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8:3-4
2. 본문 요약: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
3. 주제: 성육신
4. 테마: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5. 명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참 구원자의 증거이다. (평가적 명제)
6. 목적: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혀 구원의 도리를 깊이 깨닫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죄인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셨을까요?
8. 전환 문장: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참 구원자의 증거이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죄인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셨을까요?
9. 제목: 이단 분별법
초대 교인은 주로 유대인들로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유일신론 신봉자들입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시다.라는. 주장을 하면 유대인의 눈에는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들이 예수 님을 만났습니다. 사람이신 예수 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님을 만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하나님과 예수 님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하나님이신가?라는? 라는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에 서 삼위일체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견해 중 두 개는 이단으로 배격되었습니다. 하나는 ‘에비온주의’로, 1세기 초기에 번성했던 유대 분파였던 이들은 예수를 마리아와 요셉의 인간적 아들로 생각했습니다. 예수 님의 신성을 부정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정반대의 견해였는데, ‘가현설(Docetism)'로 알려진 것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지만, 그의 인성은 단지 외양에 지나지 않는 가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예수 님의 인성을 부인했습니다. 가현설은 2-3세기에 그 정점에 도달했던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서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했고 성육신 교리를 확정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성육신 교리에 대한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이시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으로 살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위격(신성과 인성)에 관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참 구원자의 증거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이며, 왜 죄인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셨습니까? 먼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그 의미는 성육신이 사실이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 님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몸을 가지셨고 인간의 영혼을 가지셨습니다. 성육신은 하나의 사실이요 실제였습니다. 초대 교회에 어떤 거짓된 교사는 나사렛 예수는 실제 몸을 입지 않았고 단지 허깨비이며 유령의 몸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 님은 사람으로 나타났으나 실제의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이단입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도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에 대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일 1:1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그는 어떤 의미에서 ‘눈으로 볼 수 없고’ 또한 ‘손으로 말질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주님이 단지 유령이라고 말하는 자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실제로 죽지 않았고 십자가 위에 있었던 것은 단지 유령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현설이라 부릅니다. 요한일서는 이런 가르침을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 수님의 실제 (인성)을 부인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라 적그리스도 들입니다.. 베드로도 벧전 2:24 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그는 정말로 우리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몸에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나무 위에 달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신의 현현 즉 인간의 모양을 하고 하나님께서 나타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인간이셨고 문자 그대로 우리와 마찬가지로 육체를 입고 있었던 것이지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육신으로‘ 보내셨다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또 다른 이단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님의 인성은 우리처럼 죄가 있었고 여자에게 나셨기 때문에 그 여자의 죄 성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인성이 죄가 있기는 하지만 그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가 죄를 다스리고 정복하며 넘어설 수 있었지만, 그의 인성은 사실상 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주되심이 그가 인간성 전체 속에 있는 죄를 극복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예수 님의 신성을 부인합니다. 초대 교회의 에비온 주의, 아리우스파, 이 파의 후손들이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그리고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 슐라이 막허는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모범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성자라고 칭송받는 슈바처도 같은 분류입니다. 많은 현대 기독교 교인들이 예수는 우리가 닮고 싶은 도덕적인 모범생이라는 이런 이단 사상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또 한 그들은 만일 우리가 그를 바라보고 그의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일을 행할 수 있게 할 것이고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하는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바울이 여기서 가르치는 “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고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그는 우리들이 우리 주님의 인성에 죄가 없음을 깨닫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났던 다른 모든 아기들과 같지 않습니다. 이 아기는 어떻게 잉태됩니까? 마 1: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요셉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함께 동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아기를 잉태한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생명의 씨앗을 공급하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독특한 탄생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죄를 알지도 못합니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본성은 죄가 전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 우리의 모양대로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가 없느니라. ”라고 하였는데 그 의미는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나 죄는 없다는 의미입니다. 벧전 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이니라. "그는 우리를 은이나 금 같은 것으로 구원받게 하신 것이 아니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구약 시대 제물로 바치는 어린양의 규례를 보면 그 어린양에는 흠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즉 그림자입니다. 흠이 있는 양은 잡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이 나타나셨을 때 그는 전혀 흠을 가지기 않을 것이라는 진리의 예언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이 서로 합해져서 롬 8:3절에 우리 주님의 인성은 죄가 없었으나 우리의 죄 성의 모양을 취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주님의 인성에 의심을 합니까? 