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리스도 안에서의 십일조 정신
**본문:** 창 14:18-20, 레 27:30-32, 민 18:21-24, 신 14:22-29, 말 3:8-10, 마 23:23, 눅 11:42, 고전 9:13-14, 고후 9:6-7, 히 7:1-10
**주제:** 십일조는 율법적 의무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 인정과 감사의 은혜로운 응답이며, 복음 전파와 사랑 실천을 위한 자발적인 헌신의 표현이다.
**스타일:** 찰스 스펄전의 열정과 존 칼빈의 신학적 깊이를 통합한 그리스도 중심적 설교
##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탐구할 주제는 현대 교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폐지되었다"는 주장이 SNS에 널리 퍼지고 있고, 어떤 이들은 "왜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정말 십일조는 단순한 율법적 짐에 불과한 것일까요?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십일조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정신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깊이 탐구하고자 합니다. 십일조는 단순히 소득의 10%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고백하는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러분은 십일조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놀랍게도 모세 율법보다 약 500년에서 600년 훨씬 이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시대에 이미 십일조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14:18-20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를 구원한 아브라함이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나와 그를 축복합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자신이 얻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이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율법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승리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자발적 표현**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십일조 '마아세르'는 단순히 '열 번째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부분'을 의미합니다. 즉, 십일조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주재권 즉 하나님의 소유권 인정과 감사의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 칼빈의 주석
장 칼빈은 이 본문을 해석하며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그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감사의 표현이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승리와 복의 근원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였다"고 해석했습니다.
### C.S. 루이스의 통찰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라 참된 소유의 시작이다. 인간이 자신의 것을 진짜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릴 때, 비로소 진정한 청지기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둘째, 언제, 이 십일조가 이스라엘의 율법이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이 모세 시대 때에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십일조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제도**가 되었습니다.
레위기 27:30은 선언합니다: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민수기 18:21-24에서는 레위인들이 기업을 받지 않는 대신 온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받아 성전 봉사에 전념하도록 하셨습니다. 신명기 14:22-29에서는 3년마다 드리는 십일조로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고 명하셨습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십일조는 교회 봉사자들의 사례비, 가난한 자들의 구제비, 선교비로 사용되었습니다.
### 현대적 예화: 교회 건축 헌금
한 교회에서 새 예배당 건축을 위해 건축헌금을 모았습니다.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드린 헌금으로 아름다운 예배당이 지어졌고, 그 공간에서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개인의 헌신이 공동체의 축복이 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 스펄전의 설교
찰스 스펄전은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음을 보여주는 온도계와 같다."
셋째, 십일조의 도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말라기 3장 8절에서 10절은 구약 성경에서 가장 도전적인 구절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말씀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상태**를 보여줍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불신이며, 인간 자신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이것을 말라기 선지자는 통렬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 역사적 예화: 윌리엄 콜게이트의 간증
비누 회사 창업주 윌리엄 콜게이트는 젊은 시절 한 노인으로부터 이런 조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당신 사업의 동업자로 모시십시오. 십일조를 드리고 정직하게 사업하십시오." 콜게이트는 평생 이 원칙을 지켰고, 나중에는 소득의 50%까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의 회사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시각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은 형식을 넘어선 본질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3:23에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목하십시오! 예수님은 십일조를 폐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십일조의 **형식적 준수와 영적 본질의 균형**을 강조하셨습니다. 십일조는 드리되, 정의와 긍휼과 믿음도 함께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 칼빈의 통찰
칼빈은 이 구절을 해석하며 "그리스도께서는 십일조 자체를 비난하신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마음의 변화가 없는 위선을 책망하신 것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네번째, 십일조에 대한 신약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할 것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13-14에서 구약 제사장들이 성전의 것으로 살았듯이,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십일조의 **원리가 신약 시대에도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고린도후서 9:6-7은 더 깊은 차원을 제시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신약 시대의 헌금은 **율법적 강제가 아닌 은혜에 대한 자발적 응답**입니다.
### 스펄전의 설교
스펄전은 "십일조는 사다리의 첫 번째 계단과 같다. 은혜가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거기서 시작하여 더욱 관대한 헌신으로 나아간다"고 설교했습니다.
다섯번째,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입니다.
히브리서 7:1-10은 십일조의 **궁극적 의미**를 보여줍니다.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의 행위는 장차 오실 **더 위대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켰습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드리신 그리스도께** 향합니다.
### C.S. 루이스의 예화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예수님을 상징하는 왕 아슬란이 에드먼드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장면을 통해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왕은 자신의 모든 것을 모든 백성을 위해 드리는 자이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신 참 왕이십니다.
### 현대적 적용: 월드비전 후원 가정
한 가정이 매월 십일조와 함께 해외 어린이 후원금을 드렸습니다. 20년 후, 그 어린이가 의사가 되어 자신을 후원해준 가족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들의 사랑으로 저는 새 생명을 얻었고, 이제 다른 이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십일조 정신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십일조 정신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일조는 단순한 종교적 의무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 전파와 사랑 실천에 동참하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참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100%를 드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 앞에서, 우리가 주님이 주신 소득의 10%를 드리는 것이 과연 큰 희생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특권이요 기쁨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교회 역사의 변증
일부에서는 "복음이 분열을 낳는다"며 교회의 배타성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교회사의 변증가들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거스틴**은 "십일조와 헌금을 통한 교회의 사회 봉사야말로 가장 포용적인 사랑의 실천"이라고 변증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인의 관대함은 종교를 초월한 인류애의 표현"이라고 증명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감동으로 구원 받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감사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 즉 은혜임을 인정하며 감사드리십시다.
**둘째, 회개입니ㅋ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내 것인냥 우상으로 삼았던 불신앙의 죄를 고백합시다.
*마지막으로, 실천할 것은 매월 첫 소득에서 십일조를 먼저 구별하여 드려보십시오. 가난한 이웃을 구제하고, 선교와 복음 전파를 위한 후원에 참여해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십일조는 **의무가 아닌 특권**이며, **짐이 아닌 기쁨**이며, **희생이 아닌 투자**입니다. 손해가 아닌, 축복이며 영광입니다. 이것이 십일조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 나아가, 죽어가는 또 다른 한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을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므로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사도행전 16장 31절의 구원의 약속이 여러분 모두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온전히 임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설교 후 나눔 및 기도회를 위한 적용 질문 5가지
1. 아브라함이 율법 없이도 자발적으로 십일조를 드린 것처럼, 나는 어떤 마음으로 십일조를 드리고 있습니까? 의무감인가요, 감사의 마음인가요?
2. 예수님이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내가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놓치고 있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영역은 무엇입니까?
3. 고린도후서 9:7의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처럼, 내가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며, 억지로 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4.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신 십자가 사랑 앞에서,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구체적인 헌신(시간, 재능, 재물)은 무엇입니까?
5. 우리 교회와 가정이 십일조의 참된 정신(하나님 주권 인정, 가난한 자 구제, 복음 전파)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결단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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