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신학/교리사

성경론

wordlove 2009. 8. 17. 07:36

성경론


강의: 정노훈 목사


1,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성경 관

그리스도와 사도들은 자주 (구약)에 호소하면서 구약을 정확 무오한 권위서로 인정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계획의 표현으로 보고 (성경)에 대한 호소를 모든 변론의 종결로 삼았다.


1) 그리스도의 성경 관

예수님은 요 10:34에서 “성경은 폐하지 못 한다” 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시편 82:6의 한 구절을 선택했다. 예수님의 인용의 의미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동일시. 예수님은 ”율법“을 성경 전부로 보고 그것은 폐하지 못한다고 선언. 성경을 최고법정으로 인정하셨다.:마 5:17-19) 예수님께서 자주하신 말씀의 주제는 성경 기록의 필연적인 주제였다.(마 26:31, 막 9:2 이하 등) 제베르크는 ”예수님은 구약을 무오한 권위서로 말씀하시고 또한 사용하셨다.(마 5:17, 눅 24:44)


2) 사도들의 성경 관

바울은 한때 성경을 인격화하여 하나님과 동일시했다. 롬9:17“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롬 11:2, 갈 3:8, 22:4, 4:30, 딤전 5:18) 이것은 성경을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 한 때에만 있을 수 있다.


딤전 3:16절은 성경의 (영감)을 강조하는 가장 뛰어난 구절“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 말은 딤후 3:16  “pa'sa  형--주여-단  3956  pa'"  모든  All  All     grafh;  명-주여-단  1124  grafhv  성경은  scripture  Scripture   qeovpneusto"  형--주여-단  2315  qeovpneusto"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is inspired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운을 불어 넣으셨다”이다. 월 필드는 성경은 인간의 작품인데 여기에 하나님께서 기운을 혹은 하나님의 생각을 불어 넣어 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성경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작품이요. 여기에 (하나님의 사상)을 불어 넣으셨다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도 벧후 1:21“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베드로는 구약 성경을 예언으로 보고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감동하심을 입은  as they were moved  moved  

워필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딤후 3:16과 같이 성경의 신적 기원에 대한 직접적인 단언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히 성경의 신적기원 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성경을 산출하신 방법까지 말하고 있다. 그 방법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말한 사람들을 기구로 한 것이다. 더욱이 그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하셨으니 그 역사는 사람들을 감동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말한 사람들은 여기서 성령에게 들리어,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성령께서 선택하신 목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그들이 말한 것들은 성령의 것이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신약의 여러 저자들은 자기들의 저서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기록된 것임을 의식하였다.(고전 7:40, 소후 13:2-3, 골 4:16 등) 바울은 고전 14:37“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계 22:18-19“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 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사도 요한이 자기 저서에 대하여 인간의 작품 이상의 권위를 증거한 증거라 할 수 있겠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성령이 충만하여” 교훈하였다는 말을 자주 보게 된다.(행 4:8, 13:9)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이 권위 있는 것으로 가르쳐서 천사라도 다른 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갈 1:7-8“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도들은 자기들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따라서 권위적이라고 의식하였다.(고전 2:4, 13. 살 전 2:13)


3) 구약의 영감사상

구약의 일관된 교훈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호 1:1, 암 1:3, 미 1:1, 말 1:1) 선지자를 가리키는 aybin:(nabi)는 (대언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대언자라는 의미다. 어떠한 경우에도 선지자는 결코 자기 자신의 권위를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선지자가 된 것은 자기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 선지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신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신 18:18“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씀을 선지자의 입에 넣어 주셨고 선지자는 그 말씀을 그대로 말할 뿐이다.(사 5:16, 59: 21, 민 2: 38)


선지자들은 자기들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는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기를” 등이다. 이와 같은 표현이 구약에서 3,880번 이상이나 나온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표현은 이사에서만 120회, 예레미야에서는 430번, 에스겔 329, 아모스 53번, 학개 27번, 스가랴 53번 이상이나  나온다. 이것은 구약의 신적 저작권을 말씀하신다.


4) 성경 영감에 관한 제설

영감 설에는 다음 네 가지가 있다.

(1) 첫째 설은 성경은 다만 신적 영감 없이 기록된 비범한 인간들의 책이라는 것이다.

