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본문: 행 5:29-32
2. 명제: 사도들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다..
3. 제목: 부활, 하나님의 선포
초대 교회 예수님의 제자 즉 사도들은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유대인 최고 종교 재판소인 산헤드린 공의회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고 복음을 더 이상 전하지 말라는 위협을 받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사도들은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님이 “ 왕과 구주 “로 높이신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의 성격과 본질 때문에 계속 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새로운 생명과 용기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딴 사람이 되었고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과 평강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얼마전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은 완전히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을 역전 시키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아침이 밝은 것입니다. 주께서 죽으신지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몇 명의 여인들이 향품을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는데 무덤이 떵비어 있었습니다. 여인들이 달려와 이소식을 전했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눅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제자들은 여자들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부활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이 갑자기 나타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 왜 두려워 하느냐? 나는 유령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요한복음에는 의심하는 제자 도마가 나옵니다. 주님이 처음 나타나신 주일 저녁 그 자리에 없었던 도마는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는 다른 제자들의 말에 ”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고 대꾸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나타나신 예수님은 도마를 보며 말씀하셨습니다. ”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돼라“도마는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요 20:28-29”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부활 후에 제자들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자신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여러번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이 어떻게 예언되었는지를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내용을 통해 제자들은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 이제 나는 너희를 떠난다. 아버지와 함께 했던 천국의 영광으로 돌아간다. 나는 너희를 내 증인으로 두고 간다. 너희를 파송한다. “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을 체포한 산헤드린에 공의회에 도전하면서 침묵 하기를 거절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들의 중요성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행 5:31절” 이스라엘로 회개케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유대인들이 거부해서 나무에 달려 죽인 예수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요 온 우주의 왕이시며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는 유일한 구주로서 그들 떠나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산헤드린의 명령에 도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자들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특별히 부활을 강조했을까요?
1. 무엇보다 먼저 주님이 누구신지를 최종적으로 입증해준 사건이 바로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당하신 예수님이 자신이 주장했든 내용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증해 준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이며 사람이지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아들임을 보여주는 최종적인 증거입니다. 어떤 분들은 “ 나사로도 죽은 자들 가운데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나사로는 부활한 것이 아니라 소생한 것입니다. 나사로는 단지 생명을 되찾는 것이며 결국에는 죽었습니다. 반면에 주님은 “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통과하여 그 너머로 살아 나온 첫 사람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증거입니다. 부활은 최종적인 증거입니다. 그리고 부활이야말로 제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사건이었습니다. 전에는 주님을 반신 반의했습니다. 베드로는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위대한 고백을 했지만 그 말의 뜻을 몰랐고 그래서 나중에는 실망하여 자신의 고백을 저버렸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목격한 후에 의심이 사라졌습니다. 오순절 날 설교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는 사건임을 놀랍게 변론한 사람이 바로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오시기 전 약 700년 다윗이 기록한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은 이미 죽어 장사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분명히 다윗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의 몸은 무덤에서 여전히 썩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지 못했지만 이분은 살아났습니다. 즉 다윗는 선지자로서 자신의 자손 중 한 사람에 대한 예언입니다. 살아 나신 이분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났습니다. 다윗의 말은 예수님의 부활이 이미 구약에 예언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가 그 예언을 성취하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부활은 이분이 바로 다윗이 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입니다. 즉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것이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한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것이 부활절에 교회가 세상에 전할 메시지입니다. 제자들은 왜 특별히 부활을 강조했을까요?
