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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수정본)

wordlove 2021. 2. 23. 07:41

1. 본문: 눅 23:34, 19:25-27, 27: 45-46, 19:28-29, 19:30, 눅 23:39-43, 23:46

2. 명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하신 7마디 말씀을 통해서 구원의 도리를 분명하게 계시하신다.

3. 제목: 다 이루었다!/ 가상칠언

 

1. 갈등: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을 통해서

전 세계 교회는 이번 주간을 예수님께서 2000년 전 십자가에서 고난 받은 고난 주간으로 기념합니다.(수년 전 설교) 예수님은 이번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셨다가 3일째 되는 다음 주 주일날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는 부활 주일로 지킵니다. 한 사람이 인생의 마지막에 남기는 말을 들어 보면 그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양심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친구 아크리톤에게 아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빚진 것이 있으니 좀 갚아 주게라는 유언의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최후까지 자기 양심에 대해 성실하기를 원했던 그의 양심적 삶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무신론 철학자 불테르는 임종의 순간 나는 이제 죽어야한다.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다. ”하나님에 대해 지적인 반항으로 일관해 온 그의 삶이 절망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엘리자베드 여왕은 내모든 소유를 잠시의 순간과 바꾸자 ””라고 절규했다고 합니다. 모든 황금과 권력을 소유하고도 결코 만족할 수 없었던 공허한 인생의 결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약 6시간 정도 매달려 있으면서 총 일곱 마디 말씀을 남겼습니다. 이것을 가상칠언이라고 부릅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해서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일곱 마디를 통해서 예수님의 관심과 삶을 한번 돌이켜 보고 싶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시간 순서로 전달하는 것은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예수님의 하신 첫 번째 말씀이 눅 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사형수 들은 대게 마지막 형장으로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고 합니다. 간수들에 의해 대게 끌려간다고 합니다. 악담을 퍼붓는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7000번의 죽음이라는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의 치를 떨고 있습니다. 왜 십자가형을 7000번의 죽음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너무 고통스러우니 완전히 죽을 때까지 깼다가 까무러치기를 7000번이나 반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가 자신을 십자에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왜 예수님은 자신을 찌르는 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셨을까요? 저희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를 모르는 무지한 자임을 아셨습니다. 고전 2:8절에서 바울 사도도 만일 알았더라면 저들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라고 합니다. 이들은 인간의 죄를 담당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금 그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사랑을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인간의 무지와 죄인의 연약함을 예수님은 이해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웃의 허물을 보았을 때 어떻게 합니까? 그럴 수가 있느냐? ”입에 거품을 품지를 않습니까? 예수님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 인간이기 때문이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이 용서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두 번째 말씀은 19:26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 19:27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사람이 고통스러우면 다른 모든 것은 아예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고통 자체만 생각하는 거죠. 예수님은 지금 7000번의 죽음이라는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 위에서 조차 제자들에게 살아있는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간혹 오해하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효를 모른다는 말을 합니다. 아마 죽은 사람 제사를 자기들처럼 안 하는 것을 보고 왜곡하여 비난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예수님은 고통의 순간에도 육신의 어머니를 생각하십니다. 19:26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 19:27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이것만큼 큰 효를 가르치는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울 사도도 6:2-3“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공경하라는 말은 가치 있게 귀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귀히 여기고 무게 있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공경의 본래 뜻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제자는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역사에 의하며 제자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셨고 그 후 에베소 지역으로 거주를 옮겨 자기 어머니처럼 마리아를 평생 공경하며 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통 가운데서도 사랑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기독교를 효를 모른다고 합니까? 누가?

