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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축복

wordlove 2021. 1. 5. 07:58

1. 본문: 5: 8

2. 명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3. 제목: 여섯 번째 축복/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누리는 복

 

만약 산상수훈의 복이 얼굴이 아름다운 자는 복이 있나니 라고 시작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관했겠습니까? 또 신체가 날씬한 자가 복이 있나니 라고 했으면 얼마나 많은 자매들이 실망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적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복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릴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1. 마음이란 무엇인가요?

복음은 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의식적이고 외적인 청결함에 집착하는 것을 꾸짖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음이 청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릇의 겉은 깨끗하게 씻었지만 안에는 더러운 것이 가득했습니다.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예수님이 지적하셨습니다. 종교의 외형에만 관심을 가졌고 더 중요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사람의 중심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리의 이해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임을 강조합니다. 마음이 무엇입니까? 마음은 사람의 인격의 중심으로 지정의로 구성되어 있는 전인격입니다. 마음은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음이 항상 모든 문제 꺼리의 중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사람의 비극은 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환경만 바꾸면 사람도 선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비극은 인간의 근본 문제가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것을 모르는 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완전한 환경이었던 에덴동산에서 일어났습니다. 사람을 완전한 환경에 둔다고 인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바울은 죄로 인해 인간의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말씀합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 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예리미아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문제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타락한 결과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모든 사람의 문제는 사람의 인격 중심인 마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지성을 발전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육만으로 사람을 선한 사람으로 만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최고의 교육을 받고도 무서운 악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라의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을 보면 일류 대학 출신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은 절망할 정도로 악하고 부패하다고 진단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고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2.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인간이 하나님을 보려면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청결은 헬라어로 카타로스 라는 말인데 첫째는 세탁된 옷 둘째는 겨나 쭉정이를 깨끗하게 제거한 순전한 알곡 셋째는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는 우유 또는 포도주를 뜻한다고 합니다. 청결은 빈 마음이 아니라 온전함의 의미입니다. 순전함의 의미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 아니라 한 가지 마음으로 집중하여 단순하게 한다는 뜻이며 어린이의 마음 같이 깨끗한 마음이란 뜻입니다. 이 깨끗함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뜻하며 하나님과 그 계시를 받는 동기의 청결함이란 뜻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처음 동기란 사실상 그리 순순하지 못되는 것이 많습니다. 오늘 날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님께서 기대하는 것만큼 그렇게 깨끗한 동기로 따랐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 사회적인 욕구, 세속적인 욕구로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동기로 예수님을 믿습니까? 문제는 그 동기들이 깨어지고 씻기고 순수하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 제자들도 이 같은 동기의 순수함은 오순절 성령강림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서야 비로소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깨끗한 마음이어야만 복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전함은 과거에 우리의 주인이었던 것들 돈, 이기주의, 질투심, 악마적 신들로부터 자유하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키에르케콜은 마음의 청결은 우리의 의지가 한 대상을 향해 온전히 드려진 마음 라고 정의했습니다. 24:4에서 깨끗한 손과 청결한 마음 을 가진 사람은 허탄한 것 즉 우상을 두지 아니하며 거짓 명세치 아니하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매우 신실한 사람입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서나 동일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외식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들은 교활한 면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외식하기를 좋아합니다. 외식 자는 가면을 쓴 자 즉 두 마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두 마음입니다. 바울이 롬 7장에서 내가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으나 내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법에 대항하여 싸워 죄의 법 아래 나를 사로잡아 가둔다.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서로 싸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두 마음이란 분할된 마음입니다. 청결한 마음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 마음입니다.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 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을 성경은 두 마음 즉 더러운 마음이라고 규정합니다. 청결한 마음이란 단순한 마음입니다. 루터는 식사 시간에 개가 음식 접시로 오가는 자기의 손을 움직이는 대로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개가 내손을 쳐다보듯 나도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며... 제게도... 저런 단순한 마음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단순한 마음을 하나님이 쓰십니다. 8:8“ 백 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 나이다예수님은 백부장의 단순한 마음을 보시고 하인의 병을 낫게 해 주셨습니다. 모든 믿음의 영웅들의 특징은 단순함입니다. 복잡한 마음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더러운 마음입니다. 아브라함도 노아도 다윗도 바울도 단순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삼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청결한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주셔서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7:26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으신 분 이라고 말씀합니다. 청결한 마음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음이 청결해야만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마음을 청결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이것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3.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인간의 마음은 원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본 사람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되고 그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빌립에게 14: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을 보는 것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본다는 말은 안다는 뜻입니다. 계시의 본체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마음을 깨끗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죄인이 어떻게 마음을 깨끗게 할 수 있습니까? 죄인이 청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험 없고 점 없으신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먼저 믿어야 한다는 말은 인생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이 나를 깨끗이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인간 노력으로 인간이 청결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말씀합니다. 명상이나 고행 극기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역사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때문에 3:5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구원 받든 인생은 두 번 태어납니다. 첫 번째는 보모를 통한 육체적인 출생이요. 두 번째는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사람의 힘이 아닌 위로부터의 출생 즉 성령으로 말미암은 신적 출생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란 곧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즉 중생한 사람을 뜻함이라고 해도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새 생명을 가진 청결한 인생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이 새 마음을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것을 완성하시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그분 손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적으로 만드시고 계십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제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날이 올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청결케 할 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야고보 사도는 하나님을 가까이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가까이하실 것입니다. 죄인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 라고 명령하고 게십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절때 우리 자신을 깨끗게 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나 자신을 시궁 창이에 그냥 마음대로 내버려 두어도 된다는 뜻이 압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그 다음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이란 바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생활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은혜의 방편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은혜의 방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영으로 육체적인 행위를 죽이면 살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서 그의 백성과 교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 될 때 성령은 함께 역사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겸손히 받고 순종할 때 육체적인 행위는 서서히 죽어가고 비로소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의 동기를 깨끗게 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몸으로는 해방되었지만 애급에서 때 묻은 노예적 근성과 우상 숭배로 인한 타락한 심령과 병든 의식이 계속 문제가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우리도 구약 이스라엘처럼 애굽 즉 세상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예수 믿어도 여전히 마음이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희미하게 보이고 믿음이 자라지가 않는 것입니다. 나를 깨끗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마음의 동기를 비교해 보십시오. 말씀은 우리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말씀 앞에 내 마음의 동기를 살펴 잘못된 것을 버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할 때 청결한 심령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기도 제목도 깨끗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 제목이 자신과 세속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우리의 선행도 봉사도 그 동기가 깨끗해야 합니다. 오른 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동기가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결하게 만드시는 데 사용하는 또 다른 도구가 환난입니다. 욥의 고난을 보십시오. 많은 고난을 겪은 욥은 마지막 고백이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고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사람이 청결해집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축복의 도구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으로 자기 마음을 더럽히지 않도록 결심했습니다.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 장에게 구하니 정결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도 다니엘처럼 한번 뜻을 정하는 결단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 예수님 닮게 해 주세요 라는 결단입니다. 저는 산상수훈을 준비하면서 산상 수훈의 복들을 기도 제목으로 잡았습니다. 주님! 저를 온유한 자로 만들어 주세요. 여러분도 자신의 약점을 들고 하나님 앞에 한번 결단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결심을 존중하시고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고난 때문에 성도가 망하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육체가 병들면 고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병들면 망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내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항상 정결하신 예수님과 가까이하십시오.. 예수님과 교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하십니다. 예수님께 가까이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 청결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