천재적인 예술가, 저술가, 시인, 음악가들이 독창적인 걸작들을 만들어 내듯이 종교적 천재들도 경전을 저술 하였다. 호머의 에딧세이, 모핫멧의 코란경단테의 신곡, 섹스피어의 비극, 그리고 힌두 경전들과 같은 수준의 문헌을 쓸 수 있었다. 성경은 모든 저작물 가운데 최고의 책으로 본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은 인간이 만든 책이며 하나님의 간섭에 의해서 되어진 책이 아니다. 이런 학설을 (자연적 영감론)(natural inspiration)이라 한다. 이것은 참된 영감을 부정한다. 인간의 저작권을 높이고 하나님의 저작권을 배제하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불신앙의 표현이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찬란한 인격이 순결, 사랑, 의, 완전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것은 이 세상  어떤 문헌에도 찾을 수 없다. 루소는 “이것은 인간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다” 만일 성경이 진리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주려고 하는 그 목적을 전적으로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2) 둘째 설은 성경은 부분적으로 영감 되어 있다는 (부분적 영감설)(Partial Inspiration)이다.

18세기 초자연론(Deism) 과 이성론(Rationalism) 의 영향아래 화란의 알미니안파 신학자 Jean Leclerc(1657-1736) 이래 부분적 영감 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게 많았다. 이 설은 다음과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a. 영감은 저자의 사상에만 된 것이요 언어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상은 신적으로 영감 되었으나 언어는 단순히 인간저자의 선택에 의한다. 그러나 사상은 언어에서 분리 될 수 없다. 올(James Orr) 박사는 “사상은 반드시 형태를 취하고 언어로써 표현된다. 만일 영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사상과 함께 언어에도 침투하여 표현을 형성해야 할 것이다.” 벌콥(L, Berkhof) 도 “그러나 언어 없는 사상만의 영감은 비합리적이며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상은 언어로 형성 되며 언어로 표현 되는 것이다.”


성경은 그 자체가 언어의 계시임을 강조한다. 바울은 성령에 의해서 계시된 일에 대해 “고전 2:13 고전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 하느니라”


사상이 영감 되었으나 언어는 인간이 제멋대로 선택된 것이라고 하는 주장에는 사실상 성경의 권위를 부정한 사상이 그 밑에 깔려있다. 결국 성경의 모든 문자에는 각종의 모순, 오해, 착오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 할 수밖에  없다.

b. 영감은 성경의 도덕적 영적 교훈에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역사)에 구체와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계시와 구속의 사건이 실제적으로 이 지상과 시간의 정확한 지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부정하면 어떻게 영적 확실성의 기초를 둘 수 있겠는가? 성경은 그 자체가 역사적 기술의 진실성과 영적 가치를 확증한다.


바울은 구약의 이 사건들이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 쓰여 졌으며 복음의 영적 진리들을 상징하는 것들이라고 주장하였다.(고전 10: 4, 6, 11) 역사서의 저자들은 더욱 더 영감 될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계시 교훈 예언 그리고 초자연적인 기원을 가진 율법들을 사건들과 함께 설명하였기 때문이었다.


c.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한다.

성경에는 신화 전설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로란드 드 쀼리는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혼동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오류만큼이나 심각한 것이라고 하였다“ 신교가 이 둘을 예리하게 구별하지 않는 한 이교에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불트만(Rudolf Bultman) 은 성경에서 ”(신화)”를 제거하여  복음의 본질 케르그마(Kergma, 진리의 선포)를 보존하려고 애썼다. 다음 과 같은 것들을 다 제거 했다. 그리스도의 선재,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신성, 이적, 대리 속제, 부활, 승천, 재림, 삼위 일체, 죄의 결과인 죽음 등이다. , 만 일 볼트만 식으로 한다면 최후로 하나님 자신이 제거 되어야 할 것이다. 부르너(Emil Brunner)는 자기에게 하시는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자기에게 하시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여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달렸다고 함으로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할 뿐이라는 입장을 위했다.


(3) 셋째 설은 성경은 다만 하나님에 의해서 인간에게 기계적인 방법으로 영감 되었다고 하는 (기계적 영감설)이다.(Mechanical Inspiration)

성경의 저자들은 성경을 쓸 때 하나님께서 불러 주사는 것을 그대로 받아썼다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선택한 말씀으로 그의 시상을 기록하고 있는 성경의 필 기자에 불과하다. 성경의 문체 까지도 성령의 문체라고 한다.


성경기자는 테이프 레코드가 작동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과정에서 전적으로 (피동적)이다. 그는 자신의 말은 한마디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성령이 그의 입에 넣어 주시는 대로 한 음절 한 음절 발음하였을 뿐이다.


유기적 영감 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축자 영감은 필연적으로 기계적 영감설로 이끌어 가게 될 것이다.


