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딤 후 3:15-17
2. 명제: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신다.
3. 제목: 성령과 말씀/성령의 인도하심
1. 갈등
롬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생활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전케 하십니다. 성경과 성령의 규형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령님은 성경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퀘이크 교도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17세기에 시작된 모임입니다. 조지 폭스라는 사람이 시작했습니다. 처음 이들은 매우 지적이고 도덕적인 사람들로 전통적인 신앙을 고수했으며 사람들로부터 평판도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이들은 변화 되어 갔습니다. 이들은 “ 내적인 빛 즉 성령의 인도하심과 조명 내지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교리를 강조했습니다. ”그들은 설교나 진리를 설명하는 것의 중요성을 등한이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내적인 빛과 성령의 조명이 있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직접 말씀하시는데 성경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점점 성경의 말씀을 소홀히 하고 직접적인 성령의 인도와 조명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신앙이 흐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설명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 당신이 뭐라 하던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계시가 내게 임했고 날 찾아 왔습니다. "라고 반박하며 말씀보다 개인의 내적인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성경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은 기독교와는 다른 철학적인 성격을 뛰는 모임으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내적인 조명을 많이 받은 위대한 도덕적 스승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내적인 빛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점만 깨닫는다면 굳이 중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죄를 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죄의 형벌을 담담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영적인 불꽃을 주셨기 때문에 그것만 타오르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빛이 찾아온다고 주장합니다.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진리로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볼 때 퀘이크 교도들은 진리를 완전히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분별할 수 없는 사람들은 ” 퀘이크 교도들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돋는 헌신을 보십시오. “라고 칭찬을 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도 필요 없고 새로운 중생의 필요성도 거절합니다. 이들은 성경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만 믿고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진리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삶은 분리 될 수 없습니다. 처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칭송을 받아왔던 퀘이크 교도들은 사랑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결국 간음도 허용하고 동성애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현대적인 깨달음이라고 주장합니다.
2. 갈등심화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누가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딤 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바로 성경이 동성애와 간음을 금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현대적인 사고를 가졌다고 스스로를 주장하는 퀘이크 교도들과 소위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의 가르침은 구태의연한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가르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가르침은 율법주의이며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간음도 동성애도 다 인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완전히 부인하고 있습니다. 퀘이크 교도들이 이런 지경에 이런 것은 내적인 빛 즉 성령의 인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해 보지 않는 탓인 것입니다. 그들은 내적인 빛 성령의 인도만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객관적인 말씀보다 자신의 느낌과 이해와 깨달음을 의지합니다. 이것을 성령의 인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의 결혼을 정하셨다고 말합니다. 마 19: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부부는 가족의 신성함과 자녀의 유익을 보호하는 유일한 기본 단위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점을 생각해 볼 때 동성애와 간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잘못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동성애와 간음을 사랑이라고 정당화합니다. 퀘이크 교도들의 문제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함으로써 객관적인 기준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인도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인도가 정말 올바른 것인지 점검할 기준이 없습니다. 악한 영이 존재하기에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으나 시험하고 조사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성령과 말씀과의 균형을 잃으면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도 비틀거리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이 이해하는 사랑은 육신의 욕정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세 종류의 사랑에 대해 말합니다. 첫째가 에로스입니다. 동물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입니다. 물론 이런 점은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에로서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인 우정입니다. 친구 간의 사랑인 헬라어로 필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랑 자비와 순결과 거룩함이 넘치는 사랑 인간에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사랑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3장에서 아가페 사랑을 다룹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 자 내가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나 필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다. 이 사랑이 있어야 한다.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 해도 크나큰 선행을 행한다고 해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의미가 없다. ”아가페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즉 예수님을 통해서 이 사랑을 보여 주신 사랑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바로 퀘이크 교도의 비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가장 낮은 형태의 사랑인 육체적인 사랑인 에로스를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외면하다 보니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에 대한 바른 이해를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이 사랑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랑에 대한 성경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아가페 사랑 대신 인간의 육적인 사랑인 에로스 사랑에 기초하여 모든 것을 정당화합니다. 동성애와 간음을 사랑이라고 용인했습니다.
