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8:15-16
2. 명제: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3. 제목: 하나님을 사랑함
바울 사도는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구별해주는 시금석으로써 기본적인 전제는 그가 새 생명 즉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내가 진정 그리스도인이 지를 확인하는 신약 성경의 기준에 따르면 “ 내 속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고 계시는 증거들이 있는가?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시금석이었음을 배웠습니다. “ 나는 영의 생각을 하는가? 나는 성령을 따라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이 내게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한가? ”라는 질문 앞에 답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유일한 시금석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두 번 째 시금석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참 그리스도인임을 구별해 주는 시금석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롬 8장 7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적대감의 자리로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을 반대하며 자신들의 관심사에는 무관심하고 심판석에 앉아 자신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기를 기다리는 존재로 여기기도 합니다.. 나의 삶이 어려울 때 환경이 나빠지고 전쟁과 재난이 일어날 때 어떤 느낌이 있습니까? ”왜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허용하십니까? “?“ 이런 불평이 여러분의 첫 번째 반응이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마음속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며 또한 나를 정당하게 공평하게 다루시는 분이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면 그런 느낌은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적대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말하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첫 번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마 22:37-39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믿기만 하도록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부름 받은 것은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또한 우리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 위함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적대감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하나님의 법에 적극적인 순종이 있어야 하며 그분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것만이 아니라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첫째 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언제나 예수님의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순종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속에 거하시느냐의 여부를 알고자 하면 그 원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입니다. 이분이 성령이 있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셨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임을 보여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다른 무엇보다도 혹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 아침에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믿음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어“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분을 보지 못하나 그분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영의 생각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그분을 닮고자 하는 열망으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까?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또한 사랑의 영이십니다. 또한 15절에서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바울 사도는 참 그리스도인은 양자의 영 즉 성령을 가진 자라 그 영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예수 믿을 때 우리가 받은 영 즉 성령님은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속박의 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고 느끼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이 너무 무겁다고 느끼지는 않습니까? 성경의 모든 요구는 엄격하고 잔인한 것처럼 느끼지는 않습니까? 바울 사도는 이것이 우리를 무섭게 만드는 종의 영이라고 합니다. 요한 사도는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물론 성경에는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니 경외심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으며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공손한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고통으로 시달리게 만드는 공포심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을 마치 폭군으로 생각하게 하는 두려움이 아니며 소심한 겁쟁이로 만드는 두려움도 아닙니다. 경외심은 오직 사랑으로만 알 수 있는 두려움입니다. 그것은 존경심에 기초한 두려움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를 주거나 근심을 끼치지는 않을까를 염려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 사이에는 어떤 모순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랑은 느긋하고 감상적이고 감성적으로 그치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경외심과 존경심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단순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특별하고도 구체적입니다. 그것은 부모를 향한 자녀의 사랑 즉 자녀가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 느끼는 사랑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능력과 위엄에서 절대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도의 사역과 성령의 활동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멀리 떨어진 사랑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의 특별하고도 밀접한 관계에서 생겨나는 사랑입니다. 시편 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 여러분은 실질적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의 아버지로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인간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영이신 성령님이 직접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며 예수님을 사랑하게 합니다. 이 사람이 성령을 소유하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참 그리스도임을 구별해 주는 시금석은 무엇입니까?
2. 죄에 대한 인식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 내가 나의 죄를 크게 의식하고 있을 때에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죄를 의식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바울 사도의 답은 이렇습니다. “ 우리는 죄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자각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거기에서 멈추시지 않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이 나의 죄를 인하여 그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세상에 보내셨다는 사실을 믿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죄의 정죄를 짊어지게 하심으로써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자녀의 지위로 받아 주신 것을 믿습니다. 나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행동과 행실로는 결코 자녀로 불리기에 합당하지 않지만 그러나 이것이 시금석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에 의해 하나님이 나를 그의 자녀의 일원이 되게 하신 것과 그러므로 비록 내가 죄를 범하였고 또 죄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내가 그분의 자녀인 것을 믿습니까? 참 그리스도인은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시험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을 때 무엇을 느끼는지를 조사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을 때 나는 무엇을 느낍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나의 느낌이 심판자 앞에 선 죄수의 느낌과 같습니까? 아니면 사랑이 많으신 거룩하신 아버지 앞에 잘못을 범하여 꿇어앉아 있는 아이의 심정과 같습니까? 판결이 어떻게 내려질까 전정 긍긍 하며 피고석에 앉아 떨고 있는 죄수처럼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느끼는 아이처럼 있습니까? 죄를 범했을 때 나는 그런 일을 행한 자신에 대하여 불쾌감을 느낍니까? 아니면 자신 속에 그런 일을 행하기를 원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에 대해 슬픔을 느낍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여부에 대한 시금석입니다. 만일 여러분을 무릎 꿇게 한 것에 대하여 그 불쾌감을 갖고 화가 나는 것으로 그친다면 여러분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 속에 있는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고 마음이 슬퍼진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행동이 오점을 남긴 이유로 불쾌감을 느낍니까? 아니면 자녀의 도리를 다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더럽힌 것 때문에 애통함과 슬픔을 느낍니까? 죄를 범했을 때 그토록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신 예수님에게 배은망덕을 저질렀다는 통회의 심정이 크게 느껴집니까? 저는 이것이 결국 최종적인 시금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된 자녀는 부모의 느낌이 어떨지에 대해 근심하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습니다. 참된 자녀는 그가 받을 벌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염려하는 것은 관계가 손상되었다는 것 즉 사랑이 상처를 입고 슬퍼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아닌 지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우리가 그분께 죄를 범했을 때 우리가 그분에 대하여 가지는 느낌과 태도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양자의 영이 있는지를 확실히 알고 싶습니까? 여기에 답이 있습니다. 요 21장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만난 베드로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노발대발하며 주님! 저는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지 베드로는 궁금하여 몰래 재판장에 숨어 들어와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그 집의 한 계집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너도 예수와 한패 지라고 말하자 베드로는 놀라 기겁을 하면서 나는 예수 같은 사람을 모른다 하며 3번이나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고개를 뒤로 돌리시니 베드로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때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밖으로 뛰어 나가 통곡을 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모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도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거물을 철시하려고 하니 어떤 분이 더 깊은 곳에 가셔 그물을 내려 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 말에 순종하여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혔습니다. 그 순간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요한이가 주님이시다 말하지 있던 다른 제자들도 비로소 눈이 떠여 부활하시어 자신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해염을 쳐서 주님 곁에 먼저 다가왔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친히 조반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 21: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 베드로가 대답을 했습니다. 요 21:15에서 “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두 번째 예수님이 이렇게 묻습니다. 요 21:16”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정말 더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네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겠지 “가련한 베드로는 다시 이렇게 대답합니다. ”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하시고”그러자 예수님이 세 번째 묻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물으시자 베드로는 근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깨지고 상한 심령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 21:17“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여러분도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주님 앞에 아무런 변명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에 여러분의 마음 깊은 곳에서 상한 음성으로 “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십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양자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입니다. 모든 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성령은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성령을 가진 참 그리스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