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2)(수정본)

wordlove 2021. 3. 2. 05:57

1. 본문: 1:16-17

2. 명제: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이기에 부끄러워할 수 없다.

3. 제목: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2)/복음의 능력(수정본)

 

2014년 새해의 주제 말씀으로 롬 1:16절인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자라는 말씀을 정했습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이 기억납니까?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첫 째 이유는 복음은 좋은 소식이라는데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은 구원을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까?

 

네째 이유는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을 준비하셨으며 어떻게 그 구원을 계획하시고 어떻게 이 구원을 우리 속에서 이루어 나가시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복음은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고전 1장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계속해서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이 말씀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다른 말로 복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1:6너희 안에서 착 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구원을 시작하시고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방식입니다. 벧전 1:5 ”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바울 사도는 구원이란 우리 속에서 복음을 방편으로 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사도가 의중에 두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작정하신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이루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앞으로 행하실 모든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총체적인 구원은 철저한 구원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이 바로 로마 그리스도인에게 미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위대한 능력으로서 그 능력은 먼저 하나님의 선택하시는 능력입니다. 또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중생케 하시는 능력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또한 복음은 우리를 보존하시는 능력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8:28-30“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하여 복음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가 만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압니까?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붙잡으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다면 부르실 것이고 그 부르심은 능력 있는 부르심입니다. 또한 유효한 부르심일 것이고 항거할 수 없는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자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십니다. 바울은 그것을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 일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들의 도덕성과 철학의 의미입니다. 그들은 삶을 개선하려고 애를 썹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해 본 사람의 결론입니다. 죄 가운데 있었던 사람은 개선 될 수 없다고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8장에서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그런 다음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바울 사도가 뜻하는 바는 이러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을 최종적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누가 막을 수가 있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다면 누가 감히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의 최종적인 결과를 알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원수 마귀와 환난도 있습니다. 바울은 좋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환난이 올때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것은 절대로 확실한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떠한..... 것도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확실합니다. 예수님은 " 아무도 내 손에서 저희를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절대로 확실합니다. 그는 끝까지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고 점도 없고 흠도 없고 주름 잡힌 그러한 것이 없을 때까지 구원하십니다. 복음이신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며, 앉은 병이를 일으키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포로 된 자를 자유롭게 하며, 가난한자를 부유케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여러 중독자를 능히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는 자를 새롭게 하여 쓸모 있는 인생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 속에서 시작하면 아무것도 막지 못합니다. 결국 영화에 이르기까지 그 일을 보장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지옥에 있는 것이나 어떤 것이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구원은 우리 인간의 신실하심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구원이 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복음은 구원하고 지키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로 들어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까? 살 전 2:13“ 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 니이다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거듭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됨과 깨끗하게 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문자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단순한 문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살 전 1:5에서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다. “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사람들에게 성경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사람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고전 2장에서 성령이 바로 그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지혜의 구원하는 말로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위해서 해 놓으신 일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부요가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일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성령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듣는 심령위에 성령님이 역사하사 구원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능력이란 말은 오늘날 역동적인(dynamic)이라고 말하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처방이란 말로도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예수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진단합니다. 그리고 처방전을 써줍니다. 그 처방전에 있는 여러 약품을 통해서 그 능력이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야 합니다. 그 약을 투여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복음은 처방전과 같습니다. 바울은 내 호주머니에 있는 처방전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관절을 앓았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했습니다. 걷기조차 어려웠습니다. 의사에게 갔습니다.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치료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치료방법을 사용했지만 낫지를 안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의사는 나를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의 고통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나의 모든 고통을 정확하게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처방전을 써주었습니다. 이것을 약국에 가지고 가서 그 약을 사용하면 당신의 병은 치료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의사의 처방대로 했더니 고통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완쾌되었습니다.. 이제는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저의 체험입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능력 있는 처방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처방전이 바로 복음이요 예수님입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1:14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바울은 난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빚진 자입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나는 빚진 자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됩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이 예수님이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전하고 말해 주어야 합니다. 그 복음의 결과들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그 복음이 하나님의 능한 역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이유

 

다섯 번째는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 둘째는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나 율법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도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율법을 가지거나 안 가지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복음은 이방인에게만 필요하고 유대인에게는 복음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에 첫째는 유대인에게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유대인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자랑하면서 복음 즉 예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율법 없는 이방인만큼 율법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도 똑 같이 복음이 필요하다고 바울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유대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 유아 세례 받았고요. 주일 학교도 다녔고요. 과거 교회 집사도 했거든요, 그것들을 자랑하면서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들도 회개해야 하고 중생이 필요하고 예수님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가 택시를 탄 적이 있습니다. 택시 운전사에게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자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나는 선하게 살고 있고,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으며, 양심적으로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천국이 있다면 자신 같은 사람이 가지 누가 가느냐고 반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은 선하기 때문에 예수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신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은 선하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최고의 계명 두 가지는 첫째는 마음과 힘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가 운전수 아저씨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참 선하신 분이군요. 그러나 선생님은 당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습니까? 이웃을 자사신의 몸처럼 사랑합니까? 묻자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람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 “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도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모든 인생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동일한 능력이 필요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복음에 관한 어떤 사람도 절망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흑인이 그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은 없습니다. 구원 받기에 불능인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죄인이도 구원이 필요치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의 죄가 어떠하든지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살인자나 가장 자기가 선하다고 자랑하는 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들입니다. 여기에 복음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가장 포악하고 가장 비열한 죄인들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두 경우 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위로가 됩니까? 예수의 피가 가장 추한 자도 깨끗하게 할 수 있고 그의 피가 나에게도 효력 있습니다. 조상들이 어떠하였든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과거도 계산되지 않습니다. 이 예수의 피의 능력에 의해서 그 모든 것을 지워 버립니다. 사람은 용서 받을 뿐만 아니라 새롭게 지어져 갑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신의 성품을 소유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도받아 궁극적으로 영화에 이르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랑합시다.