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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신비주의

wordlove 2022. 5. 1. 15:46

1. 본문: 요일 1:3, 14:6

2. 본문 요약: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누릴 수 있다.

3. 주제: 하나님과의 교제

4. 테마: 하나님과의 교제 방식

5. 명제: 하나님과의 교제 방식에는 복음주의적인 방식과 신비주의적 방식이 있다. ( 비교적 명제)

6. 교훈: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복음주의적 방식과 신비주의적인 방식의 차이점은 무엇인지를 소개하여 바른 판단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복음주의적 방식과 신비주의적 방식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8. 전환 문장: 하나님과의 교제 방식에는 복음주의적인 방식과 신비주의적 방식이 있다. 복음주의적 방식과 신비주의적 방식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9. 대지

10. 제목: 복음주의와 신비주의

 

1. 갈등

그리스도인이 직면하는 문제는 어떻게 어둡고 적대적인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이 제시하는 대답은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것을 위해 구주 예수 님이 이 땅에 오셨으며 우리 인생이 하나님과의 교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셨다고 말씀합니다. 교회 역사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사귐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방식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한 사람이 있지만 잘못된 방식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추구한 때도 있었습니다.

 

2. 갈등 심화

인간이 하나님과 사귐을 추구해 나가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복음주의 방식과 신비주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오늘은 복음주의 방식과 신비주의 방식의 본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비주의 방식에서 많은 이단이 나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복음주의 방식을 믿고 따릅니다. 먼저 신비주의에 대한 단어의 정의를 내리면 신비주의는 어떤 방해나 간섭 없이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듯이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 지식을 가지고 직접적 인식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파생되는 행복은 성경 말씀이나 은혜라는 수단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며 신적 영향력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적 영향력은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노력 없이 그저 영혼을 순종시킴으로써 획득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는 느낌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 근원으로 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 지적인 것이나 이성적인 것이나 이해하려는 것보다 느낌에 중점을 둡니다. 이것이 신비주의를 구별하는 기준이 됩니다. 신비주의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객관적 지식이나 이해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의 영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통해 얻어지며 결국 느낌이라는 영역 속에서 주로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은 언제나 객관적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놓습니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내가 해야 하는 것을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아신다. 수동적인 상태에서 감각이나 느낌이라는 수단을 통해 나의 영혼을 그저 순종만 하면 된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이해보다 느낌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신비주의 역사는 한결같이 교회 안에서 보이는 지나친 형식주의나 죽은 것 같이 생명력을 상실한 상태에 반발하여 생겨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개신교보다 로마 가톨릭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신비주의는 또한 이성주의나 너무 지나친 지성 화에 반발하여 일어났습니다. 개신교에서도 종교 개혁 이후 영적 개혁의 시기를 거친 후 영적인 생명력을 상실한 시기가 뒤따라 왔습니다. 신앙이 제도화되면서 영적인 생명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청교도 시대 때 성령에 대한 새로운 원리를 강조하는 퀘이커 교도가 이런 형식적인 신앙에 반발해서 생겼습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을 지나치게 지식화시키고 가르침을 너무 기계적으로 나열하는데 저항에서 신비주의가 발생한 것입니다. 신비주의의 두 가지 유파를 소개하면 첫 번째는 정적 주의와 수동성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조용히 마음을 편히 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에 대해 여러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것이며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행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조용히 있으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대로만 따르는 수동적인 것을 강조합니다. 주창자는 마담 귀용이라는 유명한 프랑스 여성입니다. 두 번째 유파는 정반대로 매우 적극적입니다. 이것의 뿌리는 영지주의입니다. 신비주의자 중에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환상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매우 엄한 훈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해야 하며 그 속에서 자신을 철저히 돌봐야 하고 묵상을 계속하는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직관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부하고 노력하고 생각하는 것이 없이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직관의 단계에 오르는 것을 신비적인 방법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계에 오르면 죄로부터 씻음을 받게 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느낄 때 처해 있는 영혼의 어두운 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 조용히 자기 성찰과 묵상과 금욕적 행위를 계속하면 그다음 단계인 조명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되며 이때 진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보고 알게 될 때 계속해 깊이 명상을 해야 하며 이런 것을 통해 자신을 잊어버리게 될 때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연합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신비주의자들은 매우 적극적인 사람으로서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낙타 털옷을 입고 의도적으로 성불구자가 되기도 하고 금욕행위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연합된 상태로 인도해 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한 이런 행위들을 통해 황홀한 상태나 기쁨의 환상들을 경험했다고 주장합니다.

