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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접근하는 자세

wordlove 2022. 9. 27. 16:25

1. 본문: 출애굽기 3:3-5

2. 본문 요약: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다가 타지 않는 떨기나무의 불꽃을 보고 가까이 하니 여호와께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산 땅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다.

3. 본문 주제: 복음( 하나님의 말씀)

4. 본문 테마: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

5. 명제: 하나님은 복음을 대할 때 먼저 순복의 자세를 가질 것을 촉구하신다. ( 명령적 명제)

6. 목적: 복음 앞에 순복의 자세를 취해야 할 이유를 소개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리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왜 복음 앞에 순복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8. 전환 문장: 하나님은 복음을 대할 때 먼저 순복의 자세를 촉구하신다. 왜 복음 앞에 순복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9. 대지

10. 제목: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

 

 

우리는 지금 성경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를 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모세 개인의 삶 속에서는 물론이요 이스라엘 백성의 삶 속에서도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제가 이 사건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 사건이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라는 전체 문제와 관련해서 아주 위대한 교훈이요 모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은 우리가 복음에 접근할 때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잘못된 것은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입니다. 자세가 잘못되어 있으니 그 외의 모든 것이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가축들을 돌보고 있는 것을 봅니다. 모세는 정말 40년 동안이나 목자 생활을 해왔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반복되는 단조롭고 지루한 생활, 그는 좀 더 나은 목초지를 찾아 양 떼를 끌고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그날도 모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양 떼들을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늘 하던 대로 그곳으로 양떼를 몰고 가려하는데,, 갑자기 전혀 뜻밖의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출 3: 2-5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모세에게 엄청난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그 잔인한 속박과 포로 생활로부터 건져내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해 들일 것인지에 대해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여기 나오는 모세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매일매일의 일과 과업들을 수행하려고 하는, 아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다가 뜻하지 아니하는 일을 만남니다. 그 뜻하지 않았던 일은 질병이라는 형태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도 어떤 의미에서 질병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된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아무 관심이나 생각 없이 살았기 때문에, 그런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끝까지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덜컥 병에 걸린 것입니다. 갑자기 병상에 눕게 된 그들은 이 생각 저 생각,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이런 것들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결국 회심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때로 그것은 사건이라는 형태로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그런 사건 말입니다. 예를 들면 죽음이나, 사별, 슬픈 일, 또는 사업상의 곤란이라든가, 사업이 부진하거나, 완전히 파산하는 것 등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그 뜻하지 않았던 일은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서서히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또 교회에 참석했을 때 갑자기 내 영혼을 사로잡는 설교를 듣고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석한 일은 이런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났지만 그로 인해 회심까지 체험하게 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발전하여 완전한 구원의 체험을 실제로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바로 이 점이 우리가 지금 알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들 대다수의 문제는 바로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 태도가 결국 실패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우리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취했을 그런 행동을 하려 했습니다. 갑자기 뜻하지 않게 타는 가시떨기나무를 보았을 때, 그는 3"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고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시면서 그가 취할 태도를 지시하십니다. 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줄 수 있는 축복들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 싶다면, 우리는 그 복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대신 순복 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준비 단계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대할 때 먼저 순복의 자세를 촉구하십니다. 왜 복음 앞에 순복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첫째 이유는 복음은 계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연구 조사하는 것으로 시간 내서 연구 조사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딤후 3:7"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진리와 실재를 찾겠다고 나섰으나 그것을 끝내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문제는 바로 복음에 접근하는 자세가 잘못되어 있다는입니다. 이것이 모세와 우리에게 찾아오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의 조사를 포기해라. ”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모세야, 그런 자세를 버려라. 나를 연구 조사하려는 그런 자세를 버려라. 그 객관적인 자세를 버리고 네 발에서 신을 벗고 네가 있는 곳에서 내게 순복 하라. "제가 이것을 가지고 시작한 이유는 이것이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제삼자적인 자세로 성경을 조사하는 단순한 조사원이나 검사관이라면, 여러분은 절대 성경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여러분의 호기심이나 불러일으키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사색하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분 정도로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그분을 연구 조사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결국 그분의 생명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성 지상주의를 신봉하는 현대인들이 쉽게 빠지는 현상들입니다. 모든 것을 나의 이성으로 분석 판단하려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저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계시, 계시란 하나님이 내 눈을 열어 보여 주셔야만 깨달아진다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즉 기적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인간의 이성 즉 지성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출발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은혜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것을 " 조사하고 " " 검사함으로써 시작하려는 것은 괜한 시간 낭비 아닐까요? 여러분은, 이 딱한 사람들이 왜 20년이나 조사하고서도 결국은 맨 처음처럼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시겠습니까? 