(4) 넷째 설은 성경이 유기적인 방법으로 영감 되었다는 (유기적 영감설)이다.(Organic Inspiration)

개혁파 권내에서 받아들이고 있음. “유기적” 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경 저자들은 기계적인 방법으로 사용치 않으시고 또한 기록시키시려는 단어들을 저자의 귀에 불어 넣지 않으시고 오직 그들의 (내면적 법칙)과 잘 조화 시켜서 유기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사용하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성경의 영감은 생명이 없는 기계적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자들의 (성품과 기질), 은사와 재능, 교육과 재능, 용어, 어법, 문체 등, 이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신 유기적 사역이다.


하나님은 성경 저자들의 마음을 깨우치시고 저들을 고무하여 저술케 하시며 저들의 저술활동에 미치는 죄의 영향을 억제하시며 또한 저자들을 지도하여 저들의 용어를 선택하고 저들의 사상을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저들이 말하고 기록한 것은 저들의 작품으로만 생각 될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 되어야한다. 성경 저자들은 (각자가 자신의 문체와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시인과 선지자들의 장엄한 시 역사서의 일반적인 산문 이사서의 순순한 히브리어 다니엘의 아람어 바울의 변증적인 문체 요한의 단순한 용어 등을 우리는 성경 각권에서 보게 된다. 성경저자들은 저들의 작품에서 문체와 용어들을 통하여 자기네 개인적 흔적과 시대적인 흔적을 남겨 놓았던 것이다. 성경 저자들은 또한 기록할 사건들을 (미리 연구)하여 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눅 1:1-4“눅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눅1: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눅1: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눅1: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 이렇게 누가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전달을 기록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역사적 연구의 결과를 언급하고 있다.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자기 자신의 역사적 연구의 결과를 언급하고 있다. 선지자들의 메세지는 일반적으로 (역사적 상황)에 의하여 결정되고 신약의 서신들은 시대적 성격을 띠고 있다. 시편기자들은 저들의 경험과 죄의 용서(시 32:51) 환경의 위험과 은혜로운 구출( 시 46: 116)을 노래하였다.


이렇게 성경 저자들은 자신의 문체에 따라 썼고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특징)과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특징)을 그 저술에서 나타냈기 때문에 성경 기록에는 (개성)이 있음을 보게 된다. 유기적 영감 설은 분명히 성경의 표현과 가장 잘 조화를 이루는 영감설이다. 그것은 성경의 저자들을 기계적 영감 설에서처럼 단순한 도구로서 아니라 참 저자로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경은 영감으로 신적 요소와 인간적 요소가 잘 조화 되어 완성 된 책이다.


3. 성경의 특징

성경의 특징에 관한 교리가 발전하게 된 것은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들의 그릇된 성경 관을 시정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로마 교회는 유전(정통)을 성경과 동일한 위치 혹은 그 이상에 두었기 때문에 성경의 기원을 (교회)에서 찾으려고 했다.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그 독자적 신빙성을 믿게 하는데 정력을 쏟았다. 그들의 특징 4가지를 살펴보면


1) 성경의 신적 권위

성경의 신적 권위는 합리주의의 찬 바람이 유럽을 휩쓸고 이성이 진리의 판결자로 군림하기 까지는 종교 개혁의 모든 교회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합리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을 일반서적과 동일시하게 되었고 신적권위는 부정 되고 말았다.


로마 교회는 성경은 그 자체적의 고유의 권위 곧 독자적 신빙성을 가지지 못한다고 주장하였다. (교회)는 시간적으로 논리적으로 성경 보다 앞서면 그러기 때문에 교회의 존재는 성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혹은 재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하였다. 그들은 성경은 오히려 교회로부터 그 존재와 권위를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교회에 의해서 인정되고 보존되며 해석되고 변호를  받는다. 교회가 없이는 성경이 존재 할 수 없으나 성경은 없어도 (교회)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가톨릭의 주장이다.


개혁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 된 말씀으로서의 (고유의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곧 성경의 독자적 신빙성을 강조하였다. 성경은 그 자체의 권위 때문에 믿어져야 한다. 그것은 영감 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러기 때문에 권위로써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로마 가톨릭의 주장처럼 교회로부터 받은 것이 아니며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 교회보다 뒤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문서로 기록되기 전에 (불성문 계시)로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교회가 성립된 것이다. 시간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성경의 존재와 권위가 교회보다 앞서는 것은 당연하다.(엡 2:20) 교회는 성경 그 자체를 승인 할 수 있고 또 승인해야 되겠지만 그러나 어떠한 의미에 있어서도 성경 그 자체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톤웰(Thonrnwell)의 주장대로 “성경의 진리는 그 자체에 의해서 (신적)임을 자증 한다”는 것이 개신교의 원리인 것이다.


