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행 12: 10-12
2. 명제: 천국 백성은 기적에 대한 바른 교훈을 배워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3. 제목: 기적이 끝나는 곳
복음이 세상으로 점점 확장되자 악한 원수 마귀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마귀의 도구인 유대 헤롯왕은 야고보 사도를 죽였습니다. 교회의 지도자 베드로도 옥에 잡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일이면 유월절 절기가 끝나기에 오늘 밤은 베드로의 마지막 밤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철통 경비로 감옥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날 밤 천사가 옥중에서 자는 베드로를 깨웠고 그의 쇠고랑과 사슬을 풀어 주었습니다. 또한 그로 하여금 양면에 있던 군사들을 통과하게 했으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비대를 모두 지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큰 철문이 열렸으며 천사는 베드로를 거리의 한 가운데까지 인도한 후에 홀연히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행하던 천사는 별안간 베드로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지금 거리 한 복판에 서 있는 베드로를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베드로에 대해 두 가지를 진술하고 있는데 11절에서 “베드로가 정신이 들었다”라고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12절에서 “그가 그 일을 깨달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정신이 들고 나서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9절에서 옥에서 나와 천사를 따라가는 베드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 갈 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베드로는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했을 때는 기계적으로 천사를 따라 갔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숙고함으로써 어떤 행동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또한 그 결정을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너무나 명백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두 가지 대조적인 국면을 접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마치 그리스도인의 삶이 오로지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점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단지 철학이나 다른 특정한 사고방식의 한 형태인 것인 냥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요소를 아예 빼버리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두 가지 전제 중 하나를 근거로 삼아 사고하고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성경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택일하라는 자세를 버리고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관용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천국 백성은 기적에 대한 바른 교훈을 배워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기적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천국 백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명백하게 기적적인 사실에 대하여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교리입니다.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지 인간이 고안한 산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사실들을 우리는 성경에 기초해서 인정해야 합니다. 4 복음서에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자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던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분이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고 믿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깁니다. 또한 저는 주님이 기적을 오늘 날에도 행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여러분은 사도행전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적적인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첫 번째 목격자인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의 증언의 신빙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기독교신앙은 도대체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까? 초대 교인들의 증언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특별한 기적을 행하셨으며 그로 인해 믿는 자의 수가 많이 증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역사를 보십시오. 그와 같은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생애를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개입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미쳐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며 행하셨습니다. 혹은 그들로 하여금 특정한 장소에 이르도록 그들의 상황을 조종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주저 없이 말 할 수 없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에 있지? 내가 왜 이 아침에 예배의 자리에 있지 혹은 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해서 지금의 내가 있을까? 이것이 내 스스로 행동하고 결정한 일일까?”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손길이 그에게 임하셨다고 말할 수 없다면 즉 초자연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말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신약 성경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선하고 예의 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생애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을 의미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의 경험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천국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있고 또한 믿어야 하고 기대해야 합니다. 기적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 기적은 하나님의 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야기도 이 점을 아주 명백하게 보야 줍니다. 천사는 베드로가 잠들어 있을 때 그를 찾아왔고 베드로는 그저 천사를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때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움직입니다. 사도들이 내일이나 혹은 어떤 날에 기적을 행할 것이라고 먼저 공표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날 어떤 사람이 교회 광고지에 이런 선전을 합니다. 오늘 오후 예배 시간에 기적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행 14장에 보십시오.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게 된 어떤 사람을 만납니다. 바울은 이전에 그 사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기적을 행할 의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자 바울이 그 사람에게 일어나라 말했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틀어 보아도 모두 그러합니다. 기적은 언제나 하나님의 정한 때에 일어납니다. 지난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특별하고 초자연적인 때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예기치 못할 때 찾아 왔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십시오. 예기치 못한 때에 부흥이 오는 것입니다. 부흥은 어느 때인가 왔다가 사라지며 그 후에 교회는 아주 일상적인 시기를 지나게 됩니다. 그런 다음 또 다시 부흥이 찾아옵니다. 사람이 부흥을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모임을 가지고 조직을 구성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부흥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부흥의 결과를 인식할 뿐 부흥을 만 드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기적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기적의 때를 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기적을 조종할 수 없습니다. 