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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도(수정본)

wordlove 2021. 1. 14. 07:52

1. 본문: 8:14

2. 명제: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다.

3. 제목: 성령의 인도

 

신약 성경은 대부분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확신이 필요한 것은 대적 마귀가 항상 구원의 기쁨을 빼앗고자 하며 예수님 대신 자기 자신과 자기 속을 들여다보게 하고 율법 아래 가두려 들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들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믿고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둘째는 성부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있습니까? 셋째는 성령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쫓아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니지를 구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이제 그는 성령의 영역 안에 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의 인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의 백성들을 인도하실까요?

 

1. 성령의 인도함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기 인도라는 말은 억제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의 손이 붙잡힌 체 생각 없이 끌려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억제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성령의 억제력을 느끼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어깨를 내리누르는 힘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성령과 교제하는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성령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성령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자신을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인식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그의 자녀를 인도하실까요? 일단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유념하십시오. 거의 압박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가볍게 인도하실 수도 있고 완전히 압도당할 정도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중간 정도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볍더라도 억제하시는 것을 느낀다면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시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성경을 통해 찾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예는 초대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의 모습입니다. 초대 교회는 금식하며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바나바와 사울 즉 바울을 교회 일꾼으로 세우는 예를 보게 됩니다. 13:1-2“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성령의 인도를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교회 일꾼으로 세웠다는 기록입니다. 다른 한 예는 초대 교회에 일부 유대인 출신 교인들이 예수님 믿기 전 유대인 습관대로 예수님만 믿는다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해야만 구원을 얻는다며 교인들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각처에서 이 문제로 교회가 혼란에 빠지자 사도들이 모여 의논을 하여 그 결과를 발표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피 공로를 믿어 은혜로 얻는 것이니 더 이상 할례를 행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성령을 인도를 따라 결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15: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이것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이끄시는 중요한 예들입니다. 사도행전에서의 두 경우에 성령이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먼저 귀에 들리는 육신의 음성으로 인도하셨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의 방식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의 생각에 압박을 가하는 것입니다. 그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교인들이 모여 기도하며 의논을 했습니다. 어떤 생각이 떠올라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게 하시고 모든 것이 그 방향을 가리키도록 조종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압박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까?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성령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예수님 앞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스스로 결심한 것입니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다 하셨구나! 하나님이 여기까지 날인도 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는 아시아에 가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성령이 길을 막습니다. 16:6-7“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행행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이처럼 성령은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시고 나아가지 못하게 저지하기도 합니다. 온갖 노력을 다해 계획해 놓았는데 그 일을 할 수 없도록 막으시는 성령의 인도를 경험하신 적이 없습니까? 바울이 이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성령이 이렇게 하실 때에 우리는 갈등을 느낍니다. 머리로는 완벽하게 확신하는데 영혼에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성령이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은 적극적으로 일하시고 소극적으로 일합니다. 나의 생각에 압력을 가하고 영혼 즉 감정에도 압력을 가합니다.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시고 나가지 못하게도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존재를 항상 인식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과 사귀며 교제하고 있다면 자기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붙들림을 받아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가 도망가거나 태만하게 미적 거릴 때 성령은 우리 어깨를 떠밀고 몸을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반대로 자기 확신과 육신의 열심히 나아갈 때는 붙잡고 세워 다시 생각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이 일을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보냄 받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성령의 인도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까? 과거의 삶에서 이렇게 인도함을 받은 예들을 찾을 수 있습니까?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 나의 나 된 것은 성령의 인도로 된 것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령의 억제의 또 다른 모양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의 책망과 정죄를 받을 때 이것을 느낍니다. 그리스도인도 항상 죄의 유혹을 받으며 적대적인 세상에서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공격을 받습니다. 온갖 세상 미디어 매체의 유혹에 우리의 믿음의 끈을 놓치기 쉽습니다. 세상에 노출 되어 있고 그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 상태로 머물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마음이 영 불안합니다. 책망 받고 정죄받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아이가 방에서 못된 짓을 하는데 부모가 불쑥 들어가면 화를 냅니다. 당연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부모이기에 개의치 않고 들어가서 중단시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령이 오셔서 화나게 하고 즐거움을 망치며 정죄하고 책망하는 일을 합니다. 성령은 그의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그대로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위해 택하신 자입니까?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지금 당장 여러분이 그것을 원하든 원치 않던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 목적지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의 백성들을 위해 계획해 놓으신 그 자리로 데려가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정해 놓으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지 않으려 해도 하나님이 가게 하십니다. 혼내고 때려서라도 데려가십니다. 그러므로 제발 고집 피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손해 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무궁무진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억제하십니다. 선량하고 도덕인 사람도 이것에 대해 모릅니다. 도적적인 사람도 양심의 고통과 자신의 기준대로 살지 못했으므로 자괴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한 짓을 부끄럽게 느끼며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도록 촉구하시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자녀는 성령님이 곧 자신의 동반자로 자신을 다루시며 정죄하시며 합력해서 결국 선으로 인도하심을 감지합니다. 성령이 내 죄를 깨우치시고 회심하게 하시며 믿게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항상 이렇게 일하십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한 구체적인 방편은 무엇입니까?

