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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 받은 믿음(수정본)

wordlove 2020. 10. 24. 14:18

1. 본문: 8: 5-13

2. 제목: 응답 받는 믿음이 있다.

3. 명제: 응답 받는 믿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주 책망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여! 믿음이 적구나! 믿음 없음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믿음 없음을 많이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여러 방면을 통해 훈련하셨습니다. 지금도 동일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시면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도우십니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구원 받은 성도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이 많다고 그 사람을 영웅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권세가 많다고 영웅으로 다루지도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영웅은 믿음의 영웅뿐입니다. 11장은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장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도 놀라 까물어 칠 번한 믿음을 가진 한분을 소개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칭하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 로마 군인으로서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던 한 백부장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종의 중풍으로 도움을 구한 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믿음대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이 본문을 통해서 응답 받는 믿음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오늘 저는 응답 받은 믿음은 어떤 믿음인지를 소개하여 응답 받은 축복을 누리도록 돕고자 이 말씀을 전하고자합니다. 응답 받은 믿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 겸손한 믿음입니다.

5-6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백부장은 그 당시 세계 최대의 패권 국가인 로마 제국의 고급 장교로 식민지 국가인 유대 지역의 고급 장교라 할 수 있습니다. 권세가 있고 힘이 있는 신분의 사람입니다. 일제 시대 부산 지역 일본 주둔 사령관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위치에 서면 지배 국가의 권력자로서 대개가 자기 힘과 권세를 의지하며 교만하기가 싶습니다. 그런데 일반 상식을 뛰어넘어 이 당시 아직 무명의 예수님 앞에 와서 도움을 구하는 것을 보니 이 백부장은 자신의 자존심을 접은 겸손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겸손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사람은 겸손하게 만듭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겸손은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겸손은 한손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또 한손으로는 이웃의 손을 붙들고 인생의 길을 따뜻하게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어는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바로 이 백부장이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인생의 문제라도 주님 앞에 가져와서 아뢸 수 있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백부장의 간청에 예수님이 내가 너희 집에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시자 백부장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주님이 우리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 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 의미는 나는 예수님을 우리 집에 모시기에 존재 면에서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능력 면에서도 적합지가 않는 자입니다. 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이 백부장의 겸손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난 증거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정확하게 하나님으로 만났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어떻게 겸손 할 수 가 있습니까? 라는 제자의 질문에 성 프란시스는 하나님을 한번만이라도 진실로 쳐다보게나 그러면 인간은 교만 할 수가 없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영적 열매인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보았을 때 나타납니다. 겸손은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항복 할 때 승리합니다. 벧전5:5“하나님은 교만한자들을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이 부족한 것은 예수님을 잘 모른다는 증거임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겸손한 믿음에 응답하십니다. 겸손한 믿음 위에 기적을 베 푸십니다. 어떻게 겸손 할 수 가 있습니까? 라는 제자의 질문에 성 프란시스는 하나님을 한번만이라도 진실로 쳐다보게나 그러면 인간은 교만 할 수가 없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만난 사람의 영적 열매인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6절에 주여! 8절에도 주여! 원어에 주여는 퀴로스인데 는 '최고통치'에서 유래했습니다. 소유자, 마음대로 하는 사람, 주인, 군주, 로마 황제, 하나님, 메시 야등의 뜻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주여 라는 고백은 백부장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응답 받는 믿음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의 권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주님의 인격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주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 받는 믿음인 것 입니다.이 믿음이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한 것입니다. 8절을 다시 보시면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주님이 내 집에 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할 인간에 불과합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백부장 자신의 존재를 정확히 인식하는 말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바로 보고 있습니다. 나도 권위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에 불과합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권위는 인간 세상을 움직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질서입니다. 모든 인간은 권위자요. 권위 아래에 있는 자입니다. 최고의 권위자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내가 순종해야할 주인이십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아멘! 집에서는 부모의 권위가 있고 직장에서는 상사와 부하의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를 깨뜨리는 것은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사 만드신 사랑의 법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최초의 권위를 깨뜨린 자입니다. 마귀는 권위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깨뜨리심으로 이 세상을 혼돈으로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원죄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산악과를 따 먹으면 죽는다고 했지 아니야 먹어도 안 죽어라고 인간을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지 못하도록 인간을 속인 것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믿는 믿음의 회복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믿음입니다. 마귀가 역사하는 곳에는 항상 권위가 깨어집니다. 그 결과는 혼란입니다. 지금 마귀가 다스리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가정, 교회가, 나라가 권위를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권위는 군사 용어가 아닙니다. 권위는 기득권자의 수구 용어가 아닙니다. 인간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권위를 따라 움직입니다. 권위는 사랑과 행복의 원리입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입니다. 권위는 신분의 차이가 아니라 위치와 역할의 다름인 것입니다. 