기적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스스로 할 수 없는 무언가에 직면할 때 기적의 요소가 개입합니다. 옥에 갇혀 있는 베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양손은 사슬로 묶여 있었고 옥문은 잠겨 있었으며 옥문 밖에는 병사가 지키고 있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대한 철문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을 바로 그 때 기적적이고도 이례적인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 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 하실 때 광야에서 40년간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실상은 불신앙 때문에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 광야에서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로 바위를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모세기 순종하자 바위가 터져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먹을 약식이 떨어지자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기적을 통해서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모든 사례에서도 그렇고 그 이후의 교회 역사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작용될 수 있는 원리입니다. 기적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4. 기적은 인간의 능력이 충분한 시점에서 멈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인간은 홀로 그 상황에 직면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본문이 주시는 교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베드로가 스스로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자 천사는 떠났습니다. 그는 홀로 남겨져서 어디로 가야 좋을지를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그를 마가 요한의 어머니의 집까지 인도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기적은 인간의 능력이 충분한 그 시점에서 멈추게 되고 거기에서 인간은 스스로 행동하도록 남겨지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끊임없이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만이 일어나도록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터무니없는 극단적인 태도가 개입될 위험이 있습니다. 기적은 이례적인 것이지 일상적인 것은 아닙니다. 만일 어떤 것이 일상적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닙니다. 기적은 우리가 스스로 행동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점에서 멈춥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기적으로 먹이고 입히신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도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부터 더 이상 광야에서 일어났던 기적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내가 준 이 땅에서 내가 준 너희의 손과 머리를 사용해서 땅을 개간하고 땀을 흘려 곡식을 가꾸어 먹을 양식을 삼아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기적적인 현상의 연속이라고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 백성이 누워서 기적만을 기다리는 신앙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너에게 손과 발과 머리를 주었다. 그것을 가지고 일어나 일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에 순종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기적이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5. 왜 기적적인 요소와 일상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것입니까? 사람은 기적적이 환경 아래에 있을 때는 어는 정도 자동반사적인 상태가 됩니다. 베드로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환상을 보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처럼 기적이 발생할 때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의식하지 못하는 기계적인 상태가 됩니다. 자신이 왜 혹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본분은 베드로처럼 제 정신이 들 때에야 비로소 이성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적인 일의 중대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처음 예수 믿을 때의 회심의 경험과 연관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복음을 듣고 예수 믿을 때 그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끼지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또한 무언가에 빠져드는 분위기를 느낍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나중에 그가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성경을 읽고 배우고 기독교 신앙과 교리를 이해하면서부터입니다. 회심의 경험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영원한 사랑의 깊이를 충분히 말해 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면서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해 깨닫고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자동반사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아주 즐거운 상태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심오한 구원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본문의 표현대로 깨닫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별개의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계처럼 행동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뇌와 지성을 주셨으며 생각하고 조리를 따져 보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지성과 이해력을 한순간에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은 그분 자신만이 할 수 있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신 후에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추론하고 묵상할 수 있도록 어떤 일들을 우리에게 남겨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이 완벽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지만 사람이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조차 하나님이 행하시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인이 안락의자에 앉아 하늘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면서 세월만 보내는 것은 큰 불신앙입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깨 닫기만 한다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지혜를 주셔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우리가 하도록 하셨습니다. 또 그렇게 하 기를 기대하십니다. 이런 광경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천사가 떠나가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베드로가 천사가 다시 돌아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지시해 줄 것을 믿으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결가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 상상이 됩니까? 감옥 에서는 경보가 울리고 군사들이 온 거리를 수색하였을 것이며 베드로는 곧바로 발각되어 다시 감옥으로 끌려갔을 것입니다. 기적만 바라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불가능한 일을 행하시고 여러분이 스스로 설 수 있는 것으로 인도해 주셨다면 그분은 여러분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여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를 기대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는 길입니다. 기적이 이루어진 후에 하나님이 부여하신 재능과 능력을 부여 받은 상태에서 홀로 남겨질 때에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머리 몸 은사를 사용해서 내가 할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천국 백성의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