 

2. 갈등심화: 고통의 삶

사형수를 돌보던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번은 교수형을 받기 전 사형수에게 마지막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형수가 목사님 제 손을 한 번만 잡아 주심 시오하더랍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의 고독을 누군가의 손길을 확인하면서 극복하려는 마지막 애절한 몸부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동반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갖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부터도 외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하신 3번째 절규를 들어 보십시오. 27:46 “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글을 읽다가 종교 개혁자 루터는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실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위하여 죄를 삼으셨다 예수님은 내 죄를 대신 담당하시려고 죄인이 되셨습니다.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을 결코 용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인인 나 대신 십자가에서 심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서 고독의 마지막 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고독은 고통이 동반된 고독이었습니다. 19:28 “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예수님의 4번째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물 한모금도 입에 적실 수 없었던 처지였습니다. 예수님은 고통 가운데 내가 목마르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지옥은 목마름의 극치 라고 했습니다. 16:24절에 지옥에 간 한 부자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였나이다. ”지옥은 영원한 목마름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대신해서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 가지 않고 천국을 경험하도록 말입니다. 천국은 목마름이 없는 곳입니다. 7:16“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다시 목마르지도 아니하니라성경의 마지막에 기록된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22:17“ 성령과 하나님의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며 또 원하는 자도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예수님의 고통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수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영생의 물을 마시고 있습니까?

 

3. 전환: 성취의 삶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고통당하고 계셨을 때에 양 옆에는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강도의 운명이 180 달라지는 일이 십자 가위에서 극적으로 일어났습니다. 한 강도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다른 한 강도는 천국에 들어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무엇이 두강도의 운명을 달라지게 했을까요? 지옥 간 강도는 옆에 있는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라면 우리를 한번 구원해보라고 비방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강도는 그 말을 듣고 그 친구 강도를 책망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23:41 “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 강도는 자신은 지은 죄 값으로 사형을 받았다고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교도소 사역을 하는 목사님의 말인 적 교도소에는 죄인이 없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무도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죄수가 없다고 합니다. 다 누구 때문에 자신은 억울하게 감옥살이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부산에서 일어난 살인 자 김길태를 보셨죠. 끝까지 자기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뻔뻔스러운 모습을 보지 않았습니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것이 죄인들의 강퍅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회개하기를 싫어하는 우리 인간의 완악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기 한 강도는 달랐습니다. 나는 내 죄 값으로 형벌을 받았다. 내가 이 형벌 받은 것은 당연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버리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강도는 끝까지 오리발을 내밉니다. 회개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강도는 자신의 죄를 마지막 순간 회개합니다. 이것이 두 강도의 운명을 갈라놓은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숨겼던 강도는 옆에 자신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외면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자신을 구원하려 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구원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강도는 마지막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았습니다. 회개란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구원할 구세주 예수님 앞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23:42 ”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회개한 강도는 자신의 영혼을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자신을 받아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예수님!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세요. 그러자 회개하는 강도에게 예수님이 은혜를 베푸셨는데 5 섯 번째 말씀이었습니다. 눅 23: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기 낙원은 천국을 말합니다. 천국은 회개하여 예수 믿는 자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순간 또 다른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성전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휘장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고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 들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자 눅눅23:45 ”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까지 휘장은 인간이 마음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휘장을 찢으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10:19-29 ”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은 죄인이 구원 얻을 길을 자신의 몸을 찢으심으로 여셨습니다. 아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6번째 말씀은 19: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다 이루었다. 헬라어로 테 델레스 타이 값을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친구와 같이 중국집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나의 자장면 값을 대신 지불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친구의 은혜로 자장면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죄 값을 다 치루고 지옥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한님과 죄인의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인생이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베푸신 우리 인생에 대한 은혜인 것입니다. 아멘!

 

4. 결단: 승리의 삶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절한 지옥의 고통을 받으시면서 이제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가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마지막 7 곱 번째 말씀은 눅눅2 3:46 “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맡기시며 마지막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인생은 누구나 죽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 아버지의 임재 즉 자신과 함께 하심을 확신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임재에 대한 확신이 마지막 순간을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이었습니다. 수많은 주의 종들이 예수님처럼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도, 순교자 폴리갑도 내 영혼을 아버지손에 부탁 하나이다 하며 죽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후스도, 마르틴 루터도, 천로 역정의 저자 좀 번연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라며. 마지막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이 아름다운 기도를 드리면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습니까? 이 아름다운 승리의 기도를 마지막에 드리려면 오늘 예수님을 당신의 주님과 그리스도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오늘 예수님과 가까이 교제하는 삶을 시작하십시오. 오늘 순종하며, 오늘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어떤 역경의 순간에도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도 이 승리의 기도들 드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이 기도가 저와 여러분의 마지막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