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롬 8:5-8
2. 명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이다.
3. 제목: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
1. 갈등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변화된 사람이요 그의 전체 지위가 옮겨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비 그리스도인과는 전혀 달라야 할 어떤 일을 그리스도인에게 행하셨습니다. 그는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롬 8: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인을 적극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은 5절 “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6절에서 또 다른 진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육신의 생각 ’을 따르는 사람은 영적인 측면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 영의 생각 ’을 따르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살아있기 때문에 영의 일들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은 날마다 생명의 분량이 더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죽어 있기 때문에 육신적인 일들을 생각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은 영적인 일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전도해 보십시오, 성경을 읽어 보라고 권유해보십시오. 그런 일이 그들에게 아무런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는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감동하지 못하고 감화를 받지 못하며 즐겁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영의 일들을 생각하고 그가 살아있고 생명이 약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의 현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는 이점을 밝히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이 생명의 문제입니다. 롬 5장 10절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으며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확신과 궁극적 확실성에 대한 기초가 됩니다. 이 점이 롬 8장의 주제입니다. 롬 5:12절”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바로 그것이 아담이 우리에게 한일입니다. 반면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합니까?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사망의 반대는 ’ 생명 ‘입니다. 17절-18절에서는 더욱더 특별하게 이 문제가 나타납니다. ”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갑니다. ‘ 의롭다 하시고 또한 생명을 ’주십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았는데 이 생명을 받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사도는 그 칭의와 생명을 함께 묶어 말하고 있습니다. 롬 6장에서도 이 문제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
2. 갈등 심화
그리스도인은 새 생명 가운데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10절-11절“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롬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살았다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해야 하며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에 비추어서 살아나가야 하며 더 이상 죽지 않고 하나님에 대하여 살아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롬 7장은 생명에 대한 강조를 되풀이합니다.. 4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 이것이 롬 8:2절에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바로 이것이 사도의 대주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사. ’ ‘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 사람입니다. 영원토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계신 ’ 주 예수 그리스도께 시집간 사람 ‘입니다. 바울은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라고 말하였는데 바로 그 말씀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여러분은 죽음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벧후1:4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신분이 그러합니다. 그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위치 새 능력 새 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온 생명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의 주제입니다. 칭의를 포함한 모든 것은 바로 이 주제에 집중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이 주제를 향하고 있습니다. 거듭남의 교리는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작용으로 거듭나며 ‘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가 된 것입니다. 주님이 이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요 5:24절에도 비슷한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 5장에서 신자는 ‘ 영생을 가지고 있다 ’는 말씀을 듣게 되고 그 결과로 정죄에 이르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가 오신 것은 단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한 것만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영생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이것은 신약 성경의 주요한 교리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살리셨고 이 생명을 주십니다.
3. 전환
‘ 이 생명 ’ 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이 그리스도인체 할 수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을 구별 짓는 방식은 이 생명의 시금석을 적용시켜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죽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는 자기 속에 하나님께 대한 반응을 나타낼 능력이 있음을 압니다. 자석과 쇠붙이 사이에는 서로 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도 같은 특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무리 나쁜 상태에 있거나 저주받은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이 생명의 증거는 나타나게 됩니다. 벧전 2:2절“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아이가 젓을 사모하는 것은 갓난아이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갓난아이가 아무리 어리고 아무리 유약해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가 젓을 사모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거듭난 신자는 그것을 압니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종교는 그들 밖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자기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것이 자기 속에 있음을 압니다. 그것이 아무리 약해도 자기 속에 있음을 압니다. 자기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그가 하는 모든 일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비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슬픈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모든 노력을 해도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일은 죽은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히 9: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 ’ 죽은 행실 ‘그 행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선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종교적이고 도덕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실들은 죽어 있습니다. 실제로 조화는 살아 있는 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화는 죽어 있으며 생명이 없으며 변화가 없습니다. 생화는 시들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주면 그 꽃은 고개를 쳐들고 활짝 피어 그 영광과 아름다움을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조화와 생화는 죽은 행실과 살아있는 행실 차이를 예증해줍니다. 또 다른 차이는 그리스도인의 활동은 결코 가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사람들이 선물을 매달아 놓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열매가 열린 살아 있는 나무 사이의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선물로 장식합니다. 그 나무는 어떠한 것도 생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살아 있는 나무 나무속에 있는 진액과 능력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일은 단순히 의무감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발적인 자기 속의 생명의 발로입니다. 이 점이 그리스도인체 하는 사람과 그리스도인 사람 사이에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도 자기가 교회에 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을 읽고자 시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의무감이요. 억지로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영적으로 살아 있게 될 때 젓을 사모하는 어린아이에게 있는 자발성이 있게 되고 마치 젓을 사모하는 어린 아이와 같고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손을 내미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만일 그 속에 생명이 없으면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식이요, 기만이요 갖다 붙인 것입니다. 그기에는 언제나 생명을 지시하는 순전성이 없게 됩니다. 마 12: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그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35절 “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이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 샘 ‘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저 물통에 비유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통에 물 공급이 중단되면 물통은 비게 됩니다. 샘은 안에서 물이 계속 흘러나옵니다. 내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을 계속 퍼내어도 여전히 물은 같은 수준으로 흘러넘쳐 납니다. 주님이 강조하신 생명의 자발성이 이러합니다. 또한 거기에는 따스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행동하는 방식에는 자발성과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말이 의도하는 일부입니다. 생명의 정도가 아무리 작다할지라도 그것이 존재하면 그 생명은 드러납니다. ’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 영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영의 일들을 계속 생각함에 따라서 그 생명은 갈수록 자라납니다. 그는 갓난아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가 됩니다. 계속해서 성숙합니다. 점점 성숙하여 영적 어른이 됩니다. 우리는 은혜 속에서 자라며 주를 아는 지식에 있어서 자라납니다. 생명은 결코 고정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필연적인 성장의 요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진리는 낙심 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낙심 자는 죽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 나쁘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지 아닌지에 대한 결정은 그가 행하는 일로 내릴 수 없습니다. 낙심 자는 그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합니다. 표면상으로 도덕적인 사람보다 훨씬 악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낙심 자가 아무리 심각하게 죄를 짓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자녀요 생명의 씨앗이 그 속에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최종적인 증거는 낙심 자는 언제나 반드시 회개하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는 죄를 지으면서 비참해져있었습니다. 그는 전적으로 세상의 방식으로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 정죄 감 속에서 ‘ 행해집니다. 그는 그 속에서 비참해집니다. 그는 계속해서 정죄 감을 느껴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범법자라는 것을 느끼고 그가 새로운 본성과는 정반대 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생활 속에서 알 수 없는 깊은 비참함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모든 것은 그가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생명이 감추어져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요 17:3절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4. 대단원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에게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압니다. 그는 자기 속에 하나님 의식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의식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은 실제적인 존재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존재함을 알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압니다. 그는 더 큰 지식을 갈망하며 더 깊은 지식에 목말라합니다. 롬 8:38-39”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롬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는 사실을 압니다. 영의 생각을 가진 자는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 내가 온 것은 저희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케 하려 함이로다 “여러분은 이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을 향해서 주리고 목마르며 사모합니까? 그리스도인은 ’ 신의 성품 ‘에 참여한 자입니다. 또한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 그를 힘입어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유대인들은 물리적인 의미에서 먹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먹고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 생명의 떡 ’입니다. 우리는 그를 먹고 살아갑니다.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로 살아가지 않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살아가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아가며 우리는 그의 생명의 동참자들입니다. ‘ 영의 생각은 생명이라 ’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