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요일 2:1-2
2. 본문 요약: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의 대언 자이시다.
3. 본문 주제: 대언 자
4. 본문 테마: 대언 자 되신 그리스도
5 명제: 용서는 대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기초한다. ( 평가적 명제)
6. 목적: 용서의 기초이신 대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
7. 질문 제기: 용서의 기초가 된 대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8. 전환 문장: 용서는 대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기초한다. 용서의 기초가 된 대언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9. 대지
10. 제목: 대언 자
1. 갈등
죽음을 엎든 요한은 나이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이 땅에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이들이 하나님과의 연합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1장에서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도다 ”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들도 빛 가운데서 빛 되신 하나님과 동행해야 될 것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혹시라도 죄를 범함으로 낙심에 빠져 하나님과 교제를 계속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실망에 빠질 것을 알고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라는 위로의 말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2장에서 그렇다면 죄를 지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오류를 막고자 “ 그렇지 않다.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을 격려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짓는 삶에서 온전히 떠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요청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라는 내용을 통해 죄지은 것을 깨닫고 승리의 삶에 실패한 것을 인지한 사림들에게 위로를 약속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이 사도가 만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도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될 때 마귀는 어김없이 다가와 “ 이제 너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너는 빛 가운데 행해 왔지만 이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너는 율법을 거스른 죄인이 되었다. 그런 너를 어떻게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 수 있겠는가? 결국, 마귀는 그들을 비참하고 한심한 지경에 머무르게 하는 데 성공하고 맙니다. ”이 같은 사람에게 주어진 말씀이 본문 말씀입니다.
2. 갈등 심화
용서의 교리 특별히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에 대한 용서의 교리로 이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첫 번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어떠한 죄도 용서해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게 되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죄를 용서해 주십사 하고 요청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용서와 관련해 얼마나 본질적 위치에 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신약성경에 죄라는 말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인 언급 되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떠한 죄의 용서도 주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하나님께 나아가 용서해 주십사 하고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죄라는 말을 소개한 후 즉시 ” 아버지 앞에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는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의 내용은 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번제 화목제나 여러 종류의 소제 등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모든 종류의 제사나 의식과 성막과 성전에 관계되는 모든 가르침을 살펴보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있게 될 일들에 관한 그림자요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죄가 단지 용서함으로써 용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제사와 의식을 통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거룩하고 의로우시므로 우리의 죄를 그냥 무조건 용서해 주실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 부모들이 자녀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와서 잘못했다고 말할 때 용서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듯이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서 잘못했다고 말할 때 왜 인간 부모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무한한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라고 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 이해하고 있는 한 가지는 인간 부모 중 누구도 의로우신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하게 거룩하신 분이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사실상 그분의 본성 자체가 죄를 가진 인간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죄라는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구약 성경의 모든 가르침도 한 분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성자라도 운명하는 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해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오직 그분 안에서만 죄를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떠나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죄의 용서를 위해 탄원할 곳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역시 본질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단 말입니까? 사도 요한은 대언 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다시 말해 여러분 중 혹시 죄를 짓게 되면 우리 모두에게는 ”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언 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사람입니다. 즉 재판장에서 변호사와 같은 뜻입니다. 대언 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아버지 앞에서 변론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또 다른 위로의 말씀은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요점은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기 때문에 영원토록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선 일이 생기든 어떤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그분을 통해 나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시는 동안에 제자들을 보살펴 주시고 그들의 유익을 돌보아 주셨든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위해 하늘에서 관심을 갖고 구체적으로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리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접수하시고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일까지도 하고 계신다는 차원에서 대언 자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중재하시며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분이시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한 성령은 우리 안에 내재해 그리스도 안에서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하시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또한 무엇을 하면 안 될 것을 보여 주는 분이시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증보해 주시며 아버지께 항상 대언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고 설명했습니다. 귀한 가르침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의 유익을 생각하면서 우리를 위해 대언해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위해 위로해 주고 안위해 주는 것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비록 우리는 연약하고 나약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버지 앞에 대언 자가 있다는 큰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단의 속사임에 귀를 기울여 아버지께 다시 나아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게 될 때 나 혼자만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대언 자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 자신도 죄인 된 자로서 아버지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는 느낌에 동의하지만, 우리를 대신해 아버지 앞에서 대언 자가 계시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대언 자라는 말의 본질을 생각해 봅시다. 사도 요한은 아버지 앞에 대언 자가 있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라는 말은 얼굴과 얼굴을 함께 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님은 항상 재판장 앞에 계시는 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언 자는 재판장 되시는 아버지의 얼굴을 언제나 대면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삼위일체 하나님 즉 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신 세분이면서도 본질에서 같은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중요한 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우리를 위해 요청하려고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분의 얼굴을 대시고 그분의 눈을 주시하면서 계시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대언해 주는 분이 항상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같은 분으로 계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가르침입니까? 우리에게 또한 얼마나 위로를 주는 말씀입니까?