3. 전환
이들은 율법과 은혜를 대조하며 두 가지를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율법과 사랑을 서로 대척점에 둔 것은 그들의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두 가지는 결코 반대되지 않습니다. 두 가지는 서로 같이 갑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 교인들에게 롬 13:6“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 “ 요컨대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빛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더 이상 땅의 법에 메일 필요가 없다. 세금을 낼 필요도 없고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할 필요도 없다 “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그릇된 태도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무법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롬 13:7-8” 롬 13:7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은혜 받은 천국 백성도 이 세상 법을 잘 지켜 세금도 잘 내라는 것입니다. 율법과 사랑을 대척점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사랑을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정욕입니다. 에로스와 아가페를 구별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사랑인 아가페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렇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뿌려진 사람은 자기 자신도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진정 사랑하는 것입니다. 막 12:29-31”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너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것은 좋은 시금석입니다. 이웃에게 악한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이웃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이웃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자기 욕심을 누르고 이웃 편을 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는 욕정을 사랑이라고 미화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니 이런 비극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퀘이크 교도를 예로 든 것은 말씀과 성령을 분리하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성령이 쓰심으로써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 점에 유념하라고 하면서 그 성경에 비추어 모든 것을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딤후 3:15-16“ 딤후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의 말씀을 복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진리의 보고서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를 주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나느니라. 성경을 떠나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진리를 알려 줍니다. 성경은 성령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입니다. 이단들의 특징이 이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 생각을 점검해 보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 즉 내적인 깨달음에만 귀를 기울이다가는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의 백성을 악한 자의 계략에서 보호하기 위해서며 우리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보호하여 온전한 믿음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말씀과 성령을 분리하며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하고 자기 경험을 앞세우며 “ 나는 빛을 받았고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마침내 비극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19세기에 다양한 분파 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중에 특별한 빛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오 나이 더 컴뮤니트라는 한 분파 운동은 자신은 빛과 성령의 충만을 충만히 받아 몸에 광선이 나온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이런 축복을 경험하려면 자기 몸과 접촉을 하면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의 몸에서 발산하는 축복을 받기 위해 남자든 여자든 그와 동침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건 너무 이상한 경우가 아닙니까?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퀘이크 교도들도 처음에는 정통신앙을 고수하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과 점점 멀어져 말씀의 인도가 아닌 직접적인 빛의 인도를 구하다가 성경의 기초만 알아도 누구나 잘못된 죄일 뿐 만 아니라 우스운 짓임을 알 수 있는 일을 저지르는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1992년 다미 선교라는 자들이 예수 재림 날짜를 선포하고 자신들만 그 날짜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교회에 큰 해를 끼치고 전도의 문을 막고 진리를 훼손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설교가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재림 말만 하면 재림파가 아니가 의심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주동자 이 장림이라는 가짜 목사는 지금 사기죄로 감옥에 가있습니다. 성경의 기초만 알아도 속지 않을 짓을 온 세상이 속았지 않았습니까? 모든 이단의 특징은 성경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직접 빛을 받았다.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데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받았다고 하는 소리들이 결국 마귀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 충실한 신앙은 결코 이런 가르침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책망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 ”라고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저의 목회 중에 직접 일어난 부끄러운 사건입니다. 한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1992년 이 장림 주장에 동조하여 나가고 말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여 주면서 설득을 해도 오히려 저에게 목사님은 그 날짜를 받지 못했지만 그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즉 목사님은 신령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을 못했다는 투로 나를 비웃으면서 그들의 주장에 동조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령의 빛을 받았고 음성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점검해 보지 않으면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4. 대단원
그래서 바울 사도는 5:18절에서 성령 충만 받으라 말씀하시다가 골 3:16에서는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말씀에 충만하라고 말합니다. 즉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참 신자인 것입니다. 성령이 말씀 위에 계시며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는 것에 대해 감사합시다.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 성령에 순종하는 복된 신앙이요 건강한 신앙인 것입니다. 말씀보다 자기 경험을 강조하는 신앙은 참으로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나는 믿습니다. 이 신앙이 성령의 인도를 바도 있는 참 신앙입니다. 성령 충만은 말씀 충만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성령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시고 공부하시고 설교 시 집중해서 잘 들으시되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과 행하지 않는 사람과의 차이를 예수님이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집은 짓은 사람은 힘들어 기초를 닦는 대신 모래 위에 쉽게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면 그 집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져 버립니다.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는 사람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역경이 오고 환난이 오며 그 믿음이 싶게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신앙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인생의 환난이 폭풍이 찾아와도 그 신앙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말씀을 통해 그 인생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2021년 성령 충만 말씀 충만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충만이 받아 승리하는 여러분과 저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