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엡 2:8-9
2. 본문 요약: 하나님의 은혜가 믿음이라는 통로를 사용하여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3. 본문 주제: 성화
4. 본문 테마: 성화 구원은 무엇인가?
5. 명제: 성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의 의무이다. (비교적 명제)
6. 목적: 성화 구원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소개하여 더욱 믿음의 확신의 자리에 들어가도록 돕기 위하여
7. 질문제기: 성화 구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룰 수가 있습니까?
8. 전환 문장: 성화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동시에 우리 인간의 의무이다. 성화 구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룰 수가 있습니까?
9. 대지
10. 제목: 성화 구원은 무엇인가?
1. 갈등
구원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과의 관계가 논쟁의 중심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중심인가, 아니면 인간이 중심인가라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것이 극단으로 흘러 그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 인간 중심 방식입니다. 교회 역사는 당연히 하나님 중심이 주도권을 이어 왔습니다. 구약, 신약, 초대교회, 교부시대까지 이 전통은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주도권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창 3장에서 마귀가 유혹했습니다. 네가 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네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그 첫 번째 방식이 신비주의적 방식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여 내 몸을 치면 나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방식입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에 어느 부족 여인들은 이마에 칼집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마에 칼집을 많이 낼수록 구원에 가깝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고행, 금욕, 황홀경, 명상, 등을 통해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신비적인 방식입니다. 둘째 방식인 알미안 주의는 인간 자신의 자유 선택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알미안주의는 믿음을 통하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믿음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16-17세기 알미안 주의가 확장 되었고, 여기에 대항하여 도르트 신조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셋째 방식으로 오늘 날에 신율법주의가 교회에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이 신율법주의는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합니다. 이 사상이 한국 교회에 깊이 침투했습니다. 내가 봉사했기 때문에 천국 갈 것이다. 이 방식은 이신칭의가 아니라 인간의 순종이라는 행위가 구원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복음을 저주받은 복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근 현대적 방식이 있습니다. 이 방식은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때 믿을 만하면 믿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합리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단순히 훌륭한 인간일 뿐이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자신이 구원의 중심에 서 있는 이 모든 사상은 공로주의 사상입니다. 내가 믿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그 인간 공로를 의지합니다. 헤르만 바빙크라는 신학자는 “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공로보다 앞선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이 은혜보다 앞서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스스로 할 능력이 없고, 스스로 은혜를 만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구원입니다. 구원 사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 사역입니다. 물론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고 하이퍼 칼빈주의가 됩니다. 고 칼빈주의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가 다했으니, 인간은 할 일이 없다는 사상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았으니 막살아도 상관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객관성만 강조하지, 우리 인간의 주관성을 무시하며 할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파 교리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비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2. 갈등 심화
이것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창세 전의 선택 즉 작정이, 시간 속에서 즉 나의 삶 속에서 적용 실행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작정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원 전부터 내가 태어 나기 전에, 그때 우리 인간이 할 일 즉 인간의 주관성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객관적인 은혜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객관적으로 작정하시고,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중생시키시어, 이 중생은 성령의 사역으로 일어나며, 성령은 바람과 같아서 어디서 언제 오는지 모르지만, 그 열매로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할 때 믿음이 생기는데 그때 반드시 회개를 동반합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 님을 만난 눅 5:8절에“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베드로는 지난밤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날 이른 아침 예수 님이 오셔서 베드로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내려 올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이 놀라운 이적 앞에 베드로는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왜 엎드렸을까요? 예수 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엎드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기의 죄인 됨을 보게 되었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 님 즉 복음을 참으로 만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인 됨에서 구원 주실 분으로 예수 님을 주여! 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중생한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인 회개와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회개와 믿음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책임입니다. 거듭남 즉 중생이 무엇입니까? 중생은 새 시각을 여는 것입니다. 평소 나는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동으로 나는 소망이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구원해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겠습니다. ’라고 결단할 때 칭의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은혜에 의하여 은혜가 주인입니다. 믿음 때문이 아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즉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나니, 이 구원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선물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이제 인간은 자기의 책임하에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성화 구원이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100% 한 것입니다. 그분의 순종 사역을 통해서 성령에 의해 우리의 주관적인 믿음을 통하여 내 안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사용할 때 하나님의 객관적인 은혜가 내 것이 됩니다. 이것을 의의 전과라고 부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격의 역할은 다릅니다. 성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우리를 작정 즉 선택하셨습니다. 성부로부터의 작정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자는 성부의 뜻의 실행자이십니다. 성자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죄인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성령이 하시는 일은 일차적으로 성자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성경 말씀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적용하시고 완성하십니다. 객관은 우리 밖에서 즉 하나님이 행하신 은혜요, 주관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객관적인 것은 삼위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믿음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토대입니다. 그다음 성령께서 주관적으로 내 안에서 작동합니다.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객관적인 토대 위에서 시작하지만, 내가 믿지 아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바빙크는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객관성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내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내가 내 안에서 주관적으로 내가 선택하고 믿고 결단해야 합니다.
3. 전환
하나님의 객관적인 구원의 토대가 어떻게 내 안에서 주관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와의 연합 때문에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구원을 풀어나갑니다. 이 연합 개념은 참으로 신비로운 개념입니다. 롬 6: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연합은 영적인 연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에 하나님의 모든 객관적인 진리가 주관적으로 내 안에서 내 것이 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입니다.
4. 대단원
그러므로 구원사건에 있어서 은혜가 반드시 먼저 나옵니다. 은혜가 전부라면 우리 인간은 로버트인가요? 우리 인간의 자유 의지는 필요 없는 것인가요? 인간의 책임과 역할은 필요 없는 것인가요? 라고 항의하는 분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으로부터 너희가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받은 너희들은 부르심을 받았다면 너희를 굳게 하여라 ‘ 고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로봇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객관적인 토대 위에 서 있는 너희들이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 토대를 붙잡고 행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은 실족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열심히 행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성화 구원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다하셨는데 나는 할 것이 없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으로 무책임한 사람이 됩니다. 성화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수동적 성화와 능동적 성화입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작정하시고, 성자는 대속 하셨고, 성령께서 적용하셨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하셨으니 인간 편으로 볼 때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는 수동적인 것이지만, 이제 인간은 능동적으로 나의 의지, 결심, 선택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98조 반박문 가운데 첫째가 회개입니다. 그는 우리는 전 삶 속에서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능동적으로 해야 합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내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바빙크의 이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 성화는 객관적인 은혜인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의무다. “내 삶에 성화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내 칭의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칭의와 성화는 구분 되지만 절대로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제일차적인 사역은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 사역입니다. 롬 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믿음은 들으면서 나며, 주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왜 나의 삶에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습니까? 내 안에서 성령의 내적 사역이 약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에 반드시 참석하여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이 아니고는 어떤 것으로도 믿음이 생기지 아니하며, 거듭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를 소홀히 하는데 어찌 믿음이 생기면 삶에 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성화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시고, 동시에 내가 해야 할 의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다운 자로 자라가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이 은혜가 있습니다. 내 안에는 성령님이 계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능히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화 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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