성령이 인도하실 때에 무엇을 통해서 인도하실까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성령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항상 성경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하시며 성경을 즐거워하게 만듭니다. 성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벧 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 애기는 본능적으로 엄마의 젖을 좋아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는 영혼의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본능적으로 좋아합니다. 물론 좀더자라 아이가 되면 고집을 피우고 단 것만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 때 아이가 다해 달라는 대로 해 주면 안 됩니다. 편식하게 되어 건강을 해칩니다. 성경도 좋아하는 부분만 좋아하는 편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적 건강을 해칩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맛을 알고 있습니까? 성경 읽기를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설교 시간이 기다려지며 말씀 듣기를 사모하십니까? 성경을 통한 지적인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취미 삼아 좋아하느냐라는 질문이 아닙니다. 영적인 즐거움을 느끼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적인 즐거움인지 영적인 즐거움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습니까? 그 차이의 시금석은 성경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성경을 통해서 대단한 지식과 이해를 얻었다면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점검해 보십시오. 그러나 좀 더 겸손해진다면 여러분은 아주 좋은 하나님의 자녀 됨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에 빛을 비추시며 무엇보다도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에게 하신 2000년 전 말씀이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구약시대의 다윗 왕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내 이야기네! 다윗한데 이런 면이 있었구나. 그런데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는데 이렇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자신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불신자에게는 절대 이런 일을 해 주시기 않습니다. 단순히 지적인 관심만 가진 사람에게는 절대 이런 일을 해 주시지 않습니다. 설교 시간에 직접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구나 느끼는 사람, 자신을 책망하고 정죄하는 말씀으로 듣는 사람, 나에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말씀으로 들리는 사람, 점점 더 주리고 목마르게 만드는 사람, 살아 있는 말씀으로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과 생생한 영적인 관계는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불신자는 평생 성경을 읽어도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들어도 실상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영혼의 양식입니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과연 성경이 여분에게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말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성령의 인도의 또 다른 한 방편은 기도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사셨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분에게 성령을 한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3: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 그분은 성령이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의 삶에 나타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시간을 들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성령은 항상 기도하도록 이끄십니다. 모든 시대 참 성도들은 기도의 열망을 느꼈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본인들은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흔들리며 기도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더 기도하고 싶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예외 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 영적인 사람이 될수록 기도하기를 즐거워하고 기도를 의지하게 되며 기도가 얼마나 큰 특권인지 절감하게 된 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열망하는 마음은 참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인 것입니다. 롬 8:26-27“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연약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연약하지 않다는 사탄의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성령은 연약한 그의 백성을 도우십니다. 바울 사도는 환난 가운데 탄식하는 성도들에게 성령도 우리를 도우시나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할지 모를 정도로 힘겨운 상황과 형편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는 그렇다. 바로 그때 성령이 그 상황을 떠안고 하나님의 자녀인 너희를 위해 간구하기 시작하신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성도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탄식할 뿐입니다. 이런 삶이 나타나는 가장 영광스러운 특징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가장 훌륭한 시금석입니다. 아이가 혼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달려가서 혼란과 슬픔과아픔에 겨워 한숨짓고 흐느낍니다. 그냥 흐느끼며 탄식하면서도 자기 마음이 다 전달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대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 주님! 주님! ” 하는 신음 소리만 간혹 내뱉을 때가 있습니다. 그 신음소리에는 이제 것 기도했던 모든 말에 담긴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탄식과 갈망 하나님께 달려가 그 품에 자신을 내 던지는 심정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내 아버지이시니 모든 걸 아시지요. 말하지 않아도 다 아시지요 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그렇습니다. 나는 이렇게 탄식만 해도 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십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자녀를 위해 대신 간구해 주십니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이 중에 한 가지라도 있다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십시오, 그 한 가지를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드리시고 그분을 찬송하며 그를 더 사랑하며 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기꺼이 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부터 무엇을 하더라도 먼저 성령님께 묻고 나아가십시오. 성령님의 인도를 먼저 구하십시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이 인도를 받으며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