는 예수 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어찌하든지 사람 죽이려는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어느 쪽을 닮았습니까? 옆에 계신 분에게 선생님은 어느 쪽입니까? 한번 물어보십시오, 용서가 힘들 때 주님이 나를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날 위해 돌아가신 주 날 받으옵소서 아멘!(소지: apply)
사랑하시는 여러분이여! 우리를 치유하신 주님의 사랑은 어떤 사람입니까? 나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계신 사랑입니다. 날 위해 기금도 참으시며 인내하시는 사랑입니다. 내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내가 먼저 받으십시다. 나를 이 사랑으로 먼저 채우십시오. 주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전 존재를 가득 적시십시오. 넘쳐흐르도록 하십시오. 내 심령 위에 주의 사랑으로 채우셔야 줄 것이 있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이 임하시면 나도 변화됩니다. 내가 먼저 변화를 경험해야 이웃의 변화를 도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설교의 목적) 다 같이 한번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 주님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우리 남편, 아내, 자식, 부모님, 우리 교회 어느 집사님, 어느 정치가 보다 내가 먼저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리기 위해서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해 주옵소서! 내 심령 위에 주의 사랑을 부어 주옵소서! 주여! 나를 새롭게 해 주옵소서! 통성으로 기도드리시겠습니다.(초청).(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