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8:3-4
2. 명제: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다.
3. 제목: 하나님의 구원 방식/칭의와 성화
1. 갈등
교리(진리)와 생활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교리를 충분히 이해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교리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 니이다”거룩하게 되는 데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거룩은 위대한 주님의 진리를 이해한 결과로서 우리 안에서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반복해서 교리를 설명합니다.
2, 갈등 심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무엇입니까? 왜 그리스도께서 “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죄를 인하여 ‘‘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죄를 인하여라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롬 8:3절에서 “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속제 제물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라고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은 주님이 오신 중요한 목적은 “ 속제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정죄에서 구원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약도 같은 가르침을 가르칩니다. 구약에 있는 모든 모형 제사 제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왜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가 이 일을 이루셨습니까? 그리스도를 “우 리를 대신하여 죄를 알지 못하시는 분으로 죄를 ””삼으심으로써 그렇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죽음을 맛보려 ‘‘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본래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속 제제 물이 되셔야 했고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 이 되어야 했습니다. 바울의 위대한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 결코 정죄함이 없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속제 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롬 3:24-26“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롬 3: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 죄로 인하여 “라는 간단한 이 말이 이제까지 우리가 말했던 구원 방식에 관한 모든 것을 요약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죄로 인하여라는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라는 구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죄를 위하여 보내서 육신에 죄를 정하심으로써 하셨습니다. 정죄란 ‘죄를 심판하다’ 또는 ‘판결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율법은 그런 의미에서 죄를 심판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비난하지만 결국 죄를 판결하는 의미에 있어서 죄를 ‘심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에 관한 한 하나님의 법정에서 완전히 심판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이 세상에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계셨던 자기 아들 안에서 우리 죄를 정죄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그는 자기 아들을 육신의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육신 안에서 죄를 심판하시고 죄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 안에서 라는 말을 강조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 본성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죄는 인간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되었습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몸 안에서 죄를 정죄했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계실 때 육신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의 죄는 그 안에서 심판 받았습니다. 죄에 대한 심판이 그에게 내려졌으며 그에게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요 영광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죄를 위한 속 제제로 삼으실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4절”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에 답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려하심이라“ 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율법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심판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칭의를 의미하며 우리가 “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롬 7:4, 6“롬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은 8:4절과 같은 논증입니다. 구원은 칭의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이상이 있습니다. 우리는 “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어야 ” 합니다. 롬 7:6절에 ’섬기라‘’ 섬기라 ‘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새로운 방식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점에 머물지 않습니다. 물론 ’칭의‘’ 칭의‘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새로운 방식으로 섬겨야 합니다. “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열매를 맺도록 ’속제 제물‘ 이 되셔야만 하였던가에 대한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답변은 우리가 율법에서 구원받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살 수 있게 되며 ’’ 하나님에 대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먼저 율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롬 8:2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3-4절도 같은 내용입니다. 본래 우리는 죄의 통치와 지배와 세력 아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첫째로 만일 죄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죄의 힘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죄의 권능은 율법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를 어떻게 하면 죄에게 권능을 주는 율법을 제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입니다. 죄를 위하여 ’’ 자기 아들‘ 이 죽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어떻게 그가 이 일을 하십니까? 율법의 교훈을 지킬 뿐만 아니라 율법이 선고한 심판을 담당하시고 죄와 죄인에게 내려져야 할 요구를 담담하심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고 율법은 무능합니다. 게다가 율법이 죄의 권능이기 때문에 율법이 상실할 때 죄도 그 권능을 상실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처리하실 때에 죄도 역시 처리를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권능은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죄의 영역과 통치와 지배와 권능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죄는 율법을 통해서 자연인(불신자)을 정죄합니다. 그것이 첫 번째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심화시키고 자극하는 것이 율법이었는데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의 충동을 심화 시키고 자극하도록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었던 그것이 사라졌습니다. 죄는 그것에 대하여 죽었고 나에 관한 한 더 이상 그것은 권능이 없습니다.
3. 전환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무엇입니까? 적극적인 면을 살펴봅시다.. 롬 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8장에서는 우리가 ’’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2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언급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지위는 적극적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고 그는 머리요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입니다. 그의 능력과 생명이 내 안에 있으며 그는 내 안에 성령을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율법 및 아담과 연합되어 있는 이상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혼하기 위해서 먼저 율법과의 결혼 관계를 중단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 죄를 위하여 ‘ ’’ 죄 있는 모양으로‘ 보내어졌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율법은 아직 존재할 것이고 율법이 존재하는 한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력은 이제 저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제 안에서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생활과 권능 은혜의 왕 노릇이 이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며 우리 속에서 활발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으며 새 방식으로 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하고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칭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간 성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안에 있는 순간 이미 성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도 이 성화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베드로는 “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고 ” 이것이 모두 성화 구원의 말씀입니다. 딛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 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죽었을 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에는 완전하게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말씀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자신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살 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이 일은 세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진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간 시작됩니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화를 시작하여 그것은 하늘에서 완전하게 되어 ‘점도 티도 없이’ 될 때까지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열매 곧 의에 대하여 거룩에 대하여 열매를 맺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롬 6장에서 이점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지체를 ‘의와 거룩의 병기로’ 드리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대단원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화 구원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죄를 인하여’ 보내실 때 가졌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는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율법의 요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을 한쪽으로 제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났습니다. 죄가 우리를 향하여 가진 능력과 왕 노릇의 권세를 뺏기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우리 몸속에 남아 있지만 그것은 우리 주인이 아니요 우리로 더 이상 그것의 지배와 통치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걱정시키고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왕 노릇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새로운 영역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으며 그와 결혼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이가 우리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빌 3:12-13“ 빌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선한 뜻을 두고’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해야 할 큰 원리는 율법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어떻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요?라는? 문제였습니다. 하나의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보좌를 떠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태어나 이 세상에서 살아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영혼은 ‘속죄제물’‘속죄 제물’이 되셔야 했고 우리의 죄가 그에게 담담시켜야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심판당해야 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셔야만 했습니다. 죄가 ‘그 안에서’ 정죄받기 위해서입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자들은 그의 생명의 능력에 연합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안에 있는 성령이 우리 안에 있으며 그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율법의 요구가 우리 안에서 충족되는 것입니다. 칭의만 아니라 성화 구원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