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행 12:20-24
2. 본문 중심 진리:: 교회를 박해하던 헤롯 왕을 주의 사자가 치니 죽고 하나님의 말씀은 더 흥왕 하여 퍼져나갔다.
3. 주제: 역사의 주인
4. 테마: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
5. 명제: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예언적 명제)
6. 목적: 교회사를 통해 나타난 증거를 통해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확신을 가져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이기도록 격려하기 위한 목적.
7. 질문제기: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8. 전환 문장: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9. 제목: 승리하는 교회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지난 2년 사이에 어떤 뉴스를 보니 한국교회 교인 약 120만 명이 교회를 떠났고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는 한국교회에도 큰 위기의 사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고난과 박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약 교회가 시작된 초대 교회에 무서운 박해가 있었습니다. 악한 헤롯왕이 초대 예루살렘의 교회의 야고보 사도를 죽였습니다. 이어 베드로 사도 마저 죽이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간섭으로 실패하는 등 교회를 핍박했던 유대 헤롯왕의 거만함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화려한 의복을 입고 나타나 왕의 보좌에 앉아 백성들에게 연설합니다. 모여든 백성들은 “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로다. ”하며 아부성 고성을 외쳤습니다. 그다음 내용이 이러합니다. 행 “ 행 12: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행 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 하여 더하더라. ”23절과 24절에서 '그러나‘ 라는 단어가 우리 번역에는 빠져 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 하여 더하더라. ”이것이 더 좋은 번역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강력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이렇게 존속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첫 번째는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가 존속하는 것은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토록 평범하고 단순하며 학식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그들을 지켜 줄 군대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그들을 대항하여 일어나는 모든 박해를 이겨 낼 수 있었을까요? 초대 교인들은 처음에는 유대인들에 의해 다음에는 로마 제국에 의해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처음 대부분 노예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모임이 어떻게 처음 3세기 동안에 발생한 그토록 끔찍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문자 그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내몰렸으며 대규모의 학살을 당했습니다. 신약 교회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유대인과 이방인들 모두가 교회를 파괴하고자 했습니다. 교회는 원형 극장에 던져지고 동굴과 바위틈으로 쫓겨 다녔습니다. 또 그리스 철학과 동방의 다양한 신비주의 종교들이 교회에 침입하여 복음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궁극적으로 무력화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 철학과 이교도의 의식들과 신비 종교들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여전히 순순한 형태로 계승되어 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기적적으로 구원받은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로마 가톨릭의 교황 주의자들이 자행한 박해를 보면 우리가 여전히 복음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교회의 존속 자체가 하나님의 존재에 중요한 증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을 달리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강력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모든 형태의 박해를 가하는 원수들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가 그렇게 약한 사람들로 그렇게 미약하게 시작해서 어떻게 지금까지 존속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오직 하나의 대답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능력 때문입니다. 그 어려움은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움인지를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교회는 헤롯과 같은 많은 박해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존속해 왔으며 또한 그 구성원들이 여러분과 저처럼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존속해 왔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교회가 진정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로데 라는 소녀가 제자들에게 베드로가 밖에 서 있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 소녀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천사에게 이끌림을 받을 때 환상을 보고 있다고 여겼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또 한 사도행전에 기록한 것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교회사에도 마찬가지로 교회사의 전 과정은 그리스도인들의 죄와 실패와 연약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여기에 서 있으며 복음이 여전히 선포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중단되지 않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들이 우리와 같이 연약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를 반대하는 세상 사람들은 판에 박은 듯이 동일하게 비난으로 교회를 공격합니다. “ 교회에 다니는 저 사람들을 꼴을 보라 “자 그때 우리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 당신이 교회를 공격하는 그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어떤 기관도 그런 구성원들로는 오래 살아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구성원들의 실패와 죄에도 불구하고 존속되어 왔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는 하나님의 개입에 따라 환난과 박해의 광풍을 기적적으로 통과해 왔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부흥과 침체의 시기들을 통과해 왔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흥은 결코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사람들은 무감각의 상태에 빠져들고 약해지고 지쳤으며 의심하고 회의했습니다. 그들은 태만과 삶의 침체에 빠졌고 교회는 빈사 상태에 빠진 기구가 되었습니다. 그때 별안간 하나님이 개입하시어 교회를 소생시키시고 교회로 하여금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교회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커다란 증거라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세력을 뻗어 나갔습니다. “ 우리는 교회에 대한 강력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이렇게 존속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교회뿐만 아니라 역사를 위한 계획도 갖고 계심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존속은 종말까지 계속되는 계획과 목적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은 18세기 이신론자들의 주장을 웃음꺼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신 후에 세상에 등을 돌렸으며 마치 시계를 만든 사람이 태엽을 감은 후에 시계가 절로 가도록 내 버려두는 것처럼 세상을 돌보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후에 세상이 스스로 작동하여 돌아가도록 방치해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그런 주장에 대해 반박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분이 교회와 온 세상에 직접 개입하여 손을 대신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그분은 교회를 다루실 뿐 아니라 헤롯도 다루십니다. 바로 여기에 여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방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며 지표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에 아주 중요한 주제입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사랑이 식어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만일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전쟁과 분쟁을 허용하시는 것일까? ”왜 원수는 그토록 거만하고 교회는 그토록 작고 연약할까? 