누가 자기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고 는 틀림없이 그것을 파악할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절대 조사원 이상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지성이 아무리 높고 훌륭하다 해도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이성을 넘어 계신 초월자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2: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칼빈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을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조명 즉 성령의 비추어 주심이 먼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신발을 먼저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겸손의 태도가 요구됩니다.. 왜 복음 앞에 순복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두 번째 이유는 기독교 복음의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중요한 사실을 망각한 것이 모세의 큰 실책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타는 가시떨기나무, 어쩌면 초자연적인 현상일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불꽃이 아닌 한 인격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발에서 신을 벗어야 했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체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시키는 것,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알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에 대해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들은 그것이 인생에 관한 진리들을 알게 해 주고,,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더 나은 삶을 사는 법, 행복해지는 법, 성공하는 법을 알고 싶다. 그러니 그에 대한 지시와 인도를 받기 위해 복음으로 돌아가자 "물론 어떤 점에서는 복음이 그런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하는 핵심적인 일이 아닙니다. 또 이 기독교 복음은 어떤 관념이나 도덕 및 윤리에 관한 행동 원리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개념이나 철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을 직접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첨언하겠습니다. 기독교 신앙과 그 메시지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체험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오늘날 체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삶 속에서 대단한 변화를 보았는데, 어떻게 하면 저도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체험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체험입니다. 감사하게도 그것은 영적 체험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바라보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며, 철학과 영적 체험의 차이점에 흥미를 느낄 뿐 거기서 더 나아가기 않는다면, 절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타는 가시떨기나무를 잘못된 자세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영적 체험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실 때, 성경을 읽으실 때, 언제든지 주여!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라는 겸손한 자세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 성경책이 하는 중심적인 일은 우리를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왜 복음 앞에 순복의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 때문입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무엇입니까? 첫째,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거룩함을 계시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하나님에 대해 첫 번째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입니다. "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 만일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출발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절대 하나님을 안 것이 아닙니다. 사복음서를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지켜 보십시오. 주께서 하나님을 얼마나 " 거룩하신 아버지 "로 말씀하시는지 알아채지 못했습니까? 이 하나님은 바로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을 " 사랑하는 아버지 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분을 거룩하신 아버지 "라고 불렀습니다. "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은 자신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어떤 죄인도 다 구원하신다고 보편 구원을 말했습니다. 이 가르침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쪽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오, 또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계시하신후, 이어 계속해서 자신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하심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 얼마나 복된 말씀입니까! 이것이 완전한 복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이 하나님 앞에 나를 바라보십시오.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 인생은, 죄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죄의 노예입니다. 마귀의 종입니다. 우리는 나쁜 성질의 노예입니다. 질투심, 부정직성, 이기적 그것이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이런 우리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를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 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려 하노라. " 내가 내려와서 건져낸다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거룩과 사랑이 있는 완전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 죄를 심판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하는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이 아니라 죽이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복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약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성자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왠지 아십니까? 여러분과 저의 고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비참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수치와 실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내려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죄 없는 자기 몸에 여러분과 저의 죄를 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의 성품이 다 만족되셨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이 충족되었으며, 지옥과 사탄이 패하고 애굽이 정복되었습니다.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과 화해하고, 중생해서 새로운 힘과 능력을 얻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 영원이라는 무궁무진한 세월 동안 영적인 젖과 꿀을 마시며 살 수 있다는 복된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 내가 너를 구원하기 위해 너를 자유롭게 해 주려고 내 아들을 보냈다 "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해방자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까? 여러분의 모든 죄가 다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새 생명을 받았습니까? 이 단순한 메시지를 듣고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 인생을 모두 하나님께 맡긴다고 말씀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만일 아직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발에서 신발을 벗고 즉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의 죄인 됨을 회개하며, 순복하는 심령으로, 나를 사랑하시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겸손히 듣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