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관용(수정본)

wordlove 2020. 11. 2. 09:19

1. 본문: 13:1-18

2. 명제: 관용의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3. 제목: 관용

 

훌륭한 성품은 아름다운 미래를 준비하는 그릇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관용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은 관용이라는 성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은 관용이란 성품을 위로부터 난 지혜라고 합니다. 3:17“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관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관용이라는 성품위에 복을 주십니다. 관용의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성경에서 관용의 인물 한 사람을 추천하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관용의 성품을 배움으로 은혜 받고자합니다. 관용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되도록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관용은 관계적인 성품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향 갈대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갈 때 조카 롯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조카 롯이 잘되도록 늘 배려해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영육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함께 있는 조카 롯도 축복을 받도록 많이 배려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 가까이 있으면 더불어 복을 받습니다. 롯이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아브라함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자신이 잘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남을 잘되게 하다가 더 잘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위에 잘된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가 더욱 복을 받게 됩니다. 강철 왕 카내기는 그의 생의 전반부는 부를 이루는데 후반부는 베 푸는데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관용의 사람은 집착의 싸움을 버리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난의 때는 뭉치지만 여유가 있으면 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관용하는 사람은 싸움을 싫어합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종들 사이에 소유가 많아지자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브람이 조카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니 싸우지 말자 이제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참으로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싸움을 싫어합니다. 대신 관용을 베 풉니다. 3:2“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아브람함의 관용은 조카 롯이 떠나기를 원할 때 떠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조카 롯이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집착은 쓰레기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념은 좋은 것이지만 쓸데없이 이기적으로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에게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집착하면 그 집착하는 것의 노예가 되어 버립니다. 오히려 집착하는 것을 놓아 버릴 때에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관용을 베푸는 것은 상대방이 스스로 설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깊은 사랑입니다. 관용의 사람은 먼저 선택 할 수 있도록 권리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보여 준 관용은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하도록 선택권을 양보한 것입니다.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 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이 당시 아브라함과 롯은 목축업을 주업으로 하며 살았습니다. 목축에는 물 많고 풀이 많은 땅이 소위 목 좋은 땅으로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인생은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토록 중요한 땅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먼저 양보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우야 할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먼저 남에게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양도하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기회는 한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기회는 한계가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는 기회는 무궁 부진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먼저 선택 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이것이 관용입니다. 관용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관용이란 뜻은 너그럽게 용서하고 용납함이란 의미입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안의 어른입니다. 힘이 있습니다. 롯은 삼촌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다가 부자 된 자입니다. 아쉬운 것은 롯입니다. 그렇다면 삼촌 아브라함이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해도 그 선택권을 삼촌에게 양보해야했습니다. 삼촌 내가 삼촌 덕택으로 잘 살게 되었는데 삼촌이 더 좋은 땅을 먼저 선택하십시오. 그러나 롯은 전혀 그런 태도가 없습니다. 삼촌 말이 떨어지자 말자 눈에 보기에 목축하기에 좋은 죄악의 땅 소돔 고모라를 선택하여 떠나 가버렸습니다. 롯의 이런 행동은 삼촌 아브라함에게는 섭섭할 수도 있고 괘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여전히 조카 롯에 대한 관용을 베 풉니다. 그 후에 롯이 전쟁 중 소돔 고모라의 왕들에 의해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꼬시다. 저런 놈은 고생해봐야 돼 용심을 부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자기 가솔 318명을 이끌고 목숨을 걸고 조카 롯을 구출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너무 타락한 도시 소돔 고모라를 멸망시키고자 하셨을 때 그곳에 살고 있는 롯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는 아브라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구원하셨습니다. 관용이란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는 성품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아브라함은 끝까지 관용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면 관용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좋은 성품은 우리 안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관용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1.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았습니다.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 복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실 복중의 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중의 복이십니다. 모든 복이 예수님을 통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이 복을 베 푸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조카 롯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조카 롯이 비록 좋은 땅을 선택하더라도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축복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 믿는 저와 여러분도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이 동일하게 주어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야 말로 복중의 복입니다. 예수 믿은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이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야 말로 관용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남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저축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거두지 못한다면 우리 자녀들이 거두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관용의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2. 풍부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풍부 의식이란 땅은 넓고 기회는 많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풍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여유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풍부 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롯이 기름진 땅을 선택해도 자신을 위해 어딘가에 기름진 땅이 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롯에게는 기름진 땅을 양보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풍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데 풍부하신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관용을 베푸는 사람들은 관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사람일수록 관용을 베 풉니다. 풍부하신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은 여유가 있습니다. 경쟁하지 않습니다. 풍부의식의 반대는 결핍의식입니다. 결핍의식은 땅은 좁고 기회는 아주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핍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경쟁합니다. 자기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남의 것 까지 라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여유가 없고 결코 양보하지 않으면 인색하며 선택권을 빼앗겼을 경우 보복하려고합니다. 결핍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 되 풍성하신 하나님으로 알지 못합니다.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 둔 사람처럼 하나님을 굳은 사람으로 압니다.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데서 모으시는 하나님으로 압니다. 두려운 하나님 또는 인색하신 하나님으로 아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우리의 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이제 것 결핍의식을 가지고 계셨다면 풍부의식으로 바꾸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풍부하신 하나님을 묵상하십시오. 어떻게 관용의 될 수 있을까요?