2) 성경의 필요성

성경이 신학의 원천이며 신앙과 행위의 법칙으로서 (절대 필요함)을 강조한다. 개혁주의 자들은 로마 가톨릭과 재세례파를 대항하여 성경의 필요성을 변호하였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의 용도를 하나님께서 폐지하실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으나 그 말씀으로 하여금 교회의 씨앗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옹호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은 시간의 종말까지 존재하게 되며 또한 반드시 남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로마가톨릭은 교회가 성경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경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교회가 성경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오히려 (성경)이 교회를 필요로 한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 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성경의 중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하면서도 성경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하려 들지는 안했다.


그들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다만 증거요 묘사이며 전적으로 무력한 그리고 죽은 문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말씀)이다. 이와 같은 신비적주의적 경향은 초대 교회의 몬타너스파(Montanists)와 카다이파(Cathai) 그리고 종교 개혁 시대의 제네바의 방임파(Libertiness of Jeneva)에게서도 보게 된다.


계시의 역사적 성격, 구속의 역사, 반복 되지 않으나 그러면서도 온 인류에게 계속해서 최대의 의미를 주는 구속의 사실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기록으로 남게 할 필요가 있게 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항상 성경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바이다.


3) 성경의 明白性(명백성)

경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책이다.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해석할 권리를 스스로 가진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은 (성경)에 증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로마 교회처럼 교회에 증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되 성실하게 연구가 요구되며 바른 지식과 참된 신앙에 이르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무식한 자들도 이해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구원에 필요한 지식은 성경 모든 곳에 꼭 같이 명백하지는 않지만 진실하게 구원을 찾는 사람에게는 단순하고도 이해하기 쉬운 형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그것은 교회나 교직자에 의 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경은 특별히 교회의 직원들에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아 들어라”라는 식으로 말하였다. 예수님도 대중을 향해서 말씀하셨다.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 영감 된 교훈의 참된 의미를 어는 다른 권위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일 성경을 읽고 해석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것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장애물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고 사람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은 성경은 흐려지고 손상되었기 때문에 신앙과 행위의 문제까지도 해석해 줄 필요가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유로 (무오의 해석)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오직 교회만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성경의 명백성은 성경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다.(시 19“7-8;시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시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 도다“) 영적인 사람은 그것을 하고 이해 할 수 있다고 하였다.(고전 ”2:15:1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 하느니라“)


4) 성경의 충족 성

우리는 성경만이 (기록된 말씀)만이 개인과 교회의 영적 도덕적 욕구를 위해 충족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기록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성경과 동등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우월한 권위를 부여하는 로마 가톨릭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개혁자들은 성경의 완전성 혹은 충족 성을 주장하였다. 물론 이 교리는 예언자, 그리스도, 그리고 사도들이 말하고 쓴 것은 무엇이나 다 성경 안에 담겨 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고 기록한 것 중에는 성경에 편입되니 않은 것이 많지만 그것들은 교회에 대하여 영구한 신앙의 법칙으로 계획되지 않았다고 개혁자들은 주장하였다. 그것들은 그 시대 사람들을 위하여 의도된 것이요 오늘날 우리를 교훈하기 위한 것이 아니며 우리로 하여금 구주를 찾고 생명을 얻게 하기에 충족한 것이다.(요 20: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신앙의 법칙)으로 충족하다. 성경은 신앙, 생활, 예배의 모든 문제에서 이를 지도하기에 완전하고 충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외에 다른 것을 발명할 필요와 권리를 갖지 못한다. 물론 성경은 생의 구체적인 사건들을 일일이 말하지 않고 일반 원리를 제공하여 줄 뿐이다.


로마교회는 성경을 하나님님의 (충족한 계시)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유전을 기록된 말씀의 보조 물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유전은 사도들이 전한 진리를 구체와 한 것이며 대대로 아무 장애 없이 로마 교회에서 전달되었다고 말한다. 이것들은 오늘날 주로 로마 교회의 각종 회의의 신조 교부들의 저작 교회의 선언문 그리고 기도서의 식사와 관례문 등에 포함 되어있다. 개혁자들은 그리스도교의 유전을 인정하되 성경에 기초하고 (성경)에서 나온 것만을 인정하였으며 성경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부여한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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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신학


교재: 신학의 역사(Historical Theology)

         저자: 엘리스터 맥그리드. 소기천 등 옮김

         출판사: 지와 사랑

참고 교재: 1)벌콥 조직신학

         저자: 루이스 법콥

          2) 기독교 교리사

          저자: 루이스 벌코프. 박문재 옮김

          3)사상사

          저자: 정노훈 목사 편저(:http://blog.daum.net/jnhok 개인 불로그 인 로고서 아가폐 의 사상사에서 다운 받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