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 롬 10:1-21
2. 명제: 구원은 인생의 전 인격적인 요소의 유기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제목: 하나님의 의
기독교 역사에는 두 가지 신학 사상이 대립하며 존재하고 있습니다.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 라는 신학 사상입니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구원 받을 자를 선택하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칼빈주의를 신본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사상은 성경적으로 옳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알미니안주의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하면 구원을 받고 인간이 거부하면 구원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주도권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사상을 인본주의라고 부릅니다. 이 사상도 맞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말씀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느 한쪽만 강조하다보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칼빈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인간의 역할과 책임은 소홀이 되는 운명론에 빠지기도 합니다. 반면 알미니안주의를 강조하다보면 하나님의 역할은 축소되고 인간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인본주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에서 칼빈주의 자들과 알미니안주의 자들은 항상 대립하면 다투고 있습니다. 저는 양쪽이 다 옳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양쪽의 주장을 수용하기 때문입니다. 롬 9장에서 바울 사도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 롬 10장은 구원의 문제 있어서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자기 동포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참 구원의 요소를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인생의 전 인격적인 요소의 유기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구원의 요소가 무엇인지를 소개하여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더욱 견고한 믿음에 서도록 돕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구원은 인생의 전 인격적인 요소의 유기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1. 바른 지식에 기초해야 합니다.(2-7)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렸던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절 “내가 증거 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지만 올바른 지식을 쫓은 것은 아니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하나님께 열심을 품었습니다.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세 번 금식을 했고 안식일을 생명을 다하여 지키려고 했으며 소득의 십일조 생활에 열심을 다해 동참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지식을 쫓지 아니하고 자기 의를 쫓아 구원을 얻으려고 했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즉 구원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세운 의가 무엇입니까? 5절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이들은 율법을 따라 의를 이루려고 열심을 다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으로 인생이 죄인임을 가르쳐 주는 의로운 하나님의 법입니다. 이 율법을 100% 지킬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율법으로 하나님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은 율법을 100% 다 지킬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율법의 한 가지라도 어기면 모든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행위로 율법의 의를 이룰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신들이 율법을 다 이룰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신 의의 길을 쫓아가야 마탕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율법으로 의를 없을 수 없음을 아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율법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엇입니까?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모든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최후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법을 다 만족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처럼 하나님이 의롭다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이의는 인간의 행위로 얻어지는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의입니다. 6-7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좀 어려운 말씀인데 이런 뜻입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의를 얻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고 또는 지옥에 내려가는 그런 엄청난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는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죄인을 친히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8절“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인생을 구원 하실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하지만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의로 율법의 의를 이루려고 열심을 내었지만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고 결국 불순종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이들의 잘못된 지식에 기초한 열심히 구원에 서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열심 자체가 구원을 이루는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 참된 지식에 기초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의지해야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구원은 하나님의 의이신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위에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이단들의 특징이 열심임을 아십니까? 최근 신천지라는 이단은 교회에 침투하여 열심히 봉사하여 교인들로부터 먼저 좋은 신자인 것처럼 인정을 받아 동조 세력을 얻은 후에 교회를 분열 시킨다고 합니다. 참 악하지 않습니까? 물론 참된 믿음은 분명 열심을 동반하지만 열심 자체가 구원을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참된 지식위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이란 하나님이 주신 지식입니다. 인간이 만든 지식이 아니라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우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위에 열심을 내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인생의 전 인격적인 요소의 유기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2. 사람의 전인격으로 수용해야 합니다.(8-13)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우리 가까이 찾아 오셨습니다. 참 믿음의 요소는 인간의 전 인격으로 찾아오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격은 지, 정, 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입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참 믿음은 입으로 저는 예수님을 나의 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주인으로 믿습니다. 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주로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세례는 자기 신앙 고백의 중요한 첫 번째 관문입니다. 그러나 입으로는 부족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라고 하지만 마음은 담겨 있지 않는 고백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사람의 중심입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능력으로 죽음을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라는 고백을 해야 합니다. 참 구원은 입과 마음이 다 합쳐진 인간의 전인격을 걸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나의 주님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도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마귀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마음으로는 믿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 믿지 않는 이런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마귀 믿음이라 부릅니다. 나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는 않아요. 라는 믿음은 마귀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이란 지역에서 전파하니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 지러면서 예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니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하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 마귀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알았다면 예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마귀는 예수님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아니했습니다. 참 믿음은 마음과 입이 하나인 믿음입니다.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입으로 예수님을 나의 주로 시인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어야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이 약속 되어 있습니다. 어떤 축복이니까? 먼저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또 예수님을 부르는 사람에게 부요함을 주십니다. 12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그 부요함의 절정이 무엇입니까? 13절“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영이 구원을 받고 육체도 구원을 받고 인생의 삶도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입으로만 믿는 믿음은 참 구원 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표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세례도 받고. 주일 성수도 하고, 십일조 생활도 하고, 전도도 하며, 이웃 사랑으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작동하여 그 인생의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인생의 전 인격적인 요소의 유기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3. 믿는 자의 발로 확장되는 것입니다.(14-21)
구원 받은 믿음은 어떤 과정을 받습니까? 먼저 말씀을 들으면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17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선택 받은 백성을 찾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영적으로 잠을 자고 있는 영혼들을 일으켜 세우는 하나님의 알람시계와 같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를 하나님이 부를 수가 없습니다. 듣지도 못한 이가 어찌 믿겠습니까?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어찌 듣겠습니까? 전도는 미련하게 보여도 선택 받아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니 큰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이렇게 환상 가운데 말씀하셨습니다. 행 18:9-10 “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여러분이여! 이 부산 땅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습니다. 전도를 두려워 마십시다. 잠잠하지 마십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문제는 말씀을 들었지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21절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온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 되었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거역하고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이방인에게 돌렸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을 거절하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아닌 자 또 사랑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이방 족속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방인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이스라엘이 보고 시기 질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고 만 것입니다. 제발 이스라엘 백성의 길을 따라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받지 아니하고 거역했습니다. 히 3: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그러나 나무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날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했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무시하며 외면하며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타까워 제발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찬송가 537 형제여 지체 말라 왜 거기서 방황하나 그 은혜를 입은 자 중에 주 너희를 두시려네 오라오라 지체 말고 오라오라 오라 지체 말고 오라.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수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습니다. 제발 그런 마음 완고한 자세를 가지지 마세요. 구약 이스라엘 박성들도 거역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 하나님의 축복이 지나가고 말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 결정의 합작품입니다. 참 구원은 인생의 전 인격적인 요소의 유기적인 수용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 구원은 바른 지식에 기초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신 바른 지식인 것입니다. 예수님 위에 여러분의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그 믿음이란 나의 전인격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그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구원의 도는 믿는 우리의 발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믿는 자의 고백의 열매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 오신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은 예수 믿는 나를 통해 오늘도 선택받은 자들은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 마음, 발걸음이 구주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복된 지체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