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빌 2:5-11
2. 본문 요약: 예수 님은 겸손의 모델이시다.
3. 본문 주제: 겸손
4. 테마: 겸손의 축복
5. 명제: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끌어오는 자석과 같습니다.(예언적 명제)
6. 설교 목적: 겸손의 성품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큰 통로임을 알게 하여 평생토록 겸손을 구하고 배우는 삶을 촉구하기 위해서.....
7. 질문 제기: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Which?)
8. 전환 문장: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끌어오는 자석과 같습니다.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9. 제목: 겸손의 축복
10. 대지
1)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2) 겸손은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3)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라는 마음입니다.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에 보낸 바울 사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소문난 좋은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이 소문난 교회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진정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빌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원하노니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 바울 사도가 아마 교회의 중심인물인 것 같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는 것을 볼 때 이 두 사람은 마음을 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진정 겸손이 부족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이 두 사람의 문제를 듣고 오늘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여! 예수 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예수 님의 성품은 한마디로 순종과 겸손입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 님은 근본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거룩하신 분이 비천한 인간이 되셔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종처럼 섬기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성부 하나님은 예수 님의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셨고 모든 입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겸손하신 성자 예수 님을 가장 높이셨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끌어오는 자석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겸손한 사람에게 주시는 축복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모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인생은 역전됩니다. 그런 귀한 은혜가 겸손한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또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존귀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존귀하게 세우십니다. 잠15:3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예수 님이 자신을 낮추셨을 때 하나님은 예수 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겸손한 사람을 높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 어느 것보다 더 귀합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교만한 자에게는 임하지 않고 겸손한 자에게 임합니다. 잠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겸손한 자에게 지혜가 임하는 것은 겸손한 사람은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지혜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항상 배우겠다는 자세가 바로 겸손입니다. 무르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머리를 숙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항상 변명과 이유를 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깁니다. 교만은 이미 세워 놓은 것을 무너뜨리지만 겸손은 무너진 것을 세웁니다. 겸손은 모든 것을 회복시킵니다. 겸손하신 예수 님은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모든 것을 십자가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스갸랴의 말을 잘 청종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성해지자 교만해졌습니다.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자신도 하려고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교만의 극치에서 제사장의 고유한 권한까지 간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허락하지 않는 것도 서슴없이 행했습니다. 교만은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 교만은 영적인 암이다. 그것은 사랑이나 자족하는 마음 심지어 상식까지 갉아먹습니다. 교만은 영적인 눈을 멀게 하고 귀가 멀어지게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하여 더 이상 제사장의 충언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대하 26:1726:17 이하에서 대제사장에게만 주어진 성전에서의 분향을 왕 자신도 하겠다고 강제로 성전에 들어갔다가 얼굴에 갑자기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결국 웃시야는 교만하다가 문둥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모든 것을 회복시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더 큰 일을 맡기 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백성 위에 부흥의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설령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겸손히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 지라 ”부흥이란 하나님의 영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부흥이란 성령님이 임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겸손한 심령 위에 부흥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재물과 영광을 주십니다. 잠 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영광이란 명예를 의미합니다. 생명은 풍성한 삶을 의미합니다. 겸손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어떤 것일까요?