2. 부활이 하나님께서 아들의 사역에 만족하신다는 선포였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롬 4:25“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또한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으써” 그는 내가 하라고 보낸 일을 이루었다 “고 온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그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완벽하게 만드시고는 사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형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은 죽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를 보고서도 못본척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사기꾼이요 협잡꾼이요 거짓말쟁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형벌을 받아야 되는데 그 형벌은 영원한 죽음 즉 하나님의 생명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 형벌에서 구하려고 오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오신 직접적인 목적입니다. 부활은 그 목적을 이루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어 그분이 율법을 다 지키셨습니다. 그는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바울은 죄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무서워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죽을 때 죄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동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리는 주체가 바로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 줍니다. 그 죄에 대한 죽음을 선고하는 율법의 심판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이 고전 15:55절”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는 질문에 말하며 그 문제를 해결해 버렸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 나오셨다는 사실 즉 하나님이 친히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끌어내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율법이 높임을 받았으며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57절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셨기 때문에 이제 율법은 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율법의 요구를 채우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를 예수님이 만족 시켜셨습니다. 부활은 바로 그 사실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그도 율법의 형벌을 받아 죽임을 당함으로써 모든 상황이 끝나버렸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음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죽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도 만족 시켜셨고 소극적으로도 만족시켜셨습니다..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오직 부활만이 하나님이 만족하셨다는 확신 율법이 높임 받고 성취되었다는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 율법도 하나님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구주의 순종과 피 내 모든 죄 가려주시니 “ 제자들은 왜 특별히 부활을 강조했을까요?
3. 부활은 주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정복하셨다는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세력과 힘들이 있습니다. 세상과 육신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요염시킵니다. 이 세상은 온갖 오염물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그 더러움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벧후 2: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세상과 육신은 모든 사람을 넘어뜨립니다. 세상에는 죄를 짓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왜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답은 마귀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해로운 힘을 행사하는 악한 영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이 마귀가 가진 권세를 이기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항상 마귀에게 패배를 안겨주었습니다. 마귀가 시험하려 할 때에마다 좌절시키셨으며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무너뜨리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마귀의 정체를 결정적으로 폭로하셨고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우습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특히 부활을 통해 마귀의 권세를 빼앗아 버리셨습니다. 사탄은 더 이상 전처럼 죽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또한 부활의 놀라운 점은 맨 나중에 정복될 원수가 죽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 살면서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싸우고 있는데 그 모든 원수의 배후에 있는 것은 죽음과 무덤입니다. 죽음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원수입니다. 이 원수는 모든 사람을 거꾸러뜨립니다. 위대한 인물도 위대한 정치가도 위대한 왕도 위대한 철학자도 큰 부자도 모두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원수의 손에 희생당합니다. 이 원수를 정복하신 분은 오직 한분 부활하신 예수님 뿐입니다. 제자들이 산헤드린 앞에서 행 5:30-31절“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오른손으로... 높이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무덤에서 붙잡아 일으켜 죽음과 무덤까지 정복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다. 롬 8:33-34“ 롬 8:34 누가 정죄하리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롬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제 우리에게는 지상의 제사장이 필요 없습니다.. 교황이 필요 없습니다.. 마리아도 필요 없습니다.. 인간 중보자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한분으로 충분합니다. 그분은 부활하심으로 이 점을 입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왜 특별히 부활을 강조했을까요?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부활하고 승천하신 일은 공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려 다시 오실 것을 보여 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주셨습니다. 요 5:26-27“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7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선포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어디서든지 다음 세상에서든지 그분의 우리에 대한 태도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그 심판은 영원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예수를 일으켜 왕과 구주를 삼으셨음을 믿는 사람 오직 예수 안에서만 죄 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의 소망을 얻는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그 믿음대로 다 받아 누리는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산헤드린을 향해 “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사도들의 말은 이러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지금은 당신은 남을 심판하지만 곧 당신 자신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을 어떻게 대면하려 하십니까? 어떻게 율법을 대면하려 하십니까?? 당신들은 대면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을 율법의 형벌에서 구해 주실 분을 당신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분은 왕이요 구주요 메시아입니다.. 그분만이 율법을 성취했고 우리의 모든 원수를 정복하며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여 그의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만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공회원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람들의 영혼은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이 복되신 예수님 밖에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를 죽이고 싶으면 죽이십시오. 그래도 그분의 이름은 계속될 것이며 그 이름의 권세 또한 지속될 것입니다. 한분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분은 유일하신 구주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이생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죽음을 완전하게 통과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거룩한 법 앞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며 하나님 앞에 있는 영원한 복의 기쁨과 축복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침묵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임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유일한 구주입니다. 믿습니까? 그분 앞에 나아가 자신을 받아 주실 것을 구했습니까? 그렇게 구했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받아 주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찬양드리십시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