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의 수는 겨우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반면 거짓 정치 꾼들의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을까? 교회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형편을 피상적으로 보면 우리는 심각한 비관론에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현상들은 우리 믿는 사람을 대적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훨씬 더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 조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굳게 붙잡아야 할 분명하고 확실한 원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허용적인 의지가 있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행 12장이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 장의 첫 부분에서 헤롯왕은 교회를 괴롭히기 위해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였습니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은 그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헤롯이 베드로를 죽이지 못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헤롯과 유대인이 야고보를 죽이도록 허용하셨으나 그들의 손에서 베드로를 건져 내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와 같은 일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으며 한편으로는 자유를 찾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허용적인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해서는 됩니다. “ 왜 하나님께서는 저 사람은 고통을 당하도록 허용하시고 왜 이 사람은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도록 허용하시는가?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허용적인 의지는 하나님의 주권과 다스리심을 조금도 약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어나도록 허용하는 일은 역사의 주인되신 하나님 자신의 선하고도 영원한 목적에 따라 허용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건져 내신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도 건져 내실 수 있었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것은 악도 하나님의 지혜 속에서 하나님에 의해 허용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거만하게 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히틀러와 같은 사람들의 등장은 하나님의 허용적인 의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인 것입니다. 참 하나님을 모르는 이교도 느브갓네살과 고레스가 등장하도록 허용하신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북한 김정은 정권과 교활한 문재인 정권을 허용하시는 동일하신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의지라고 하는 큰 원리를 인식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허용적인 의지를 넘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이 여전히 수행되고 있다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 장에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고 베드로가 옥게 갇히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역사하셨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내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베드로를 밖으로 구해 내셨습니다. 또 한 헤롯이 사람에게 연설을 하는 순간 바로 그때에 주의 천사가 그를 쳐서 죽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주 철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할 중대한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멀리 떨어져 계신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름과 거센 바람을 통과하여 그분 자신의 영원한 목적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원수들의 파멸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저는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계획과 목적을 갖고 계신다는 것과 그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것의 궁극적인 종말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멸망 당하고 하나님께서 온 세계 위에 영광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구절이 이 이야기의 결말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사가인 누가가 이렇게 말합니다. “ 주의 천사가 헤롯을 치니 그가 죽으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이 피할 수 없는 결말입니다. 헤롯의 경우를 보십시오. 베드로의 기적적인 구출을 보았을 때 헤롯은 눈을 떠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높이고 왕의 보좌에 앉아 마치 자신이 신인 것처럼 말하면서 사람들의 숭배를 용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이 교훈은 성경 전체에서 발견됩니다. 앗수르 왕의 권력을 보십시오. 그것은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막강한 권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무더기의 종이 상자처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권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여러분이 그 시대를 살았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 이 제국은 결코 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헬라 제국을 보십시오. 로마 제국을 보십시오. 일본 제국 주의와 박정희 유신 시대와 전두한 정권 시대를 보십시오. 노무현 정권을 보십시오. 문재인 정권이 영원할 것 같이 보입니까? 항상 같은 이야기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십시오. 살 후 1장에서 바울은 “ 주 예수께서 정복자처럼 다시 올 것이며 원수들은 파멸을 당할 것 ”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계시록에서도 “ 악의 세력들이 떨치고 일어나 교회를 박해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죽음과 사탄과 짐승들과 그 외의 모든 악의 세력들을 유황불 못에 던져 넣으시는 것으로 종결되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원수의 최종적인 파멸과 관련하여 시 37:13“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이 말씀은 흥미롭습니다. 헤롯은 화려한 옷을 입고 왕의 보좌에 앉아서 장엄한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순간 그는 작은 벌레 바이러스에게 먹힙니다. 오, 주의 영광과 능력이 얼마나 장엄하신지요!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힘에 맞서서 자신들의 시도가 성공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모습이라니요! 주께서 웃으실 것입니다. 잠시 후면 그분의 손이 원수들을 지면에서 쓸어낼 것입니다. 주께서 그 일을 행하시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결론으로 네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결코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교회와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결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관론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내키는 대로 말하게 내 버려두십시오. 우리는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교회이기에 그 사명이 완수될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넷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 소속되어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며 작은 것이라도 온 힘을 다해 나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진정한 교회의 구성원이라면 우리는 이기는 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전투하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의 편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확고하고도 확실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땅의 교회 생활에는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는 ‘그러나’ 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 하여 더하여 갈 것이요. 어떤 박해 가운데서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마침내 역사의 주인 되신 주께서 그분의 선하신 때에 지상에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울 것이며 모든 문제를 처리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아버지께 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교회 구성원으로서 결코 패하지 않는 승리하는 교회에 속해 있음을 확실히 알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