 

3. 청지기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베풀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소유한 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잠시 맡겨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겨 두셨다는 청지기 의식을 가질 때 우리가 소유한 것을 더욱 잘 관리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더불어 잘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신 자식까지도 하나님이 요구 시 번제로 드리렸던 사람입니다. 자식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우리 소유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소중한 기업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물질 시간 재능 건강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 나는 주인의 것을 잠시 관리하는 관리자요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주인이 원하시면 기꺼이 드릴 수 있는 것이 청지기의식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믿습니까? 관용의 사람이 되려면 청지기 의식을 가지고 잘 키워야합니다. 어떻게 관용의 될 수 있을까요?

 

4. 종말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야 하고 그때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갑니다. 나는 곧 주님을 만날 것이다. 라는 종말 의식을 가질 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 성도들은 주님이 곧 오시리라는 종말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소유를 나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종말 의식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관용을 베풀며 살 것을 부탁했습니다.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을 베풀 수 있다는 것도 기회입니다.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도 기회입니다. 아무리 관용을 베풀고 싶어도 베풀 만한 것이 없다면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이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 것은 그 축복을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손에 물질이 있을 때 베 푸십시오. 도울 수 있을 때 도우십시오. 건강할 때 힘이 있을 때 젊었을 때 도우십시오.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도우십시오. 하나님은 관용의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조카 롯이 안면 몰수하고 자기 유익을 따라 기름진 땅을 선택하고 떠날 때 삼촌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섭섭함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심었더라도 그 결과를 당장 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 잠시 좌절할 수 있지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롯이 떠난 다음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비록 관용을 베 풀었지만 인간이기에 섭섭한 마음으로 서있는 아브라함을 찾아 오셔서 그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13: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개를 떨어뜨리고 땅만 쳐다보지 말고 오히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 보이는 땅을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3: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집착을 버리면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하나님은 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자손을 땅의 띠 끌 같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3:16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관용을 베풀면 사십시오. 다른 사람을 잘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꿈이 성취되도록 도와 주시고 좋은 것을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양보하십시오. 빼앗기기 전에 나누어 주십시오. 그리고 관용을 베푸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관용은 씨앗과 같습니다. 심으면 언젠가는 거두게 됩니다. 풍부 의식을 가지고 사십시오. 청지기 의식과 종말 의식을 가지고 관용을 베 푸십시오. 영원히 살 것처럼 준비하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관용을 베 푸면서 사십시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십시오. 원수에게라도 관용을 베 푸십시오. 관용을 베 풀다가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관용을 베풀면 언젠가는 분명 관용을 거둘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죄는 미워하셨지만 죄인을 사랑하신 예수님의 관용을 기억하십시오.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하신 예수님의 관용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닮아갈 수록 관용의 사람이 됩니다. 관용의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