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8:16-25
2. 명제: 그리스도인은 비 그리스도인과 삶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3. 제목: 참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
바울 사도는 여러 시금석을 통해서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지를 시험해 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가르치는 내용은 첫째 그리스도인은 정죄로부터 자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저주와 정죄로부터 해방된 사람입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속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깨닫고 믿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더 이상 그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써 죄의 정죄를 당하셨기에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의 형벌로부터도 해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삶을 살길을 바랄 뿐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써 그렇게 살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즉 그리스인은 죄의 정죄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죄의 권능으로부터도 이미 건짐을 받았으며 여전히 건짐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도인은 그 속에 양자의 영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아버지가 되셨고 그리스도인은 자식으로서의 애정과 느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분이 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소유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이며 그 결과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고통과 시련의 장소이며 환난과 불확실성과 모순의 장소입니다. 이런 문제가 그리스인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런 고난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인이 현세에서 당해야 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이 오늘 본문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과 다르며 세상 사람과 전적으로 구분되는 사람이며 특별한 위치와 관점을 가진 사람임을 다시 한번 보게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지를 알기 위한 또 다른 시금석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인은 현제의 문제와 고통과 시련과 환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복음은 현실의 이런 문제를 가볍게 보지 않습니다. 복음은 현실적이며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니 어두운 면은 생각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함으로써 지성을 조롱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라고 반복적으로 읊조리는 심리요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 잘 될 것이라는 식의 낙관론적인 약속을 남발해하지 않으며 피상적인 낙관론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비 그리스도인과 삶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는 삶에 대한 시각을 어떤 것입니까?
1.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집니다.
그리스인은 세상과 세상의 고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삶의 여러 문제는 인생들이 만나는 고통의 절반은 세상과 세상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삶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잘못되어 있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실망과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비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이 세상은 좋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모든 것이 좋으며 삶이란 충분히 즐길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뿌리가 잘못된 것이 없으며 때때로 표면상 실망스러운 것이 있지만 그런 일들이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잠시 일이 잘못되는 불행한 시기를 만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 세상과 인간은 본질적으로 옳고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기대합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며 어떠한 시련이나 환난도 없는 상태를 고대합니다. 모순도 없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도 없는 일종의 완벽한 삶을 기대합니다. 그들을 당황스럽게 하는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은 왜 인생은 무서운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왜 고통과 불행은 계속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고상한 존재로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의 노력으로 인류의 운명을 개선 지킬 수 있다고 낙관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보십시오. 그들은 세상의 모순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절망 가운데서 인간을 그저 되는 대로 살자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자 라며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와 이 세상에 대한 관점은 성경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은 처음 완벽하게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성경은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그러하여 인간 존재의 심층부가 모순의 상태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본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께 반역하고 대항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는 율법을 거역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을 물론 세상까지 망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성경의 진단입니다. 성경은 더 나아가 인간의 죄와 불순종이 인간 자신뿐만 아니라 피조물 전체에 저주를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땅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연과 동물까지도 인간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이 저주의 상태로 떨어졌습니다. 죄의 결과로 세상이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세상은 죄에 종속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 세상의 신과 공중의 권세 잡는 자로 불리는 마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현실을 바라보는 것은 슬프고 암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세상은 멋진 곳이라는 근사한 말을 듣다가 별안간 고통스러운 소식을 듣고서는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물끄러미 바로 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낙관주의는 성경에 따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동시에 이 세상은 인간에 대해서도 대적합니다. 이것을 깨달은 순간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의 해결에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 세상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 48:2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그러하기에 이 세상에 완벽한 삶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기쁨과 행복과 풍요만이 있다는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은 싸움과 투쟁이 이어지는 곳이다.라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진정 문제의 해결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세상이 그런 곳임을 깨닫는다면 그와 같은 일들을 보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은 마귀와 죄 아래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 다면 죄의 결과 외에는 실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쟁이 닥쳐오더라도 성경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며 그리스도인은 놀라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기심과 악이 있음을 알아야 하며 그것은 개인에게만 아니라 국가와 단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삶을 이해하면 삶의 모순들이 나타날 때에도 그리스도인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계의 고통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출발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는 삶에 대한 시각을 어떤 것입니까?
2. 미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세계의 미래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집니다. 비 그리스도인의 시각은 세계가 필연적으로 자동적으로 점점 더 개선되고 발전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항상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조만간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게 되리라고 언제나 기대합니다. 더 좋은 교육 더 좋은 정치에 의해 자신들도 조만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모든 재난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낙관론입니다. 세계의 미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시각을 매우 다릅니다. 그들은 성경을 따릅니다. 성경은 세계가 큰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심층부에는 언제나 죄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세계가 점점 개선되다가 완전해지는 커녕 오히려 세상은 끔찍한 위기를 만날 것이며 최후의 심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궁극적인 종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세상과 세상 모든 인생들을 심판할 것이며 지구는 파괴되고 현재의 하늘도 파괴되며 우주적인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죄와 악한 자와 하나님께 대적했던 모든 것이 불 못에 던져지고 영원토록 파멸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집니다. 죄가 없고 죄의 영향력도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집니다. 모든 것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본문이 말하는 ”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입니다. 이것은 성경 도처에서 가르쳐주는 진리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지고 죄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로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에 대한 성경의 관점입니다. 그것은 국제기구나 평화조약 교육이나 국가적 협약의 결과에 따른 개선 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염세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교육에도 힘쓰고 평화 조약에도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신앙을 그런 일들에 집착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문제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합니다. 세상의 종말은 심판입니다. 죄와 악이 파괴될 것이며 그다음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새 질서가 도래할 것입니다. 그것이 ”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입니다. 바울 사도는 롬 8장에서 지구 상의 모든 동식물까지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장차 영화로운 상태에서 나무조차도 손뼉을 치며 모든 자연도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것이라고 상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시각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임을 증거 하는 삶에 대한 시각을 어떤 것입니까?
3. 자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모든 문제를 직시하는 새로운 시각을 가집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에 의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양자의 영이 자신 속에 거하기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이 그의 영과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 만일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나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또한 내가 만일 하나님의 상속자라면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통해 우리 자신과 우리의 미래를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내가 알게 된 첫 번째 일은 그분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법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리스도는 슬픔의 사람이 되시고 질고를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그분만이 고통의 의미를 아시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그분과 함께 고통을 당한다면 또한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이런 내가 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그분이 고난을 당하셨으며 나는 단지 그분이 겪으신 것을 경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분과 함께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분을 다시 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그분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세상은 새롭게 창조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이 세상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비록 내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며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는 일어날 것이며 내 몸은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큰 위로가 격려가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고통 가운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날이 오면 모든 것이 새롭게 완전해질 것입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그리스도인은 그가 믿고 아는 것을 인하여 이 세상에 대해 탄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이 세상에서 탄식하는 자는 그리스도인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문제와 고통을 잊어버리려고 애쓰면서 슬픔을 묻어둔 체 즐거움만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저주를 보면서 그 속에서 탄식합니다. 그러나 그 탄식은 절망의 탄식이 아니라 갈망의 탄식입니다. 그것은 장차 올 날에 대한 기다림의 탄식이며 그날에 오는 온전한 구원을 입어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며 영원한 세상에서 분깃을 얻을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철학입니다. 그것이 바로 현세의 고통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방식입니다. 롬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이것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시금석은 이런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새 사람이 된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과 삶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에 의해 장차 올 영광의 일부를 맛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마다 장차 올 영광을 고대합니다. 궁극적인 영광 최종적인 성취와 하나님 자녀로서의 온전함에 대한 소망이 그에게는 견고한 현실로 다가옵니다.. “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