권위를 파괴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이것도 모르고 권위를 파괴하는 것이 똑똑한 사람인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 조류는 항상 반 권위적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배신하여 모반을 일으킨 자입니다. 불순종의 영, 거역의 영, 배신의 영이 바로 압살롬의 영입니다. 이 압살롬의 영이 역사하는 가정, 교회. 나라는 항상 혼란스럽습니다. 가정에서 자식이 부모를 무시합니다. 권위의 파괴입니다. 그 가정은 혼돈 속으로 빠질 것입니다. 가장의 권위를 흔들어 가정을 파괴합니다. 목사의 권위를 무너뜨려 교회를 혼돈 시킵니다. 압살롬의 영의 역사인 것입니다. 반면 다윗의 믿음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세우신 세상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은 사울왕의 핍박으로 도망 다니는 신세였습니다. 어느 날 원수 사울 왕을 죽일 결정적인 기회를 만났습니다. 어두운 산속 동굴 속에 다윗 일행은 숨어있었습니다. 다윗을 쫓던 사울 왕이 대변을 보기위해 다윗이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혼자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옵니다. 숨어있던 다윗의 부하가 대장! 원수를 갚을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사울 왕을 죽이시고 다윗 당신이 왕이 되십시오. 라고 충동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내 손으로 죽이지는 않겠다.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서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이 믿음은 다윗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다윗을 칭찬 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응답 받는 믿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저와 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하는 믿음입니까? 아니면 내가 여전히 나의 주인입니까? 기복신앙의 특징은 예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없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주인이면서 예수님을 이용하는 신앙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 순종을 싫어합니다. 혹시 아직도 그런 신앙을 가지신 분은 안계십니까? 오늘 당장 바꾸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세우신 인간 권위를 주님 때문에 인정하고 순복하는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부모를 공경하면 자식을 사랑하며 남편을 순종하면 아내를 사랑하며 상사를 높이며 부하를 존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주님이 세우신 질서까지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라는 믿음이 응답 받는 믿음인 것입니다. 응답 받은 믿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3.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7-9절을 보십시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다만은 유일한, 단지, 라는 의미입니다. 백부장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 신뢰를 볼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신뢰는 말씀하신 분의 인격의 신뢰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을 그 말씀대로 축복하십니다. 이해가 안 되어도, 당장 유익이 없어 보여도, 내 생각과 다르게 보여도,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그 인생을 축복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나아가면 말씀대로 그 집에 언젠가는 반드시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아멘! CCM주여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거물 던져 오늘 그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라 주의 말씀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 던져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시기를 소원 하십니까?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다면 말씀에 순종해 보십시오. 순종하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실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십일조는 율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소유는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살았을 때도 쪼들렸는데 십일조 드리면 얼마나 더 쪼들리겠는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하여 십일조 드리는 분들의 간증을 들어 보십시오. 결코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더 채워주시더라는 고백을 합니다. 십일조를 안 하면 자꾸 손해 보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리니 더 풍성해지더라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면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말씀 앞에 합리화, 이유, 변명, 거역, 두려움, 타협하면 살고 있는 신앙입니까? 이 모든 것들은 불순종이요 불신의 증거들인 것입니다. 불신앙의 결과를 10-1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구원 받은 자들이 해 뜨는 데서부터 해지는 데까지 사방에서부터 모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본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그들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하나님 나라의 본 자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치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셨지만 그들은 믿음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말씀을 믿지 아니했습니다. 그 결과 본 자손들은 어두음에 쫓겨 나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믿음 보다 육신의 전통을 더 중시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인 것에 더 치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 전통, 자신들이 만든 유전, 종교적인 형식, 의례 등에 관심을 더 두다가 즉 표면적인 신앙에 불과했습니다. 표면적인 할례를 강조했지만 마음 즉 이면적인 할례를 모르는 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겉은 종교인이지만 마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니라 종교인들이었습니다.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쫓겨나리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잘 모르는 백부 장이는 이방인입니다. 말씀도 많이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말씀가지고도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이 믿음이 주님을 감동 시키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믿음만이 천국 문을 여는 구원의 열쇠입니다. 신앙의 형식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위험한 신앙입니다. 신앙의 연수, 직분, 형식 등에만 집중하는 믿음 아주 위험합니다. 나의 믿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나는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종교인입니까? 백부장이의 믿음은 예수님의 인격을 바로 아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주이십니다. 즉 나의 구세주이시다. 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의 권세를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결과 13절을 보십시오.“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응답하십니다. 불신앙에게는 침묵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시고 명령하십니다.“가라 주님의 명령에는 종에게는 순종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믿음은 순종을 동반합니다. 앤드루 머레이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받는 순간 순종의 학교에 입학한다. 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되 첫째는 즉시 순종 할 것, 둘째는 끝까지 순종 할 것, 셋째는 열매를 볼 때까지 순종하십시오. 백부 장이는 말씀에 순종하여 갔습니다. 예수님은 믿음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믿음의 중요성을 보게 됩니다. 믿음만이 주님과 연결하는 통로가 됩니다. 믿음은 기적을 낳습니다. 믿음으로 천국 백성이 됩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면 약속의 말씀이 내 것이 됩니다. 주님은 시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백부장이의 집에 안 가셔도 말씀만으로도 불치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말씀의 권세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응답 받는 믿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