그들은 그가 ” 우리 같은 모양으로 “시험을 받기 쉽거나 시험에 굴복하기 위해서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히 4:15절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들은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우리 인간처럼 죄의 시험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님도 인간처럼 죄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아담은 죄짓기 전에 자기의 본성에 죄가 없었지만 시험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마귀로부터 처음 시험을 받았을 때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받는 자의 본성이 악하지 않다 할지라도 시험은 강력하게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모든 교활함으로 주님을 시험했습니다. 마귀는 의심 없이 그의 모든 기만적인 능력을 가지고 주님을 시험하기 위해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마귀의 교활함과 능력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제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정도까지의 악과 죄의 시험의 능력을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만드셨을 때 그를 완전하게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인성은 죄의 본성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죄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를 첫 사람 아담보다 못한 사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가 어떤 경우에도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는 인성을 지니시고 태어나셨고 죄는 그 속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 번도 실족하지 않았고 죄의 흔적을 가진 적이 없이 완전하고 흠 없는 상태로 남아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그가 ‘죄 있는 육신으로 오시지 않고’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오셨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육신을 가진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과 같이 이성적인 영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은 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어떤 국면에서는 죄 있는 우리의 인성과 ’’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떤 면에서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오셨습니까? 그의 본성은 죄는 없지만 그는 우리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결과로 인하여 우리 인성에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죄는 인성을 오염시켰습니다. 그리고 인성에 어떤 연약함을 가져왔습니다.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전혀 연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완전하였고 피곤도 몰랐습니다. 그는 죄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죄의 타락의 결과로 인해서 그는 본성에 죄가 있게 되었고 부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연약 함들이 그의 자손들에게 전승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이러한 몇 가지 연약한 것들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물론 연약하다는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피곤과 고통과 슬픔과 힘없음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히브리서를 보면 그는 많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참다운 인간이 아니었다고 하면 시험을 당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 죄 있는 육신의 모양‘ 오셨기 때문에 시험당하셨습니다. 그분은 때대로 피곤하였고 슬퍼하셨습니다. 요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바로 이것이 연약함입니다. 그는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의 육신은 죄가 없었으나 그는 마치 여러 면에서 죄 있는 육체와 같았습니다. 이 점이 왜 중요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히 9장 14절”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여러분과 제가 혈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은 ’’ 혈과 육을‘입으셔야 만‘ 했습니다. 18절”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 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완전한 인간, 완전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 그리스도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셨을까요?
둘째는 율법을 지키고 높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율법 아래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그를 정죄했습니다. 그는 율법의 심판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에 능동적으로 순종해야 했습니다. 예수 님은 우리 인간을 대변해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우리의 대표자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의 대표자이신 그분은 율법을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율법 아래에 나셔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인간이 되셔야 한다는 것과 인성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우리의 죄와 우리의 죄책을 담당하시고 또 우리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시기 위해서는 인성을 취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도 인간이어야 했습니다. 죄가 육신 안에서 범하여졌던 것처럼 그것은 육신 안에서 처벌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가 긍휼히 풍성한 대제사장이 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만일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데 거룩하신 하나님 ‘소멸하는 불이신’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 그는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참으로 인간이셨고 이 세상에 사셨으며 세상의 악과 시험의 능력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를 강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긍휼히 풍성하신 대제사장입니다. 그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왜 그리스도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셨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 사망을 정복하시고 사망을 영원히 날려버리신 한 인간이 있습니다. 롬 6:10 절“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예수 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어 셨기 때문에 우리 죄가 용서받게 되었고, 예수 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부활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롬 1장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셔서 사람을 위해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어 셨고,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사망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완벽히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즉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은 의롭다 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 구원자 됨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이 예수 님을 보내 주신 성부 하나님의 크신 사랑하심에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요, 완전한 인간이신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은혜와 이 예수 님을 나의 구세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게 하신 성령 하나님의 교통 하심으로 인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 찬송, 존귀를 드립시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