3. 전환
그렇다면 누가 대언 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까? “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그 아들 예수의 피 ”라는 말씀을 이해할 것입니다. 2장에서 “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같은 위로의 말씀을 느낍니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느끼게 될 때 하나님이 과연 나를 얼마나 이해해 주실까 하는 의심이 들 때 “ 당신에게 당신을 완벽하게 이해해 주실 분이신 예수 님이 대언 자로 계신다. ”라는 답변으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히 4, 5장을 읽어보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답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은 예수 님이 되셨습니다. 예수 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는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나약함을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힘들어 지쳐 보았던 분이심으로 우리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또 한 그분은 나약함을 느낀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무기력도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으로 계셨기 때문에 우리의 무지함도 이해해 주십니다. 그분이 바로 영광된 주님이실 뿐 아니라 인간이었던 예수 님이십니다. 주님은 힘든 세상에 사는 우리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절망에 빠져 낙심하게 될 때도 하나님이 다시는 우리를 받아 주실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 때도 이 위로의 말씀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연민의 감정을 갖고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까지도 이해하고 대신해 주시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분이시라는 생각을 결코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믿는 자들을 위한 구원자로서 대신하는 자로서 세워 주셨다는 사실을 받아 들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대언해 주실 변호사가 재판장이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임명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무궁하신 사랑 가운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기 아들을 선택해 기름 부으셨던 것입니다. 이제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우리의 대언 자에게 자신감과 확신하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의로우신’이라는 단어도 생각해 봅시다. 요한 사도는 이 단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결코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히 의로우신 공의로우심 앞에서 우리를 위한 대언 자가 되어 주실 수 있습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은 남을 위한 변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성자 하나님 그분이 나를 위한 대언할 분이라는 사실을 갖기 이전에 그분 자신이 성부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은 변론의 일을 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우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그분이 한 일과 같은 일을 하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는데 오직 그분만이 성부 하나님 앞에서 대언 자로서의 일을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의로우신 성자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요한이 의도하는 ‘의로우신’이라는 말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우리의 저지른 죄악들에 대해 대충 눈감아 달라는 식으로 용서를 청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주님이 하나님 앞에 서서 “ 제가 이들의 죄악에 합당한 벌을 이미 감당했으니 이들의 죄악을 용서해 주심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대언 자는 하나님 앞에서 “ 하나님 율법이 이미 완성되었으며 사망이 폐한 바 되었고 징벌의 집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버지의 벌을 철회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이들은 제가 죽음으로써 자유 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롬 3:26“ 곧 이때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이 불의한 자들을 의로우신 자들로 인정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분 즉 조금도 허물이 없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는 일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에 전혀 누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분의 의로우심을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4. 대단원
마지막으로, 화목 제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이 뜻은 호의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화목하게 하는 제물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이 단순히 피를 흘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화목 제물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그분은 대제사장이셨을 뿐 아니라 제물 자체였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제사장은 자신이 아닌 다른 것을 화목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의 화목 제물이셨을 뿐만 아니라 제물 자체였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졌습니다. 주님은 제사장이시며 또한 왕이십니다. 그분은 희생제물로서 화목을 위해 피를 흘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의 화목 제물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우리 죄를 물고 늘어지면서 실망과 좌절에 빠뜨리려고 할 때 담대하게 “ 아버지 앞에서 나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그는 나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나만 위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따라서 하나님은 나를 다시 받아 주실 것이며 그분과의 교제도 회복되었으므로 그분과 교제를 나누는 삶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화목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죄에 대한 용서를 가르치는 교리입니다. 이 말씀이야말로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지며 그분과 영광스러운 교제를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