 

3. 전환

그렇다면 이 모든 신비주의자에 대한 복음주의의 비판은 무엇입니까? 신비주의자들은 계시의 지속성을 주장하는데 하나님이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신약 시대의 사도들에게 직접 자신을 계시해 주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과도 같이 직접 계시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선지자들과 사도에게 이미 모든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자신에 대해 계시해 주실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의 직접적 영감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성경 말씀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나는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말씀을 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비주의자들은 그들이 새로운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위험성은 이들은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성경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경을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신비주의자적 성향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에 대해 결코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는 성경 읽기 계획 같은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한 구절의 성경이면 충분합니다. 한 구절을 읽고 나서 나는 그것을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깊고 다양한 뜻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정형적인 신비주의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단지 말씀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의 마중물 역할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묵상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 계시를 믿기 때문에 성경의 가치를 업신여깁니다. 심지어 신비주의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것이 영지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자신의 영혼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긴장을 풀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말씀하게 하시며 또한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비주의의 위험성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느라 우리를 위해 이미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정작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기 전에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신비주의자들은 죄의 교리를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죄의 교리를 언급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그의 육신 안에서 담당하시는 것만이 유일하게 하나님과 인생이 교제를 누릴 수 유일한 길이 될 만큼 죄악은 아주 심각하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영지주의는 죄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신비주의의 위험성은 항상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내가 성경 없이 신비주의를 믿는다면 어떻게 나의 경험을 테스트할 수 있을까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참 진리로 가까이 나아가려는 나를 해하기 위해 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에게 혹시 현혹당하는 것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아무런 기준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비주의에서 이단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 내가 이 시대의 하나님이요. 이 시대의 예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수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에 대한 마지막 위험은 그들은 항상 광신적이고 지나친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전 느낌을 우선시한다면, 여러분 자신의 경험을 점검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없으므로 끝까지 느낌에 끌려다닌다면 감각과 느낌을 통제할 이성도 잃게 되는 것입니다.

 

4. 대단원

그렇다면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해 복음주의 방식은 무엇입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주의는 언제나 성경에서 시작합니다. 성경 말씀이야말로 모든 경험에 대해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대해 유일무이한 권위이며 또한 최종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주의 교리는 우리 자신을 점검하기 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요청합니다. 복음주의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 지식이란 성경 말씀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지식을 가리 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에 대해 참된 지식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는 자신이 깨달은 지식을 영지라고 부릅니다. 예수 님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와야 하고 십자가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우리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이 우선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주님은 우리 영혼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기 전에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작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악을 해결할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된 가운데 주어진 생명이야말로 하나님에게서 오는 선물입니다.

영원하신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직접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하나님을 따르는 가운데 주어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 님도 산상 수훈에서 복 받는 자들은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가 배부를 것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위대한 복을 우리가 직접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과 교제하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선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요한 일서의 주제입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사귐이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되는 것인데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할 방법은 말씀의 한 구절을 가지고 신비적 묵상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 일서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생명과 기적들과 죽음과 부활과 구원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객관적 계시를 듣고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복음주의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곧장 나아가 말씀이 주는 진리를 알고 그 진리의 말씀을 믿으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고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행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신 대로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 찰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축복들로 배부를 것입니다. 신비주의는 하나님과 귀한 경험을 체험하는데 지름길을 가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이것과는 다릅니다. 성경 말씀이 제시하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간접적이며 분명하면서도 아울러 지나치게 광신적인 것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 안에서만 구원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의 교제도 이미 선지자와 사도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교제를 원한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용서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공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들으십시오, 성경을 통해 나에게 하시는 말씀에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비추어 보십시오. 죄를 지적하면 회개하십시오. 감사 거리를 발견하면 감사하십시오. 명령을 들으면 순종하십시오. 믿음을 요구하시면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와 능력이 임하셔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세상을 이기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승리자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