1. 겸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지혜를 주십니다. 지혜 중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외심이라고 부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비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두려워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기보다 힘센 사람 앞에 비굴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합니다. 말씀에 순종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합니다. 어떤 말씀이라도 그 말씀 앞에서 회개하려고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말씀 앞에 자기변명과 합리화를 내세웁니다. 결국 말씀 앞에 불순종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모든 것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먼저 돌립니다. 예수 님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까? 아멘 혹은 반발 어느 쪽입니까?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2. 겸손은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 님은 성부 하나님을 항상 높이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아들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셨습니다. 이사야 14장에서는 타락한 천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름이 천사 장 루시퍼입니다. 이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까? 왜 천사가 마귀가 되었을까요? 자신의 위치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천사 장 루시퍼는 하나님 다음가는 지혜로운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자신이 지혜로운 것을 알자 루시퍼는 교만해졌습니다. 피조물 주제에 창조주 하나님과 경쟁하려고 했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이 되고 싶어 한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천사 장 루시퍼가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습니다. 마귀란 사탄과 같은 이름입니다. 마귀는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우리 인생을 유혹했습니다. 우리 인생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 네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어기면 도리어 너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교만한 마귀는 인간에게 교만한 마음을 품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너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라는 마귀의 말에 유혹받은 우리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여 깨뜨렸습니다. 그 결과 인간도 마귀처럼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원죄의 본질은 교만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인간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들어 망하게 합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은 교만이다.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 등. 이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새 발에 피에 불과하다. 천사가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교만을 품다가 악마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온갖 다른 악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맞서는 마음 상태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가치관은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예수 님이 섬기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에서 큰 자는 높은 자리에 앉아 큰소리치며 대접을 받으려고 하며 사람에게 명령합니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인 교회의 직분 자는 우리 주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섬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직 잘 모르는 어린 신자들입니다. 예수 님을 잘 아는 성숙한 사람은 어린 신자를 섬깁니다. 교회에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한국 장로교회에는 장로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장로라는 직분은 목사를 도와 교회를 섬기는 섬김의 직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 교회의 장로는 이 정신을 망각하고 장로가 무슨 세상 벼슬인 줄로 착각에 빠진 사람이 많다는 소문입니다. 장로만 되면 세상의 벼슬을 얻은 것처럼 큰소리치고, 교회 안에서 파를 나누어 세상처럼 정치를 하여 교회를 분열시키고, 마치 국회의 야당처럼 목사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이 장로의 직분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장로교회는 장로 때문에 망한다는 말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신 우리 주님을 배우지 못한 비극입니다. 교회의 모든 직분 자는 우리 주님처럼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돈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 학력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겸손한 사람이 교회 직분 자가 되어야 은혜로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이란 어떤 것일까요?
3 겸손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한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면은 인간은 한계를 가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호흡이 끝나면 그날로 이 세상을 떠나 육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심판받으려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행 12장에 헤롯 왕이 연설을 하자 그의 연설을 듣고 백성들이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아부의 말을 했습니다. 그 백성들의 아부의 말을 듣고 헤롯왕은 인간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우쭐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착각했습니다. 그때 주의 천사가 그를 쳤습니다.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의 칭찬에 중독되어있습니다. 누구나 칭찬받고 싶어 하고 특권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칭찬을 듣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흙으로 돌아갈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 님은 마 5:3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 ”라고 했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나는 믿음이 적어요. 더 큰 믿음 주세요. 예수 님 닮게 해 주세요. 나를 거룩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세요. 성령 충만 주세요. 이 가난한 심령이 겸손한 심령입니다. 겸손한 심령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엎드려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겸손한 심령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경계해야 될 심령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말합니까?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입니다. 계 3: 15-19 “계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온천 개발로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이 생기자 심령이 교만해졌습니다. 우리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도다. 라며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고 미지근했습니다. 육신의 배가 부르자 자신들의 영혼도 부자가 된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실로 그들은 가난한 자였습니다. 그래서 회개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하나님은 회개를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구약의 므낫세 왕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므낫세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결국 쇠사슬에 결박된 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감옥에서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 크게 겸비하여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포로에서 석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여 왕위에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관찰하십니다. 교만했을 때 벌을 내리시고 관찰하십니다. 우리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켜보십니다. 우리가 보여 드려야 할 모습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님의 열매로 우리의 인격 속에 예수 님을 닮은 겸손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무한한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낮아지신 예수 님의 겸손한 성품을 소유하는 것을 일평생 목표로 삼아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하시겠습니까?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 겸손을 추구하는 여러분과 저에게 넘치시기를 예수 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